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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2009/07/2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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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위대한 건국의 아버님 이승만 박사
    특히 경제, 사회 전반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었던 광복직후인 당시 조국의 현실을 생각할때 좌우합작은 곧 조국의 공산화를 의미함을 간파한 이승만박사의 선견지명,
    그 천재성에 다시금 경의를 표함니다. 광복직후 좌익-우익을 막론하고 이승만박사를
    주석으로 모시겠다는 조각 명단발표가 많이 있었으나 (특히 좌익 인사 여운형씨의
    조각 발표) 이승만 박사는 모두거절한 사실로 보아도 국부님은 직위 명예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조국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겠다는 일념을 갖고 봉사하신분임니다.
    당시 국민으로부터 절대적인 존경과 지지를 받고 있었던 국부님이 대통령으로 있는한
    조국을 공산화 하기는 거의 불가능함을 감지한 무자비하고 무식한 김일성집단과
    남한 좌익세력들은 적전에서 이승만박사를 몰아내려는 음모(암살 음모도 포함)를 줄기차게 전개한 결과 부산 정치파동이 있었던 것으로 봄니다.
    * 1787년 미국의 3代 대통령이자 독립선언 기초자인 토머스 제퍼슨은 知人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씁니다.
    <자유라는 나무는 때때로 애국자와 독재자의 피를 마심으로써 원기왕성해져야 한다. 이는 자유의 근본 속성이자 거름이기도 하다>
    그는 또 1810년 知人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이렇게 말했씁니다.
    <성문법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이 선량한 시민의 고귀한 의무 중의 하나임을 의심할 바 없지만 그것이 가장 고귀한 것은 아니다.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지켜 내는 것이 더 고귀한 의무이다>
    이승만 박사의 정권하에서 부산정치파동이다, 삼선개헌이다함은 조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야하겠다는 사명의식의 발로였다고 사료됨니다. 제가 고1때 419가 터저 저도
    다른 학생들과 휩싸여 당시 광화문 4거리에서 중앙청을 거처 경무대(현 청와대)쪽으로
    가다가 총소리에 놀라 옆골목으로 빠저 대열에서 이탈한 사람임니다. 당시 학생들은
    이대통령 재선에 반대한것이 아니라 이기붕씨가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는 것이 불만이었고, 이대통령이 이기붕씨 아들 이강석을 양자로 맞아들인 것은 이대통령이 이씨왕국복원을 꿈구고 이강석이가 왕국의 왕자가 될것이란 유언비어가 나돌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민주당 대변인으로 있던 김대중씨는 무개있고 듬직한 인물이었고 그의 연설 솜씨 또한 박력이 있는 일품이어서 당시 저는 그가 장차 대통령감이라고 존경했던 사람입니다.
    지금생각하면 북한의 김일성집단과 남한 좌익분자들의 선동에 의한 정변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마산 앞바다에서 건저올린 중학생 시채가 경찰의 고문치사에 의한 것이란 말도 당시 학생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토머스 제퍼슨의 말을 빌면 우리의 국부 이승만 박사는 자유민주주의 조국을 지키기
    위한 사명감을 갖고 힘과 정치력을 절묘하게 구사하신, 혼란한 이시대의 귀감이될
    천재적인 학자이시며 선견지명한 정치가라고 사료됨니다. 김대중-노무현으로 해서
    극도로 혼란해진 이 우울한 시대에 조국을 지키기 위해 힘도 대범하게 사용하줄 아는 정치가는 없단 말인가?
  • Henry Choe 2009/09/0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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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국 초부터 좌익들의 끈질긴 농간에 의해서 손상된 대한민국 정채성
    남-북한을 막론하고 전 인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신 국부 이승만 박사.
    조국 해방 직전 미국의 소리 방송을 통해 "일본이 곧 패망하고 조국의 해방이
    눈 앞에 닥아 왔으니 이 기쁜 소식을 서로서로 전해주시오"라는 뜻의 육성 녹음이
    지금도 있는 지, 만일 없다면 419이후 이승만 박사를 폄훼하기 위한 좌익들의
    소행이라 생각 됨. 그 육성 녹음을 들으면 이승만 박사가 얼마나 절실히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셨던 분인가를 알수있는 그런 육성 녹음이라 기억함니다.
    (본인은 419때 학생들의 소요를 막기 위해 조회시간때 교장선생이 들려준 것으로 기억함, 하지만 못 살던 시절 대통령 양자 이강석이에 대한 질투심(본인의 마음)으로해서
    본인도 데모대에 합류하지 않을 수 없었음)
    625때 김일성은 극비리에 서울을 방문 중앙청을 둘러 본 것에 비해, 이승만 박사는
    국군이 북진 하고 있을 때 북진하는 국군을 따라 평양, 원산을 공개적으로 방문하여
    많은 북한 인민들로 부터도 열열한 환영을 받으신 분입니다. 625전쟁을 남한의 승리로
    이 끌기 위해서 꼭 필요한 지도자이심에도 불구하고 부산 임시정부시절 적전에서
    좌익들과 당시 강력한 야당 민주당은 이승만 박사를 정계에서 몰아내려는 운동을
    끈질기게 벌린결과 유명한 부산 정치파동을 가저왔는데, 이는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한 이승만 박사의 위대한 용단이며, 오늘 날 우익 정치인이 배워야 할
    귀감이라 사료됨. 좌익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온통 깽판을 치면서 대한민국을
    엎어버리려고 날뛰는 이때, 나라가 망해도 대통령이 법만 지키면 되는 것인가?
    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은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것이 보다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한다면, 부산 정치파동 이후, 좌익과 김대중이가 속해 있던
    민주당에 의해서 독재자라고 매도되어 온 우리의 국부 이승만 박사를 재 조명해서
    현재 국부가 없는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의 정채성을 재 확립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
    사료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