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법 제정할 후보가 대통령 돼야
북한동포의 해방에 무관심한 무자격자들
 
구국기도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북한주민을 돌아보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잠언31:8너는 벙어리와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모든 것을 통제 당해 벙어리의 인생이 된 국내외 사회적인 약자와 북한주민을 돌아볼 지도자가 누구인가? 입이 있어도 온 세상에 자기들의 당하는 학대를 고발치 못하는 아픔을 알아줄 대한민국의 대통령후보는 누군가? 어떤 후보들은 속이 빨개 그런 인격과 능력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가? 가해자 피해자로 나눠져 있는 이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이유는 무엇이고 무엇 때문에 가해자 편에 서는가?

자유의 퇴행과 역사의 퇴물 인권의 퇴보 국가 계속의 퇴진 퇴로 10.4를 되살려 북한주민의 고통을 더욱 가중되게 하려는가? 우리는 북한의 김정은 세습체제가 붕괴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한민족 전체의 자유로운 세상을 향한 염원이고 인간 도리의 구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체제를 세우려고 유지하려고 발버둥치는 자들이 지지율을 조작하면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려고 온갖 수를 다하고 있다. 참으로 악마적인 발악이 아니라 할 수가 없다.

어떤 말을 해도 처벌당할 수 있는 자들의 입장에서 괜스레 말을 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처형당하거나 비밀수용소로 끌려가는 분위기에서 오히려 그 마음에 말을 갖지 않은 편이 좋을지 모른다. 마음에 가득하면 입으로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때문에 맘속으로도 말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무슨 일을 겪어도 잠자코(taciturn) 있어야 한다. 오히려 침묵의 동조를 선호하는데 이를 양들의 침묵 아픔을 담아낼 대통령 후보는 누구인가?

북한주민은 김정은 수령체제를 위해 말을 쓰지 않는 無言의 연극을 해서라도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눌린다. 북한주민의 소리 안 나는 침묵의 복종, 소리가 없는 굴종 속에서 내면으로 흐르는 감정 생각 따위를 말로는 나타낼 수 없는 처절함을 과연 우리는 듣고 있는가? 자기들의 겪고 있는 것을 놀람 따위로 표현할 수도 없는 고통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의 아픔을 표현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을 과연 우리는 이를 알아내고 그들을 살려낼 의지가 있는가?

과연 우리는 북한주민의 입이 되어 그 모든 고통을 세상에 소리칠 수 있는가? 그들의 소리가 되어 가감치 않고 그대로 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무언 속에 흐르는 참담한 고통을 담아내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가? 그런 것에 민감하게 듣고 전할 수 있는 성질이나 특질이 결여된 우리가 아닌가? 우리는 이 일에 무기력하다. 이는 탈것에 엔진 돛 따위가 없는 것과 같이 북한주민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는 동력이 없는 것과 같다. 때문에 우리에겐 동력이 필요하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로 살자고 강조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의 무한근원이시고 이를 이루는 사랑의 동력의 무한근원이시고 그 동력으로 이웃사랑의 목적을 북한해방을 이루는 지혜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힘의 의지와 동력은 악마와 그 종자들과 빨갱이의 극렬한 저항을 극복할 수가 없다. 그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성령의 각성으로 말미암아 이 사랑을 행동해야 한다.

북한해방을 이룰 수 있는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그 일 하라는 자리에서 침묵하는 것은 우둔한 얼간이의(stupid) 짓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는 아무리 대통령의 자리라도 하나님의 힘이 없으면 악마와 그 종자들과 빨갱이의 저항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약한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creatures 곧 말 못하는 짐승처럼 취급받는 이 전대미문을 침묵으로 덮어야 하는가? 하는 반문도 제대로 못하면서 5년을 채우고 내려 올 것이다.

대한민국의 지성은 이런 것에 침묵하는 것으로 기본을 삼고 있는가? 참으로 어리석은 근성이 아닌가? 스스로 말 못하는 짐승으로 강요받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자들에게 굴종하는 자들을 어떻게 지성인이라 하는가? 그렇다면 ‘인간 creatures’가 아닌가? 북한주민의 그 아픔을 모든 지성인은 담아내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의 입에 재갈을 먹이고 굴종한다. 이들에게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자유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를 가진다.

하지만 지성인들이 스스로 ‘인간 creatures가 된다. 북한 인권에 대한 침묵은 관행으로 지식인의 덕목으로 삼는 듯하다. [~for the dumb~]는 원어에 mute, silent, dumb, unable to speak을 담고 있다. 폭정에 차단당해서 그 모든 압제 곧 말 못하는 짐승 곧 ‘인간 creatures’로 살아야 하는 북한주민의 아픔을 담아내고 대신 그 고통의 모든 것을 가감 없이 세상에 고하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북한주민의 무언의 말이 없는 내면에 흐르는 소리를 담아내야 한다.

벙어리의 소리가 되어야 한다. 공포에 눌려 할 말을 잃은(voiceless) 북한주민의 외치는 소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자유대한민국 국민이 해야 할 일이다. 자유대한민국의 소리가 되어야 한다. 선전에 동원되는 주민들의 소리 속에 숨어 있는 黙音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결코 말로 나타내지 않는 그분들의 아픔을 귀기우려 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범죄행위로 심문 받는 죄수의 인권 곧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침묵은 a mute letter 黙字로 쓰는 편지이고 a mute appeal 무언으로 하는 호소를 하는 것이다. 도리어 살기 위해 stand mute 黙秘하는 것이다. 그들은 다만 살기위해 무언으로 말하며 벙어리같이 행동하며 소리를 내지 않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폭정에 의해 침묵하는 무언의(mute) 말없는 침묵을 지키는 아무 말 또는 언급도 없는(unmentioned) 삶을 강요당한다. 자유대한민국이여 이를 언제까지 방치하고 외면할 것인가?

북한주민은 ‘인간 creatures’로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비교점이 없어 또는 기록할 능력도 없어 또는 기록할 수 없게 하기에 명기 기록되어 있지 않은(unrecorded) 고통 속에 살았고 살고 살아가야 한다. 남북이산가족의 단절의 의미는 소식 없는 무소식의 아픔이고 그것을 만들어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폭정의 소리 악마의 소리다. 가공스러운 정보통제로 인해 공표하지 않는 알리지 않는 것 속에서만 살아야 한다.

주는 대로만 봐야 하고 들어야 하고 믿어야 하는 강요를 받는 북한주민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면 이는 독해력이 없는 자라 할 수 있다. 이는 가짜 지성인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온갖 공포로 잠잠한 쥐죽은 듯한 고요한(quiet) 소리 없는 세상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군림하는 인간과 그 집단의 악마性을 고발하려는 자들은 익명(匿名)의 그늘 아래서 소리쳐야 하는 이 살벌한 분위기를 제거하기 위해 북한인권법을 제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하지 못하게 막는 세력에 의해 국회는 북한인권법제정에 활동하지 않는 쉬고 있는(inactive) 상태이다. 이는 국회의원들도 그 행동으로 공포에 눌린 묵음(黙音)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無聲의 활동사진이 돌아도 그 안에 담겨진 의미를 전달 받듯이 노예근성에 잡혀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silent reading 묵독(黙讀)하게 한다. 자유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이 무엇이 무서워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가?

아마도 벙어리개가 아닌가 한다. [이사야56:10그 파수꾼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왜 벙어리 개인가? 입에 뭣을 물고 있기 때문이다. 짖으면 그 입에 문 것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침묵을 강요받는 사회를 깨버려야 한다. 이런 침묵이 덕행처럼 도치되는 세상을 깨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후보들이 악습을 벗게 하는 진취적인 기상이다.

생각해보라. 모든 세상이 북한주민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다면 이는 북한주민이 얼마나 고독한 곳에 갇혀 있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폐쇄공포증에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있고, 이런 곳에 갇히면 스톡홀름 러브가 되어 인질범을 도리어 사랑하게 되고 또는 무감각해져서 체질화된다고 한다. 영구노예가 되는 것이니 이 얼마나 아픈 일인가? 사람이 악마의 영구노예가 되어 망해가는 것을 눈뜨고 보고만 있을 것인가?

인간의 파멸을 가져오는 이 폭정을 어서 종식케 해야 하는데 도리어 그것을 감추기에 급급한 세월이 아닌가? 누가 북한주민의 고독을 대신 담당하고 그분들의 아픔을 들어줄 것인가? 이런 곳에서 탈출한 분들을 변절자로 모는 어느 국회의원도 있는데 이들은 도대체 누구의 편에 서 있는 자들인가? 그야말로 인간 해충이 아닌가? 이런 국회의원이 있다면 이런 자들은 마땅히 시급히 驅除해야 한다.

중국 땅으로 내몽고로 또는 여러 곳으로 유리하는 북한주민의 아픔을 안다면 어서 속히 그분들을 자유대한민국의 사랑의 품으로 감싸 안아야 하는 119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119는 국민의 위기를 위해 준비되었는데 아직 그런 개념을 유리하는 탈북자들에게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할 수가 없다. 정치 경제 사법적으로 의료적으로 모든 방면의 119를 구성해서 유리하는 북한주민을 구출하기에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다.

고독에 갇혀 유리하는 북한주민을 파멸케 하는 원인(destruction)類, 이를 외면하고 건너가게 하는 강요들(passing away), 거래 고의 암묵으로 북한주민을 고독의 고통 중에 현안에서 사라져가게 하는 정치적인 외면들(vanishing), 김정은 체제의 공포에 파멸당해도 도움 받을 수 없는 고독을 만드는 모든 설비와 인프라와 약속들(appointed to destruction)을 파괴시켜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대통령후보로서 마땅히 내걸 공약이고 당연히 할 일인 것이다.

<구국기도생각>
http://onlyjesusnara.com
http://korea318.com
기사입력: 2012/10/07 [20:15]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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