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빨갱이 손에서 나라를 구해야
하나님의 지혜로 악마의 모든 공격을 간파해야
 
구국기도
한국교회는 빨갱이 손에서 대한민국을 구출할 책임을 다해야 한다(구국기도)

[잠언1:3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인간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의와 공평과 정직함의 기준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한 기준을 따라 사신 분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처럼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안에 모든 기준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 그 기준에 적응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 기준을 알 수 없기에 인간은 방종 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 기준을 알게 하는 능력을 주신다. 그 기준에 따라 정확하게 사는 능력을 주신다. 그 능력이 곧 지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의의 恩賜(은사)이다. 그 도움을 받아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의 통치를 받게 된다. 교회는 그러한 지혜안에서 행해야 하는데, 도리어 인본주의가 득세하여 인간의 지적인 능력의 합 곧 think tank라는 의미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악마의 지혜로 사는 종북 세력을 이기지 못하고 간파하지 못하고 그것에게 속아 반역의 거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곧 세속화되어가는 교회의 부패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능력이 곧 지혜인데 그것이 없다면 결국 길 잃어버림이다. 결국은 인본주의자들의 독무대가 된다. 이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없는 세상의 의미 곧 영적인 사막화를 의미한다. 영적인 사막화란 인간악마 화 또는 짐승 화를 의미한다. 오늘 날 교회가 북한 인권에 대한 침묵은 바로 그런 사막화의 반증이다. 하나님을 부어주시는 기름부음의 의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의 지배와 지혜의 통치를 받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로 행하는 것 곧 영적인 안보의 중요성을 우리는 날마다 되새겨야 한다. 이는 우리가 늘 악마와 대치하고 있고 그것들의 공격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악마와 그 종자들의 공격에서 우리가 늘 승리하려면 이미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를 따라 진군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는 것은 곧 항상 기름부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지혜를 알아보고 그 통치를 받아 들여 사는 데 필요한 모든 지적인 능력을 공급하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과 항상 함께 동행 동거하도록 돕는 지혜가 오면 그 지혜가 그 사람으로 인간의 잣대로 사는 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신중한 조심성 있는 세심한 분별 있는 현명한 선택을 하게 한다. 이는 전쟁의 의미 영적안보의 의미로서 이를 다루게 하기 때문이다.

영적인 전쟁에서 지면 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악마를 이겨야 한다. 그 때문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과 항상 함께 동행 동거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고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런 지혜의 힘은 하나님의 기준을 알게 하는 신중성을 의미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사는데 circumspect 곧 조심성 있는 신중한 충분히 고려한 용의주도한 지혜의 요구에 부합하도록 충족함을 이루게 한다. 하나님의 지혜를 누리는 것은 약삭 빠르게 꾀를 부리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런 약삭 빠름은 악마적인 것이기에 파멸을 초래 및 자초하게 된다. 하나님의 현명함은 생명과 평안을 가져오고 악마의 모든 공격을 기회비용 없이 피하고 이기게 한다. 교회가 하나님의 현명함으로 행해야 하는데 도리어 악마의 거점이 되고 있다. 그것이 인본주의의 한계이다. 하나님의 현명함 그런 슬기로움을 찾아내는 능력을 하나님의 wisely라 한다.

그런 자는 하나님 때문에 prosper 곧 번영하고 성공하고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보시기에 정당한 일을 번영시키는 자가 된다. 사람마다 그 성공의 기준이 다르다. 악마의 성공은 김정은 세습체제의 안착과 남한 내에 종북 세력의 득세로 인한 위기탈출일 것이다. 이번의 대선에서 저들이 단일화 사기 짓을 하는 것은 그 만큼 그 체제가 체제유지비에 절박하다는 말이다. 배고픔을 이기는 장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성공은 그것들을 이기고 하나님의 생명과 평안을 누려 강대한 대한민국만세에 있다. 하나님만이 그것들을 이겨낼 수 있기에 우리는 늘 하나님의 지혜로 행하자고 강조한다. 인본주의의 중도실용은 국회에 간첩들로 가득하게 하였다. 이는 그들의 눈은 하나님의 통찰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insight의 능력 곧 통찰(洞察, 通察) 통찰력 看破, 看破 能力을 공급받는다.

하나님의 insight로 미래와 담겨진 것의 모든 것을 꿰뚫어 담아낸다. 이런 능력은 직관적인 통찰 간파의 의미이다. 그런 능력으로 또한 見識(견식)을 넓혀간다. 그 만큼 眼識(안식)의 능력이 넓어짐을 의미한다. 안식(眼識)은 안목(眼目)과 식견(識見)의 준말이고 오식(五食) 또는 육식(六識)의 하나. 모양(模樣), 빛깔, 따위를 깨닫는 작용(作用)인 시각(視覺)을 의미한다. 겉만 보아도 속을 다 읽어낼 수 있다면, 또는 미래를 읽어낼 수 있다면 담아낼 수 있다면, 적장의 마음을 읽어내는 데 능할 수 있다면, 담아내는 데 능할 수 있다면, 그 통찰력의 의미는 대한민국을 복되게 할 것이다. 그 사람이 있는 곳에는 그 사람의 통찰력으로 인해 생명과 평안을 얻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하겠다. 우리는 대한민국 교회가 그런 위치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영적인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지금은 소경된 자들이 득세하고 있다.

안식이 담긴 육식(六識)의 육경(六境)이란 육식(六識)의 대상(對象)이 되는 여섯 경계(警戒) 잘못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는 것과 잘못이 없도록 타일러 주의(注意)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경계(警戒)란 일이나 물건(物件)이 어떤 표준(標準) 아래 맞닿은 자리와 인과(因果) 이치(理致)에 따라서 스스로 받는 경우(境遇)와 일정(一定)한 기준(基準)에 의(依)해 분간(分揀)되는 한계(限界)를 포함한다. 때문에 하나님의 주의력 attention의 의미가 언제나 전후좌우를 둘러 처음과 과정과 결과와 그 모든 일의 성취를 돕도록 주의 배려 주목 주의력 돌봄 등의 능력을 갖추게 한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총명이기에 그 모든 것의 배려 고려 숙려의 의미로 consider한다. 잘 생각하게 하고 고려 숙고 고찰케 하여 할 것을 생각하는 스프레드 스펙터클의 영역이 다 확실하고 선명해진다. 간파력의 의미는 격파력으로 이어져야 제격이다.

간파하고 격파하지 못한다면 이는 알면서 당하는 것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 격파를 하는 지혜를 찾아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라는 등불을 들고 그 방법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ponder의 의미이다. 그 때문에 그 등불은 그 안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안식의 의미가 빛을 발하고 그 빛으로 모든 것을 숙고하여 곰곰이 생각하고 하나님의 기준과 그 만족도에 따라 심사하고 묵묵히 생각하여 언행하게 한다. 그런 언행은 곧 하나님의 간파 격파능력에 해당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간파 격파의 능력이 나오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 동거하는데 능하도록 돕는 지혜에서다. 그런 지혜는 하나님의 눈빛의 공유에서 나오는 독해력의 의미로 가게 된다. reading comprehension의 이해 이해력에서 나오는 포용력과 그 이해된 만큼의 의미를 포함 함축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여기서 독해력이란 간파격파의 하나님의 눈빛과 공유하여 언행의 통일성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기준에 맞도록 하나님의 기준에 흡족 충족하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는 그 사람을 언제나 악마의 모든 공격을 간파격파에 능하도록 teach한다. 그를 가르치고 교수하고 훈련하고 길들이는데 바울은 이를 십자가의 세례 또는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하였다. 그것은 circumspectly의 의미로 사는데 신중하게 용의주도하게 주의 깊게 행동하는 데 필요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십자가의 세례를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지혜로 행하는 자가 될 수 가 없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지혜로 행하면 악마의 모든 공격을 간파 격파해내는 하나님의 성공이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success 하나님의 성공 하나님의 달성 하나님의 만족에 합격 하나님 안에 입신 하나님 안에 출세를 하게 하는 능력이다. 이런 것은 곧 하나님의 기준에 자신을 못 박는 것과 같다. 이런 crosswise(십자가형)의 의미는 그 손을 그 기준을 하나님의 것으로 완전히 교체하여 그에 발맞춰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교회가 이런 동행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라고 바울은 고백했다. 그렇다. 한국교회 안에 인본주의가 사는 것이 아니라 종북세력이 사는 것이 아니라, 악마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름 붓듯이 오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충만해야 한다. 그것이 곧 한국교회가 종북세력의 침해에서 회복된 참된 교회의 모습인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구국기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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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11/04 [17:36]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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