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광주사태엔 언론자유 없는 한국"
광주사태 판단에는 북한개입과 반란폭동도 고려돼야
 
조영환 편집인



  
지만원 박사가 ‘5.18 광주사태’의 성역화를 비판하면서, 광주사태에 관한 한, 한국사회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없다고 개탄했다. 지만원 박사는 “지난 18년 동안 필자는 130여 건이라는 엄청난 양의 재판에 시달려 왔지만 이 모든 재판은 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었다”며, “표현의 자유와 상대방에 대한 인격권이 충돌하고 있어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에 대해 “이 균형을 잡는 재량권은 재판을 독재하는 판사들이 갖는다. 속칭 이현령 비현령이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이것이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언론의 자유’다”라고 18일 지적했다. 지만원 박사는 특히 5.18광주사태에 관한 한, 한국사회에는 진정한 언론의 자유가 없고 법원의 판단도 정권에 따라 휘둘리는 문제가 있다고 질타했다.
 
먼저 지만원 박사는 “5.18은 북한특수군 600명이 ‘천대받던 사회불만세력’을 부나비로 이용하여 남남전쟁을 유발시켜 놓고, 이를 남침전쟁으로 연결하기 위해 벌인 고도의 이간작전이었다”며 “광주인에 의한 독자적인 광주인 시위대는 없었다. 민주화운동도 없었다. 20-30만명이 동원된 폭동과 살인과 방화가 있었지만 이를 지휘한 한국인은 없다”고 5.18광주사태를 요약했다. 이어 지 박사는 “국가는 북한군 작전에 소모품으로 이용된 4,634명의 광주-부나비들에 초특급의 유공자 대우를 해주고 있다”며 “국가는 북한이 써준 글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썼다, 국가도 국민도 남북한-공산주의자들에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10여년 동안 지만원 박사는 ‘광주사태에 북한군 개입’과 ‘권력에 따라 휘둘린 5.18재판의 변신’을 지적해왔다.
 
지만원 박사는 “광주사람들은 이러한 진실을 벌써부터 직감하고 있었겠지만 그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문제라 이 진실을 꼭꼭 숨겼다. 그리고 진실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물리적 법적 폭행을 가해왔다”며 “이런 광주사람들의 행패가 지속되어 온 이유는 그것이 필요한 빨갱이 집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5.18이 성역화 돼 있어야 빨갱이들의 행동들이 합리화 정당 화되기 때문이다. 남한의 겉은 남한 사람들이 다스리고 있지만, 남한의 속은 빨갱이들이 다스리고 있다. 바로 여기에 5.18의 성역화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만원 박사는, 광주세력의 지독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광주사태를 권력과 왜곡으로부터 해방시켜서 객관적 사실들에 근거하여 자유롭고 공정하게 판단하는 ‘5.18 재평가 운동’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지만원 박사는 “빨갱이들은 일사부재리 원칙을 무시하고 머리가 비어있는 김영삼을 이용하여 5.18재판을 다시 했고, 다시 해서 대한민국을 반란자라 판시하고 북한특수군에 부역한 광주의 양아치 계급에 ‘일시적 헌법기관’이라는 뜻의 ‘준-헌법기관’이라는 면류관을 씌워주었다”며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았던 ‘화려한 휴가’를 제목으로 뽑아 영화를 만들었다. ‘화려한 휴가’가 ‘광주학살 작전명’이었다는 것은 황석영의 ‘넘어 넘어’(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 기록돼 있다. ‘화려한 휴가’라는 말도 ‘신군부’라는 말도 다 북한이 만든 용어였다”고 주장했다. 지만원 박사는 “‘화려한 휴가’는 그보다 18년 전인 1991년에 북한에서 개봉된 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자매판으로 검찰이 조사한 모든 사실을 뒤집어 표현했고, 미국과 한국정부를 모략하기 위해 창작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2013년 6월 10일,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의 “5.18에 북한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이에 반하는 표현은 역사왜곡이고, 역사왜곡은 반사회적 행위로, 이에 가담한 일베회원들의 글은 삭제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북한특수군 개입을 증언시킨 방송들은 방통위를 통해 제재할 것이며 역사왜곡자들은 검찰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라는 국회 대답을 ‘역사에 대한 오명을 남기는 대답’으로 규정한 지만원 박사는 “2013년 6월 13일, 방송통신심의위 9명(박만, 권혁부, 김택곤, 엄광석, 장낙인, 구종상, 최찬묵, 박성희, 박경신)의 위원들이 만장일치로 TV조선 및 채널A의 방송진행자들에 대해 중징계할 것을 의결하였다”며 5.18에 관한 언론탄압을 지적했다.
 
광주사태에 북한군 개입을 언급한 사람들이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게 된 사연에 대해 지만원 박사는 “이들 9명(방송통신심의위원들)은 두 종편방송 진행자들에게 강제로 사과방송을 하게 했고, 감봉이라는 중징계조치를 내렸다. 진행자들은 울었다. 방송들은 더 이상 5.18을 다루지 못하게 됐고, 그 일로 출연했던 사람들도 방송출연이 금지되었다”며 “5.18광주에 북한특수군 600명 왔다”는 제목의 18분 짜리 동영상이 차단된 사연도 전했다. 이 동영상이 2013년 5월 7일 유튜브에 게시되어 조회수 83,036을 기록했던 순간에 “귀하가 접속하려는 정보(사이트)에서 불법-유해 내용이 제공되고 있어 해당정보에 대한 접속이 차단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경고영상과 함께 차단됐다는 것이다.
 
지만원 박사는 19일에도 “광주 5.18단체와 국가가 야합, 필자에게 가한 언론-표현의 자유 탄압과 인권유린 일지”라는 글(아래 전문 게재)을 통해 “한국 언론들은 정의를 버리고 이익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브로커 집단”이라며 “필자가 당했던 인권유린 사실들을 미국 유엔 등 국제사회에 호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 박사는 “2013년 5월 15일, 채널A가 잠자는 국민을 깨우는 매우 충격적인 보도를 했다. 실제 북한특수군으로 광주에 참전했던 가명 김명국이 채널A에 나와 생생한 기억들을 증언한 것”이라며 “2013년 6월 10일, 광주사람들이 서울로 대거 몰려와 전두환의 집과 종편 방송국들에 들이닥쳐 폭력을 행사했다”며 5.18에 대한 언론자유 말살현상을 지적했다. [조영환 편집인: http://www.allinkorea.net/]  




광주 5.18단체와 국가가 야합, 필자에게 가한 언론-표현의 자유 탄압과 인권유린 일지(지만원 박사)
 
필자는 아래와 같이 필자가 당했던 인권유린 사실들을 미국 유엔 등 국제사회에 호소할 것이다. 한국 언론들은 정의를 버리고 이익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브로커 집단이기 때문에 필자는 한국 언론에 희망을 버린지 오래다.  아래에 나열되는 린치급 인권탄압 사례는 모두 1980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발생한 5.18 폭동에 대한 역사관의 차이에서 발생한 것이다. 


필자는 1980년 5월 18일부터 10일 동안 발생한 소요사태에 대해, 북한특수군의 개입과 사주에 의해 발생했다는 확고한 역사관을 사태 당시에서부터 가지고 있었다. 수학에서는 이를 학문적 직관(conjecture)이라 한다. 이 학문적 직관을 증명하기 위해 박사논문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필자는 당시 정보장교로서 5.18이 북한 소행이라는 ‘정보적 직관’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사실로 증명해 내는데 12년이라는 엄청난 인생의 큰 토막을 바쳤다. 그 결과 지난 9월 1일, ‘증명종료’(q.e.d)를 의미하는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지만원이 증명한 5.18과 광주 및 국가가 주장해온 5.18의 차이
 


지만원이 증명한 것: “5.18은 북한특수군 600명이 ‘천대받던 사회불만세력’을 부나비로 이용하여 남남전쟁을 유발시켜 놓고, 이를 남침전쟁으로 연결하기 위해 벌인 고도의 이간작전이었다. 광주인에 의한 독자적인 광주인 시위대는 없었다. 민주화운동도 없었다. 20-30만명이 동원된 폭동과 살인과 방화가 있었지만 이를 지휘한 한국인은 없다. 국가는 북한군 작전에 소모품으로 이용된 4,634명의 광주-부나비들에 초특급의 유공자 대우를 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국가의 돈으로 학교를 만들고 책자를 만들고 영상물을 만들어 자라나는 어린이들에 국가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주고 있다. 국가는 북한이 써준 글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썼다, 국가도 국민도 남북한-공산주의자들에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다.”   


광주 및 국가가 주장해온 것:전두환이 쿠데타로 최규하 대통령을 바지로 만들어놓고 대통령과 군을 간접정범으로 이용하여 내란행위에 해당하는 5.17 계엄강화 조치를 강행했고, 대통령, 내각, 국민 모두에 극도의 공포감을 줌으로써 국권을 찬탈하려 했다. 한국의 모든 지역 국민들이 다 공포에 떨며 숨죽이고 있을 때, 오직 광주시민들만이 용감하게 목숨을 걸고 나서서 '전두환에 사적으로 충성하는 공수부대'의 만행에 맞서 싸웠다. 전두환은 공수부대원들에 빼갈이라는 강한 도수의 술에 환각제를 마시게 한 후 광주시민 특히 여성과 임산부를 놀리면서 사냥하게 했다. 광주시위대는 한국에 민주주의를 가져다 준 흑기사이며 준 헌법기관이었다.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다.    

                              양개 주장의 특징
 


전자의 주장은 12년 동안의 연구를 거친 연구의 결과였고, 후자의 주장은 1989년정치적 위기에 몰린 노태우와 이른바 민주화세력과의 정치적 흥정의 결과로 시작됐고, 1995년 10월 19일의 전두환-노태우 비자금이 폭로됨으로써 야기된 국민적 분노를 좌익세력이 발빠르게 이용하여 얻어낸 권력심판의 산물이었다. 김영삼 시대의 현역 법조인들은 권력에 법을 파는 기회주의자들에 불과했다.  

필자가 독립적인 5.18역사관을 표현함으로써
당한 물리적-정신적 고통  


2002년 8월 16일. 필자는 동아일보에 “좌익세력, 최후의 발악이 시작됩니다”라는 제목의 의견광고를 냈다. 3,500자의 칼럼형 광고문에는 “광주사태는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원들이 순수한 군중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이었습니다.”라는 46자의 문장이 들어 있었다.  
2002년 8월 20일,이 문장에 대해 5.18부상자회 회장 김후식이, 검은 유니폼을 입은 11명의 조폭을 이끌고 서울로 와서 다수의 경찰이 보는 앞에서 충무로 소재의 필자 사무실을 부수고, 건물주에게 협박을 가하면서 “사무실을 거두어들이겠다”라는 각서까지 받아갔다. 이어서 안양 소재의 필자 아파트로 달려와 수많은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차를 부수고, 대문을 부수며 무력시위를 했다. 경찰의 제보로 필자와 가족은 간신히 피신하여 화를 모면하였다.  
2002년 10월 22일, 광주검찰 최성필 검사가 형사소송법 4조에 명시된 ‘토지관할’ 규정을 무시하고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필자의 집에 3명의 경찰과 1명의 검찰 조사관을 보내 필자를 물리력으로 제압하고, 수갑을 뒤도 채워 6시간 동안 광주로 호송해 가면서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하고 온갖 아버지 뻘 되는 필자에게 온갖 상스럽고 저질적인 욕을 퍼부으면서 머리와 뺨을 마구 때렸다,

“니미씨팔 좇 같이, 뭐 이런 개새끼가 다 있어, 야 이 씨발놈아, 니가 시방 5.18을 씨부렀당가, 네깟 놈이 무얼 안다고 감히 5.18을 씨부러, 이 씨발 개새끼 가다가 목을 비틀어 파묻고 가야 한당께, 뭐 이런 싸가지 없는 개새끼가 다 있어, 야, 이 새끼야, 너 이회창으로부터 얼마나 받아 처먹었냐, 이런 새끼가 무슨 대령 출신이야, 이런 새끼가 무슨 육사 출신이야, 대령질 하면서 돈은 얼마나 받아 챙겼냐, 부하 꽤나 잡아 처먹었을 거다. 이런 쥐새끼 같은 개새끼, 우익새끼들은 모조리 밟아 죽여 없애부러야 한당께. 너 이새끼 가다가 죽을 줄 알아, 너를 때려 죽여서 파묻어도 증거가 남냐? 증거가?”   

광주 검찰에 도착했는데도 최성필 검사는 수갑을 풀어주지 말고 조사를 하라며 필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소리를 쳤다. 이어서 연장 검토를 하는 두명의 판사들이 필자를 노려보며 탁자를 치고 고함을 쳤다. 그리고 그 후 101일 동안(2002.10.22-2003.1.28) 감옥생활을 했다.  


2008년, 필자는 18만쪽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연구하여 1,722쪽의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의 머리말을 인터넷에 게시했다. “필자는 10.26, 12.12, 5.18, 김대중 내란음모, 1995~97년에 걸친 역사바로세우기 재판 이 모두에 대한 기록들을 열람하였다. 이 모든 기록들을 보면서 필자는 5.18은 김대중 등이 일으킨 내란사건이라는 1980년 판결에 동의하며, 북한의 특수군이 파견되어 조직적인 작전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다시 한 번 갖게 되었다. 불순분자들이 시민들을 총으로 쏘는 것은 물론 제주 4.3사건에서처럼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질러 놓고, 좌익들이 이를 군인들에게 뒤집어씌우는 소위 모략전을 반복적으로 구사함으로써 민주화 운동으로 굳혀가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심리적 내전’이 바로 5.18이라고 생각한다.” 광주 5.18단체들은 또 이 표현을 대상으로 고발을 했고, 검사가 기소했다. 이 재판은 1,2,3심가지 5년간 지속됐다.
 
2010년 10월 29일, 이날은 필자를 고발한 5.18부상자회 신경진 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하는 날이었다. 신경진은 재판부의 명령을 두 차례 무시하다가 강제구인에 나선다고 하자 이날 법정에 출두하였다. 그런데 광주사람들이 70여명이 몰려와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는 40대 여성을 뒤에서 달려들어 폭력을 가했고, 그 결과 귀고리가 떨어져 나가면서 여성의 얼굴에 피가 낭자하게 흘렀다. 필자 측을 염려하여 방청하러 온 노인들에게 아들 뻘 되는 남녀들이 삿대질하고 상욕을 하고 얼마 받고 여기 나왔느냐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쪼사버릴 새끼들" "갈아 마셔 버리겠다" "오늘 아무나 년이든 놈이든 한 놈 걸려라, 작살을 내 버리겠다" "광주에 대해 너거들이 머 안다고 개지랄이냐” “일당 얼마 받고 쓰잘 데 없는 짓을 하느냐” “광주를 비난하는 너거들이 빨갱이 새끼들이다.” 


방청석에 앉은 광주사람들은 변호사가 증인 신경진에 질문하는 신문과정에서 질문을 할 수 없도록 고함을 치고 욕설을 하여 3차례나 휴정을 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이 모습을 본 시민들은 5.18이 바로 이런 폭력이었다고 생각하게 됐다.  


2012년 12월 27일, 대법원은 피고인인 필자에게 마지막 무죄를 확정했다. 이로써 필자는 1,2,3심 모두 무죄를 받았다.  
2013년 1월 16일,  채널A가 필자를 초청하여 어떻게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게 되었는가를 물었다. 필자는 필자가 연구한 책들,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들, 황석영의 ‘넘어 넘어“ 등을 가지고 나가 필자가 어떻게 해서 북한특수군 600명이 광주에 개입했는지를 증명했다. 이때 진행자들은 필자의 논리에 수긍했다.  
2013년 4월 22일,  5.18을 재조명하자는 분위기가 방송계에 일자, 월간조선 전 편집장 김용삼씨가 TV조선에 공개 방송을 했다. 김용삼씨는 1996년 황장엽과 김덕홍으로부터 “5.18은 북한이 배후조종한 후 계엄군에 뒤집어씌운 사건이고, 그 작전을 기획한 대남부서 사람들이 5.18종료 직후 무더기로 훈장을 받고 술파티를 했다”는 증언들을 폭로했다.  
2013년 5월 15일, 채널A가 잠자는 국민을 깨우는 매우 충격적인 보도를 했다. 실제 북한특수군으로 광주에 참전했던 가명 김명국이 채널A에 나와 생생한 기억들을 증언한 것이다. 이 이상으로 북한특수군이 광주사태를 주동적으로 일으켰다는 생생한 증거는 없을 것이다.   
2013년 6월 10일, 광주사람들이 서울로 대거 몰려와 전두환의 집과 종편 방송국들에 들이닥쳐 폭력을 행사했다. 방송사를 지키는 경찰들에 밀가루를 뿌리고, 건물 유리에 계란과 토마토를 뿌리고 철물과 발로 유리창을 타격했다. 5.18의 명예를 훼손하는 방송들을 즉시 처벌하고, 전두환의 재산을 몰수하라는 주장을 했다. 이에 국무총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검찰이 광주인들의 요구를 100% 만족시켜 주었다.  
2013년 6월 10일, 광주인들의 폭력 시위가 있던 말, 국회에서는 좌익정당 요원들이 국회분위기를 장악했다.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빨갱이당 모 국회의원의 질문에 호응하는 형식으로 다음과 같은 반-민주주의적 발언을 했다.  
“5.18에 북한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이에 반하는 표현은 역사왜곡이고, 역사왜곡은 반사회적 행위로, 이에 가담한 일베회원들의 글은 삭제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북한특수군 개입을 증언시킨 방송들은 방통위를 통해 제재할 것이며 역사왜곡자들은 검찰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  
2013년 6월 13일,방송통신심의위 9명(박만, 권혁부, 김택곤, 엄광석, 장낙인, 구종상, 최찬묵, 박성희, 박경신)의 위원들이 만장일치로 TV조선 및 채널A의 방송진행자들에 대해 중징계할 것을 의결하였다. 이 두 방송국에 대해 방송 재허가 문제를 들먹이면서 국가기관의 파워를 휘둘렀다. 증명되지 않은 내용을 방송하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증명은 공론의 시장에서 다투어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이들 9명은 두 종편방송 진행자들에게 강제로 사과방송을 하게 했고, 감봉이라는 중징계조치를 내렸다. 진행자들은 울었다. 방송들은 더 이상 5.18을 다루지 못하게 됐고, 그 일로 출연했던 사람들도 방송출연이 금지되었다. 
2014년 7월 10일, 필자가 강의-제작한 “5.18광주에 북한특수군 600명 왔다”는 제목의 18분짜리 동영상을 2013년 5월 7일 유튜브에 게시했다. 그리고 조회수 83,036을 기록했던 순간인 2014년 7월 10일에 차단됐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귀하가 접속하려는 정보(사이트)에서 불법-유해 내용이 제공되고 있어 해당정보에 대한 접속이 차단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경고 영상이 떠 있었다.

음란, 마약, 불법 등 유해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것을 10월 10일에야 발견했다. 방통심의위('통신심의 소위원회' 위원장 김성묵, 장낙인, 하남신, 윤훈열, 윤석민)는 연구결과물에 대해 법으로 금지돼 있는 검열을 한 것이며, 그 지적 소유권자에 사전 고지도 없이 도둑질 하듯이 차단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행정심판위원회에 심판청구를 냈고, 법원에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2014.10.19. 지만원
http://systemclub.co.kr/ 

 

 
역사무식자 권오곤 국제사법재판관의 518망언(성정태 객원논설위원)


오늘 2014년 10월20일 아침 동아일보의 5.18에 관한 짤막한 기사를 보고 나는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대한민국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검사를 거치고 마침내는 국제사법재판소로 자리를 옮겨 세계의 사법정의를 세우고 있는 권오곤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의 경천동지할 5.18에 관한 망언을 듣고, 제가 낳고 자란 조국을 떠난 인간이 대한민국의 가슴 아팠던 70년 역사를 대체 얼마나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을지, 소위 이 땅에서 법을 공부한 인간들의 단순하고 일천하고 천박한 역사인식 수준에 기가 막힌다. 혹시 그도 천하디 천한 민주화 광신도일까?


“배운 무식자”라는 단어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말까지 붙여 주고 싶은 심정이다. 자신은 말할 것이다. 대한민국 법관에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관이나 되는 나를 누가 감히 무식하다고 할 것인가라고. 제 나라 역사를 모르는 인간이 함부로 5.18비극의 역사에 입을 놀리기 때문에 배운 무식자라고 나는 그를 부르는 것이다. 외눈박이가 저지를 엉터리 재판을 상상하면 소름조차 돋는다. 이런 인간에게 동아일보 기자는 “5.18진압주동자 국제사법재판소에 세울 수 있었다”라는 제목을 붙여 독자들을 선동했다. 기자들의 5.18인식 수준은 국가재앙 단계다.


“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은 국제형사법상 ‘인도에 반한 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두환, 노태우 등 관련자들을 (국내 처벌 이전에)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세울 수 있었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5.18폭동반란의 국군진압군을 국제형사법상 ‘인도에 반한 죄인’으로 몰아 놓고 재판을 할 수 있었다니. 온 나라가 폭력시위대 앞에 풍전등화 지경이었고, 전국계엄하에서 총포로 무장을 하고 계엄군에 맞서 전투를 감행했던 폭도들에게 “인도(Humanity)” 운운하는 권오곤은 분명 무정부주의자 혹은 혁명분자임을 스스로 폭로한 망언이 아닐 수 없다.


그 잘난 법관 이력서로 대한민국의 가슴 아픈 5.18폭동반란의 역사를 이야기하려면 최소한 대한민국 사법부가 이미 일반에게 공개한 5.18에 관한 수사와 재판 기록이라도 훑어 보고 헛소리를 하든 말장난을 하든 했어야 옳았다. 전국계엄하에서 광주에서만 유독 시민군이라는 폭도들이 25만 발의 실탄을 가진 총포로 무장하고, 고작200발의 경고탄을 소지한 계엄군과 싸운 폭도166명의 사망자 중 69%가 폭도가 소지한 총에 의한 사고였다는 사실도 모르고, 더구나 폭도들이 광주교도소를 6차례 습격했다는 사실도 모르면서 “인도(Humanity)”라고?


이 기사를 쓴 대한민국 거대언론 동아일보의 기자나, 고매하신 국제사법재판소 판관이나 배운 무식자이기는 마찬가지다. 수 십만의 자유베트남 주민들을 인민재판으로 처형하거나 추방시켰던 베트남의 호치민, 수 천명의 학생시위대가 민주화를 요구하던 천안문 광장에 탱크를 몰고가 학살해 버렸던 중국 개혁개방의 신으로 불리는 등소평, 그들은 반드시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여 그들의 “인도주의에 반한 반 인륜적 범죄를 단죄해야 한다”고 어디 한번 입을 놀려 보시지요. 우물 안 개구리들이 제 나라 역사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종북 빨/갱/이에 감염되어 나라 망치고 있다.


배운 무식자들이 내질렀던 헛소리를 여기에 전부 옮겨 보겠습니다.


권오곤 국제유고전범재판소 부소장 “민간인 학살… 인도주의에 반한 죄”


“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은 국제형사법상 ‘인도에 반한 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두환, 노태우 등 관련자들을 (국내 처벌 이전에)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세울 수 있었습니다.”
권오곤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부소장(61·사진)은 18일 서울 성북구 안암로 고려대 CJ법학관에서 열린 사법정책연구원 주최 학술대회의 기조강연자로 나서 국제형사법의 국내 적용의 예로 5·18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을 들며 이렇게 말했다.


권 부소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주동자들은 ‘민간인에 대한 공격’보다는 내란, 반란죄 등 헌정 파괴범으로 처벌받았다”며 “군부가 민간인을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공격했고 수많은 희생이 따랐던 만큼 전형적인 반인도적 범죄”라고 지적했다. 당시 계엄군의 총격으로 민간인 165명(정부 집계)이 사망했고 관련자 재판은 1996년에야 이뤄졌다.


그는 “5·18 무력진압이 국제범죄로 인정돼 ICC에서 재판했다면 공소시효 문제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 부소장은 한국 재판의 ‘글로벌 스탠더드 강화’도 주장했다. 그는 “헌법 제6조 제1항에 의해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며 “국제법은 우리가 좋든 싫든 우리 곁에 이미 와 있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사건 등 북한의 전쟁범죄에 대비하고 통일 후 북한에서 자행된 반인권적인 범죄도 국제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 부소장은 2001년 대구고법 부장판사로 근무하다 한국인 최초로 ICTY 재판관에 선출됐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

기사입력: 2014/10/20 [09:47]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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