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名 식별을 통해 본 漢字표기의 당위성
한자를 멀리하고선 한국어를 잘 할 수 없다
 
車聖信 조갑제닷컴 독자
모든 사물에는 명칭이 있듯이 우리 사람들에게도 호칭 즉 姓名이 있습니다.
 
  姓名은 姓과 名으로 구분되며, 우리 한국사람에게 주어지는 대부분의 이름 석 자 중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고유한 이름은 한 글자에 불과합니다.
 姓은 가족의 이름이며, 名 중 돌림(항렬)자 한 자는 형제의 이름이며, 나머지 한 자가 나에게 부여된 진정한 이름입니다. 필자(車聖信)의 이름을 통해 보면, '車'는 가족의 이름이요 '信'은 형제의 이름이며 '聖'이 비로서 저에게 부여된 고유의 이름입니다.
 
  예전에 선조들은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비록 한 글자에 불과하지만) 한자의 획수·뜻, 음양오행, 사주팔자, 한글발음, 81수리(元亨利貞) 등을 고려했습니다. 현대에는 이러한 개념이 많이 약해졌지만, 그래도 절대적으로 무시할 수만은 없습니다.
 
  '名(이름 명)' 字의 유래대로 단지 해 진 저녁[夕]에 부르기[口] 위한 용도로만 사용한다면 개똥이, 소똥이 등으로 이름을 지어도 별 문제는 없겠으나, 다른 요소를 고려하여 이름을 한자어로 지었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제 큰 아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車(7획, 金) 叡(밝을 예, 16획, 土) 潾(물맑을 린, 필획15·의획16, 火)
 좋은 이름의 조건에는 발음과 뜻이 좋아야 하며 사주를 보완해야하고, 수리 및 음양오행에 적합하여야 하는 등의 요건이 있으나, 저는 발음과 뜻에 중점을 두어 아내와 상의하여 간단하게 "밝고(지혜롭고) 맑게 자라라"는 의미에서 '叡潾'으로 지었습니다.(결과적으로 수리 및 음양오행에서 모두 吉한 것으로 나타남)
 
  아이의 이름을 한자어로 지었기에 한자로 표기했을 때 비로소 '밝고 맑다'는 의미가 살아나며, 한자어를 한글인 '예린'으로만 표기한다면 이는 단순한 기호·소리에 불과하고 제(부모)가 의미한 "밝고 맑게 자라라"는 의미는 사라집니다.
 
  조선시대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은 장남의 이름을 學淵(학연)으로 차남의 이름을 學游(학유)로 지었는데, 이는 공자의 제자 顔淵(안연)과 子游(자유)를 본받으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었죠. 이는 한자로 표기했을 때 그 의미가 살아나며 한글로 학연, 학유로 표기하면 단순한 하나의 부호로 그 뜻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사임당'도 '申師任堂'으로 표기하여야만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申은 신사임당의 본명인 申仁善의 姓이며 중국 周나라의 기틀을 닦은 문왕의 어머니 太任을 스승[師]처럼 존경한다는 의미로 지은 堂號(당호)입니다.
 
  얼마 전에 올인코리아에 정창인님이 쓰신 趙甲濟님의 글에 대한 반론을 읽고 이 글을 쓰게 된 바, '趙甲濟'와 '정창인'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우선 '趙甲濟'는 姓은 '曹'씨가 아닌 '趙'씨이며, '甲'으로 봐서 맏이 겠고 부모님은 세상을 구원[濟]하는 큰인물[甲]이 되기를 바라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정창인'은 姓부터 '鄭'씨인지 아니면 '丁' 또는 '程'씨인지 짐작이 안가고 '창'이나 '인'에서도 소리만 들릴 뿐 그 어느 의미도 전혀 짐작할 수 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이름이 고유어로 지어졌다면 한글로 표기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한자어로 지어졌다면 반드시 한자로 표기 또는 병기하여야만 그 의미를 살릴 수 있습니다. 한자는 뜻글자이기에 노출하여 자주 보게끔 하여야 눈에도 쉽게 익듯이, 한국어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한자어의 표기요소인 한자를 멀리하고서는 절대 한국어를 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車聖信 조갑제닷컴 독자: http://www.chogabje.com/
 
 
이름 때문에 한자(漢字)를 쓸 이유가 있을까?(정창인 자유통일포럼 대표)

이 글은 위에 인용한 차성신님의 글에 대한 반론으로 쓴 것이다. 사실 이런 류의 글을 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나 굳이 내 이름이 거론되었기에 답하게 되었다. 우선 차성신의 주장이 옳다고 긍정한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한자를 쓸 이유는 없다고 본다. 한국 사람들이 이름 짓는 관행이랄까 관습이 한문을 사용하던 시대에 형성되었으니 그 관행이 한문과 관련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선조들이 한자를 사용하기 전에도 그와 같은 이름짓는 관습이 존재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한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중국의 서적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이나 논리까지도 받아들이게 되었으니 당연히 사주팔자니 주역이니 하는 것을 받아들였고 심지어 모든 사물에 서열을 부여하는 관행도 생겼다. 한국 사람들이 서로 만나면 우선 나이부터 묻고 서로 서열을 매기는 습관도 한자문화의 서열관에서 생긴 것이다. 삼강오륜이니 하는 생활원칙에서 서열을 특히 많이 따진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서열문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래서 이름을 지을 때도 항렬을 따지고 형제자매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이름을 짓는다.

그런데 우리가 한문문화를 떠나면 그런 서열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름을 짓는데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 것이 사회발전과 무슨 상관이 있으며 한 개인의 일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냥 있으나 마나 한 공허한 규칙이 아닌가? 사실 요즘 항렬 따지고 태어난 순서를 따져서 이름 짓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가문이 훌륭하여 그런 전통을 반드시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미 그런 관행은 사라졌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름이란 어느 개인을 나타내는 고유명사다. 그런데 실제로 한자로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여 그 한자의 뜻을 새겨서 어느 사람을 기억하는 경우가 있는가? 예를 들어 이 글을 쓴 사람의 이름이 차(車)성(聖)신(信)인데, 이 분의 이름을 한자의 뜻에 따라 ‘성스러울 성 미쁠 신’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이 이름을 지으면서 부모님께서 성스럽고 믿음성 있게 자랄 것을 기대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름에 쓰인 한자를 그 뜻에 따라 해석하고 그 뜻을 그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하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차성신이라고 할 때 그것은 그냥 ‘차성신’ 또는 ‘성신’으로 알게 된다. 심지어는 성신이라는 이름을 성(聖)신(信)이라고 쓰던 또는 성(星)신(愼)이라고 쓰던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관심이 없다. 그의 이름은 단지 ‘성신’일 뿐이다.

그의 이름을 꼭 성(聖)신(信)이라고 고집하여야 할 이유가 있다면 아마 사주팔자를 보거나 주역에 따라 이름을 한자식으로 해석하거나 또는 옛 중국 서적에 따라 운을 점치고 싶을 때일 것이다. 그러나 한자의 획수나 부수에 따라 한 개인의 운명을 점치는 것이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한문 서적에 따라 점을 칠 수 없는 서양 사람들의 이름은 이름이 아닌가?

차성신씨가 말한 바와 같이 나의 성을 단지 한글로 ‘정’이라고 쓰면 나의 성(姓)이 정(鄭)인지 또는 정(程)인지 또는 정(丁)인지 구별할 수 없다고 한다. 글쎄, 그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말로 하면 위의 여러 성이 구별이 되지 않는다. 오직 글로 써야만 구별이 된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그 성을 정확하게 구별할 이유가 없다. 나는 그냥 ‘정창인’으로 통한다. 나의 성이 정(鄭)이든 또는 정(程)이든 또는 정(丁)이든 상관이 없다. 사람들은 그것을 구별할 이유가 없다. 단지 족보를 따지거나 친척관계를 따지고 싶을 때 내가 어떤 성을 가지고 있는지 따지게 된다. 또한 사주팔자를 따질 때 어떤 성인가가 문제가 될 것이다. 참고로 이 세 글자는 중국 발음으로는 모두 구별이 된다. 단지 한국 발음으로는 구별이 안 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자가 우리말과 다른 글자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이름을 지을 때 아버지 이름을 그대로 따르기도 하고 또 특히 어머니에 대해 애정이 깊을 경우 어머니 이름을 따르기도 한다. 한문문화가 가지고 있는 사주팔자니 주역이니 하는 불필요한 규칙을 이름 지을 때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도 항렬이나 사주팔자를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좋은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 한자를 계속해서 사용하게 되면 계속 항렬을 따지고 사주팔자를 따지며 주역을 따지게 된다. 이름으로 한 개인의 일생을 점치려고도 한다. 만약에 이름을 순 한글로 지었다면 아예 사주팔자를 따지거나 주역에 따라 운을 풀이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한자를 고집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우리가 애당초 한자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한자식 이름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개똥이나 돌쇠 비슷한 이름들을 썼을 것이다. 이 이름들이 천박하고 우스꽝스럽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럴 이유가 없다.

미국 사람으로 골드워터(Goldwater)라는 성이 있다. ‘금 물’이다. 일본사람 이름에는 타나카(田中)가 있다. ‘밭 가운데’다. 한국사람 성이 김(金)이라고 하자. 그 뜻은 ‘쇠’가 아닌가? 이(李)라는 성은 ‘오얏나무’가 아닌가? 한자로 쓰면 더 신비할 이유도 없고 더 고상할 이유도 없다. 단시 평소 ‘김’이니 ‘이’니 하고 사람을 부를 때 김이 쇠라는 뜻이란 것을 잊고 있고 이가 오얏나무란 것을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굳이 뜻을 새기자면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천자문을 배울 때 “하늘 천(天) 따지(地)”하고 익히지 않는가? 하늘과 천(天)이 뭐가 다른가? 우리말을 모르고서는 한자의 뜻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한자를 써다 보니 우리말로 꼭 대체가 되지 않는 단어가 많아졌지만 이것 때문에 우리가 지금 불편을 겪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나라 말도 외래어가 있다. 단지 우리의 경우 한자에서 유래한 외래어가 많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간편하다. 어렵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만약에 아직도 사주팔자가 한 사람의 운명을 점치고 또 주역에 따라 이름을 풀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논리에 따라 한자 이름을 고집해도 된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뿐만 아니라 이제 사주팔자가 사람을 운명을 점칠 수 있다든가 아니면 주역이 세상만사를 풀이할 수 있다는 어리석을 인식을 고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러나 길거리를 가다 보면 사주카페니 점치는 천막이 많은 것을 보면 이런 관행이 하루아침에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런 이유로 한자를 고집하는 것도 고리타분하지 않은가?

2009. 5. 22. [정창인 자유통일포럼 대표: http://unifykorea.net/]
기사입력: 2009/05/22 [14:13]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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