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기념공원: 넋 나간 中道정치꾼들
김정일의 재간둥이 윤이상 추앙자들의 정체는?
 
강재천 네티즌 논설가
김일성의 '재간둥이' 윤이상의 흔적을 대한민국에서 깨끗이 치워야 할 것이다
 
지금 통영에서는 윤이상기념공원 개장을 앞두고 있다. 윤이상이 누군가? 거두절미하고 빨갱이다. 대한민국에 빨갱이 기념공원이 무슨 말이며, 빨갱이 유품을 전시하고 기념한다는 말이 가당하다는 말인가? 좌파정권에서 시작된 기념공원 조성공사, 그리고 발기인에 MB의 이름도 올라있다고 한다. 세종시 문제로 사과했듯이 MB는 다시 한번 대한민국 국민에게 머리를 조아려서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집권하자 말자 '이념은 없다'고 헛소리로 시작된 정부였기에 촛불을 든 광우병난동꾼(빨갱이와 빨갱이 배후조종)에게 똥침을 그렇게 찔렸으면서도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하니 빨갱이들이 백주대낯에 거리를 활보하고 사법반란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필부와 같은 소시민도 과오를 인정하고 교훈을 머리속에 새기면서 살고자 하는데, 한 나라를 운영하는 최고지도자의 윤이상 기념공원조성사업에 방관하는 모습은 결코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빨갱이들의 기념공원인 제주 4.3 공원에 이어 통영에 생겨날 윤이상 기념공원이 우파정권에서 개장식을 한다면 말이 되는 소리가 아닐 것이다. 제주 4.3공원을 대폭 정리/수정해야 할 때, 또 다른 빨갱이 선전선동 공원이 생기게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런 일들을 계속 방치한다면, 이제 좌익빨갱이들의 난동이 아니라 보수우파의 "MB정권타도' 방향이 선회될까 염려되서 하는 말이다.

MB는 즉시 윤이상 기념공원사업에 발기인으로 참가한 사실을 국민에게 사과하고, 공원개장과 더불어 윤이상의 흔적을 깨끗이 치워서 대한민국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 통영시의 기념공원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말은 필자의 말이 아닌 보수우파의 명령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하고 명심해서 실천해야 할 것이다. MB의 변화된 모습을 기대한다.

10.02.25. 강재천 네티즌 논설가: http://blog.chosun.com/kjc60kr/4540068
 

대한민국이 북한공작원으로 규정하였던 사람을 국민세금으로 기린다니!
金成昱   


사진 맨 위.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가 북한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해 적은 글. "위대하신 수령님 영생불멸(永生不滅)하십시오"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 아래는 이 사진이 실린 북한의 책. 그 아래는 김일성 교시집. 맨 아래는 윤이상을 북한의 애국자로 칭송하는 북한서적들.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는 「기념공원」이 개장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다음달 19일 개막되는 통영국제음악제에 맞춰 통영 출신 윤이상을 기리기 위한 기념공원이 막바지 준비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통영시는 윤이상의 생가 주변 도천동 148번지 일대에 조성 중인 도천테마파크(윤이상 기념공원) 조성공사가 거의 완료, 다음달 19일 개장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약 80억 원이 투입된 기념공원은 야외공연이 가능한 음악광장과 관객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프린지홀, 윤이상의 유품 전시실 등으로 구성된다. 전시실 조성을 위해 통영시는 지난해 10월 독일 베를린을 방문, 윤이상의 유품 148종 412점을 가족으로부터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5년 11월4일 사망한 윤이상(尹伊桑)은 소위 ‘세계적음악가(?)’로 국내에 선전돼 있다. 그러나 그의 음악성과는 별도로 윤이상은 널리 알려진 반한(反韓)인사이다. 그는 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됐었다. 이 사건은 당시 유럽에 유학했던 유학생 등을 중심으로 동백림(동베를린) 주재 북한대사관과 북한을 왕래하며 벌어진 간첩사건이었다. 윤이상은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2년 후 刑집행 정지로 석방됐었다.
  
 <통영인터넷뉴스>에 따르면, 진의장 통영시장은 12월18일 통영시의회 본회의 때 『동백림 사건을 비롯해 윤이상 선생께 씌워졌던 오해는 이미 지난 2006년 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혐의가 모두 풀렸다』며『윤이상 선생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음악가로 칭송받고 있는 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윤이상의 반한(反韓)행적은 동백림 사건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이 사건 이후에도 죽는 날까지 북한을 오가며 친북(親北)성향 단체에서 활동해왔다. 「민건회(민주사회 건설협의회)」회장, 「한민련(민족민주통일 해외한국인연합)」구주본부의장, 「한국학술연구원(KOFO)」원장, 「유럽민협(재유럽 민족민주운동협의회)」고문 등 직함도 다양했다. 윤이상은 90년 11월20일 독일 베를린에서 남북, 해외범민련의 3자기구로 설립된 이적단체(利敵團體) 범민련의 공동의장직에 취임하기도 했다. 
  
 <『너는 칠보산연락소 비밀 빼간 미제(美帝)간첩이다』>
  
 윤이상의 실체는 92년 「오길남 간첩사건」으로 다시 확인됐다. 오길남 박사는 독일유학 中 정치망명한 뒤 85년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입북(入北)해 한민전 대남흑색방송요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86년 11월「재독유학생포섭 대동(帶同)입북지령」을 받고 덴마크로 침투하던 중 코펜하겐 공항에서 홀로 탈출에 성공했다. 이후 吳박사는 독일 등지를 떠돌며 가족의 구명을 위해 애를 쓰다 92년 5월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현재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다.

 윤이상은 북한과 연계해 吳박사의 입북(入北)을 적극 권유 및 주선했고, 吳박사가 탈출 후 독일에 체류하는 과정에서도 갖은 협박을 하며 再입북을 권유했다. 윤이상이 독일에서 설립한 한국학술연구원(KOFO) 역시 북한 대남공작기구의 자금을 받아 설립, 운영된 조직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정부는 92년 국가안전기획부가 발간한 <入北자수간첩 오길남 사건내용>이라는 수사결과에서 『윤이상은 북한의 정치노선에 따라 활동하고 있는 북한의 문화공작원』이라고 판단했다. 또 17회에 걸쳐 입북(入北)하여 김일성을 접촉하고, 김일성 75회 생일선물로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라는 노래를 선물했던 사실도 적고 있다.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윤이상은 △80.11 북한 조국통일 민주주의 전선 중앙위로부터 『고려연방제 창립준비위원회 결성을 위해 해외대표로 참석하라』는 서신을 받는 등 북한의 정치노선에 따라 활동하고 있고, △84.12 평양에 북한의 해외문화 공작전위조직인 『윤이상 음악연구소』를 설립하였고, △88.7 동경에서 정부의 대북교류 및 개방화 추세에 편승, 휴전선에서 「남북 합동음악제」개최를 제의, 북한 측으로부터 즉각적 찬동을 얻는 등 북한의 문화공작에 따라 남북음악제를 추진한 바 있고, △ 한편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17회에 걸쳐 음악제 구실 등으로 입북(入北), 김일성을 접촉하는 한편, 김일성 75회 생일선물로 작곡하여 바친 반미, 반파쇼, 통일투쟁을 내용으로 한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등 자작곡을 10회에 걸쳐 연주회를 개최하는 등 윤이상은 북한의 조종을 받아 활동하고 있는 북한의 문화공작원임.》
  
 윤이상의 친북(親北)행적은 오길남(吳吉男) 박사가 93년 서울에서 출간한「김일성주석 내 아내와 딸을 돌려 주오」라는 수기에 자세히 적혀 있다. 吳박사는 85년 자신의 入北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윤이상 씨가 내게 편지를?」 나(오길남)는 놀람 반 불안 반으로 편지를 받았다. 왜냐하면 윤이상이 北과 내통한다는 걸 독일에 사는 우리들은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거물이었다.「...간난신고 끝에 학위를 취득한 것을 축하합니다...이제는 민족통일운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하오. 그러니 북한으로 가서 그동안 배운 지식을 동포를 위해 썼으면 하오...」...(중략)...윤이상씨는 내게 거듭 권했다. 「고생하지 말고 북한으로 가시오. 거기가면 오 박사는 대접을 받으면서 학문을 이룰 수가 있소」》 

 윤이상은 86년 吳박사가 북한을 탈출한 뒤 『은혜를 베풀어 준 김일성 주석을 배반했을 뿐 아니라 칠보산연락소(한민전 산하 대남흑색방송 구국의 소리를 전담하는 곳)비밀 소지자이므로 가족을 인질로 잡아둘 수밖에 없다』며 다시 북한에 돌아갈 것을 회유했다고 같은 책에서 밝히고 있다. 윤이상은 북한에 동조하지 않는 吳박사를 힐난하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던 것으로 적혀 있다. 
  
 《내 말을 듣지 않고 다시 경솔한 짓을 하면 당신 가족을 가만두지 않겠소. 왜 사람들을 집적거리고 다니며 北을 욕하는 거요. 가족을 잃어야 정신을 차리겠소? 통일운동에 나서라고 하지 않았소? 왜 좋은 글을 써서 신문이나 학술잡지에 내지 않소? 그렇게 하지도 않으면서 통일운동을 자꾸 훼방 놓고 다니면 당신 가족은 죽는 줄 아시오》 

 <오길남氏 가족은 수용소로, 아내는 수차례 자살 시도> 
 
 윤이상의 공갈은 단순한 공갈이 아니었다. 吳박사는 1992년 귀국한 탈북자들로부터 가족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내용이 처참했다. 가족이 모두 정치범 수용소에서 생활했고 아내는 자살을 시도했다는 얘기까지 듣게 된다. 아래는 92년 11월29일자 서울신문에는 탈북자 안혁, 강철환씨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의 참상을 폭로하며 증언한 吳박사 가족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지난 4월 독일 주재 우리 대사관을 통해 귀순한 경제학 박사 오길남씨의 부인 신숙자씨와 두 딸 혜원, 규원이었다...신 아주머니는 수용소의 첫날밤부터 목 놓아 울었다. 「어린 딸들과 이곳에서 짐승 같은 생활을 하다가 죽게 되다니...」그러나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온종일 작업을 하느라 녹초가 된 사람들은 신아주머니의 구슬픈 하소연과 울음소리에 신경 쓸 처지가 못 됐다...이튿날 새벽녘 간밤의 울음소리와 다른 여자 아이들의 날카로운 울부짖음에 놀라 눈을 떴다. 방문을 열어젖히자 이불보를 말아 만든 끈에 신아주머니의 목이 매달려 있었다...그러나 이날의 자살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 후에도 그녀는 몇 차례 더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신아주머니가 수용소에 들어온 지 석 달째쯤이었다. 새벽녘에 「불이야」하는 소리에 깨어났다...판자문을 열자 방안은 연기와 불길로 가득 차 있었고 신아주머니가 두 딸을 겨드랑이에 꼭 낀 채 머리카락과 얼굴, 손발이 불에 그을려 실신해 있었다. 신 아주머니를 밖으로 끌어냈다. 그녀는 발버둥 치면서 울부짖었다. 「죽는 것이 행복한데 왜 말리느냐!」그날 이후 신아주머니는 실성한 듯 웃으며 말하고는 했다. 「여기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곳이니 할 수 없이 살아가야지...》 

 <『윤이상 선생은 열렬한 애국자』 북한서 칭송받는 윤이상> 
 
 윤이상과 북한과의 커넥션을 입증하듯, 북한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윤이상 음악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평양에서는 매년 「윤이상 음악당」에서「윤이상 음악회」가 열린다. 2008년 제27회를 맞이한 「윤이상 음악회」는 같은 해 10월15일~17일 개최됐다.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개막 공연에는 북한의 중앙예술단체와 윤이상음악연구소 관현악단,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관현악단 예술인들이 출연했고...윤이상 선생의 부인과 딸, 신계륜 이사를 단장으로 한 남측 「윤이상 평화재단」 참관단이 공연을 관람했다.』

   92년 북한은 윤이상을 모델로 한 「민족과 운명」이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황장엽 前북한로동당 비서는 자신의 책 「북한의 진실과 허위」에서 『김정일이 애국적 민주인사들을 끌어당기기 위하여 「민족과 운명」이란 제목 밑에 윤이상 선생에 대한 영화까지 만들도록 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김정일이 직접 지도한 多부작 극영화 「민족과 운명」은 해외로 망명, 친북으로 변신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북한체제를 홍보하는 선전물이다. 99년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은 「민족과 운명」에 대해 『우리 수령(首領), 우리 당(黨), 우리 인민, 우리 사회주의 조국이 제일이라는 조선민족제일주의 사상을 반영하는 작품』으로 정의하고 있다. 

 같은 사전은 윤이상 편을 다룬 세 편의 영화(14부~16부)에 대해 『남조선 사회를 등지고 해외에서 살면서 정의로운 음악창작활동으로 조국통일 위업에 적극 이바지한 재능 있는 음악가』가『사회주의 조국의 품에 안겨 작품을 더 훌륭히 되살리어 중앙무대에 내놓게 되며 인민들로부터 찬사를 받게 된다』는 내용으로 설명한다.
  
 북한이 펴 낸 「조선영화(93년 10, 11, 12호)」는 이들 세 편의 영화에 대해『남조선괴뢰도당의 반민족적 분열주의 책동을 예리하게 까밝히면서 사회주의 조국의 품이야말로 개인의 희망도, 포부도, 재능도 활짝 꽃피워주는 참된 삶의 품이라는 것을 힘 있게 확증해주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북한정권은 윤이상을 애국자로 칭송한다. 북한 문건에는 『윤이상 선생은 열렬한 애국자』,『애국애족의 충정으로 불타는 윤이상 선생』,『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윤이상 선생의 애국충정을 헤아려 윤이상 음악 연구소를 꾸려주었다』는 식의 등의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일부 내용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열렬한 애국자가 아닌 작곡가는 애국주의적인 작품을 창작할 수 없으며 민족을 사랑하지 않는 예술가 역시 민족을 위한 예술을 창작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은 열렬한 애국자이며 저명한 반전파쑈민주인사인 것으로 하여 그처럼 숭고한 애국애족의 리념과 온 민족의 열렬한 지향과 념원 그리고 세계평화를 수호하려는 인류공동의 념원을 진실하게 반영한 음악작품들을 수많이 창작할 수 있었으며 우리 인민과 세계평화애호인민들의 그처럼 높은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북한 발간 「음악연구」 1990년 2호, 「윤이상음악연구소 연구사, 리차윤」의 글 中)》

 《바로 교성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는 애국애족의 충정으로 불타는 윤이상 선생의 숭고한 민족적 량심에서 터져 나온 걸출한 작품으로서...이 교성곡에 담겨있는 숭고한 애국애족의 리념은 무엇보다 먼저 작품의 주제에서 강하게 표현되고 있다(출처 上同)》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는 애국애족의 충정을 담은 작품의 고상한 사상성과 작곡가의 뛰어난 작곡기법에 의하여 담보된 높은 예술성이 훌륭하게 결합된 것으로...온 겨레들을 자주와 통일 구국에의 성전에로 불러일으키는 높은 사상예술성을 가진 걸출한 작품으로서 앞으로 우리 민족의 지상의 임무인 조국통일을 앞당겨 오는데 거대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출처 上同)》 
  

 《그것(공연 성공)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우리에게 안겨주신 뜨거운 사랑과 배려의 결과로 이루어진 담력입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일찍이 윤이상 선생의 애국충정과 재능을 헤아려 우리 조국의 수도 평양에 관현악단을 갖춘 일류급의 윤이상 음악 연구소를 꾸려주시고 연구소의 관리와 운영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보살펴주시지 않았더라면 오늘과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없었을 것입니다...이 세상에 나라도 많고 민족도 많지만 우리처럼 한 작곡가를 위해 크나큰 사랑과 배려를 돌려주시는 위대한 령도자를 모신 그러한 인민은 어디에도 없습니다.(북한 발간 「음악연구」 2000년 28호, 「윤이상관현악단 악장 김철룡」인터뷰 中)》 
  
 <김일성 앞에서 『조국통일을 위해 힘과 재능을 다 바치겠다?』>
  
 김일성은 윤이상을 극찬해왔다. 예컨대 2000년 북한이 펴 낸 김일성 교시집(敎示集) 「재(在)서독교포 윤이상 일행과 한 담화」「재(在)서독 교포 윤이상과 한 담화」등에 따르면, 김일성은 윤이상이『조국통일 위업에 커다란 공적을 쌓아올렸다』며 그를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애국지사』로 격찬했었다.
 
 윤이상이 『조국통일을 위해 앞으로 힘과 재능을 다 바치겠다고 했다』는 김일성의 언급도 나온다. 윤이상은 『주체사상은 현시대에 맞는 사상』이라고 말했고, 김일성은 『그것은 옳은 말』이라고 화답했다는 내용도 수록돼 있다. 
 
 조선로동당은 당(黨)규약에서 『조선로동당의...최종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고 명시하고, 이를 위해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이라는 소위 연방제 통일을 주장해왔다. 논리적으로, 김일성이 말한 조국통일이란 적화(赤化)통일, 공산(共産)통일이다. 따라서 윤이상이 『힘과 재능을 다 바치겠다』고 다짐했다는 조국통일 역시 적화통일, 공산통일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한민국이다. 북한정권의 『애국지사』 윤이상을 기념하는 음악당 건립에 1480억 원의 국고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상술(上述)한 교시집에서 교시집의 일부 내용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윤이상 선생은 범민족통일음악회의 성과를 통하여 조국통일 위업에 커다란 공적을 쌓아올렸습니다....선생은 범민족통일음악회를 통하여 북에서 남조선당국자들의 기만선전을 깨는데도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선생이 조국통일을 위해 앞으로 자기의 힘과 재능을 다 바치겠다고 하는데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나는 선생이 이 사업에서 큰 성과를 거두리라고 믿습니다(재서독교포 윤이상 일행과 한 담화 주체89-2000년 1월20일)》
 
 《선생이 민족의 단결과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북남동포호의 소집문제를 제기하였는데 그에 대하여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나는 북남동포회의를 하자는 선생의 제의가 매우 좋은 발기라고 생각하면서 전적으로 지지합니다...나는 선생과 같이 민족분렬을 끝장내고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애국지사들이 있기 때문에 조국통일 위업은 반드시 앞당겨지리라고 확신합니다(재서독교포 윤이상과 한 담화. 2000년 1월20일)》
 
 《선생이 주체사상(主體思想)은 현시대에 맞는 사상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옳은 말입니다. 우리가 혁명과 건설에서 백전백승하며 커다란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은 주체사상(主體思想)을 지침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아무 때든지 선생이 다시 와서 만날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재서독교포 윤이상과 한 담화. 2000년 1월20일)》
 
 《위대한 김일성 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내가 윤이상 선생을 아껴야 한다고 한 것은 음악계에서 그런 재간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 드물기 때문입니다...그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재산이고 재간둥이입니다」(북한 발간 음악연구 2000년 28호, 리철우가 쓴「내가 체험한 윤이상 음악」中)》 


 <『위대하신 수령님 영생불멸(永生不滅)하십시오』>
 
 북한의 「문학예술출판사(주체92(2003)년 출간)」가 펴 낸 「영원한 추억」이란 책자에는 김일성 사망 및 사망 1주년 당시 윤이상과 부인 이수자氏가 썼다는 편지도 수록돼 있다.
 
 윤이상의 편지는 『길이길이 명복을 비옵니다. 끝없이 우리 민족의 광영을 지켜주소서』,『우리 력사 상 최대의 령도자이신 주석님의 뜻을 더욱 칭송하여 하루빨리 통일의 앞길을 매진할 것을 확신합니다』는 등 김일성에 대한 찬양일변도로 돼 있다.
 
 사진으로도 촬영돼 있는 부인 이수자氏의 글은 김일성 사망 5년을 맞아 금수산기념궁전 방명록에 적은 것이다. 이 글은 『아-수령님, 수령님, 위대하신 수령님!』,『부디 평안을 누리시고 영생불멸하십시오』,『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며 수령님 령전에 큰절을 올립니다.』등의 내용으로 돼 있다. 「영원한 추억」에 수록된 윤이상 부부의 편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아- 수령님, 수령님, 위대하신 수령님!… 수령님께서 떠나신지 벌써 어언 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대를 이으신 장군님께서 한 치의 빈틈없이 나라 다스리심을 수령님께서 보고 계실 것입니다. 부디 평안을 누리시고 영생불멸하십시오. 우리의 강토를 지켜주시고 민족의 념원인 통일됨을 열어주십시오.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며 수령님 령전에 큰절을 올립니다. (주체88년 7월 8일 리수자)》
 
 《하늘이 무너진 듯한 충격과 이 몸이 산산이 쪼각나는 듯한 비통한 마음으로 위대하신 수령님의 서거의 통지를 접하고 허탈상태에 있는 이 몸이 병중에 있으므로 달려가 뵈옵지 못하는 원통한 심정을 표현하며 전 민족이 한결같이 우리 력사상 최대의 령도자이신 주석님의 뜻을 더욱 칭송하여 하루빨리 통일의 앞길을 매진할 것을 확신합니다. (1994.7.9 빠리에서. 치료 중에 있는 윤이상 부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서거 1돐을 맞이하여 그 영령 앞에 심심한 애도와 흠모를 절감하오며 길이길이 명복을 비옵니다. 끝없이 우리 민족의 광영을 지켜주소서. 도이췰란드 베를린의 병원에서 윤이상 삼가 올립니다. (1995년 7월 8일)》
 
 《수령님! 위대하신 수령님! 수령님께서 사랑하시고 아끼시고 민족의 재간둥이라고 부르시던 저의 남편 윤이상은 오늘 병원 병석에 누워있어 저와 같이 수령님 령전에 가서 수령님을 뵙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주만사의 원리라고는 하지마는 수령님께서 저희들 곁을 떠나신지 벌써 1년이란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항상 수령님께서 저희들 곁에 계심을 느끼며 수령님을 추모할 때마다 그 인자하시고 인정 많으시고 눈물 많으신 우주와 같이 넓으신 덕성과 도량, 세상의 최고의 찬사를 올려도 모자라는 수령님, 살아계셨어도 그러하였고 돌아가신 뒤도 부디부디 불우한 저의 민족의 운명을 굽어 살펴주소서. 수령님 령전에 무한한 평화와 명복을 빕니다. (1995년 7월 8일. 리수자)》

  
 <윤이상을 떠받드는 남한사람들>
 
 좌파가 득세해 가면서 윤이상은 국민적 미화(美化)의 대상이 돼간다. 2007년 9월 이수자氏는 정부의 공식초청으로 방한(訪韓)하여 노무현 前대통령 내외를 만났었다. 盧 前대통령은 당시 李씨의 인사를 받고 『윤 선생님 생전에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피력하기도 했었다.
 
 윤이상을 기념하는 「윤이상평화재단(이사장 박재규 前통일부장관)」에는 이명박 대통령도 참여했다. 
 
 2007년 3월 재단 측은 소위 「윤이상 탄생 90주년」을 맞이하여 각계에서 90인의 위원을 위촉했었다. 재단 측이 같은 달 27일 공지한 바에 따르면, 90인의 위원에는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정명화 첼리스트,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공동대표로 하여 『정동영·정세균·김근태 前열린당 의장, 이재정·정세현 前통일부 장관, 권영길·노회찬 前現職민노당 의원 , 손학규 前경기 지사, 백낙청 6.15실천남측위(委) 상임대표』등 외에도 『이명박 前 서울특별시 시장, 김태호 경남 지사,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참여했다고 돼 있다. 

 재단 이사장 박재규 前장관은 「윤이상평화재단」은 『윤이상 선생의 업적과 숭고한 민족사랑의 뜻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설명하며 『민족의 화해와 우리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뚜렷한 이정표로서 선생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며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씩 못 다 이룬 윤이상의 꿈을 향해 나아가자』고 밝히고 있다. 
  
 2002년 3월 설립된 재단법인 「통영국제음악제」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故 박성용 금호아시아나 그룹 명예회장』이 초대 이사장인 이 재단은 현재 『진의장 통영시장』이 명예이사장이며, 『이홍구 前국무총리과 박노흥 마산MBC사장』이 이사장과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기타 이사로는 『고건 前국무총리, 구상식 통영시의회 의장, 고동주 前통영시장, 윤이상 장녀 윤 정, 윤석화 월간객석 대표, Uwe Schmelter 前 독일문화원장, 최정호 음악평론가, 윤건호 아리랑TV 본부장』을 비롯해 한나라당 소속인 『이군현 의원과 김태호 경남도지사』도 들어가 있다. 

 소위 보수정권 아래서 80억 원의 국고를 들여 윤이상 공원을 짓는다는 사실은 절망감마저 안겨준다. 윤이상의 실체는 이미 공지된 사실이다. 정부에서도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백주 대낮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윤이상평화재단에 참여했던 대통령의 의지인가? 아니면 집권여당이 집단적으로 국가의 정체성은 포기하기로 작정한 것인가? 
[ 2010-02-24, 03:16 ] 조회수 : 1016
기사입력: 2010/02/25 [11:51]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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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음악당 혹은 공원 건립은 金日成敎를 대한민국에 布敎하기 위한 전진기지 꼴통주의자 10/03/10 [14:12] 수정 삭제
  골수 좌익 윤이상 음악당 건립 혹은 공원 조성은 해독스러운 金日成敎를 대한민국에 布敎하기 위한 전진기지로서, 정부차원에서 그 건립을 막지 못한다면 애국시민들에 의해서 제재를 받아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머지 않아 전국민이 안방 벽에 김일성-김정일-김정운 사진 걸어두고 주야로 흠모 사랑하고, 윤이상이 지엇다는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해옥주를 산같이 쌓으시고 자손만만대 만수 무강하옵소서"란 김씨 왕국 찬가나 부르면서 살아가야할 세상이 안 오리라는 보장이 없다. 金日成敎에서 가르치는 민족정기란 이조시대때의 친중사대주의 봉건사상의 복원을 의미한다.
한심스럽다 관뒤 12/10/07 [12:31] 수정 삭제
  딸의 재산을 몰수하라
반드시 몰수하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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