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政治僧들의 정체와 그들의 목표
廢佛을 恣行하는 獅子身中의 벌레와 같은 魔軍들
 
덕산 원두스님


불교계 정치승(政治僧)들의 정체와 그들의 목표
-廢佛을 恣行하는 獅子身中의 벌레와 같은 魔軍들-


1. 머리말

2. 집필의 배경과 개혁주체들의 성향

1) 뜰 앞 오동잎 지는 소식
2) 계정혜(戒定慧)없는 자유 비구
3) 승가적 主思派의 음모

3. 54년 불교정화와 94년 종단개혁 비교

4) 僧團의 새로운 帶妻化와 미지의 수렁
5) 종교 마피아 씨앗과 힘의 논리
6) 출가인의 단순 타락과 질적 변화

4. 승가 화합법의 실종과 左傾 민중운동
7) 위계질서 파괴와 승가화합의 전통실종
8) 원칙 없는 징계와 도처의 주지 빼앗기
9) 개혁주체들의 사생활과 반계율 체질
10) 불교는 左傾化된 민중정치운동 수단

5. 개혁세력의 대정부 투쟁과 그 목적
11) 민중정치 운동의 場 마련
12) 조계종단의 類似 政黨化
13) 한국승가의 새로운 魔軍

6. 개혁주체들의 정의와 의식수준
14) 개혁 주체들의 정의
15) 개혁 주체의 의식 수준

7. <기본입장>의 5원칙

8. 맺음말


 
1. 머리말

이 글은 2008. 9. 20 부산에서 <韓國佛敎와 나라의 將來>란 대주제의 제3 주제 <7․4불교도 시국법회를 주도한 승려들의 성향과 한국불교의 내일>이란 주제로 발표된 글의 Ⅳ. ‘94년 종단사태 주역들의 성향과 그 목표’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이 글은 당초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이미 입적한 휴암이 남긴〈조계종 종헌의 종지 종통이 밀실조작에 의해 바꿔지게 된 배경설명과 우리의 기본입장〉(이하 기본입장이라 칭함)을 분석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94년 종단개혁의 핵심적인 인사들이 조계종 교육원을 중심으로 재차 조계종의 종명개칭 등을 논의하고 있어 휴암의 <기본입장>을 통해 그들이 목표하고 있는 바를 재차 환기할 필요를 느꼈다. 90년대 탈레반의 바미안 석불파괴와 함께 지구촌을 경악케 한 조계종 승려들의 폭력행사와 불법파괴 및 원로 중진 승려들 숙청, 나아가 그들의 정치활동이 등이 휴암이 예견했던 대로 재야정치권과 다를 바가 없어서 <기본입장>을 재자 거론하는 것이다. <기본입장>은 총 7쪽으로 1.5쪽 분량의 서론과 4. 5쪽 분량의 본론 및 1쪽 분량의 결론에 해당하는 원칙 5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입장>은 먼저 수좌계와 사태를 주도하던 일부 원로의원들로 하여금 조계종 종헌의 전문을 포함해 제1장, 제2장의 골격을 유지토록 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토록 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유감스럽게도 휴암이 입적하기까지 만난 일이 없다. 혹시 오가며 만난 적인 있는지 모르지만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법보신문에 게재된 특별칼럼의 “나는 제도 개혁적 열기에 휩쓸려 아우성치는 모습을 보며 저 거치른 황야의 늑대를 연상했느니라”을 통해 그가 개혁세력에게 비판적이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또한 그가『한국불교의 새 얼굴』과『장군죽비』上, 下 등의 저서와 몇 편의 논문을 남겼고, 80년 10. 27 때 사태수습에 임했던 경험 있는 수좌계의 중진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번에 원고를 정리하며 우연히 손에 들어 온 <기본입장>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 읽다보니 본 주제와 함께 소개할 필요를 느꼈다. 왜냐하면 휴암의 <기본입장>만큼 당시 개혁의 흐름과 사태주역들의 성향 그리고 그들의 목표를 꿰뚫어 보고 거침없이 발표한 글도 없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핵심 내용을 6항 15목으로 분류하여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1. 집필의 배경과 개혁주체들의 성향, 2. 50년대 불교정화와 94년 종단개혁의 비교, 3. 위계질서의 붕괴와 左傾 민중운동, 4. 개혁세력의 대정부 투쟁과 그 의도, 5. 개혁주체들의 정의와 의식수준, 6. <기본입장>의 5원칙의 순으로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부록으로 원문을 첨부한다.


2. 집필의 배경과 개혁주체들의 성향

휴암 스님이 <기본입장>을 집필한 것은 “조계종 종헌의 종지 종통이 밀실조작에 의해 바꿔지게 된 배경설명과 우리의 기본입장”이란 원래의 제목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宗旨 宗統의 밀실조작에 관해 아래 1), 2), 3) 인용문의 구체적인 언급과 함께 살피기로 한다.

1) 오동잎 지는 소식 : 전국의 승가는 들으시라! 전해 오는 말에 뜰 앞에 오동잎이 떨어짐을 보고 지혜자는 천지에 문득 가을이 옴을 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답답하고 서글프도다. 이 승단에 시국의 흐름을 바로 보는 자는 드물고 개인이나 단체의 이익에 혈안이 된 자는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이 많으니 이 어찌 답답하고 서글프지 아니한가? 나는 지금부터 점잖은 스님들 여러분께 오늘날 우리의 뜰 앞에 떨어지는 오동잎의 우울한 소식을 전하여 시국의 흐름을 말하리라.

2) 계정혜(戒定慧) 없는 자유 비구 : 깨달음, 수행, 계행과 같은 일체의 거추장스런 걸림돌을 제거시켜 버린 출가수행인은 필경 축 빠진 바퀴처럼 되어 제멋대로 역사인도 되고 민중운동가도 되고 사회활동가도 되면서 걸림 없이 현실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원칙 없는 ‘자유의 독신 비구’가 걸어가는 최종적인 귀결점이 무엇이겠는가는 삼척동자도 그 앞을 말하기가 어렵지 않으리라. 보라, 현재의 젊은 개혁주체들의 흐름이 대체 무엇인가? (이상 <기본입장> p. 1. 이하는 <기본입장>각 페이지만을 표시함)

3) 승가적 主思派의 종지 종통 : 그들은 기본적으로 불교가 목적이 아니다. 이 엄청난 소식을 간파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본질적으로 불교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그들의 사회운동 각종 재야 정치운동이 목적이며 그것을 통해 민중을 정치 사회적으로 해방시킨다는 이상을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는 흐름인 것이다. 이것은 소위 ‘승가적 主思派’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여기에 이번 개혁회의에서 종헌의 宗旨 宗統을 변경시키려했던 엄청난 음모의 배경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pp. 1〜2)

첫째, 휴암은 자신이 <기본입장>을 집필하게 된 심경을 1)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즉, 오동잎 지는 소식의 의미를 전하며 승단에 시국의 흐름을 바로 보는 자는 드물고 이익에 혈안이 된 자는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이 많다며 거듭된 ‘답답하고 서글프다’는 말로 당시 종단의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그는 나아가 서론의 전단에서 선가의 가풍과 수행 납자의 본분 및 불교수행의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의 필수를 강조한 다음 2)에서 불교수행의 기본체계인 계정해(戒定慧) 삼학이 없는 자유 독신 비구로 전제하고, 3)에서 그들을 승가적 主思派’라며 宗旨 宗統의 밀실조작의 배경과 그들의 목적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그들에게는 본질적으로 불교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그들의 사회운동 각종 재야정치운동이 목적이며 그것을 통해 민중을 정치사회적으로 해방시킨다는 이상을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는 흐름인 것이다. 이것은 소위 ‘승가적 主思派’”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의 목적은 승가적 主思派의 민중해방을 理想으로 하는 ‘사회운동 내지 재야 정치운동’에 있다는 것이다.

둘째, 94년 종단사태와 제도개혁을 주도한 승려들은 휴암이 예견한 대로 자신들의 정치활동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정지 작업의 일환으로 먼저 정치와 관련된 종법을 개정하였다. 즉, 승니법 제46조 <제적사유> 5호 ‘政治運動에 關與 또는 國法上 不法團體에 加入한 者’의 전반부 政治運動에 關與는 완전히 삭제하고, 후반부는 현행 승려법 제46조 <공권정지 5년 이상 제적사유> 6항 ‘國法上 不法團體에 加入한 者’로 징계수위를 나추었다. 그리고 <기본입장>의 다른 단락에서 “그들의 최종 목표는 그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불교 본연의 깨달음의 수행관을 교단 내에서 숨을 죽여 맥 못 추는 위치로 전락시키거나 파괴하여 교단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민중 정치운동의 장으로 만드는데 있는 것이다. …이론적 여건마련의 첫 출발로서 가장 중요한 종헌의 종지(宗旨) 종통(宗統)을 먼저 변경하고, 현실적 기반으로서 제도를 개혁하고 승려를 교육시키는 데 있다”(이상 본문 p. 4)라고 지적하고 있다.


3. 54년 불교정화와 94년 종단개혁 비교

서론의 후단에서 그는 50년대 불교정화와 94년 제도개혁의 본질적인 차이를 ‘僧團의 새로운 帶妻化’, 50년대 불교정화 때 ‘폭력의 씨앗’ 대신 ‘종교 마피아의 씨앗’의 등장을 우려하는 한편 이를 승단의 본질적인 변화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4) 僧團의 새로운 帶妻化와 미지의 수렁 : 우리는 30년 전 청정비구승단을 만든다고 이 승단의 嫡子인 전국의 수좌들이 분연히 일어나 대처승 정화운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 40년 후 지금 우리는 어떤 시점에 와있는가? 대처승 정화는 외형적인 도리어 외형적인 정화였다고 할 만큼 불교의 본질이 바뀌어 가고 있고, 전통은 깨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는 현재의 개혁주체들이 원했건 아니했건 필연적으로 ‘僧團의 새로운 帶妻化’를 수반할 수밖에 없는 흐름으로 될 것이다. 이 어찌 한국불교의 일대 위기가 아니라! 전국의 스님 네는 들으시라! 지금 한국불교는 또 하나의 미지의 수렁으로 향하고 있다. ( p. 2)

5) 종교 마피아 씨앗과 힘의 논리 : 40년 전 잘못된 정화가 한국불교에 예상치 못했던 주먹잡이가 판을 치게 하는 씨앗을 뿌렸듯이 지금의 개혁세력 당사자들 역시 그들이 의도하든 않든 지금 개혁이라는 물결의 흐름을 비집고 미래의 한국불교에 어떤 형태의 ‘종교 마피아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울한 전망을 내리기도 한다. 최근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있는 괴물 같은 단체들은 어느 새 다중의 위력으로 합리적인 순수한 개인들에게 무력감을 안겨주고 있고 종래의 폭력 이상의 ‘理性이 아닌 힘의 논리’의 맛이 새로운 유혹거리로 승가에 도입되고 있다. 눈이 있는 승가는 보시라!( p. 2)

6) 출가인의 단순 타락과 질적 변화 : 출가인의 단순한 타락과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틀리는 것이다. 단순한 타락은 전통적으로 여전히 중인 것이다. 그러나 그 질적 변화는 이미 전통적인 중이 아니라는데 있다. (p.4). … 과거 대처승들에게 수행하는 수좌가 푸대접을 받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상황이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대처승들은 사상 면에서는 도리어 전통의 수행관과 수행자를 존중하면서 단지 현실의 이권 면에서 수좌들을 푸대접했다면 현재의 개혁세력의 물결은 사상 면에서 불교의 깨달음의 수행 그 자체를 반역사적 반민중적 원리로서 배척하는 정서가 그 필연의 본질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p. 5)

위 인용문은 가운데 4)항의 30년은 40년의 오기이다. 50년대 불교정화가 1954년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40년 후’라고 기술되어야 한다. 그가 94년 종단제도개혁의 흐름을 ‘僧團의 새로운 帶妻化와 미지의 수렁’, ‘종교 마피아의 씨앗과 힘의 논리’, ‘출가인의 단순 타락이 아닌 질적인 변화’로 묘사하고 있었다.

첫째, 그는 94년 제도개혁을 ‘僧團의 새로운 帶妻化’로 전망하고, 이를 미지의 수렁으로 표현했다. 즉, “대처승 정화는 외형적인 도리어 외형적인 정화였다고 할 만큼 불교의 본질이 바뀌어 가고 있고, 전통은 깨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는 현재의 개혁주체들이 원했건 아니했건 필연적으로 僧團의 새로운 帶妻化를 수반할 수밖에 없는 흐름으로 될 것이다.”라고 전망하였다. 그리고 이를 한국불교의 일대 위기이자 또 하나의 미지의 수렁으로 향하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다. 僧團의 새로운 帶妻化는 개혁회의가 94년 신설한 승려법 제46조<멸빈사유> 3항(승단에서 영구히 추방되는 비구 4바라이죄인 淫行․竊盜․殺人․大妄語자 가운데 실형을 받은 자)로 한정 할 것을 정확히 예견한 것이다. 종헌 제9조 ①항 승려의 구족계 수지 의무 규정에 의하면 조계종은 분명 비구․비구니의 출가승단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승려법 제46조 3항을 비롯해 2001년에 신설한 제54조 3(징계에 의하지 않는 제적처리) ①의 1. 다(호적상 혼인관계나 사실혼관계가 확인된 자) 등은 조계종이 출가승단이 아님과 동시에, 범죄 집단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둘째, 54년 시작된 불교정화와 94년 제도개혁의 비교를 폭력의 씨앗과 종교 마피아의 씨앗으로 비유하는 한편 종래의 폭력 이상의 ‘理性이 아닌 힘의 논리’의 맛이 새로운 유혹거리로 승가에 도입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법보신문에 기고한 글에서도 “한국불교에 다중의 위력을 과시하는 조직된 ‘종교 마피아의 씨앗’”을 언급하고 있다. 사실 50년대 불교정화의 가장 큰 과오 가운데 하나가 종단에 폭력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94년 제도개혁은 폭력 대신 ‘종교 마피아’의 씨앗이 뿌려질 것을 우려하고, 그것은 ‘종래의 폭력’ 이상의 ‘理性이 아닌 힘의 논리’의 맛이 승가에 도입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여기서 종교 마피아와 理性이 아니 힘의 논리에 관해 좀 더 논의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먼저 마피아(Mafia)가 살인, 마약, 매춘 등의 거래를 주요활동으로 하는 범죄조직이라는 점과 함께 조계종단의 현실이 과연 그럴까하고 의심하는 자가 많을 줄 안다.

셋째, 사실 94년 종단사태 주역들은 자신들의 종헌 종법에 반한 종권장악과 종권유지를 위해 중요 종무원에 대한 불법납치․감금․폭행․고문․협박․사이버 테러, 궐석심판에 의해 원로․중진승려들까지 숙청(치탈․멸빈)하여 사찰기거를 불허하면서 환속으로 선전하는 바와 같은 인격살인, 1996년 윤월하 종정의 은처승․도박승 척결 지시와 총무원장의 측의 거부, 돈 많은 어느 산중의 살인 사건, 최근 봉은사 사건의 당사자 룸살롱 사건, 부산 범어사 선암사 막대한 부동산 처분과 탕진 등을 통해 보는 한 마피아 조직을 능가한다. 그것은 불교라고 하는 종교의 탈을 쓴 종교마피아 집단이기에 가능하고 무사했다고 본다. 만일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과 같이 ‘북한을 사이비 종교 마피아집단’으로 본다면, 94년 종단사태와 개혁주역들의 일부 잔악성과 반인권적인 만행은 북한을 추종하는 종교 마피아조직이라고도 말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넷째, ‘理性이 아닌 힘의 논리’는 민중불교의 폭력혁명과 계급투쟁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승가회 공동대표인 최지선이 종단 문제 해결의 기본법인 멸쟁법을 비롯해 종헌․종법에 반한 불법집단 폭력행사인 승려대회를 통한 종단장악과 원로 중진 승려들 숙청과 같은 인적청산 등을 민중불교운동의 성과라고 자평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가 “어느 새 다중의 위력으로 합리적인 순수한 개인들에게 무력감을 안겨주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선우도량(당시 대표 : 도법, 현재 인드라망 공동체 대표)과 승가회(당시 이청하, 최지선) 등 8개 단체로 급조된 범종단개혁추진위(범종추)에 참가한 각종 단체들의 위력에 압도된 승려 개개인의 합리적 이성은 완전히 무력화되어 있었다. 94년 종단사태는 역대 종단사태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었고, 법난과 탄압 및 정권퇴진과 같은 예기치 못한 주장과 구호들이 난무했지만, 그것들은 자신들의 위법 부당한 종권찬탈을 은폐하기 위한 일종의 煙幕戰術 내지는 마타도어 전술로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었다. 94년 종단사태 당시 사태의 진원지이자 본부였던 개운사를 전교조와 노조간부들이 격려차 방문했다는 것이 그들의 배후가 어떤 세력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다섯째, 그는 50년대 정화의 대상이었던 승려의 단순 타락은 전통적으로 여전히 중인 것이나 질적 변화는 이미 전통적인 중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또한 “현재의 개혁세력의 물결은 사상 면에서 불교의 깨달음의 수행 그 자체를 반역사적 반민중적 원리로서 배척하는 정서가 그 필연의 본질이 되고 있다.”며 정화의 대상이었던 승려의 단순 타락과 개혁세력의 사상 면에서의 오염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단순 타락은 현실의 이권 면에 있었지만 개혁세력은 ‘새로운 대처화’와 함께 종교 마피아 및 이성이 아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승단으로 전락케 하는 질적 변화라고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4. 승가 화합법의 실종과 左傾 민중운동

휴암은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오늘의 젊은 개혁세력이 그들 개개인의 성분 분석을 떠나서 전체적으로 이 흐름의 정신을 보아야한다. 지금 조계 승단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고 전제한 다음 본론의 3개항 가), 나)와 다)의 벽두에서 위계질서의 파괴와 승가의 화합정신 실종 그리고 원칙 없는 징계와 개혁주체들의 타락상을 언급하고, 속화된 개혁주체들의 목적에 동원된 불교라며 그들은 불교가 목적이 아니라 左傾化된 민중 정치 운동을 위한 이론무장의 수단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7) 위계질서 파괴와 승가화합의 전통실종 : 승단의 위계질서는 산산이 깨어지고 있고 선배는 사라지고 이 승단에서 수십 년 수행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돼가고 있다. 단체나 힘을 동원할 수 있는 자면 비록 나이가 젊고 승납이 낮고 수행경력이 일천하더라도 그가 곧 이 승단의 실력자요 어른으로 돼가고 있다. 전통의 승가정신, 중도적 화합정신, 공경하심의 정신, 자비 도덕에 의거한 합리의 정신, 수행자의 양식과 순수한 양심의 정신이 위협받고, 파괴되고 있고 삼엄하고 거치른 정치논리, 세속적 정의의 적대논리, 흑백논리가 젊은이들의 단체 력과 정치적 혈기의 논리를 통해 승가를 휩쓸고 있다. (본문 p. 2)

8) 원칙 없는 징계와 도처의 주지 빼앗기 : 개혁종단에 원칙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고 준엄해야할 징계는 승가의 기강확립의 수단이 아니라 다른 편의주의적인 목적을 위한 일종의 무기로 전락하고 원칙보다도 연줄과 배경과 돈 있는 자의 천국이 되고 있다고들 한다. 징계의 제일 원칙이 “반개혁적 성향이 강한 자”로 돼 있으나 종단의 백년대계의 질서와 기강 확립을 목적으로 하는 “반개혁적 성향의 대원칙”이 없어 현 총무원에 고개를 숙이면 개혁 성향이요 거기에 뻗대고 이의를 걸거나 반대하면 반개혁적 성향일 뿐 전혀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 도처에서 징계와 주지 뺏기가 맛 물려 종단은 송사가 난무하고 무원칙의 난장판으로 되고 있다. (p. 2〜3)

9) 개혁주체들의 사생활과 반계율 체질 : 개혁주체라는 이들의 사생활은 어떤가? 일상 그대로가 곧 부처며 새삼 수행의 필요성이나 오도견성의 필요성을 추구하는 자는 초월적 신비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그들은 계율문란의 차원을 넘어서서 반계율적 정서가 이미 하나의 당연한 생활체질로 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그들이 부패한 세대로 규정하고 있는 그 기성 행정승들보다도 도리어 더 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 현 개혁주체세력들은 역대 어떤 세력들보다도 가장 속화되고 혼탁 된 세력이라고들 한다. 보시라 스님 네들! 현재의 개혁세력의 물결은 근본적으로 반수행, 반계율, 비승가, 반승가, 반전통의 재야 정치적 세속화 물결임을 알아야 한다.

10) 불교는 左傾化된 민중정치운동 수단 : 그들에게는 불교가 목적이 아니라 그들의 左傾化된 민중정치 운동과 활동을 위한 이론무장의 수단일 뿐이기 때문에 그 목적을 위해서는 불교와 불교진리가 어떻게 왜곡되고 주물러져도 상관이 없는 것이 현 개혁세력의 정서의 특징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붓다라는 것도 말만 붓다지 실은 그들 자신의 붓다인 역사적 민중정치 운동의 붓다일 뿐이며 맑스 레닌적인 민중적 붓다일 뿐이며 경전 본연의 붓다는 아닌 것이다. 그들의 불교 진리에 대한 각종 현란한 山是山 水是水的 本具論的 本來成佛論的 해석들도 … 표현의 속임수를 통해 …민중운동에 투입하려는 전술전략적인 해석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상 p. 3)

위 7), 8)은 본론의 가), 나)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나)는 전반부만 인용했다. 후반부의 ‘승가적 원칙’(如法和合 原則)에 의한 해결의 길은 도리어 멀어지고, 목적을 위한 힘의 논리와 사바 세계적 현세적 가치들에 대한 집착 치열(p. 3) 등의 표현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의 벽두의 기술은 나)의 연장이면서 총 3쪽 분량의 서론이어서 일단 여기에 포함시켰다.

첫째, 그는 7)에서 위계질서 파괴와 승가화합의 전통실종을 개탄하고 있다. 즉, 승단의 위계질서는 산산이 깨어지고 선배는 사라지고, 수십 년 수행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돼가고 있다. 오직 단체나 힘을 동원할 수 있는 자라면 승납 등과 관계없이 승단의 실력자로서 어른으로 돼가고 있다. 그리고 “전통의 승가정신, 중도적 화합정신” 등의 표현을 통해 볼 때, 그가 불교승가의 基本的 態度와 전통을 중도, 화합, 공경, 자비로 파악하고, 합리성과 윤리성 및 수행자의 양식과 양심의 실종을 개탄하고 있다. 중도가 불교흥기시대의 독자성이고 화합이 승가에 있어서 최상의 가치규범이자 질서규범이며, 공경과 자비가 불교적 실천행의 기본적 태도라는 점에서 그의 지적은 옳았다. 그리고 수행자의 양심과 양식이 위협받고 파괴되고, 거치른 정치논리, 속된 정의와 적대논리와 흑백논리, 젊은이들의 단체력과 정치적 혈기의 논리가 승가를 휩쓸고 있다는 지적에서 수좌들로서 그들에게 본의 아니게 협조하게 되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한편 불법의 정승자로서 실천해야할 기본자세가 ‘일체의 악을 행하지 않고, 자기 마음을 정화하며, 출가자는 타인을 해롭게 하지 않으며 수행자는 타인을 괴롭히는 일이 없다는 점을 감안 할 때 수좌계의 지도급 인사들이 그들의 정치논리와 적대 논리 및 세속적인 정의관에 휩쓸렸다고 하는 것은 비판 받아서 마땅하다.

둘째, 그는 8)에서는 무원칙한 징계와 함께 도처에서 주지 뺏기가 맛 물려 종단은 송사가 난무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징계는 승가의 기강확립의 수단이어야 하는데 다른 목적을 위한 일종의 무기로 전락한 결과, 고개를 숙이면 개혁 성향이요 거기에 뻗대고 이의를 걸거나 반대하면 반개혁적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그것도 연줄과 배경과 돈 있는 자는 무사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당시 제도권의 요직에 있었던 승려들 가운데 소위 개혁종단에 기용된 자와 징계를 모면한 승려의 처신과 그들로부터 들은 바를 종합해 보면 휴암의 이상과 같은 지적은 사실이다. 그는 다)의 다른 단락에서 “현 개혁세력은 당초 사람을 씀에 있어서 계행이 깨끗하고 무소유한 바른 수행자, 참신한 바른 수행자를 찾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자기들의 개혁의 와중에 어떤 도움을 주었거나 자기네를 지지했던 자면 그의 ‘과거가 사기꾼이었든 도둑이었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p.4)라고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사실 94년 종단사태의 주역들과 함께 등장한 중요 종무원 가운데는 쓰리 3범과 특수 절도 전과자 등이 있었다. 그리고 정상적인 국가 사회라면 말단 공무원의 자리에도 취직할 수 없는 전과자들이 종단의 요직에 기용된 것은, 9) 개혁주체라는 이들의 사생활은 어떤가?의 설명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일상 그대로가 곧 부처며 새삼 수행의 필요성이나 오도견성의 필요성을 추구하는 자는 초월적 신비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가하면 그들은 계율문란의 차원을 넘어선 반수행, 반계율, 반승가, 반전통적 정서가 하나의 생활체질로 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재야 정치적 세속화 물결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셋째, 그는 10)에서 개혁주체들의 목적에 동원된 불교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먼저 그들에게는 불교가 목적이 아니라 그들의 左傾化된 민중정치 운동과 활동을 위한 이론무장의 수단일 뿐이라는 것과 그 목적을 위해서는 불교와 불교진리가 어떻게 왜곡되고 주물러져도 상관이 없는 것이 현 개혁세력의 정서의 특징임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그들은 불교를 이론무장의 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에 불교와 불교진리가 어떻게 왜곡되고 주물러져도 상관없다는 대목이다. 실제 이들은 2007년 5월 12일과 24일 4․8 남북불교도공동발원문에서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중시, 평화수호, 단합실현으로 6․15와 10․4공동선언을 조국통일의 법등명(法燈明)․자등명(自燈明)으로 삼고 실천행에 적극 떨쳐나서겠습니다.’라고 염원했다. 동 발원문에서「민족중시, 평화수호, 단합실현」은 2007년 1월 1일 북한 로동신문 등에 게재한 對南 투쟁 3대 구호인데 이를 그대로 원용하고도 있다.

그런가하면 2008년 7월 4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불교도 촛불시위 때 “국민의 뜻이 부처의 뜻입니다.”와 “국민이 부처다”라는 프랑카드를 들고 행진했다. 또한 2009년 6월 15일 1447명 시국선언에서도 “국민이 부처입니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민주주의와 사상․표현․집회․언론의 자유 그리고 그날을 남북한이 공존과 상생의 미래를 약속한 6․15선언을 한 날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맺음말에서 언급할 불제자들이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으로 붓다와 불교를 은멸(隱滅)케 하는 단적인 예이다.

넷째, 필자는 <불교도에게 보내는 공개서한>(2008. 7. 10)에서『화엄경』에 설시된 “심불급중생 삼무차별”(心佛及衆生 三無差別)’이 말하듯, 불교는 마음(의식)에 따라 부처도 되고 중생도 된다는 점에서 마음 그 자체는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아, 이 셋이 차별이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중생이 그대로 부처이고, 중생의 뜻이 그대로 부처님의 뜻이라고는 가르치고 있지 않다. 만일 국민과 부처가 같고, 그 뜻이 다르지 않을 것 같으면 불교와 불교신앙은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고 만다. 불법승(佛法僧) 삼보는 불교도의 입신(入信) 최초의 요건이자, 공양․경배․존숭의 대상이며 귀의처(歸依處)이지 결코 투쟁과 전술의 수단일 수 없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붓다의 가르침인 불교는 불교도의 경배․존숭의 대상이자 귀의처(歸依處)이며 모든 중생이 가야할 길이지 결코 투쟁과 전술을 위한 이론무장의 수단일 수 없다. 이는 조계종의 승려이자 불제자로서 불조에 대해 가장 큰 죄악인 불경(不敬)이자 폐불(廢佛)행위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불제자라면 있을 수 없는 배불(排佛)․反종단 행위에 해당한다. 휴암이 이상과 같이 이들의 성향과 행보를 예견한 것은, 그가 7, 80년대 재야운동권을 이해하고 있었고, 범종추의 핵심주축인 선우도량의 결사에서 글을 발표하는 등 교류하면서 그들의 성향과 지향하는 바를 간파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94년 종단사태의 주역들이 민주화와 개혁이란 구호를 내세고 재야운동권씩 투쟁을 통해 국법과 종법질서를 파괴해가며 종단을 장악하는 과정을 목격하고 내린 결론이라는 생각이다.

다섯째, 그들에게는 붓다라는 것도 말만 붓다지 실은 그들 자신의 붓다인 역사적 민중정치 운동의 붓다일 뿐이며 맑스 레닌적인 민중적 붓다일 뿐이며 경전 본연의 붓다는 아닌 것이다. 그들의 불교 진리에 대한 각종 현란한 山是山 水是水的 本具論的 本來成佛論的 해석들도 … 표현의 속임수를 통해 …민중운동에 투입하려는 전술전략적인 해석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94년 종단전복을 주도한 자들의 붓다관을 ‘역사적 민중 정치 운동의 붓다이자 맑스 레닌적인 민중적 붓다일 뿐이며 경전 본연의 붓다는 아니다’라는 말로 요약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붓다도 경전상의 붓다가 아니고 자신들의 민중 정치 운동을 위한 붓다라고 단정함으로써 불교가 목적이 아니라 그들의 左傾化된 민중정치 운동과 활동을 위한 이론무장의 수단이라는 것을 지적함과 동시에, 맑스 레닌적인 민중적 붓다라는 말로 이를 더욱 강조하였다. 만일 그들이 불제자로서 출가 비구 비구니라면 불설인 경장과 율장의 가르침을 신락수지(信樂受持)하는 한편 자신들이 전개하는 불교운동과 종단개혁도『열반경』의 4대교법(大敎法)과 승가의 법전인 율장의 법과 비법․율과 비율 등 9쌍 18사의 판단규준을 따랐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지한 승려대중의 투쟁을 선동하고, 종래의 승려대회와 같은 불법 집단 폭력 행사를 통해 종단을 장악하였다.


5. 개혁세력의 대정부 투쟁과 그 목적

94년 종단전복과 소위 개혁세력의 대정부 투쟁과 압박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서 보았듯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 상무대 비리 의혹과 시위 승려대중에 대한 집행부 경호팀의 폭행을 구실로 한 대정부 압박은 김영삼 대통령으로 하여금 정치적 결단을 내리게 했다. 그리하여 김 대통령은 집행부 경호팀의 시위 승려대중에 대한 폭행을 빌미로 위법한 4․10승려대회에 운집대중으로 하여금 총무원 청사를 점령케 했다. 이들의 정치투쟁의 의도와 목표를 본다.

11) 민중 정치운동의 場 마련 : 그들의 대정부 투쟁이라는 것도 단순히 젊은이들의 불교를 사랑하는 마음의 분노가 정부와 정치적 측면으로 분출된 것이겠거니 하고 순진하게 봐서는 안 된다. 그네들의 불교탄압의 구호는 불교인이나 스님들이 단지 듣기 좋게 하는 겉보기 구호일 뿐 그들의 최종 목표인 민중투쟁을 위한 전술적 전략적 각 단계에서 선택되는 하나일 뿐인 것이다. 현 개혁세력 전부가 골수 운동권은 아니라고 해도 그들은 결국 농도의 차이일 뿐 결국 같은 정서 속에 있는 흐름인 것이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그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불교 본연의 깨달음의 수행관을 교단 내에서 숨을 죽여 맥 못 추는 위치로 전락시키거나 파괴하여 교단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민중 정치운동의 場으로 만드는데 있다.( pp. 3〜4)

12) 조계종단의 類似 政黨化 : 그들이 승단 내에서 그네들의 민중적 역사운동, 민중적 정치운동, 민중적 사회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 방법도 가리지 않겠다는 태도의 표현인 것이다. 바로 그런 것을 위해 그 이론적 여건마련의 첫 출발로서 가장 중요하게 그들은 종헌의 宗旨 宗統을 먼저 변경하고 현실적 기반으로서 제도를 개혁하고 승려를 교육시키자는 것이다. 이 교육도 전통의 중을 만드는 교육과는 크게 틀리는 것이다. 이것은 승단의 歷史 政黨化 民衆 政黨化인 것이다. ……본래 수행이 전문인 승가는 정치전문가나 운동 전문가 활동 전문가가 판치는 승단의 類似 政黨化가 불가피하게 되고, ……본토를 빼앗기고 변방에서 악만 쓰는 아메리칸 인디안 신세로 전락하고 말 것. (p. 4)

13) 한국승가의 새로운 魔軍 : 이것은 불교의 단순한 세속화가 아니다. 그것은 승가적 대원칙의 변질이요 불교의 변질이며 전통의 근본적인 변질이며 파괴며 그 동안 우리 승가의 고질적인 깡패 절 뺏기 식의 단순한 武力亂舞 현상들과는 훨씬 복잡하고 질적으로 다른, 어떤 무력 침공보다도 더 무서운, 새로운 문화적 침공인 것이며 獅子身中의 벌레와 같은 한국승가의 새로운 魔軍인 것이다. 눈이 있는 승가인은 현재의 이 물결을 바로 보시라! …현재의 개혁 세력의 물결은 사상 면에서 불교의 깨달음의 수행 그 자체를 반역사적 반민중적 원리로서 배척하는 정서가 그 필연의 본질로 되고 있다는 것이다.(pp.4〜5 )

첫째, 그는 11) 그들의 대정부 투쟁을 위한 불교탄압 구호는 민중정치운동의 場을 마련하기 위한 전술 전략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먼저 불교탄암 구호와 그 목적에 대해서 보자. 이들의 불교탄압이란 주장은 94년 종단사태를 주도한 김혜암 원로회의 부의장의 발언과 이서옹 전 종정의 기자회견에도 보인다. 이 두 분의 ‘정부 탄암’ 운운은 전후의 언어 구사 등으로 보아 자기 스스로의 의중이라기보다 당시 종단사태를 주도하고 있던 승가회 최지선 등 같은 전남 백양사 출신 승려들의 사촉에 따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정부가 치안질서의 유지와 회복차원을 넘지 않은 공권력의 행사(3월 29일과 4월 10일)를 법난(法難)으로 규정하고 규탄하고 나선 것은 효과적인 하나의 전략과 전술이었다.

그들이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를 법난으로 규정하고 정부를 규탄한 것은 정말 주효했다. 왜냐하면 불교를 모르는 승속의 대중을 호도하여 동정심을 유도함과 동시에, 참여대중으로 하여금 대정부 투쟁 의식을 고취시켜 공권력을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94년 종단사태와 종권찬탈을 주도한 김혜암 부의장이 “이번 법난은 …정부의 탄압이며 종도의 탄압입니다. … 한 때는 원로들이 감금을 당해서 유시에는 소변을 보러 가지도 못했습니다.” 라고 법난과 함께 탄압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감금한 일도 없는 원로감금을 언급한 것은 누군가의 거듭된 사주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공권력의 행사는 법난도 탄압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둘째, 민중정치운동의 장 마련에 대해서 보자. 먼저 그들의 대정부 투쟁이라는 것도 단순히 젊은이들의 불교를 사랑하는 마음의 분노가 정부와 정치적 측면으로 분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네들의 불교탄압의 구호의 최종 목표는 민중투쟁을 위한 전술 전략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현 개혁세력 전부가 골수 운동권은 아니라고 해도 그들은 결국 농도의 차이일 뿐 결국 같은 정서 속에 있는 흐름인 것이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그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불교 본연의 깨달음의 수행관을 교단 내에서 숨을 죽여 맥 못 추는 위치로 전락시키거나 파괴하여 교단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민중 정치운동의 場으로 만드는데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불교 본연의 깨달음의 수행관’이란 그가 서문에서 밝힌「계정혜가 없는 자유비구」에서 말하는, 즉 불교수행의 기본인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통한 해탈(解脫) 해탈지견(解脫知見)의 오분법신(五分法身)의 성취를 말한다. 다음 그는 12)에서 종헌의 종지 종통 변경과 제도개혁의 목적과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① 그들의 민중적 역사운동, 정치운동, 사회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이론적 여건을 마련하는 것. ② 승단의 歷史 政黨化와 民衆 政黨化 내지 정치전문가, 운동전문가, 활동전문가가 판치는 승단의 類似 政黨化에 있다는 것. ③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승려(수행자)는 본토를 잃은 아메리칸 인디안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고 전망했다.

그 다음 그는 13)에서 그들의 등장을 “어떤 무력 침공보다도 더 무서운, ‘새로운 문화적 침공’인 것이며 사자신중(獅子身中) 벌레와 같은 ‘한국불교의 새로운 魔軍’”이라는 말로 호소하고 있다. 이에 앞서 당시 개혁세력의 흐름을 “불교의 단순한 세속화가 아니라 ‘승가적 대원칙의 변질이요 불교의 변질이며 전통의 근본적인 변질이자 파괴’이며 그 동안 고질적인 깡패 절 뺏기 식의 단순한 武力亂舞 현상들과는 훨씬 복잡하고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셋째, 한편 94년 종단사태 주역들의 94년 대정부 투쟁과 압박에 김영삼 정부가 굴복하여 그들이 종단을 장악하도록 한 것은 김영삼 정부의 단순한 과오가 아니다. 그것은 출가승단인 조계종이 재가승단보다도 타락하고 범죄 집단으로 전락함과 동시에, 조계종을 비롯한 한국의 불교계가 친북좌경화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점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먼저 94년 종단사태는 한국불교사와 대한민국 민주화의 향방을 바꾸어 놓은 커다란 역사적인 사건이다. 먼저 김영삼 정부는 치안질서를 유지하는 한편 상무대 비리 의혹을 비롯해 양측의 범법행위를 철저히 규명하여 처벌했어야했다. 만일 그러했다면 한반도에 아직은 전래의 출가승단(비구승단)의 법통이 계승되고, 법치를 수반한 민주화의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음 조계종이 94년 종단사태를 주도한 두 축인 승가회와 선우도량 등 종단 내 재야단체들과 호남출신 승려들에게 장악되지 않았다면 김대중 정권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점이다. 그들이 94년 조계종을 장악하지 못했거나, 199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선거 팜프렛의 파계승탈을 문제 삼아 불교계 내 한나라당 정서를 차단하고 나서지 않았다면 반대로 몇 십만 표차로 이회창 후보가 새천년 민주당 김대중 호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을 것이다. 그 다음 1997년 김대중 정권이 탄생한데는 이회창씨를 대통령으로 당선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작심과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이인제의 탈당 출마를 비롯해 IMF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였다. 하지만 불교계의 입장에서 보면 94년 종단사태 주역들, 즉 제주를 포함한 호남지역에 연고를 가진 승려들과 친북좌경승려들이 이회창 낙선에 몰두 하지 않았다면 김대중 정권의 탄생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김대중 정권과의 유대가 없었으면 조계종과 한국 불교계의 좌경화가 급진전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김대중 정권이 탄생하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이 그들이 조계종을 좌지우지하고, 남북문제와 남남의 갈등과 대립에서 지금과 같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넷째, 김영삼 정부가 94년 종단사태 때 승려들의 대정부 시위와 규탄에 굴복한 것은 법치의 포기임과 동시에 한반도에서 올바른 불교를 소멸케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정부는 종교단체에서 분규가 발생하면 국가 법령에 따라 치안질서를 유지하는 한편 종교단체 자체의 법질서에 따라 문제가 해결되도록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대통령과 문민정부는 문제 해결의 기본법인 멸쟁법(종헌 제9조 ①항 구족계․칠멸쟁법) 등 종헌 종법에 반한 불법시위와 집단 폭력 행사, 즉 94년 4월 10일 승려대회에 운집한 대중이 종헌기관인 총무원의 청사를 점령하도록 하였다. 12․12와 5․18을 소급입법을 해가며 쿠데타로 단죄한 문민정부가 94년 종단사태 주역들이 인정하는 일종의 종교계의 쿠데타를 인정한 셈이다. 사법부 또한 멸쟁법 등 불교승단의 불변의 근본이념과 기본원리에 반한 승려대회를 통한 종단장악을 부처님 재세시부터 전래해 오는 의견 수렴 절차라는,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을 받아들여 그 법통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것은 불교계 사건뿐만 아니라 한국 법원의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오판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6. 개혁주체들의 정의와 의식수준

개혁주체들의 정의와 의식 수준에 대한 언급은 수좌들과 종단의 원로들을 일깨워 선종을 표방해 오는 조계종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켜야한다는 점을 자각케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14) 개혁 주체들의 정의 : 그들이 정의를 외칠 때 그 정의의 성격과 정체를 오늘날의 수행자들은 바르게 꿰뚫어 봐야한다. 그들의 정의는 재야 민중정치 운동적 정의이며 승가적 불교적 옳음의 정의가 전혀 아닌 것이다. 그들은 迷者를 覺으로 이끌고 세속적 가치들을 불교화하고 역사를 불교화하는 전통의 보살행과는 질적으로 다른 불교의 세속화 불교의 역사화 불교 대중의 민중정치 운동원화하고 있는 물결인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불교의 자주화가 아니라 불교 진리의 세속 종속화이며 역사 종속화이며 정치 종속화 사바의 현실 종속화인 것이다. (p. 5)

15) 개혁 주체의 의식 수준 : 의식 상태가 세속 학생 수준도 못 미치는 재야 정치 승려들이 이 유서 깊은 승행승단의 지도부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능력유무를 떠나서 그 자체가 하나의 넌센스이며 대외적으로도 스스로 이 집안의 수치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른들(종단원로)은 개혁한다는 젊은 사람들이 이 승단 전체를 위해서나 본인 자신들을 위해서도 하루 속히 배움과 배움 본연의 위치로 원대 복귀하도록 지도력을 발휘해 주실 것을 바라는 바이다. … 오늘의 개혁주체들은 거개가 그 익힌 습으로나 연륜으로 보나 사실 아직 중이라고 하기조차 어려운 수행의 개념조차 제대로 모르는 철부지들인데 이들이 유서 깊은 수행승단을 개혁한다고들 하니 이 무슨 내일의 재앙이 될 건가? ( p. 6)

그는 결론에 해당하는 <기본입장>의 5원칙을 말하기에 앞서 개혁 주체들의 정의와 의식 수준에 대해 이상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즉, 그들이 주장하는 정의는 재야 민중정치 운동적 정의이며, 승가적 불교적 옳음의 정의가 전혀 아니며, 의식 상태를 보면 세속 학생 수준도 못 미치는 재야 정치 승려들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첫째, 그는 개혁 주체들의 정의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들이 외치는 정의에 대해 “재야 민중정치 운동적 정의이며 승가적 불교적 옳음의 정의가 전혀 아닌 것.”이라고 전제하고, “迷者를 覺으로 이끌고, 세속적 가치들을 불교화 하고, 역사를 불교화 하는 전통의 보살행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불교의 세속화와 역사화 그리고 불교 대중의 민중정치 운동원화 하는 물결이며, 불교 진리의 세속 종속화, 역사 종속화, 정치 종속화, 현실 종속화, 사바의 현실 종속화이지 불교의 자주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94년 구족계 등 종헌상의 석존의 법․율을 위반해가며 종단을 전복하는 하는 데 전위대 역할을 하고, 최근 생명 평화 운동을 벌이고 있는 홍도법(당시 선우도량 대표, 인드라망 공동체 상임대표)의 정의관과 자주관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즉, 그는 불교법률과 종법질서에 반한 종권찬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의의 대중이 불의의 대중을 물리쳤고, 불교적 방법으로 반불교적 세력을 타파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불교의 정의관과 불교 승단 고유의 회의법인 승가갈마(僧伽羯磨)에 비추어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자 자신들의 범법행위를 은폐하기 위한 일종의 기만이다. 따라서 그의 생명 평화 탁발 행각도 언행의 일관성과 불교의 생명관과 평화관에 입각하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할 줄 안다.

둘째, 개혁주체들의 의식을 세속 학생 수준도 못 미치는 정치 승려들이라며, 그들이 종단 지도부를 장악했다는 사실을 심히 우려했다. 즉, 정치승려들이 승단의 지도부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난센스이자 이 집안의 수치이며 내일의 재앙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른들(종단원로)은 종단과 자신들을 위해 그들로 하여금 배움터로 복귀하도록 지도력을 발휘해달라는 것이다. 휴암의 호소가 전국 수좌계(首座界, 선방 등에서 수행하는 승려들)와 원로들에게 미친 영향이 어느 정도인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기본입장>이 개혁세력이 계획했던 기존 종헌의 골격(전문과 핵심조항)의 변경만은 좌절시킨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앞서 언급한 종헌 외적인 종헌 보장 장치에 해당하는 당시 승니법 제45조<치탈사유> 4호 ‘불계중 중계를 범한 자’등을 개정 내지는 대폭 축소함으로써 그 뜻을 관철했다. 예컨대 현행 승려법 제46 조 <멸빈사유> 3호 ‘불계 중 4바라이(음행, 살인, 절도, 대망어)를 범하여 실형을 받은 자’가 이를 말해준다. 동 멸빈사유 3호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94년 개정 이전 치탈사유 4호는 체제가 다른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국보법과 같이 출가승단(비구승단)인 조계종의 정화이념과 정체성을 보전하기 위한 장치인데 이를 폐지함으로써 재가승단보다도 타락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조계종의 비구 승려가 음행, 살인, 절도를 해도 세간법으로 실형을 받지 않으면 종단의 제재를 받지 않는 일종의 범죄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7. <기본입장>의 5원칙

그가 제시한 <기본입장> 5원칙 가운데 제3과 제4를 한 문장으로 적시하도록 한다. 이 외 1, 2, 5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15) 시대에 부동하는 종교적 원칙 : 종교는 시대적 변화의 요청이라는 이유로 무원칙하게 변할 수 없으며 오히려 변화의 시대일수록 종교는 흐름을 거슬릴만한 부동의 자기 원칙과 신념을 명확히 해줘 방황하는 중생들의 흔들림 없는 정신적 좌표가 되어 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결국 定慧雙修와 같은 二元論이 아니고 定慧不二와 같은 不二元論的 선의 내용으로서 좌표라야 불교적 좌표일 것이다. 종교인은 결코 나타나는 일보다 정신세계로써 범부중생의 마음에 신뢰와 안심의 지표가 돼주는 것이 그 업무의 본분이며 선행 공덕 등은 종교인의 본질 가치적 행위일 수 없으며 중생을 구제하려는 종교인의 덕행과 도리의 차원일 뿐이다. (p. 7)

독자들이 이해하기에 설명이 필요치 않은 대목이다. 다만 불교종단의 부동의 원칙이라면 먼저 제1결집 이래 불개변의 원칙으로 전승되고 있는 불교승가의 근본규범인 율(律, vinaya)과 그 운용의 기본원리인 수결(隨結), 그리고 제계십리(制戒十利) 등 율법을 제정한 근본정신에 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란 점만을 밝혀둔다.


8. 맺음말

이상으로 휴암의 <기본입장>을 대충 분석해 보았다. 맺음말에서는 <기본입장>을 살펴 본 소회와 함께 필자의 관심사와 관련해 몇 가지를 메모하는 것으로 마치고자 한다.

첫째, 94년 종단사태의 와중에 제도권에 있으면서 경험한 필자로서는 휴암이 94년 종단사태 주역들의 성향과 그들이 목표하는 바를 명확히 간파하고 있었다는 데 먼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서울법대 출신이라는 정도 밖에 모르는 저로서는 그의 출생년월일과 함께 고등학력 등 학력과 이력이 궁금했다. 그래서 주위에서 건네준 자료를 뒤져 보았다. 그랬더니 1941년 생으로 마산고등하교를 졸업하였으며, 1967년에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1968년에 갑사 혜원스님 앞으로 출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시절에 4․19와 5․16을, 60년대 대학가의 대정부 투쟁을 목격했을 것이다. 또한 출가해서는 80년 10․27 사태와 함께 제도권의 불교가 마비상태일 때 사태수습을 위한 수좌계의 일원으로 참석함으로써, 불교계 내부를 어느 정도 파악했기에『한국불교의 새로운 얼굴』(1986),『장군죽비』상하권을 출판했다고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승가회와 함께 94년 종단사태의 전위대 역할을 한 선우도량의 결사모임에서 한 두 차례 글을 발표하는 그들과도 교류가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상과 같은 학력과 이력 그리고 시대 사회적인 상황에 대한 충분한 경험에 근거를 둔 그의 식견과 양식이 94년 종단사태에 대한 <기본입장>과 같은 가치 있는 자료를 남기게 했다고 판단된다.

둘째, 한국 근․현대 한국불교사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역사는 승려들 간의 쟁사(諍事)와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개최되어 온 승려대회의 역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발족시킨 불교교단사연구소가 승려대회에 대한 불교사적 고찰과 함께 조계종 종헌상의 종단 쟁사 해결의 기본법인 멸쟁법에 비추어 문제를 제기할 때까지 학계는 물론 제도권의 불교도 석존의 법․율로 돌아가 이를 검토해보려는 시론조차 없었다. 그러니 어느 사건 하나도 자료가 될 만한 기록을 수집하여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한 논문이 있을 리가 없다. 여기에는 많은 원인이 있겠으나 오늘날 조계종과 함께 한국불교가 나아갈 방향조차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94년 종단사태를 비롯해 90년대 3차례의 종단사태는 지구촌을 경악케 한 사건이자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협하는 대재앙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승려들은 물론 어느 재가불자 한 사람 이를 제대로 종단분규와 제도개혁의 잘 못을 지적하는 자가 없다. 그런 점에서 휴암의 <기본입장>은 94년 종단사태 주역의 성향과 그들이 목적하고 있는 바를 제대로 지퍼서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귀중하고도 값진 자료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필자 자신의 비력(非力)과 비재(非才) 그리고 건강이 허락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석존의 가르침과 조계종의 종헌․종법 등 종단 소의(所依) 근본규범에 입각해 1차 분석한 결과를 공개하기로 하였다. 독자 여러분께서 많은 가르침과 함께 필자의 설명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셋째, 그의 <기본입장>을 읽으며 그들에게는 불교가 그들의 左傾化된 민중정치 운동과 활동을 위한 이론무장의 수단임과 동시에, 교단과 사찰을 민중정치운동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 그들의 최종 목표라는 것. 그리고 그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고 있는 불교 본연의 깨달음의 수행관을 교단 내에서 숨을 죽여 맥 못 추는 위치로 전락시키거나 파괴한다는 말이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불교와 세간법을 인용하여 불교와 출세간법을 파괴하고 유린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승가의 이름으로 승가를 파괴하고, 선우의 이름으로 악우 짓을 하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전자의 경우는 승가회를 비롯한 각종 승가단체이고 후자는 선우도량(상임대표 도법, 현재 인드라망공동체 대표)이다.

먼저 승가회는 승가회의 이름으로 참종권을 내세워 승가 고유의 회의법인 갈마법(羯磨法, kamma dhamma)에 따른 모든 의사의 결정과 지도자를 선출을 세간의 선거법을 따르도록 강화했고, 이청화는 승가회의 배경으로 초심호계위원장에 취임하여 종헌과 승가의 법전인 율장에 반하여 궐석심판으로 많은 원로 중진 승려들을 희생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다음 선우도량 상임대표 도법은 세간법을 들어 불법을 파괴하고, 불법을 들어 불법을 파괴해오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예컨대 94년 종단사태를 주도해 종단을 장악하자 종단개혁은 불교사상과 정신에 입각해야 한다며 경장과 율장의 사례를 언급한 다음 ‘개혁주체의 역량과 개혁대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며 손자병법(知彼知己…)을 주장했다. 그런가하면 2000년 화합을 위한 대사면이 성사될 단계에 이르자 화합법이야말로 승가의 최상의 가치규범이자 질서규범인데도 <누가 종단화합을 반대하는가>(불교신문 2000.2.1)라는 기고문에서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을 들어 반대하였다.

넷째, 휴암의 <기본입장>은 2008년 7월 4일 서울 시청 앞에서 광장에서 거행된 '국민주권수호와 권력의 참회를 위한 시국법회'는 승가회와 선우도량 소속 승려들을 비롯해 94년 종단전복의 주역들의 성향과 그 최종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다. 불교계의 이번 촛불행사가 대운하건설을 반대하는 불교계의 정서와 '알고가'에 불교계를 대표하는 사찰을 누락시킨 점 등을 구실로 내세웠기에 대중 동원이 가능했었다. 그러나 '사제단이 앞장선 정치참여'와 다를 바 없는 불교계의 정치적인 시위였다. <기본입장>에서 밝히고 있는 바, 승려들의 민주정당과 같은 정치활동의 일환이라고 볼 때, 한국불교의 내일을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 불교도의 촛불시위를 주도한 승가회(법안)선우도량(수경)는 앞서 누차 언급한 바와 같이 세간의 민주화와 개혁의 시류에 편승하여 94년 종단전복 사태를 주도한 핵심 세력이다.
 
또한 앞서 수차 언급한 바이지만, 그들은 국보법과 같은 조계종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보전하기 위한 승니법 제45조<치탈사유> ‘불계중 중계를 범한 자’를 ‘4바라이를 범하여 실형을 받은 자’(현행 승려법 제46조 3항)로 개정함으로써 출가승단인 조계종을 재가승단보다도 타락한 종단으로 변질시킨 책임이 있다. 이번 불교계의 8․27 헌법파괴․종교편향을 명분으로 내세운 대정부 투쟁 또한 수경, 법안 등 승가회와 선우도량 인사들이 주축인 7․4 촛불집회의 연장선상에서 개최된 것이다. 불교도가 국가적 혼란기에 지녀할 기본자세와 불교의 문제 해결 방식에 비추어 과연 올바른 태도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foot note는 생략합니다/ 덕산 원두스님: http://allinkorea.net/]

기사입력: 2010/05/16 [13:16]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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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암스님에 대해 곡필하지 마십시오 마당 10/05/16 [15:13] 수정 삭제
  나는 학창시절 종종 팔공산 기기암으로 휴암스님을 찾아 뵈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사실 나의 법명도 휴암스님께 받은 것입니다.

스님을 찾아 뵙곤 하는 것이 인연이 되어 한 번은 수련회에 같이 간 동료학생들에게 법문을 해 주신 적도 있습니다.
당시 불교의 입장에서 세상 모든 이데올로기는 전부 도그마로 간주된다는 취지의 법문을 하시며 그래도 입자물리학이 없이는 텔레비젼도 존재할 수 없다는 말씀을 빗대어 관념이라는 것이 현실과 괴리된것은 아니라고 가르치시던 생각이 납니다.

스님을 찾아 뵙곤 하던 당시는 5공 때라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였지만, 휴암스님께서는 운동권 학생들이 좌경 이념에 경도되어 잘못된 행동을 한다는 식의 말은 한 마디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어른들이 참으로 양심없다는 말씀은 하셨습니다.
또 조계사 법난 때도 사태가 가라앉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산으로 들어가셨는데 당시 정치적 해결방식에 동의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이유로 그런게 아닙니다.
평소 휴암스님은 상구보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어찌 하화중생이 가능하겠느냐며 더욱 정진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하신 적이 있습니다.
즉, 그 시절 휴암스님은 불교계의 정치적 사안들보다 당신의 궁극적 공부에 대한 열망이 훨씬 절절했을 거라는 뜻입니다.
불철주야 정진하시던 스님의 일상이 그 증거입니다.

그런 휴암스님에 대하여 어찌 수경스님 등의 4대강 반대운동 등은 정치적 목적하에 이루어진 것이니 휴암스님은 반대했을 거라는 결론으로 왜곡시킬 수 있단 말입니까?
더구나 휴암스님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면서 말입니다.
다만 한가지는 확실한 듯합니다. 휴암스님 생전 한국불교의 가장 큰 문제는 스님들이 양심이 없는 것이라 하셨는데 그 말이 여기에도 딱 맞아 떨어지는 둣 합니다.
충고하건데 이 세상에 안계신다 하여 휴암스님을 함부로 팔지 마십시오.
그럼 간단하게 왜곡인지 아닌지 알게되는것 아닙니까? 원문공개하세요 16/05/21 [11:30] 수정 삭제
  휴암스님이란분이 뭘 이야기 하려고 했던건지? 수행하지 말자고, 그리고 정치하자고 했다는 이야기요?
원문 찾아요 휴암뜻 16/09/26 [19:15] 수정 삭제
  ''휴암이 남긴〈조계종 종헌의 종지 종통이 밀실조작에 의해 바꿔지게 된 배경설명과 우리의 기본입장〉''.........이런 제목 글 찾아요, 원문 좀 보내주세요(zenbuddha@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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