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정'이 평화를 보장한다는 거짓말
북괴가 말하는 평화는 적화통일 전략에 불과
 
서옥식 전 연합뉴스 편집장
평화협정이 평화를 보장한다는 것은 거짓말

북핵 문제 해결없는 평화협정은 ‘사기극’
대표적인 국제 '평화 사기극' 베트남평화협정
평화협정 체결되면 미군주둔 근거 없어지고 남침
정전협정을 무력화 시킨 장본인은 북한
북이 규정하는 평화의 의미는 대한민국 공산화


서옥식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


▲북핵 문제 해결없는 평화협정은 ‘사기극’
27일은 6.25 전쟁 정전 57년이 되는 날입니다.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관련, 국내 일부에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가까스로 유지돼온 정전협정 체제를 이제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한다고 그 필요성을 주장합니다. 평화협정이 한반도의 평화를 실체적으로 보장한다면 이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화협정이 체결된다하더라도 과거 베트남평화협정(1973년1월)이나 중동평화협정(1979년3월)에서 보듯 분쟁이 지속되고 평화를 담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베트남 평화협정체결은 미국과 공산 북베트남(越盟)간의 전쟁을 종식시켰지만 결국 남베트남(越南)을 포함한 국가 전체의 적화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어찌됐건 통일이 되지않았느냐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자유민주주의>통일이 아닌 소위 <인민민주주의>체제의 통일이라면 우리 국민 다수가 이런 통일방식을 지지한다고 보겠습니까?

중동평화협정 역시 지역 평화를 위한 외교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테러나 국지전쟁이 끊이지 않는 등 불안한 상태가 지속됨으로써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연합국간에 체결된 베르사이유조약은 대표적인 평화협정의 하나지만 나치 정권의 독일이 배상을 거부하면서 1933년에 파기됐습니다. 결국 평화 유지는 실패했고,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간의 대립이라는 종교문제로 발발한 국제전쟁인 <30년 전쟁>의 종전과 함께 1648년 10월 24일 체결된 베스트팔렌조약(Peace of Westfalen, Treaty of Westphalia)이나, 2차대전후의 파리강화조약은 전쟁재발에 일정부분 기여한 점은 있습니다).

따라서 남북한간의 평화협정체결도 중요하지만 협정체결에 앞서 핵무기 포기를 포함한 군비통제 등 전쟁억지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정전협정체결 후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 내부의 일부 인사들은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민족공조>정책이나 <선군정치>, 그리고 남한의 <포용정책>이나 <햇볕정책>을 들기도 합니다만 이것들은 평화를 담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남한의 <대북 억지력>때문입니다. 즉,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 <대북 군사억지력>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평화협정과 평화통일은 남북한간의 군사적 신뢰구축이 관건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혹자는 핵문제를 평화협정에서 논의하면 될 것 아니냐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우리 정부는 평화협정이 체결되려면 북한의 핵포기가 전제돼야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북한 외무성은 2010년 1월 11일 "조선전쟁(6.25전쟁) 발발 60년이 되는 올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조속히 시작할 것을 ‘정전협정 당사국들’에 정중히 제의한다"고 밝혔습니다. 정전협정당사국이란 한국이 배제된 가운데 협정에 서명한 북한, 중국, 그리고 유엔군을 대표하는 미국을 말합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문제는 1954년 제네바 회담을 비롯 그동안 여러 차례 제기됐으나 실질적인 협상으로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남한이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평화협정은 남한이 배제된 가운데 북․미간에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는 조약 서명자(signatory)와 조약 당사자(party)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1953년 7월27일 마크 클라크 대장이 정전협정에 서명했을 때 그는 미군사령관이 아닌 유엔군사령관 자격이었습니다. 미국은 16개 참전국의 일원에 불과하므로 설령 앞으로 북․미간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해도 이는 두 나라 사이의 새로운 쌍무협정일 뿐, 정전협정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때 3자 또는 4자가 평화협정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며 다소 유연성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남한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2010년 1월 11일자 외무성 성명에서는 <정전협정 당사국>이라고만 표현해 남한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회담당사국으로 보고 있는지는 아주 불투명합니다. 2008년 12월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북한은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를 위해 북한, 중국, 미국 외에 한국이 참여하는 ‘4자 대화’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이 역시 공식 확인 된 것은 아닙니다.

이에 앞서 2005년 8월 베이징 북핵6자회담에서 평화협정 문제가 논의됐고 부시대통령도 2006년 11월과 2007년 9월 등 두 차례에 걸쳐 한반도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제도적 장치를 추진하자는 뜻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관련국 사이에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모든 핵을 폐기할 경우에만”이라는 전제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북한이 하도 핵포기를 거부하니까 북한을 유인하기위한 하나의 '미끼'엿다는 해석도 있었습니다.

이같은 부시대통령의 언급에 고무된 듯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0월 평양방문을 앞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평화협정”이라고 확언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핵 문제를 논의하라는 많은 국민과 언론, 야당의 요청에 대해 “정략적인 의미로 평가한다” “시비거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 “가서 싸우고 오라는 뜻”이라며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노대통령의 이 같은 자세는 평소 그의 북핵 관련 언급과도 일맥 상통합니다. 그는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해 ‘방어용’, ‘일리 있다’는 주장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북한의 핵실험 직전에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며 핵실험 가능성을 부인해오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그였습니다. 부시대통령이 언급한 내용의 의미를 모를 리 없는 노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북핵 얘기를 하라는 것은 싸움하고 오라는 뜻”이라고 계속 어깃장을 놓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시 대통령의 평화협정 ‘의지’가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라는 점입니다.

노대통령의 그같은 고집은 핵문제는 6자회담에 맡기고 자신은 평화체제에만 매달리겠다는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남측이든 북측이든 핵문제 해결 없이 평화를 말하는 것은 ‘사기’(詐欺)입니다. 국민은 노대통령에게 북한 가서 핵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고 돌아오라고 주문하지 않았습니다. 정상회담에서 핵문제가 당장 해결되면 좋겠지만 최소한 핵 포기 등 비핵화에 대한 김정일의 책임 있는 언질을 받아내 6자회담이 좋은 결말을 내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반도에서의 종전선언과 평화선언, 평화협정 체결에 반대할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방법론’입니다. 북한은 평화협정의 전제조건으로 핵포기를 절대 말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북핵 해결없는 평화선언이나 평화협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평화의 가장 큰 장애가 북한 핵이기 때문입니다. 부시 대통령이 종전선언의 전제조건으로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제시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 평화협정 체결되면 미군주둔 근거 없어진다
남북한 간에 핵폐기는 물론 신뢰구축도, 군사적인 긴장완화 조치도 없는 상황에서 종전선언 또는 종전협정을 거쳐 평화협정을 위한 구체적 협상이 진행될 경우 6·25전쟁 이후 성립된 한반도 및 주변 안보 질서에는 심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평화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은 한국의 작전지휘권 단독 행사로 인해 한·미연합사 해체와 맞물리면서 유엔군 사령부와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된 혼란을 부를 뿐아니라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결과가 됩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군이 남한에 주둔할 근거도 없어집니다. 일부에서는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과거 베트남의 예에서 보듯 남침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
고 있습니다.

▲ 정전협정을 무력화 시킨 장본인은 북한
사실상 정전협정체제를 무력화 한 것은 북한이었습니다. 중립국감독위와 유엔사 집계에 의하면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된후 1994년 4월말까지 북한은 42만5천271건이나 휴전협정 위반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정전협정을 위반한 장본인 이면서도 이제는 파렴치하게 평화협정을 제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정전협정 위반사례를 보면 판문점 도끼만행살해사건,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1.21청와대 습격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양민학살사건, 8.15 박정희대통령부부 저격 및 육영수여사 살해사건, 서울 동작동 현충문 폭파사건, 미얀마 아웅산묘소 한국 외교사절단 폭탄테러학살사건, 영화감독 신상옥씨 부부 납치사건, 위장간첩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 귀순사건, KAL기 858편 공중폭파테러사건, 강릉-속초 무장공비 잠수정 침투사건, 북한의 선제도발및 공격으로 발발한 제1차 연평해전 - 제2차 연평해전 - 대청해전, 천안함폭침사건 등입니다. 북한은 6.25남침전쟁을 부인하고 있듯이 이들 사건의 거의 대부분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 평화협정과 평화조약
평화협정(Peace agreement)이란 군사적으로 대치 관계 또는 교전중에 있는 국가들이 대치를 중지하고 평화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 맺는 협정입니다. 국제법상의 효력은 평화조약에 준하지만 행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대해서만 약정을 맺는 것으로 국회의 비준 등을 거치지 않아도 되기때문에 평화조약에 비해서 격이나 구속력이 떨어집니다. 이에 반해 평화조약(treaty of peace, peace treaty)은 교전중인 국가간에 전쟁의 종료와 평화의 회복, 영토, 배상금 따위의 강화조건을 규정하고 그 이행을 위한 담보 수단을 정하는 조약으로, 조약의 체결권과 비준권이 국가수반에 의해서 행사되고 국회의 비준을 거쳐 최종 확정되는 약정입니다. 행정부, 국회의 비준을 거침에 따라 국제법, 국내법 모두에 구속력을 가지는 평화체제 가운데 가장 강력한 약정입니다.

▲ 북이 규정하는 평화의 의미는 ‘남한공산화’
앞에서 지적한대로 평화협정이란 북한이 휴전협정이후 꾸준히 주창해 온 것입니다. 그러면 북한이 말하는 평화란 무엇일까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의하면 평화는 <전쟁이나 갈등이 없이 세상이 평온한 상태>로 요약됩니다. 그러나 북한이 말하는 평화는 결론부터 말하면 <공산화>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이 지구상에서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완전히 말살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북한은 자본주의의 본성은 전쟁과 침략이라고 규정하면서 “전쟁의 근원이 자본주의에 있는 만큼 이를 타도하고 전 세계가 공산화되어야만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가 온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정치사전,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73, pp.1162-1163). 다시 말하면 북한이 말하는 ‘평화’란 폭력혁명이나 무력통일에 반대하는 개념이 아니라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세력, 즉 자유민주주의 국가, 자본주의 국가를 전쟁세력으로 규정, 이들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소멸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평화는 반드시 계급투쟁, 즉 전쟁을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본주의와 전쟁으로 계급투쟁을 하고 계급소멸을 통해 ‘진정한 평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무력과 폭력이 공산혁명을 위해 필요할 뿐 아니라, 이를 위한 정당한 수단으로 간주합니다. 다시 말해 평화는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 달성된다는 뜻입니다. 북한은 이점에서 자본주의국가들의 평화를 ‘부르조아 평화주의’로 규정합니다. 북한은 이 부르주아평화주의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인민들의 염원을 악용한 것으로, 제국주의가 전쟁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은폐하면서 제국주의를 때려 부수지 않아도 지구상에 ‘영원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설교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김일성 저작선집 4권 p.484).
 
북한은 궁극적으로 계급투쟁을 통해 국가가 소멸하고 법도 경찰도, 군대도 없는 사회를 평화로 규정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기본적으로 국가나 법, 경찰, 군대를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한 부르주아 계급의 착취를 위해 존재하는 억압기구내지 억압장치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국가란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이 자기 재산을 지키고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로서 모든 악의 원천이라면서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이는 자연히 없어지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북한은 이런 전도된 평화관을 가지고 용어혼란전술의 일환으로 ‘평화’란 용어를 대남 협상전략에 적극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전협정을 대미평화협정으로 대체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고, 연방제통일방안과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등을 제의하면서 ‘평화적 원칙’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이러한 ‘평화공세’는 결국 주한미군 철수,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연방제적화통일 이란 수순을 밟아가기 위한 기만술책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휴전선 남쪽에 자본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평화는 결코 올 수 없기 때문에 한국을 반드시 적화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북한의 노동당 규약에도 분명히 명시돼 있습니다.

▲대표적인 국제 ‘평화 사기극’베트남평화협정
그러나 평화협정이 반드시 평화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미국과 북베트남 사이에 1973년 1월27일 체결된 역사적인 파리평화협정은 결과적으로 국제적인 ‘사기극’이 되고 말았습니다. 협상의 주역인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와 북베트남(월맹)정치국원 레둑토는 그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습니다. 그러나 레둑토는 베트남에 ‘평화’가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수상을 거부했습니다. 그가 말한 ‘평화’는 ‘공산화’였습니다. 평화협정 체결 직후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남베트남은 공산화되고 말았습니다. 남베트남의 공산화는 평화협정도 노벨상도 결코 평화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겼습니다.
 
당시 평화협정에는 교전 당사국인 미국, 남베트남, 북베트남, 베트콩(베트남 임시혁명정부) 등이 서명했습니다. 키신저는 이 평화협정을 담보하기위해 북베트남에 40억달러(미국 직접원조 20억달러, IBRD 차관 20억달러)의 원조까지 제공, 이것으로 파괴된 북베트남의 경제를 재건키로 했습니다. 키신저는 보다 확실한 휴전을 담보하기 위해 휴전감시위원단인 캐나다, 이란, 헝가리, 폴란드 4개국을 서명에 참여시켰습니다. 그리하여 4개국 250명으로 구성된 휴전감시위원단은 하노이와 사이공(호치민시티), 그리고 휴전선을 감시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북베트남에서는 하반라우 외무차관이 150명의 고문단과 함께 사이공에 체류했습니다. 일종의 인질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믿지 못한 미국은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 4개국 외무장관까지 서명에 참여시켰습니다. 결과적으로 파리휴전협정은 4+4+4, 즉 무려 12개국이 담보하고 보증한 값비싼 서명문서였습니다. 그리고 남베트남과도 방위조약을 체결, 미군 철수 후 북베트남이나 베트콩이 휴전협정을 파기하면, 즉각 해공군력을 투입, 북폭을 재개하고 남베트남 지상군을 지원키로 굳게 약속했습니다. 이와 함께 미군이 철수하면서 그 동안 보유하고 있던 각종 최신 무기까지도 모두 남베트남에 양도, 그 무렵 남베트남 공군력은 전세계에서 4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10년간은 휴전체제가 유지되리라는 키신저의 믿음은 사라지고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과 베트콩 연합군에 의해 수도 사이공이 함락됨으로써 베트남은 완전 공산화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십수년간 1천여만명이 처형되거나 재교육 캠프에서 죽어갔고 1백만 이상의 보트 피플이 해상을 떠돌다 10만 이상이 목숨을 잃는 참혹한 삶이 계속됐습니다.

결국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평화가 올 것이라는 키신저의 생각은 착각이었습니다. 북베트남은 미군의 북폭과 경제봉쇄로 피폐해진 나머지 전쟁 수행 능력을 상실하자 평화회담에 나선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전략이었고, 전술만 바꾼 기만이었습니다. 미국과 평화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에서 침략군을 몰아내고 민중봉기를 일으켜 인민민주주의 정권을 창출하고, 무력으로 남반부를 해방시켜 조국통일을 달성한다는 소위 통일전선전략을 재정비․강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지금 북한이 견지하고 있는 대남전략과 단 한 치의 차이도 없습니다. 우리내부 일부 인사들은 북한이 남침할 의사도 없고, 남침능력도 없다고 하는데 그랬으면 오즉 좋겠습니까?

실제 베트남 공산화는 남한의 적화를 노려온 북한을 고무시켰습니다. 6.25전쟁에서 무력통일의 꿈을 실현하지 못한 김일성 주석은 1975년 남베트남의 패망을 바라보면서 남한을 다시 한번 밀어붙일 생각을 했습니다. 1975년 4월 단 한 대의 항공기도 없었던 북베트남군이 당시 세계 최강의 미군을 게릴라전으로 패배시키는 것을 본 김일성은 상당히 고무돼 중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북경에 도착한 날, 환영 만찬석상에서 김일성은 “(남한과의) 전쟁에서 우리가 잃을 것은 군사분계선이요, 얻는 것은 조국통일(In this war we will only lose the Military Demarcation Line and will gain the country's unification, ※당시 김일성의 이 발언은 외신을 타고 영문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영어원문을 올리는 것입니다)”이라면서 남침의지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중국과 소련이 이에 협력하지 않음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중국 측은 “북한이 이런 시기에 남침을 하게 되면 미국과의 전쟁이 되고, 이는 곧 제3차 세계대전으로 연계될 수 있기 때문에 남침은 불가하다”는 뜻을 전달했고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미국의 슐레신저(James Schlesinger)국방장관은 “만일 북한이 한국을 재침한다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라는 핵사용 발언으로 북한의 남침전쟁을 억지했습니다.

▲ 북이 노리는 남한 선거 구도-평화세력 vs. 전쟁세력
북한은 근자에 들어 핵무기개발을 합리화시키고 핵개발을 저지하려는 한국과 미국을 ‘전쟁세력’이라고 몰아가기 위해 ‘평화’란 말을 부쩍 많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특히 2006년 신년공동사설 발표 이후 한국의 대선 등 거의 모든 선거를 ‘전쟁세력’ 대 ‘평화세력’의 대결구도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대선을 앞둔 2007년 이후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은 남한에서의 ‘반보수대연합’을 촉구했습니다. 원래 <전쟁이냐, 평화냐>는 노무현대통령 후보의 2002년 대선구호였습니다. 민주당은 이를 선거구호로 만들고 신문광고에도 크게 냈습니다. 노무현후보를 찍으면 평화가 오고 , 이회창 후보를 찍으면 전쟁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구호가 북한으로 갔다가 17대 대선을 앞두고 다시 남한으로 돌아온 것입니다.현재 국내에서는 일부 정치권이나 소위 운동권 인사들은 북한이 사용하는 평화의 개념을 제대로 아는지 모르는지 ‘평화세력’ 운운하며 북한의 평화공세에 맞장구를 치고 있습니다. 선거를 전쟁과 평화의 구도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북한의 평화개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북한의 구호처럼 ‘평화’ ‘반전’ ‘반미’를 외치지만 유독 ‘반핵’ 이란 구호는 사용을 거부합니다.

‘평화’를 말하는 자들이 북한 전체 인민들의 평화를 말살하고 있는 불의한 권력에 아부하며, 그들의 핵 도박을 음양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김일성-김정일 공산독재체제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체제의 북한은 세계 최악의 인권 유린국가, 2007년 ‘세계경제자유지수’에서 조사대상국 157개국 중 157위를 기록하는 등 정상적인 국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입니다.

또한 ‘평화’를 외치는 세력들은 오히려 미국을 ‘남북통일 반대국가’로 규정하고 반미감정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들은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사람을 수구냉전세력, 사대주의자, 전쟁옹호세력 등으로 매도하면서 ‘평화’와 ‘반전’을 북한의 독제체제와 핵무기 보유를 옹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북한 및 북한을 옹호하는 남한 내 인사들이 주장하는 평화 구호의 이면에는 북한 김정일의 세습-독재-전체주의 체제 옹호와 한국의 안보를 무장해제 시켜 전한반도를 적화하려는 전략이 숨어있다고 보겠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지키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평화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즉 소극적인 의미의 ‘평화 지키기’(peace-keeping)가 아니라 적극적 의미의 ‘평화 만들기’(peace-making)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분단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우리는 조그만 위기에도 흔들리며 통일로 가는 방향 감각을 잃고 혼란을 겪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평화정착이야 말로 통일로 가는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평화협정이 필요하다면 남북한이 체결하고 미국․중국 등 주변 국가들이 보장하는 형태가 바람직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핵문제 해결 없는 평화협정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끝) [서옥식 전 연합뉴스 편집장: http://allinkorea.net/]
기사입력: 2010/07/27 [17:27]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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