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연평해전 책임을 아군에 돌린 임동원
군사도발까지 북괴의 편을 드는 임동원의 정체는?
 
조영환 편집인
2002년 6월 북괴의 공격을 받은 참수리호에 대한 김대중 정권의 이적성 행정에 대해 논란이 이는 가운데, 김대중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장과 통일부장관을 지낸 임동원 전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는 19일 “제2연평해전은 우리 선박이 (작전) 통제선을 넘어간 잘못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2002년 6월 29일 오전 북한군 경비정이 NLL(북방한계선)을 침범하자 차단에 나선 우리 고속정에 북측이 기습공격을 가하면서 시작된 제2연평해전 발발의 책임이 우리 해군의 작전 잘못에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라고 임동원의 주장을 규정했다. 남북한 간의 군사적 충돌에 관해 남한의 최고위 안보책임자였던 임동원이 이렇게 쉽게 적에게 유리하고 아군에게 불리한 발언을 하는 것은 보통 국민의 눈에 이적행각으로 보인다. 그는 “(부시 대통령은) 핵의혹을 조작해 제네바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던 자다. 

임동원 전 특보는 이날 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제2연평해전 영결식에 대통령과 정부 각료가 참석하지 않은 게 국민 정서상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당시 우리 해군의 잘못도 있었다. 우리 해군의 작전 미스(실책)라서 우리가 발표하기 뭣해서 그렇지…"라며 “제2연평해전은 우리 선박이 (작전) 통제선을 넘어간 잘못이 있다”눈 말을 했다고 조선일보는 전했다. 그는 제2연평해전 다음날인 2002년 6월 30일 북한이 핫라인을 통해 ‘이 사건은 우발적으로 발생시킨 사고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의 통지문을 보내왔다며 “북측이 사과 문서를 보내오기는 분단 이후 처음”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북괴가 남한을 때리고 어루는 작전에 농락당하는 임동원의 때늦은 변명으로 들린다. 임동원의 행적은 간첩스럽다는 평이 있다.

조선일보는 “그러나 임 전 특보의 말은 우리의 대북 감청부대가 연평해전 발발 이틀 전에 입수한 북의 사전 도발 계획을 보여주는 ‘발포 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다’는 내용의 북한 부대 간의 교신 내용이 담긴 ‘SI(Special Intelligence) 15자’와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이 SI를 “보고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임동원은 ‘NLL을 먼저 침범한 북군함을 저지하려고 우리 해군함정이 통제선을 넘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북한 함정이 당시 NLL을 넘어왔는지 안 넘어왔는지는 모호하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우리 정부의 공식 발표 및 '김대중 자서전'의 내용과 배치되는 주장이고, 임동원은 자신의 저서 '피스메이커'에서도 1999년 6월 15일 제1연평해전의 발발 원인에 대해 “우리 해군이 '밀어내기 작전'을 강행하자 설마하며 버티던 북한 함정들이 당황하여 먼저 사격을 가해왔다”며 북을 비호했다고 조선닷컴은 전했다.

이런 임동원의 주장과는 달리, 지만원 박사는 20일 “김대중-임동원의 허가 받은 영해침범”이라는 글을 통해 “2001년 6.3일 17:00시, 임동원 장관 주재로 NSC(안보회의)가 열렸고 아래와 같이 결정했다. 1) 이번 영해 통과에 대해서는 6.15공동선언정신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허용한다. 2) 북한에게도 무해통항권을 인정한다. 3) 사전에 통보하거나 허가요청이 있을 때에는 NLL 통과도 허용한다”라고 인용하면서, “(제주해협에 북한어선 통과 등 영해침범에 관한 당시의 상황과 사건들에 대해 긴 설명을 한 뒤에) 이들을 종합해 보면 코너로 몰린 정부가 북한에 쇼를 요청하자 북한에서 사건을 극화시키기 위해 공작원들에게 그런 쇼를 하게 한 것이라고 보였다. 남한 해군과의 접선 위치 역시 사전에 내통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였다”고 주장했다.

조선닷컴의 “DJ정부 외교·안보 책임자의 이런 인식 ‘제2 연평해전 해군이 작전통제선 넘어가 발생’ 충격 발언”이라는 기사에 대해 이에 대해 한 네티즌(m007)은 “이넘부터 종북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고, 다른 네티즌(kenpark1)은 “6.25때 인민군으로 내려와 대한민국 국정원장까지 하면서 김정일에 충성한 빨갱이. 허긴 북한에 가족이 있으니”라고 반응했다. 또 한 네티즌(lsh2040)은 “이거 완전히 빨갱이 놈 아닌가.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순직한 해군들이 지하에서 울부짖겠다. 정말 빨갱이가 너무나 많구나”라고 했고, 또 다른 네티즌(sook1019)은 “서울대 법대 84학번 전직 국정원 직원 김기삼은 자신 상관인 임동원이 북한간첩임을 확신한다는 증언을 그의 저서를 통해 쓰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미국으로 망명했죠”라고 반응했다.

한 네티즌(yongkyu112)은 “세금내기가 아깝다. 이런 자들을 위해서 지금가지 대한민국에서 세금을 내고 군대를 갔다 왔는지. 어느 편에 서있는지 정체성이 없는 자들이 책임자로 있었으니, 이들을 선거에서 뽑아준 이들이 있으니 더욱 한심하다”고 했고, 다른 네티즌(ysj4412)은 “방어권 차원에서 기껏 해명, 변명이 우리 군의(아군)의 잘못 때문에 사건 확대 자제시키고, 일본 축구 구경가고, 침묵했었다? 설사, 아군이 선제공격했더라도 최고 지휘부에 있던 인사가 저런 사고방식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북한을 옹호하는 버릇은 여전하군요”라고 반응했고, 또 다른 네티즌(c49000)은 “빨갱이를 국정원장에 앉힌다고 말들이 많더니 정말 빨갱이 새끼들이구나”라고 반응했다. 네티즌들은 임동원의 종북성을 지적했다. [조영환 편집인: http://www.allinkorea.net/]



김대중-임동원의 허가 받은 영해침범 (지만원 시스템클럽 대표)

역사를 바로 알아야 안보를 지킬 수 있습니다. 국민 제1의 가치가 무엇입니까? 생명과 자유입니다. 국가안보인 것입니다. 아래 역사는 제가 기록해둔 역사입니다.

(령군봉호, 50년 이래 최초의 영해침범)

1. 2001. 6. 2일 11:43분 울산 앞 바다 22마일 동쪽에서 북한의 대형 선박 청진2호(13,800톤 급) 발견됐다. 이 선박은 울산 동쪽에서 항로를 서쪽으로 잡아 제주도 북쪽을 가로지른 후 영해를 따라 북상하여, 6.3일 1500시에 NLL을 통과한 후 해주로 진입했다.

해군 초계정 6척이 27시간 동안이나 동행. 이 배를 따라 동행했다. "동행하는 건 좋지만 6척씩이나 따라 다니는 건 좋지 않기요". NLL을 지나면서 그들이 던진 말이다. 이에 대해 당시의 빨갱이 정부와 빨갱이가 지휘하는 군은 북한 선박이 제주해협과 NLL을 통과한 것은 항로 거리를 300-400마일 단축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 영해 침범을 정당화했다.

2. 2001. 6. 2일 12:35분, 청진2호 발견시간으로부터 불과 40분 후에 제주도 짓 북방에서 령군봉호(6.635톤)가 또 발견됐다. 그 큰 배가 제주북방에 나타날 때까지 탐지하지 못한 것이다. 이 배는 서북쪽으로 항로를 잡아 8시간 동안 영해를 침범한 후, 20:20분에 영해를 이탈했다.

3. 6.2일 19:10분, 령군봉호 발견시간 7시간 후에 백마강호(2,740톤)가 제주도 서북족에서 발견됐다. 이 배는 제주도와 본토의 중간선을 따라 동쪽으로 항해하여 8시간 영해를 침범한 후 6.3일 03:08분에 영해를 이탈했다. 위 3척의 배 모두가 제주북단과 본토 남단의 중간선을 따라 2척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고, 1척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지르면서 마치 시위를 하듯이 영해를 통과했다.

4. 골프 친 조영길 합참의장: 6.2일 13:30분. 청진2호 및 령군봉호 사건을 보고 받고 골프를 강행했다. 클럽하우스에서 맥주-저녁을 한 후, 20:00분에 공관으로 향했다. 이 시각에 김동신 국방장관은 16:30분에 언로사 사장 및 여당 의원들과 함께 골프를 쳤다. 장정길 해군총장도 13:00에 골프를 강행했다. 김대중-임동원이 자아내는 빨갱이 분위기에 장단을 맞춰준 것이다.

5. 6.3일 17:00시, 임동원 장관 주재로 NSC(안보회의)가 열렸고 아래와 같이 결정했다. 1) "이번 영해 통과에 대해서는 6.15공동선언정신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허용한다" 2) "북한에게도 무해통항권을 인정한다" 3) "사전에 통보하거나 허가요청이 있을 때에는 NLL 통과도 허용한다"

6. 6.4일 15:15분, 대홍단호(6,390톤)가 소흑산도 남서쪽 10마일 상에서 영해 침범하는 것을 발견했다. 22:00시에 제주 서북쪽 28마일 해상에서 제주해협을 향해 남하했다. "제주해협을 통과하여 청진항으로 가려한다"는 게 북한의 답변이었다.

7. 6.5일 일간지 보도: 5월27일 82톤 꽁치 어선이 조수에 밀려 어망이 북으로 떠밀려 가는 바람에 NLL을 2마일 정도 넘었다가 북으로부터 무차별 사격을 받았고, 8발 중 2발이 배에 명중됐다. 이 사실이 뒤늦게 발표되자 정부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북한은 쏘고, 남한은 안 쏘고"라는 비난이 일었다. 정부는 선장을 처벌했다.

8. 6.13일 23:45분, 북한의 남포2호(2,437톤)가 동해 NBL(Northern Boundary Line)을 5마일 넘었다. 우리 측 750톤급 초계함이 동쪽 35마일 지점에서부터 218마일까지 183마일을 NLL남쪽 5마일 선을 따라 20시간 이상 동행했다.

9. 6.24일 새벽 2시 50분 경, 9톤 짜리 손바닥만한 북한어선 1척이 서해백령도 서북방 4.5마일 해상의 NLL을 2.5마일 가량 침범한 채 남하하자, 대청도 해상에서 초계 중이던 우리 해군 고속정 편대가 즉각 출동해 기적과 경고방송 등 검색을 시도했다. 선원 5명이 탄 북한어선은 "가까이 접근하지 말라”며 해군 고속정에 횃불을 던지고, 갑판위로 올라와 각목, 쇠파이프, 식칼을 휘두르며 깡다구 시위를 벌였다. 해군 고속정은 북한어선 전방 45m 해상에 K-2 소총 공포탄 9발을 발사하는 등 경고사격을 가했고 이에 북한어선은 새벽 5시 27분께 NLL을 넘어 북측으로 퇴각했다.

이를 두고 여당은 “해군, 영해수호 의지를 과시했다”며 한나라당에 정치공세를 가했고, 한나라당은 "해군 태도는 적절했다"며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여기엔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당시의 군은 NLL이 너무 넓어서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없다고 했었다. 그래서 수천톤 짜리 상선(?)이 제주도 북방에 나타날 때까지 2척씩이나 잡지 못했다며 해군의 무능함을 정당화했었다. 이러던 해군이, 그것도 새벽 2시에, 거기에다 또 NLL을 넘자마자, 또 수 더 떠 위치를 꼭 찍어 가르쳐 주어도 파도 속에 묻혀 찾을까 말까 한 9톤짜리 어선을 점쟁이처럼 곧바로 찾아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6.2일 제주해협을 유린한 청진2호는 무려 14,000 톤이다. 5.27일 동해에서 무차별 총을 맞고 돌아온 꽁치어선은 겨우 82톤이다. 그런데 불과 9 톤 짜리 어선이 그것도 한밤중에 NLL 부근의 파고 높은 망망대해에 출현했다는 건 어선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9톤 짜리 갑판에서 감히 횃불과 각목, 쇠파이프, 식칼로 저항을 보였다는 것은 순수한 어부들의 행동으로 볼 수 없다.

이들을 종합해 보면 코너로 몰린 정부가 북한에 쇼를 요청하자 북한에서 사건을 극화시키기 위해 공작원들에게 그런 쇼를 하게 한 것이라고 보였다. 남한 해군과의 접선 위치 역시 사전에 내통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였다.

10. 이어서 해군 관계자는“현재 218마일에 이르는 동해의 NLL을 모두 방어한다는 것은 군사력상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10. 중앙일보 2001년 06월 16일 제1면(지난3월 관계부처, 남북해운합의서 협의)

"남북간 해운합의서 추진은 사전밀약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해양수산부 초안에는 남북 국적 선박의 자유로운 통항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사실상 국제법상의 `무해통항권(無害通航權)` 을 의미하는 것이다"

(빨갱이가 지휘했던 군의 변명)

1. 북한 선박이 우리 해군의 통신검문(무선교신)에 순순히 응해 강한 조치를 취할 빌미를 찾을 수 없었다.

2. 함참, 김성재 작전기획차장(한국일보): 인공기를 달고 우리 영해를 침범한 북한 선박은 님간선박으로 확인돼 나포, 정선 등 강제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3. 통신검색을 통해 민간선박임을 확인했다. 영리 목적의 상선을 정선시킬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시각검색","무선교신"으로 대응했다.

4. 오염물질 배출, 해저수심측량 등 위해행위 증거가 없어 나포할 수 없었다.

5. 무해통항 허가를 통해 평화체제 이행을 앞당길 수 있다.

6. 통신감청에 의한 추정으로는 청진2호는 쌀 1만톤, 선원 45명으로, 령군봉호는 내용물 없고, 선원43명으로, 백마강호는 소금과 선원 37명으로 확인됐다.

이어서 6월 20일자 국방일보는 2개면(4,5면)을 사용하여 국방부의 조치가 정당했음을 변명했다. 논리 이전에 검증 받아야 할 주장들을 먼저 나열해본다.

1. 군은 국토를 방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동시에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2가지 명제를 가지고 있다. 군이 긴장을 일부러 조장해서는 안 되지만 긴장을 막기 위해 군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당시의 군은 북한의 무기 증강 사실과 사상 최대 규모의 훈련을 쉬- 쉬 하며 숨겨주기도 했다.

2. "국제적으로 동록된 북한 상선이 영해를 통과하려 했다는 점에서 과거의 간첩선 혹은 잠수정 침투사례와는 성격이 다르다"

3. "50년 가까이 영해와 NLL을 침범한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계적으로 적용해왔던 UN사 교전규칙과 합참 작전 예규를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4. "무력을 통한 강권조치 일변도로 처리할 경우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수 있으며 국제적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었다"

5. "남과 북은 정전협정 상으로는 상호 적대관계에 있으나 민족 내부적으로는 평화공존 및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인 특수관계에 있고, 대외적으로는 각각 주권국가다. 따라서 남북간 갈등관계가 생기면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복잡 미묘한 상황에 놓여 있다"

6. “우리 함정이 경고사격을 하더라도 이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고민이었다. 왜냐 하면 김정일 장군이 개척한 항로를 상부지시에 따라 항해하고 있는 선박이라면 선장은 물론, 본사도 항로를 변경하라는 지시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은 북한체제 속성상 쉽게 예견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7. “만일 북한 선박이 경고사격을 무시하고 계속 항해한다면 북한 선박을 강제로 영해에서 퇴거시키기 위해서는 포격하거나 특공대 등으로 나포해야 한다. 북선박이 큰 손상을 입은 채, 격침을 감수하고라도 계속 항해하면 이는 비단 남북한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특히 유럽국가들은 우리를 비난할 것이다"

8. "군은 사기를 먹고사는 집단이다. 장병들의 긍지와 사기를 드높이기 위해서는 국민의 격려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포괄적인 반론)

국방부는 군의 사기를 국민이 허문다고 말한다. 군의 사기를 국민이 허물었는지 대통령, 임동원, 그리고 골프에 미친 국방장관, 합참의장 등이 허물었는지 교신록을 보자.

한국함: 귀하는 우리 영해에 들어왔습니다.

북한배 : 잘 알고 있기요. 이거이 6.15 합의 사항입네다. 우리 위대하신 김정일 동지께서 개척하신 통로입네다.

한국함: 귀하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귀선은 우리 군함보다 10 배나 큽니다. 너무 가가이 항해하고 계시니 2km 거리를 유지하면서 항해해 주십시오.

북한배: 아 그래요. 알겠시다.

한국함: 귀선은 지금 어느 방향으로 키를 잡으셨습니까?

북한배: 23도 방향입네다.

한국함: 그리로 가셔도 우리 영해입니다. 방향을 더 틀어 주십시오.

북한배: 이미 지시받은 통로라 안 됩니다

한국함: 귀하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 입장도 고려해 주십시오

북한배: 우리 김정일 동지께서 지켜보고 계셔서 안 됩니다.

한국함: 정선하시기 바랍니다.

북한배: 자꾸만 방해하면 위반입니다. 위반하지 마시라요

한국함: 수색할 수 있게 본국에 보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북한배: 북한에서는 이미 퇴근했습네다. 우리 선장도 좀 쉬어야 하겠다며 침실로 내려갔습네다. 우리는 이미 지시받은 대로만 갑니다. 자꾸 그러면 좋지 않습네다. 6월 2일-3일 사이의 27시간 동안 청진2호와 우리 함선과 이뤄진 통화내용들이다. 그들은 이틀간 이런 말들만 반복하고 연속했다.

북한 함정에 바짝 접근해야 할 해군함이 오히려 5회에 걸쳐 북 선박에게 “우리 함정과 너무 가까이 붙어 항해하고 있으니 2km이상 떨어져 항해해 주십시오. 위험합니다”라는 부탁을 했다. “홍도해협은 우리 영해이니 제주남방으로 돌아가시오”를 무려 23회에 걸쳐 간구했다.

이에 대해 북 선박은 “김정일 장군이 지켜보고 계시다”, “6·15때 결정됐고, 공화국이 그어준 항로라서 변경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잘랐다.

물론 우리 해군도 상부의 지시를 받아 움직였겠지만, 북 선박과 교신하는 어투에 주눅이 들어있다. “…하시길 권고합니다” “안전에 문제가 있습니다” “협조바랍니다” “…지켜주시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됩니다” “귀선의 입장은 알겠습니다”는 등. 마치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심지어 북 선박이 우리 해군·해경함에 “도발하지 말라”고 나오는데도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해경함이 북 대홍단호에 대해 “검색하게 해달라”고 사정한 것은 희극에 가깝다. “남측의 검색 의사를 (북측) 본사에 연락해 허락을 받아달라”고 두 번이나 사정하다 거절당하자 “(북 선박) 선장님 권한으로 귀선으로의 방문을 허락해달라”고 통사정했다.

NLL, 흑산도해협, 제주해협을 잇는 그 넓은 영해를 마음대로 휘젓고 다닌 북한선박은 큰소리 떵떵 치고, 우리 해군 함정들은 농락당하면서 저들을 안내했다. 여기에서 우리 군이 보여준 사정하고 매달리는 모습은 1999년 6월 연평사태와는 너무도 딴판이다.

군 수뇌들은 "그것이 상선이었다"고 말한다. "상선으로 보이는 거선"이었을 뿐 그걸 정선시켜 검색도 해보지 않은 주제에 어떻게 "상선"이라고 감히 둘러대는가? 그걸 단순한 상선으로 여길 사람은 1등병 중에도 없을 것이다.

군수뇌는 "심각한 상황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골프 친 것을 변명했다. 14,000톤급을 포함한 3척의 북한거선, 더구나 50년만에 처음으로 감히 제주해협이라는 영해를 연속해서 침범했다는 사실 그 자체로 군수뇌의 머리에는 직감적으로 "엄청난 사건"임을 눈치 챘어야 했다.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이등병보다 못하다.

"공관에서도 충분히 지휘할 수 있다". 50년만에 3척의 거함이 연속적으로 보란 듯이 영해를 침범했다. 합참의장 등은 즉시 상황실로 나와 많은 참모들과 진지한 토의를 통해 지혜를 짜가며 그 의미, 의도, 대책들을 연구했어야 했다. 상황처리는 기계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여러 사람들의 순발력 있는 지혜를 짜가며 처리하는 것이다.

"차관, 총장들은 작전 지휘선상에 있지 않다". 그들은 군의 어른들이다. 나의 일 남의 일이 어디 있는가? 군에 이상한 상황, 그것도 50년 만에 처음으로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는데 나는 총장, 나는 차관이라며 골프를 칠 정도라면 국가의 기강은 저질 그대로다. 그들에게 이런 기초 소양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이미 빨갱이 김대중의 의중을 알아서 기었다는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상선에게 총을 쏘란 말이냐". 누가 총부터 쏘라고 했는가? 경고-정선-검색-나포 등 교전규칙에 따르도록 돼 있는 데 왜 어겼느냐는 것이다. 북한은 왜 우리의 82톤 짜리 꽁치어선에게 마구 총질을 했는가?

"자꾸 몰아치면 군의 사기가 떨어진다"“ 함량미달의, 일등병보다 못한, 무늬만 장군인 이들을 내쫒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당시 전방에는 ”적도 없고 아군도 없다"며 총을 집어던지는 병사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2012.6.20. 지만원 시스템클럽 대표: http://systemclub.co.kr/
기사입력: 2012/06/20 [17:09]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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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의 발언에 모멸감을 느낀다 살인귀 12/06/20 [19:37] 수정 삭제
  본인은 대한민국 해군 출신으로서 빨갱이 임동원의 발언에 모멸감을 느끼며, 이런
반역자가 어떻게 지금껏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지 끔찍하고 의아하다.
우리 국군 12/06/20 [20:14] 수정 삭제
  일본 식민지 통치 수단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는 친일 집단이 오늘의 북괴 집단이다.

역사상 대 후라이 뻥쟁이 엉터리 장군 김일성 추종자와 종북주의자야 말로 악질 친일 반역자이며 민족의 왠수이다.

북의 김일성은 구 쏘련의 공산주의 경제체제와 군사 제도를 맹목적으로 북한에 도입해서 제도화 시켰으며,그의 통치 수단으로는 2차 세계 대전전 일본의 군국주의 식민지 통치 수단을 그대로 본 받아 실천하고 있는 친일 민족 반역자이다.

보라 오늘날 북한 사회를!

일본 식민지 시대 때 집집마다 걸어 두게 했 던 일본 천황 사진은
김일성 사진으로, 일본의 신사 참배는 김일성 생가와 동상 참배로, 일본의
“천황 폐하”경칭은 “수령 님”으로, 일본 고유의 태양 숭배 사상에서
나온 일본의 “천황 생신 일”은 김일성의 소위 “태양절”로,
일본의 천황 절대 권위주의사상은 김일성 절대 권위 주의로,
일본의 군국주의는 김일성-김정일의 “선 군 주의”로, 일본의
천황 가계는 김일성의 소위 “백두 혈통”으로 대치된 사회가 오늘 날
김일성가족이 3대에 걸처 통치하고 있는 북괴 집단이다.

북괴 집단의 소위 "주체"사상은 다름아닌 일본의 "덴노-헤이까"사상이다.

그러한 김일성의 맹목적인 친쏘-친일 정책의 결과 역사상 미증유의
3백만이 굶어 죽었고 지금도 평양을 제외 한 지방 곳곳에서는
군량미 조달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이 사용했 던 수탈 방법과 똑 같은
방법으로 농민들로 부터 식량을 수탈한 결과 많은 농민들이
굶어 죽고 있다.

북한 사회는 제 2의 일본 식민지 사회이며, 김정일이가 그 많은 조선
여인들과의 사이에서 낳은 수 많은 자녀들은 제처 두고, 일본 여인인 "고 영희 (일본 여인의 조선 이름)"와의 사이에서 낳은 김정은에게 권력을 물려 준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김정일의 골수 친일 사상을 표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북한이 노동자 농민을 위한 사회인가?

김일성 일가와 그 추종자와 김일성 왕가의 근위병 만을 위한, 그 이외의 사람들은, 만일 두목을 반대하는 소리를 하거나 두목의 죽음에 울지않거나 슬픈 표정을 짖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음을 당할 수 있는, 그리고 노동자 농민에게는 지옥과 같은 사회이다. 이게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깡페 조폭이 다스리는 조폭 왕국이지. 참으로 웃긴디.

김일성은 또한 갓쓰고 도포입고 다니 던 평화스런 조국땅에
쏘련 무기를 동원해서 역사상 미 증유의 동족 상전을 치르게 한
용서할 수 없는 민족 반역자이며 전범자이다.

지금은 그 작은 한 반도에서 원자 전쟁을 하겠다고 원자탄 군비 경쟁을 부추키고 있다. 대한민국 그리고 인근 일본이 만들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안 만들고 있는 줄 아나? 군사 전략상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김정일이가 군사작전의 "군"자도 모르는 엉터리 장군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원자탄 무장 경쟁이 소위 615선언과 부합되는 행위인가?

이런 민족의 반역자인 친일 김일성 추종자들이 날뛰고 있는 이때에 대한민국 국군이 다시 정치 일선에 나서는 것이 "군" 최고의 사명인 구국의 길이다.

나라가 망한 후 준법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구국은 준법에 우선한다.

반헌법 국가 전복자들이 국회로 진출하는 등 정치 일선에 나서 노골적으로 나라를 부정하며 전복하려는 현상은 세계 어는 자유 민주국가에서도 볼 수 없는 괴이한 망국 말기 현상이다.
나라와 국민을 옹위하며 헌법을 보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국민으로 부터 부여 받은 지도자인 대통령이 없는 나라 같다.

지금 종북 세력의 발호로 망국 말기 증상에 신음하고 있는 조국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는 세력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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