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사태는, 민주화운동이냐, 내란이냐?
광주사태는 공정하게 재평가되어야 한다
 
이주천 원광대 사학과 교수
 
▲ 이주천 원광대 사학과 교수가 참석한 5.18광주사태 재조명 세미나들의 장면

5.18은 민주화운동이냐, 내란이냐?

존경하는 부산애국시민여러분! 애국의 도시, 반공의 도시인 부산을 다시 찾아서 5.18을 주제로 시국강연을 하게 된 점을 개인적으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부산은 6.25당시 북괴군의 남침시에 물밀 듯이 내려오는 북한 괴뢰군을 낙동강전선에서 사력을 다하면서 버티어 대한민국을 구출한 장한 구국의 도시요 애국시민들이 집결한 도시입니다. 즉 부산은 대한민국을 치킨 최후의 교두보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부산에서 자란 점에 대해서 무한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앞으로 부산강연회 지속 여부는 여기 부산애국시민 여러분들이 얼마아 호응하고 지지하는가에 따라서 달려있기에, 많은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5.18전공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5.18을 주제로 전국 여러 곳에 강연회를 하고 돌아다닌 지가 어언 5년이 되어갑니다. 왜 이런 골치 아프고 영양가 없는 그리고 한국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된 주제로 강연회를 하게 되었는가 참으로 궁금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5.18광주비극을 계기로 한국사회는 급속도로 좌경화가 진척되었다는 점에 대해 지식인으로서 일종의 책임감이 컸던 것이고, 둘째로, 이 문제를 거론하게 되면 5.18유관단체로부터 공격을 당할 가능성이 크기에 모두가 기피하여서 마땅히 할 강연할 사람이 없었기에 제가 할 수 없이 나서게 된 것이고, 셋째로, 5.18진실규명 역사 바로세우기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기에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현재 5.18광주사태는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죄로 사형 판결을 내렸다가, 미국 레이건 행정부의 압력으로 감면, 82년 김대중을 미국으로 풀어주었고, 다시 95년-96년의 대법원 판결에서 ‘民主化운동’으로서 해석되어 ‘聖域化’되었습니다.

여기서 우선 ‘민주화운동’이란 무슨 뜻인지부터 살펴본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민주화란 역사적인 정확한 개념과는 큰 거리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19세기이후 민주주의내지 민주화란 용어는 정치세력들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오용·남용해왔습니다. 특히 해방정국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 계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용어가 민주주의라는 용어입니다.

서양의 역사에서 민주화운동이란 “대중들이 (폭력이 아니라) 평화적인 방법으로 장기간에 걸쳐 참정권을 확대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를 확대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정부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의문은 프랑스혁명과 같은 대중들이 무장봉기하여 혁명을 일으킨 경우는 민주화운동과는 다른 차원에 속합니다. 즉 이 경우 무능부패한 절대왕정에 대하여 시민들은 자연법사상에 입각하여 무장봉기를 통해 혁명을 일으키는 권리로서 정당성을 확보합니다. 우리의 경우, 10.26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정보부장에게 불의에 암살된 경우, 권력의 공백상태가 발생하고 사회경제적 위기가 가중되었는데, 불안에 처한 민중들이 프랑스혁명이나 4.19와 같은 봉기를 일으킬 명분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대중은 물론, 사회지도층에서도 의견통일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또 여기에서 ‘성역화’란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는 의미로서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이미 5천여명에게 보상을 지급했고 물론 심지어 공무원시험 가산점 최대 10% 등 최고의 각종 특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점에 대해 누구든 異意를 제기한다면, 이것은 마치 신학자가 중세시대에 성경의 교리를 다르게 해석하여 파문을 당하듯이 개인적으로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5.18민주화운동은 마치 성경의 진리처럼 종교적 교리로서 자리 잡게 되어 철근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지고 신성불가침처럼 성역화되어서 누구도 감히 다른 견해를 표현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5.18유관단체로부터 고소고발을 당함은 물론 신체적 위협, 심지어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몰릴 수가 있는 지경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7월 10일, 3년동안 사귄 호남의 남자가 부산의 여인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는데, 그 이유는 김대중 선생님과 5.18을 비판하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5일 동안 범행을 위해 잠복했으며, 9군데를 난자했다고 합니다. 경찰관계자에 의하면,

"피의자는 일반적인 범죄자와 달리 범행에 사용한 흉기와 옷 등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죄의식을 거의 느끼지 않는 듯 당당하게 범행 과정을 설명하는 등 사이코패스를 연상케 했다." 과연 5.18이 무엇이기에 사람의 목숨까지 잃어야한다는 말입니까? 5.18광주는 이렇게 대한민국을 갈갈이 찢어놓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신체적 위협을 느끼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면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물론 학문과 사상의 자유, 그리고 국민들의 알 권리를 만끽하도록 헌법으로 보장된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자연권이 무시되고, 걸핏하면 광주시민의 명예를 운운하면서 지역감정을 들먹이고 고약한 마녀사냥으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바, 이는 자칫하면 일인독재보다 더 무서운 가공할 대중독재(Mass Dictatorship)의 시대가 개막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특히 5.18은 왜 재조명이 필요하지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① 한국전쟁이후 민군 최대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사건인 점, ② 90년대 법원의 판결이 80년대초 5.18광주사태 당시 국민들이 인식했던 것과 너무나 거리가 있었던 위헌성 시비가 큰 점, ③ 한국사회의 친북좌경화의 물꼬를 튼 점, ④ 수많은 의혹이 시간이 갈수록 풀리지 않고 오히려 증폭되는 점, 특히 탈북자들의 숫자가 증대되면서 북한의 소식을 가져오는 과정에서 더욱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점. ⑤ 국정원을 위시하여 국방부 등 국가기관이 앞장서서 진실규명의 노력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점, ⑥ 장기적 전망으로 5.18을 보는 상반된 시각과 첨예한 대립으로 인해 지역감정의 악화는 물론 향후 내전적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 등입니다.

오늘 강연은 김대령 박사가 쓴 <역사로서의 5.18>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약 4주간에 걸쳐 김대령 박사가 쓴 <역사로서의 5.18>(총4권)을 모두 읽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 이유는 4차례에 걸쳐 김종환씨가 운영하는 참깨방송에 출연하여 동영상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김 대령의 연구를 통해서 ① 5.18의 배후조종세력의 정체, ② 5-6차례에 걸친 시민군의 광주교도소 습격 이유, ③ 순식간에 30군데의 교도소를 습격할 수 있었던 정보망은 어떻게 확보되었나? (윤한봉의 구술녹취록) 이런 의문 등은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밝혀졌습니다.

김대령은 현재 미국에 유학중인데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과정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박사과정에서 신학으로 전공을 바꾼 특이한 인물입니다. 필명 ‘역사학도’로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의 홈페이지가 수많은 우익논객들이 접속하면서 지만원 박사의 <수사기록에서 본 12.12와 5.18>과 더불어 5.18역사 연구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김 박사의 논지는 5.18광주사태가 “김대중이 배후 주동자이기에 총체적인 정치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 박사의 책의 큰 특징은 5.18에 대한 역사적 고찰에 있습니다. 5.18시위주동자의 조직, 정체와 이념은 물론이고 그 배후세력에 대해서 60년대까지 거슬러가서 광주운동권의 계보와 뿌리를 역사적으로 깊이 파고 있습니다. 또 김영삼 정부시절인 90년대 중반에 내린 대법원 판결이 위헌성이 가득찬 ‘엉터리 판결’이며 법리적 모순점이 가득 찬 것임을 구체적 예를 들어서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습니다. 저자 김대령은 “시위군중이 공공건물에 방화하는 것은 폭동이요, 무장시민군이 시청과 도청을 접수하는 것은 반란행위인데, 그런 행위들이 군헌문란인가 아니면 헌정질서 수호인가?”를 묻고 5.18 법리에는 그런 행위들이 헌정질서 수호로 간주된다는 데 개탄을 금치 못합니다.

5.18광주사태의 성격을 놓고 볼 때, 무장시위 주동자의 두 가지 핵심키워드 ? ‘민족민주’와 ? ‘반미’를 통해 잘 분석할 수 있습니다. 5.18의 지향점은 파리코뮨(1871.3-5)을 모델로 하여 광주를 해방구를 만들기 위해 무장봉기를 한 것이라고 간주합니다. 광주사태의 배후세력은 빨치산(박현채, 장두석)과 남민전의 잔존세력과 민청학련, 김대중의 사조직으로 전락한 민청협과 외곽단체인 국민연합 등이다. 5.18 당시 선전과 홍보를 담당하는 행동조직은 황석영의 극단 ‘광대’ 등이었다. 시위주동자들은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광주운동권, ?코뮨주의 혁명가그룹(윤한봉과 윤상원), ?가톨릭농민회(서경원) 등이다.

일반적으로 국민대중들에게 알려진 광주사태의 비극은 이렇습니다; 「5월 17일 김대중을 포함한 재야인사와 대학생들이 체포·연행과 이와 아울러 17일 24시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적 계엄확대가 5.18비극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김대령의 핵심논지는 5.18은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된 무장폭동적 성격이 강하기에 민주화운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정주의 해석으로 5.18유관단체들의 논지인 계엄군인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진압에 항거하여 불가피하게 시민저항권적 차원에서 봉기한 것이라는 기존의 정통주의 해석을 전면적으로 뒤집는 것입니다.

저자 김대령에 의하면, 광주시위주동자들은 “이승만 대통령 정부를 전복시킨 4.19와 같은 큰 봉기를 5월에 일으키자는 것”(권1:95)으로서 19일을 예정된 무장봉기의 거사일로 주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예상을 깨고 그날 자정에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었으며, 주동자들에 대한 예비검속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김대중의 연행과 전국 비상계엄 실시 이전에 이미 광주운동권세력들은 4.19와 같은 무장봉기를 일으킬 사전 모의를 하고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무장봉기-내란-혁명의 수순을 밝게 됨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저자 김대령에 의하면,

“공교롭게도, 계엄령 전국 확대는 왕년의 빨치산들과 그들의 거느리던 운동권 조직들이 민란을 일으킬 준비를 완료하고 거사 성공을 미리 자축하고 있던 때에 일어났다. 그들은 20년 전의 4.19 때처럼 5월 19일경에는, 늦어도 22일까지는,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그때 김영삼씨가 손쓰기 전에 김대중이 먼저 내각을 임명하면 그들이 추구하던 세상이 올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이 무장봉기를 일으킬 준비를 하였을 때 무작정 하였던 것이 아니라 김대중이 예비내각을 이미 짜놓은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추진한 음모였다.”(권1:245).

김대령 박사의 책은 5.18광주사태 당시 시위주동자가 내세운 이념이 ‘자유민주’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에 배치되는 ‘민족민주’임을 여러 종류의 문건을 통해 적시하고 있습니다. 광주사태 10일전에 나타난 5월 8일자 전남대 총학생회가 발표한 ‘민족민주화 성회’에서는 “조국에 대한 외세의 간섭을 절대 배제하고 재야 민주인사들은 참다운 민족민주 세력이 역사적 주체가 되는데 저해되는 모든 세력에 대해 단결하여 투쟁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권4:367). 여기서 ‘민족민주’라는 이데올로기는 제3세계에서 공산사회주의 계열이 대중을 기만하고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공산화의 전단계로서 내세우는 슬로건입니다.

이와 덧붙여서 저자 김대령은 만약 민족민주 진영이 대법원 판결처럼 헌법수호 기관이었다면 북한이 민족민주 진영 인사들에게 공작금을 지원해 줄 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반문합니다. 김일성이 후원한 김대중, 밀사를 통해 김일성의 친서를 보낸 문익환, 불법 방북한 가톨릭 농민회 회장 서경원, 여간첩(이선실)사건에 연루된 광주사태의 배후조직책 장기표, 장기표의 동지이며 민중당의 공공대표 김낙중 등의 민족민주 인사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반미’ 코드도 5.18시위주동세력의 주요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을 미국 식민지로 파악한 북한의 현대사 역사인식에 동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3자 개입설 즉, 북한탈북자들이 주장하는 북한군 특수부대의 침투여하에 관계없이, 광주시위주동자들은 자체적으로 반미친북성향을 노골적으로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80년대 대학총학생회를 장악한 주사파의 등장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80년 5월 광주사태가 뿌린 씨앗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이 책은 5.18의 배후에서 활동한 여러 좌익인사들의 행적과 이념적 성향을 분석하고 있는바, 가장 눈에 두드러지게 띄는 인물은 바로 빨치산 출신 박현채에 대한 행적입니다. 박현채가 김대중의 트레이드마크인 <대중경제론>을 집필해 주어 박정희의 산업화에 대항이론을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김대령은 100만부 이상이 팔린 조정래가 쓴 <태백산맥>의 주인공 모델이 바로 박현채였음을 증언하고 있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5.18을 전후하여 대학가와 시위과정에서의 유인물은 대부분 박현채가 써 준 것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5.18무장봉기는 두 윤 씨, 윤한봉과 윤상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이 김대령의 지론입니다. 윤한봉의 경우, 5.18의 무장봉기를 배후에서 기획한 인물 즉 혁명의 기획연출(Planner)입니다. 김대령은 5.18기념재단 이사장으로 있던 윤한봉이 질병으로 사망하기 전에 3차에 걸쳐 남긴 그의 구술녹취록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윤 씨의 구술녹취록에는 인혁당 사건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올라, 광조일고 동문 7-8명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암살모의를 한 것, 이미 5.18전에 군에서나 확보할 수 있는 광주시의 세밀한 지도를 확보한 것, 그리고 전남일대의 무기고를 사전답사한 것 등을 솔직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과연 이런 것들을 누구와 은밀하게 상의하면서 일을 진행시켰는지는 전혀 말하지 않고 죽었습니다.

윤상원의 경우,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이 여수로 도피한 이후 생긴 지도력의 빈 곳을 메꾼 무장봉기의 실천가(Practitioner)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지만원 박사가 언급한 “범인이 가지지 못한 윤상원의 힘”이란 사상적으로 의식화된 것으로 그는 코뮨주의적 혁명가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김대령은 윤상원의 정체를 지만원 박사의 단순한 추정을 넘어서서 더욱 철저하게 그의 정체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코뮨클럽’의 회원으로서 파리코뮨을 철저하게 연구한 코뮨주의자인 윤상원은 무기를 반납하기 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한 혁명가였기에, “5월 26일 ‘시민투쟁위원회’의 대변인 자격으로 외신가지들과 기자회견을 했을 때, 외신기자들은 그가 또한 김대중의 외곽단체인 국민연합 사무국장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권2:120). 윤상원은 진압군의 총상에 의해 사망한 것이 아니라, 수류탄이 터지면서 화상으로 인한 ‘自爆的’ 성격을 지닌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파리코뮨을 모방한 혁명을 꿈꾸었다는 것은 내란적 상황을 유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윤한봉의 구술녹취록에도 그 점이 잘 기술되어 있습니다. 대학생들과 광주시민들을 선동하여 길거리로 나오게 만들면 일단 성공입니다. 그들을 길거리로 내몰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유언비어를 통해 분노하게 만들어서, 공수부대와 충돌을 일으킨 결과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광주사태는 시위주동자의 의도를 달성하지는 못한 채, 비록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각본대로 비극의 피가 뿌려졌습니다.

광주사태를 간단히 말한다면, 12.12이후 군부의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의 신군부세력과 이에 맞선 在野세력 및 대학생들 그리고 김대중의 사조직으로 전락한 민청련 및 국민연합 간의 대결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전두환 신군부의 책임을 묻는 것이 ‘전두환 내란설’이고 광주운동권과 김대중의 사조직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김대중 내란설’입니다. 1980년 가을의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재판에서는 김대중의 내란이라고 판결하였고, 공소시효가 지내서 위헌성이 농후한 1996년의 5.18재판에서는 전두환의 내란이라고 판결하였습니다. 결국 광수사태는 내란적 성력을 잉태한 것인데, 전두환과 김대중 누구에게 그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합니까?

그런데 2006년을 고비로 탈북자들의 수자가 증대하면서 ‘제3세력의 개입설’이 등장하는데, 바로 이것이 북한공산정권의 개입 여부이다. 김일성-김정일 父子가 남한의 유혈사태가 발생했을 시에 우두커니 바둑 觀戰하듯이 점찬케 팔짱만 끼고 구경만 하는 ‘신사형 지도자’가 아니라는 것은 남한의 삼척동자도 잘 아는 사실입니다. 정황적으로 볼 때, 북한의 개입의 의혹과 증거를 거론해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장갑차를 몬 운전수의 정체, 총을 든 복면인의 정체, ? 장발족으로 군복을 입고 학생들을 땅바닥에 꿇게 한 정체미상의 군인, ? 북한의 주요 도시인 평양과 원산 등지 역에서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방송한 점과 잔인하게 시민들을 살해하고 사진과 영상 촬영을 의도적으로 방영한 점, ? 제10묘역에 있는 屍身이 없는 66구의 행방불명자 명단과 집단 암매장된 장소. 보상을 받은 유가족들이 시신을 찾아달라는 요구가 없어요. 도대체 광주시장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 정부가 보상금을 주겠다고 해도 유가족들이 신원을 확인 못한 12구의 신원미상의 시체들, ? 5월 21일, 오전 8시에 20사 사단의 짚차를 공격한 낫과 도끼로 무장한 괴한들의 정체, ? 북한이 5.18때마다 추모하고 각종 기계에 5.18을 붙이는 이유, ? 5.18당시 10여명의 경찰들을 인질로 잡은 공로로 2억원을 보상받고 91년에 북으로 도주한 유기권의 월북 동기 및 행적 등입니다.

탈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북한이 전략적으로 김대중의 봉기 계획에 개입하였다”고 증언한다.”(권3:108). 이들의 개입이 어떤 식으로 은밀하게 추진되었나를 밝히는 것이 향후 5.18연구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김대령은 남민전-김대중-북한과의 삼각 커넥션을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1980년 봄 김대중이 지지기반은 김일성이 지원하는 <민청학련> 및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이하 남민전) 사건 관련자들이었다.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한 남민전 전사들이 지지하던 정치인은 누구였는가? 바로 김대중이었다. 김대중은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들을 위한 보호막이었다. 그들이 김대중 주변에 모여들면 민주투사 행세를 할 수 있었다.”(권2:160).

더 나아가, 저자 김대령은 남민전과 광주운동권과의 친밀한 관계도 철저하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광주운동권 중에 남민전 전사들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남민전 전사들과 광주운동권은 아주 친밀한 동지 관계였다.”(권2:161). 사상자가 가장 많이 발생했던 5-6차에 걸친 광주교도소 습격은 남민전과 공안사범을 구출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또 저자는 무장시위의 총사령부가 된 무등산에 위치한 증심사에서 승려로 위장한 간첩 손성모 등의 맹활약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손성모는 81년 문경에서 잡혔는데 가관인 점은 그의 재판과정에서 “자기는 김일성을 몹시 존경하는 김일성주의자 일뿐이고, 간첩이 아니라 통일운동가”라고 강변했다고 합니다. 그 손성모를 김대중은 대통령재임시 아무런 대가없이 인도적 차원의 미명하에 비전향장기수와 더불어 북송시켰습니다.

또 저자는 북한특수군의 은밀한 개입 가능성을 북한 탈북자의 증언록을 통해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북한탈북자의 증언록인,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에서 나온 ‘평양사지‘로 지칭된 장중한이란 인물을 수사기록과 대조한 결과, 문익환목사에게 보내는 김일성의 친서를 전달한 밀사인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어쨌든 김대령의 <역사로서의 5.18>은 지만원 박사의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과 더불어 5.18역사 연구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동안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철근콘크리트와 같은 성역이 이 책의 출간으로 인해 크게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최근 비자금 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전두환 집권을 부정적으로 보아야할 것인가? 전두환 5공정부는 재임시절 세계 1위의 고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했으며, 박정희 정부가 최종 목표로 한 중화학공업을 성취하여 산업화를 완성한 점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전두환은 최초로 7년 단임을 통해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했습니다. 전두환의 비자금 문제는 노태우-김영삼-노무현-김대중 대통령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에 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전두환의 비자금을 청산하려고 한다면, 역대 대통령들에게 공정하게 잣대를 대어야 할 것이고 대통령 개인의 私憾으로 인한 정치보복차원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정치를 정화(클린 폴리틱)하는 차원에서 공평하게 처리해야할 것입니다.

이제 5.18광주는 33년이 지나면서 법의 영역에서 벗어나서, 역사의 영역으로 옮겨졌습니다. 여기서 역사의 영역이란 국민들이 자유롭게 토론하여 역사의 지식을 공유할 권리가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누이 말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한 것입니다. 5.18연구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과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와 사회가 보장해 주어야합니다. 새로운 증언이나 새로운 자료를 가지고 5.18에 대한 연구를 한다는 것이 역사연구의 기본입니다. 이것은 광주시민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여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며, 오히려 광주시민들의 명예회복에 도움을 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부산의 애국시민여러분! 5.18역사를 새롭게 올바르게 쓴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세우는 일종의 애국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디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실 것을 다시 한번 부탁 드립니다.

이주천 원광대 사학과 교수
2013.8.26.


대불총이 2009년에 개최한 부산강연회의 이주천 교수

▲ 2013년 7월 18일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는 이주천 교수 

기사입력: 2013/08/27 [16:04]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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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사 13/08/27 [21:44] 수정 삭제  
  대한민국이 건재하려면 낙동강 전선은 지켜져야 한다. 부산에서 부터 빨갱이 들을 청산하여 3.8 이북에 신음하는 북한 동포를 해방해야 한다~~~~
국민 13/08/28 [10:45] 수정 삭제  
  우리는 전쟁 중 휴전 중이다. 무기고 탈취범은 총살이다.
나라사랑 19/02/12 [07:03] 수정 삭제  
  뒈진 뒈징이의 북한 지령에 의한 국가 전복을 모사질한 뒈징이의 똘마니들이 남파된 북한의 괴물들에게 포섭되어 쩔라도위 또라이들이 국가를 전복하기 위해 발악질한 내란질로써 모두 척살해 없애야 할 여적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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