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엥겔스 '공산당 선언' 허구로 판명
2월 21일 '공산당선언' 발표날에
 
서옥식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



'공산당 선언' 발표 166주년...빗나간 마르크스의 예언들은 거짓으로 판명: 
자본주의 사멸(死滅) 장담했으나 오히려 공산주의가 붕괴,
만국의 노동자는 단결 대신 WTO로 분열,
‘세상을 바꾸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구호는 반동으로 회귀

서옥식(성결대 초빙교수/전 연합뉴스 편집국장)

①하나의 유령-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중략...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견해와 목적을 감추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목적이 오직 기존의 모든 사회적 조건을 힘으로 타도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선포한다. 모든 지배계급을 공산주의혁명 앞에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으며 얻을 것은 온 세상이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A spectre is haunting Europe — the spectre of communism. ... The communists disdain to conceal their views and aims. They openly declare that their ends can be attained only by the forcible overthrow of all existing social conditions. Let the ruling classes tremble at a Communistic revolution. The proletarians have nothing to lose but their chains. They have a world to win. Workers of all lands, unite!)

②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바꾸는 일이다”(The philosophers have only interpreted the world in various ways; the point, however, is to change it.<Karl Marx, Theses on Feuerbach XI>)

윗글 ①은 공산주의 시조 마르크스(Karl Marx)와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지금으로부터 166년 전인 1848년 2월 21일 런던에서 발표한 그 유명한 공산당선언(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 Manifesto of Communist Party)의 영문 첫 대목과 마지막 대목을 옮겨놓은 것이다. 폭력적인 계급투쟁을 통해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능력만큼 일하지만 필요에 따라 분배받아 풍요한 물질생활을 누리며, 계급도, 군대도, 법도, 국가도 없는 지상천국이 이룩된다는 공산주의자들의 ‘낙원으로 가는 길’(the way to paradise)의 각본이다.

②는 런던의 ‘하이게이트 묘지’(Highgate Cemetery)에 안치된 마르크스의 대형 대리석 묘비에 새겨져 있는 글. 1818년 5월 5일에 태어나 1883년 3월 14일 숨을 거둔 마르크스의 이 묘비문에는 혁명가로서 ‘세상을 바꾸자’ 는 그의 투쟁목표가 담겨져 있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은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빛을 잃고 있지만 창세(創世) 이래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진 베스트셀러로 추정돼 왔다. “20대에 마르크스에 미치지 않으면 바보”라는 푸코(Michel Foucault)의 말대로 이 책은 유토피안 드림의 향수에 젖어 현실사회를 비판하는 데에 혈안이 돼온 젊은이들과 소위 식자층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폭력혁명을 통해 타도되어야 할 적(敵)으로 자본주의를 지목한 마르크스의 사상이 ‘책임’대신 ‘증오’를 선택함으로써 처음부터 커다란 오류였다며 마르크스를 혹독히 비판해온 카를 포퍼(Karl Raimund Popper)도 “20대에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지 않는 사람은 가슴(감성과 열정)이 없는 사람이고, 30대 이후에도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있는 사람은 머리(이성과 논리)가 없는 사람이다”(If you're not a Marxist at 20, there's something wrong with your heart. If you're still a Marxist at 30, there's something with your head.)고 말할 정도이다.

런던의 하이게이트 묘지에 있는 마르크스의 대리석 묘비(위에 그림)의 맨 위에는 영어로 Workers of all lands, unite!(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그리고 맨 아래에는 The philosophers have only interpreted the world in various ways; the point, however, is to change it(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바꾸는 일이다)고 새겨져 있다.

유명한 사회학자 월러스타인(Immannuel Wallerstein)은 “19세기의 유일한 미래학자가 있다면 마르크스요, 유일한 미래학이 있다면 그것은 공산주의”라고 말할 만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높이 평가했다. 영국의 BBC 라디오가 지난 2005년 청취자를 대상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를 조사한 결과 마르크스는 27.9%를 얻어 흄(David Hume 12.7%),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6.8%),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6.5%)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공산당 선언’은 2005년 5월 31일 미국의 보수적인 시사주간지 ‘휴먼 이벤츠(Human Events)’에 의해 ‘19세기와 20세기에 걸친 가장 해로운 10대 서적(Ten Most Harmful Books of the 19th and 20th Centuries) 1위에 선정됐다. 그의 자본론(Das Kapital, 1867-1894) 역시 해악서적 6위에 랭크됐다(히틀러의 나의 투쟁(Mein Kampf, 1925-1926)은 2위, 마오쩌둥 어록(Quotations from Chairman Mao, 1966)은 3위에 올랐다).

하지만 2007년 1월 영국 국방부가 2035년의 세계를 예측해 펴낸 ‘미래전략환경전망보고서’에서는 마르크스의 부활 가능성이 예고됐다. “증산층과 슈퍼리치(super rich, 초부유층)간의 경제격차가 커지면서 중산층이 도시빈민층과 연대해 계급혁명의 주도세력이 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도덕적 상대주의와 실용적 가치가 팽배해지면서 대중이 마르크스주의 같은 교조적 이념에 더욱 빠지기 쉬울 것이라는 얘기다.

‘공산당 선언’은 서문과 네 개의 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핵심내용은 계급투쟁을 통해 세상을 바꾸자는 것이다. 서문 “하나의 유령 -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라는 문장은 선언의 마지막 구절과 함께, 이후 역사적 정치적 수사에 곧잘 인용돼 왔다.

제1장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Bourgeois and Proletarians)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발생과 발전, 자본주의적 착취의 본질,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과 그 멸망의 불가피성을 언급했으며 경제적 이해관계의 대립에 기초한 피착취계급과 착취계급의 계급투쟁이 인류 역사의 기본 내용이며 사회발전의 추동력이라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1장에서 부르주아가 이룬 막대한 업적을 찬양했으나, 선언이 쓰여진 시점에서 부르주아는 “명계(冥界)에서 불러낸 마물(魔物)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 마법사”와 같이 자본의 노예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과거 봉건계급도 부르주아도 아닌 새롭게 떠오른 노동자 중심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주역이 된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제2장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Proletarians and Communists)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자들의 당면 목적과 과업이 프롤레타리아의 목적 및 과업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며 프롤레타리아 주도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제3장 ‘사회주의 문헌과 공산주의 문헌’(Socialist and Communist Literature)에서는 기독교사회주의 등의 기존 사회주의 조류들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 비판은 1872년 당시에 이미 동시성을 상실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었다.

제4장 ‘기존의 여러 반대파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입장’(Position of the Communists in Relation to the Various Existing Opposition Parties)에서는 각국 공산당들의 기본적인 혁명 전략을 다루고 있으나 실제로 선언의 강령에 따라 이루어진 공산주의 혁명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선언은 국제적 단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공산주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족쇄)밖에 없으며 얻을 것은 온 세계이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라는 구호로 끝을 맺는다.

유럽 각국에서 자본주의가 맹위를 떨쳐가던 19세기 중반, 마르크스는 자본의 논리에 짓눌리고 종국엔 비참한 처지로 내팽개쳐지는 인간에 주목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그런 인간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마르크스주의를 인간주의(humanism)적인 입장 즉,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socialism with human face)라고 해석해 왔다. 이처럼 ‘공산당 선언’만큼 당시의 자본주의를 날카롭게 분석한 저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그전까지 누구도 깨닫지 못했던, 자본주의의 폐해로 인해 빚어지는 인간 소외(疏外, alienation)의 문제를 정확하게 짚었기 때문이다

이 선언은 자본주의의 사멸은 필연적이라면서 궁극목표로 자본주의 타도를 천명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첫째, 자본주의는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투쟁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를 멸망시키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끊임없이 대립했으며,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투쟁을 끊임없이 계속했는데, 이 투쟁으로 인해 사회 전체가 혁명적으로 재편되었든지 투쟁하는 계급들이 함께 몰락했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주의를 역사발전의 최후단계로 보는 것도 그런 ‘논리’에서다. 이들은 인류의 역사발전을 5단계로 구분, ①원시공산사회 ⇒②고대 노예제사회(주인↔노예) ⇒③중세 봉건제사회(영주↔농노) ⇒④근대 자본주의사회(자본가↔노동자) ⇒⑤공산주의사회(무계급)로 설정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 중간 단계를 사회주의로 설명한다.

둘째,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계급이 점점 더 수적(數的)으로 증가할 뿐 아니라 단결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멸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곤 ‘임금의 노예’라는 ‘쇠사슬’뿐이지만 얻을 것은 ‘새로운 세계 전체’(공산주의 세계)라는 것이다.

셋째로 자본주의에서는 경제위기 또는 공황이 주기적으로 반복해 발생함으로써 수많은 기업이 도산, 노동자가 대규모로 실직하여 생존을 위협받게 되는데, 이는 자본주의적 사적(私的)소유와 경쟁 및 이윤 추구가 더 이상 생산력을 증가시키거나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피지배계급은 공장이나 기계, 토지 등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사회적 소유로 전환시키고, 생산의 목적을 자본가들의 이윤추구로부터 주민들의 욕구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변경시키며, 무정부적인 ‘경쟁’ 대신에 ‘계획’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선언의 핵심내용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주요 예언들은 166년이 지났지만 모두 빗나갔다.

첫째, 자본주의가 결국 실업, 공황, 빈부격차 및 사회적 불평등 등 자기모순으로 멸망할 것이라던 마르크스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가 붕괴된 것이 아니라 소련과 동구 국가들에서 보듯 공산진영이 붕괴됐다.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생산수단을 공유할 것을 천명했지만 생산수단을 공유·관리·독점하는 사회조직은 오히려 더 폐쇄적인 절대주의, 전체주의 체제를 만들어냈다.

둘째, 만국의 노동자들은 단결하기는 커녕 세계무역기구(WTO)에 의해 분열됐다. 많은 노동자들이 WTO반대! WTO해체!를 외치고 있지만 투쟁 강도는 약화되고 있다.

셋째,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된 나라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난다고 했던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어느 한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70여년의 역사적 실험 끝에 실패한 볼셰비키 혁명은 당시 고도의 자본주의 국가였던 영국이나 독일에서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가장 덜 발달된 농업국이자 문맹률이 가장 높은 러시아에서 일어났다.

넷째, 국가는 사멸하는 것이 아니라 날이 갈수록 그 기능과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

다섯째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가져간다(소득분배가 이뤄진다)는 주장은 실현되지 않았다.(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 비교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능력에 따라 일하지만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기 때문에 일한만큼 가져가지 못하는 사회이고, 사회주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만큼 가져가는 사회이며, 공산주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사회로 설명된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은 이후 공산당 엘리트들의 지배권력을 정당화하는 소위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경직화되고, 이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였던 소련과 동구 국가들의 ‘현실사회주의’(really existing socialism)가 붕괴함으로써 더 이상 절대적 지위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이로써 자본주의는 자기모순에 의한 파국을 맞이하기는 커녕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으며,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구시대의 유물로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하하고 있다.

이에 대해 포퍼는 마르크스주의는 ‘공산당선언’에서 보듯 출발점부터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의 이념은 인류의 주요 문제를 푸는 데 서로 협력할 ‘동반자’를 발견하는 대신에 ‘적’(enemy)을 발견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적’을 뉘우치게 하고 ‘사랑’의 힘으로 포용하며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폭력으로 파멸시켜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원래 편 가르기는 공산주의 혁명의식의 출발점이다. 물질이 1차적이고 정신이 2차적이라고 보는 유물론(唯物論, materialism), 정신이 1차적이고 물질이 2차적이라고 보는 관념론(觀念論, idealism)이 서로 대립돼 있는 것으로 인간과 우주를 설명함에 따라 공산주의자들은 ‘동무가 아니면 모두가 원수’로 보는 절대적 세계관을 내세우면서 자유민주주의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헛된 관념론자들이기 때문에 파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교의(敎義)에 따라 일찍이 그의 ‘제자들’인 레닌․트로츠키․스탈린․모택동․카스트로․김일성 등은 혁명을 진행하면서 한결같이 사회 성원 전체를 인민 대(對) 비인민으로 철저히 2분했다. ‘인민’들 사이에만 동지적 민주주의 즉, 인민민주주의를 실시하고 ‘비인민’들에게는 적대적 독재를 시행하기 위해서였다. 혁명집단 북한도 세계를 미국에 대한 반제(反帝)투쟁으로 2분하고 미제(美帝)쪽에 선 것은 모조리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실제 소련의 사회주의 이론가 트로츠키(Leon Trotsky)는 영국에 첫 노동당 정부가 들어선 1925년에 펴낸 ‘영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Where Is Britain Going?)에서 “먼저 적을 만들어라”라고 노동자를 선동했다. 그는 사회주의 선동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사회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 자본가와 노동자로 양분해 적을 만들고 끊임없이 적개심을 유발하라고 주문한다. 노동자계급은 산업사회에서 중심역할을 담당하지만 부르주아계급의 박해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평등사회를 건설하려는 투쟁의 선봉에서 적을 물리쳐야 한다고 격려한다. 트로츠키가 적으로 모는 집단은 부르주아로 통칭되며 자본가, 지주, 기업가, 은행가, 왕족, 귀족, 성직자 등 출신성분이나 직업을 기준으로 구체화 된다.
 
트로츠키가 사회구성원을 적과 동지로 양분하는 이유는, 노동자계급이 단결하여 적개심에 불타고 있어야 죽느냐 사느냐의 투쟁에서 승리한다는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투쟁 할 때는 혁명을 방해하는 반동세력과 맞서 ‘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의 각오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며’(life and death fight) 타협의 환상에서 벗어나라고 가르친다. 트로츠키는 그의 책 여러 곳에서 부르주아와 노동계급간의 투쟁에는 목숨과 죽음이 걸려 있다는 자극적인 표현, 예를 들면 struggle to the death, fight to the death, struggle for life or death, question of life or death 등을 사용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과 묘비문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받는 사회’의 실현을 위해 ‘프롤레타리아가 폭력혁명을 통해 세상을 공산주의 사회로 바꾸자’는 것으로 정리된다.

지금 우리 사회 일각의 거대 담론 중의 하나도 ‘세상을 바꾸자’일 것이다. 어딜가나 이 말이 들린다. 진보를 자처하는 시민단체나 운동권, 노조의 투쟁현장에선 거의 예외없이 ‘민중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 ‘촛불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 ‘총파업투쟁으로 세상을 바꾸자’, ‘1%에 맞선 99%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 등의 구호가 나온다. 구체적으로 화물연대 등의 투쟁현장에는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 ‘바퀴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가 등장한다. 더욱 과격한 투쟁현장에는 ‘자본주의 갈아엎어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도 등장한다. 소위 민중가요 중에는 ‘세상을 바꾸자’는 제목의 노래도 있다. “세상을 바꾸자/ 멈춰진 역사의 수레를 굴려라/ 노동의 힘으로/ 건설할 새 세상/ 열려진 미래를 벅차게 안으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구구 절절 투쟁과 전쟁이란 단어와 함께 분노와 증오가 묻어 나온다.

좌파 진영의 외침과는 구호의 성격이 다르겠지만 정치권에서는 ‘투표로 세상을 바꾸자’, 여성계에서는 ‘여성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 예술계에서는 ‘음악(미술)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 사이버 공간에서는 ‘네티즌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한다. 기업과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기업’, ‘세상을 바꾸는 대학’ 등의 슬로건이 그것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생전에 ‘세상을 바꾸자’는 말을 좋아했다. 그는 2009년 3월 19일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나는) 대표선수 자리까지 갔지만 세상을 바꾸자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고 썼다. ‘세상을 바꾸자’는 말은 당시 민주노동당의 슬로건이기도 했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은 그가 바라던 ‘평생의 꿈’이었다. 노 대통령은 2002년 9월7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사회운동단체 ‘학벌 없는 사회’ 초청 강연에서 “80년대를 평가하면 억압이 주류가 아니라 저항이 주류인 사회였다. 저항적 세대가 주류가 되어야한다”고 말했다.

2006년 9월 29일에는 경복궁 북문 개방행사에 참석한 서울 청운초등학교 학생들을 향해 “사람 간에는 지배와 피지배가 있습니다. 내 희망은 지배와 피지배자간의 차이가 작기를 바라는 것입니다”라고 말해 초등학생들을 모아 놓고 계급투쟁을 선동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노대통령은 이밖에도 “역사에서 본질적인 문제는 지배와 예속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에서의 핵심적인 주제는 지배 그리고 예속에서 발생하는 제반 갈등의 문제이고 모든 것의 근원이 거기 있다고 생각합니다”(오연호,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오마이뉴스, 2009)고 말했다.

세상을 바꾸자는 말은 나쁜 것을 고치자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진보는 ‘나뿐 것을 바꾸자’는 것이고 보수는 ‘좋은 것을 지키자’는 것이다. 그래서 둘 다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자’며 가장 이상적인 것을 부르짖은 진보사상이었던 마르크스-레닌주의 즉, 공산주의가 반동(reactionary)으로 돌아간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기사입력: 2014/02/21 [12:19]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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