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옥식, '노무현의 反헌법 어록집' 발간
노무현 어록집 “나는 북한의 대변인 변호인이었다”
 
류상우 기자

전 대통령 노무현의 반헌법-반대한민국 어록을 정리한 “나는 북한의 대변인 변호인이었다”가 ‘도서출판 도리’에서 최근 출간됐다고 한다. 서옥식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이 자신의 2010년 저서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말말말’을 보완하고 수정한 이 책은 특히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총 246분의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에 나타난 노 대통령의 NLL포기, 북핵비호, 반미공조 발언들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이 책은 김정일의 NLL포기 요구가 단지 NLL허물기에 그치지 않고 북한이 정전협정 이래 일관되게 주장해온 ‘평화협력체제’ 구축과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로 나아가는 데에 노 전 대통령이 동조했다는 주장을 했다. 노무현이 북한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는 비판이다.

 

A4용지 총 103쪽에 달하는 대화록을 보면,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이 김대중 정부시절인 1999년 서해 NLL 남쪽 대한민국의 영해안에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그들의 해상군사경계선, 그리고 우리의 NLL 사이에 있는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만들자는 김정일의 제안에 동의한다. 이는 평화수역이라는 이름 아래 대한민국 영해안에 북한의 활동공간을 만들자는 얘기다. 이를 육지에 대입하면 북한이 휴전선 남쪽 수원 부근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군사경계선’을 멋대로 굿고 그 군사경계선과 기존 휴전선 사이, 즉 서울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수도권을 남북한이 공동관리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노무현의 영토 포기성 언행을 이 책은 지적한다. 

 

서옥식 저자는 노 전 대통령 사후 나온 책들이 거의가 그를 미화하거나 영웅시하는 것들이지만 어록집 형태의 이 책은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역사의 기록물이며, 다만 사실을 오도할 가능성이 있는 발언들에 대해서는 보충자료나 전문가의 의견 등을 통해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그리고 저자는 ‘말통령’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우리의 현대사에 있어서 말로써 가장 논란의 중심에 선 지도자를 꼽자면 단연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지적하고, 이 책을 쓴 이유도 그의 거침없고 파격적인 발언들을 통해 그의 실체를 재조명하기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노무현의 시대착오적인 진보관(좌익세계관)을 지적하기 위한 책이라고 설명한다.  [류상우 기자: dasom-rsw@hanmail.net/]

 

 

김정일이 언급한 군사경계선이란 북한의 도발로 촉발된 제1연평해전(1999년 6월 15일)직후인 1999년 9월 2일 북한이 NLL 남쪽에 일방적으로 그은 해상경계선이다.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의 우리 섬들이 그 선 안으로 들어가 북의 허가를 받아야 출입할 수 있게 만든, 실효성도 없는 허상의 경계선이다. 그런데, 김정일의 제의대로 하면, NLL 남쪽 우리 영해의 약 8천㎢, 충청남도 정도의 면적이 공동어로수역이 된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김정일의 제안은 NLL과 그 아래 우리 영해안에 북한이 멋대로 그은 해상군사경계선을 남북한 모두 각각 포기하자는 법률적인 조치를 취하자는 것인데도 노대통령은 여기에 ‘좋다’라고 맞장구를 치며 편승한 것이라고 지적한다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안에 그어놓은 유령같은 군사경계선을 인정하고, 북한이 멋대로 드나들고 활동할 수 있는 장소를 우리 영토안에 설정하자는 얘기라고 노무현의 대북정책을 비평하다.

 

이 책은 특히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공개된 이래 정부나 정치권, 언론이 노대통령의 NLL발언과 관련해 간과해 온 그 이상의 대목이 있음을 지적한다. 그것은 김정일의 NLL포기 요구는 단지 NLL허물기에 그치지 않고 북한이 정전협정 이래 일관되게 주장해온 ‘평화협력체제’ 구축,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추구해온 그들의 이른바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임에도 불구하고 노대통령이 동의했다는 점이다. 노대통령은 김정일에게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 남과 북이 주도해서 ‘평화적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는 것을 전 세계에 공표하게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고 말해 북한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평화협정체결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노 대통령은 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남한 내 미군을 전방과 서울에서 후방으로 이동시키고 주한미군의 전시작전권을 환수키로 했다고 자랑했는 데 이런 맥락에서 김정일의 ‘평화협력체제’ 구축 전단계인 ‘공동어로구역’ 또는 ‘평화수역’ 제안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서옥식 저자는 평한다.

 

‘평화협력체제’ 구축이란 1953년 이래 유지되고 있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는 것으로, 핵 포기를 거부하면서도 한미동맹을 와해시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는 북한의 일관된 대남적화통일노선이며 낮은 단계 연방제로 가는 수순밟기나 다름없다. 남한의 종북좌파세력도 기본적으로 이 노선에 동조하고 있다. 남북한 간에 핵폐기는 물론 군사적인 긴장완화 조치 등 신뢰구축이 없는 상황에서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이 체결될 경우 6.25전쟁 이후 성립된 한반도 및 주변 안보 질서에는 심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임에 틀림없다. 평화협정 체결은 앞으로 있을 한국의 전시작전권 단독 행사로 인해 한·미연합사 해체와 맞물리면서 주한유엔군사령부와 주한미군의 철수로 이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무엇보다 미군이 남한에 주둔할 근거가 없어진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과거 베트남의 예에서 보듯 남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평화협정이 한반도의 평화를 실체적으로 보장한다면 이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협정이 체결된다하더라도 과거 베르사유강화조약(Treaty of Versailles, 1919년)이나 베트남평화협정(1973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중동평화협정(1993년)에서 보듯 전쟁과 분쟁이 지속되면서 평화를 담보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베트남 평화협정체결은 미국과 공산 북베트남(越盟)간의 전쟁을 ‘종식’시켰지만 결국 남베트남(越南)을 포함한 국가 전체의 적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혹자는 이를 두고 어찌됐건 통일이 되지않았느냐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소위 ‘인민민주주의’체제의 통일이라면 우리 국민 다수가 이런 통일방식을 지지한다고 보겠는가?

 

이책은 노 전 대통령 재임 중의 어록이 주축을 이루고 있지만 인권변호사, 국회의원, 해양수산부장관, 민주당 대선후보 때와 퇴임 후 봉화마을 시절의 발언도 포함하고 있다. 구성은 총 40부로 돼있고 각각의 말에는 반드시 출처(발언 일자와 장소, 관련문헌 등)를 명기하고 있다.

 

강남사람과 밥도 먹지말라/ 저항적 세대가 주류가 되어야한다/ 지배와 예속의 문제가 역사의 본질이자 핵심주제/ 행정수도 이전은 지배세력 교체 의미/ 보수는 약육강식, 진보는 더불어 살자는 것/ 진보의 가치는 하느님의 교리, 보수의 가치는 (세속적인) 돈/ 진보라야 진정한 민주주의다/ 언론은 조폭이자 흉기이며 불량상품/ 언론은 최후의 독재권력이며 군림하는 완장문화/ 재벌을 해체하고 이들의 주식을 노동자에게 분배하자/ 서울대 해체하고 싶지만 신문에 날까봐 말안하겠다/ 참교육 전교조 없다면 내 자식도 학교 보내지 않겠다/ 강남불패라고 하는 데 대통령도 불패로 간다/ 양극화는 전 정권에서 물려받은 것으로 내가 방어할 문제 아니다/ 한미FTA는 폐기하지 않으려면 재협상해야(자신의 최대 업적의 하나가 한미 FTA협상타결임에도 불구하고 퇴임후 홈페이지에 올린 글)/ 도덕성은 나의 유일한 정치적 자산, 어떤 범법행위도 없었다/ 돈은 내모르게 아내가 받아 빚 갚는 데 사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시절 이데올로기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는 이데올로기의 집착자이며 그의 이데올로기는 누가 뭐래도 ‘진보’다. 대한민국 정치지도자 중 노대통령 처럼 국민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편 가르는 데 ‘진보’란 말은 자주, 즐겨 사용한 사람은 아마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그의 연설이나 강연문을 보면 거의 언제나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등장한다. 대통령 임기 말년에 가서는 우리가 추구해야할 민주주의로 ‘진보적 시민민주주의’와 ‘진보적 시장주의’라는 것을 제시했다. 사실 ‘진보적 민주주의’는 김일성이 일찍이 제창했다. 그는 퇴임 후에도 봉화마을에서 참여정부 측근인사들을 중심으로 ‘진보주의 연구회’(정치사상에 보수주의라는 용어는 있으나 ‘진보주의’란 용어는 없다. 국내 사전들은 영어의 progressivism을 한결같이 진보주의로 번역하고 있으나 이는 오역수준이며 ‘진보운동’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라는 공부방을 이끌어오면서 진보사상 연구를 해왔다. 그뿐 아니다. 봉화마을을 찾는 주민들을 상대로 진보와 보수에 대한 강의를 해왔다. 세상을 뜬 후에도 ‘진보주의의 미래’라는 유고집이 나왔을 정도다.

 

그러나 그의 ‘진보관’은 크게 왜곡돼 있다. 그는 진보와 보수를 철저히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참과 거짓, 합리와 비합리, 참신(斬新)과 퇴영(退嬰), 친구와 적의 차원에서 설명한 바 있다. 그의 발언들을 정리해보면 ▵보수는 강자의 사상, 진보는 약자의 사상 ▵보수는 약육강식, 진보는 더불어 살자는 것 ▵보수는 강자끼리 움켜지는 것, 진보는 약자끼리 나누는 것 ▵진보는 버스 ‘같이 타고가자’, 보수는 ‘늦는다 비좁다 태우지 마라’ ▵보수는 힘센 놈만 밀어주는 것, 진보는 약자를 챙기는 것이다.

 

또 ▵진보는 개혁세력, 보수는 반개혁세력 ▵진보는 통일세력, 보수는 반통일세력 ▵진보는 평화주의자, 보수는 전쟁주의자로 규정한다. 또한 보수의 핵심가치로 돈을 중심에 둔 ‘성장’과 ‘경쟁’을 들면서 진보의 핵심가치로는 인간을 중심에 둔 ‘자유’, ‘평등’, ‘평화’, ‘박애’, ‘행복’, ‘복지’, ‘균분’ 등 이 세상 좋은 것이란 몽땅 갖다 붙이고 있다. 그는 또한 “보수주의의 문제점으로 정의, 연대의식, 연대의 가치,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전략이 없다는 것”을 들면서 “역사는 상당기간 진보와 보수 간의 갈등(투쟁)으로 전개될 것” “역사의 본질은 지배와 예속의 문제”라고 말했다. 좌파들의 ‘계급투쟁’이론을 연상케 하는 말들이다. 그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진보주의만이 진정한 민주주의이며 하나님의 교리와도 통한다”며 ‘진보주의=민주주의’, ‘진보주의=사람사는 세상’ ‘진보주의=하나님의 교리’라는 등식까지 내놓았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면서 민주주의의 장래는 그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모임인 ‘노사모’와 ‘참여포럼’에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말은 그의 묘비에도 새겨져있다.

 

노대통령의 진보와 보수의 시각을 보면 마치 북한의 조선말사전이나 철학사전. 정치학사전을 읽는 느낌이다. 북한의 사전들은 보수를 타도해야할 사상, 진보를 쟁취해야할 긍정적인 사상으로 소개하고있다. 특히 보수를 ‘착취계급의 사상(자본주의)’, 진보를 ‘노동계급의 혁명사상(사회주의 공산주의)’으로 정의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는 누가 나쁘고 누가 좋다는 2분법적 시각, 선악개념, 그리고 도덕적 우열 개념이나 가치의 고하(高下)개념이 아니다. 요약하면 진보가 ‘나쁜 것을 고치자’라면 보수는 ‘좋은 것을 보존하자’이다. 좋은 것을 보존하고 나쁜 것은 고치는 것은 보존을 하면서도 변화를 추구하는 인간생활의 두 축이다. 하지만 진보가 잘못되면 고치지 않는 것만 못한 ‘개악’이 될 수 있고 보수가 잘못되면 ‘기득권 유지’가 될 수 있다. 진보가 보수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사조라면 역사상 가장 진보를 주창했던 마르크스-레닌주의(궁극적으로 공산주의)가 70여 년간의 실험 끝에 물러난 수구적이고 반동적이며 퇴영적인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진보와 보수는 사회발전의 방향과 방법을 달리하는 기본적 두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즉 사회 변화의 속도와 폭이 보다 광범위하고 빠르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진보라고 분류할 수 있고, 그 변화의 폭과 속도가 검증을 거치고 구성원의 합의과정을 통해 보다 점진적이고 단계적이어야 한다고 본다면 그것은 보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보수가 대외적으로 대결주의를 취하지만 진보는 평화주의를 취한다”며 진보=평화, 보수=전쟁이라는 노 전대통령의 사고는 자신의 전형적인 특기였던 2분법적 편 가르기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보수주의자가 전쟁세력이라는 그의 주장은 소련과 동유럽 현실사회주의 체제붕괴이후 전개된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수행된 미국 공화당 정부의 걸프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라크전쟁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면 미 민주당 정권이 개입한 가운데 전개된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들 전쟁의 초기에는 민주당정부가 개입돼 있으나 오히려 이 전쟁들을 마무리한 것은 공화당정부였다.

 

여기에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공방문을 통한 미-중 데탕트(Detente), 총성 한방 울리지 않고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를 가져오게 한 레이건 대통령의 대외정책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레이건은 소련을 협박하지 않았고, 대결 보다는 평화를 약속했다. 그의 말처럼 오히려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며 멸망의 대상으로 여겼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노 대통령의 말은 신중하지 않은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사유(思惟)체계를 달리하는 사람을 분열적·대립적·갈등적 잣대로 선명하게 나누면서 정신적·지적으로 가르치려하고, 때론 모욕을 주려는 인상이 짙은 점이다.

 

노 전대통령의 이러한 시각을 반영하듯 그의 말 가운데는 유독 ‘보수’를 비난하고 ‘시장주의’를 부정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에게는 보수주의자는 시장만능주의자이고 약자를 잡아 삼키는 악인으로 치부됐다. 그에 있어서 보수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war of every man against every man)이나 ‘적자생존’(the survival of the fittest)과 ‘정글의 법칙’(the law of the jungle)만을 부르짓는 ‘약육강식주의자’(the stronger prey upon the weaker)다. 그에게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언제나 불의의 결과를 낳는다는 ‘사탄의 맷돌’(Satanic Mill)이나 다름없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만악의 근원’(root of all evil)으로 본 것처럼 그의 많은 말들은 시장경제에 부정적인 정서가 강함을 보여준다. 시장원리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변화하고 가격신호에 따라 자원이 배분되어가는 가치중립적 사회운용방법이지만 노 전대통령은 시장경제를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 필자의 지적이다.

 

그가 대통령 임기 말기에 “세상을 바꿀 새로운 세력이 시장에서 나와야 한다”며 대안으로 제시한 ‘진보적 시장주의’가 이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물론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시장지상주의가 우리 사회의 대안일 수는 없다. 그러나 ‘계획’이 시장을 대체할 수 없음은 더욱 분명하다. 역사적으로 시장원리의 작동결과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위해 정부의 인위적인 계획으로 시장을 대체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시장’ 대신 ‘계획’을 택한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식 진보’의 적(敵)은 자본주의 경제를 바탕으로하는 시장주의자들이다. 예컨대 그가 철저히 부정적 시각으로 대했던 대기업(재벌), 강남, 서울대, 조중동 신문(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책은 지적한다. 노 전대통령은 특히 “대통령 5년 임기중의 투쟁에서 가장 큰 장애는 조중동”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혀 메이저 언론이 최대의 적임을 선언했을 뿐 아니라 언론을 조폭이자 살인흉기, 불량상품으로 매도했다.

 

필자는 이어 노 전 대통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언급이 많았다고 지적한다.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성과 정통성, 정체성에 부정적인 그의 일관된 발언들이 그의 종북성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정권이 그토록 바라던 국가보안법폐지, 한미연합군해체, 연방제통일을 외쳤으며 통일을 위해서는 대한민국이라는 금기를 깨야하고 주권의 일부도 포기할 각오를 해야한다고 말했음을 지적한다. 이 책은 특히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발발한 제1·2차 연평해전에서 우리 군이 싸우며 수호했던 서해 NLL을 우리 영토선이 아니라는 노 전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NLL이 영토선이 아니라면 우리가 무엇때문에 피흘려가며 싸웠느냐”고 비판한다.

 

이 책이 지적하는 또 하나의 주요 내용은 노 대통령의 ‘미국 쇠고기 외교’다. 한미 FTA를 타결한 노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내에 미국 쇠고기 문제를 풀겠다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약속했고 우리 국민에게도 담화를 통해 다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약속을 끝내 지키지 않았다. 그와 함께 했던 일부 각료들로부터 “임기내에 쇠고기문제를 푸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도 거절했다. 이래서 이명박 정부의 ‘설거지론’과 함께 노대통령이 묻어놓은 ‘뇌관’을 만지다 출범 2개월의 이명박 정부가 ‘광우병 촛불폭동’으로 사실상 주저앉았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목 차

제1부 NLL은 우리 영토선 아니다

제2부 NLL남쪽 대한민국 영해안에 남북공동어로구역 설치 찬성한다

제3부 세상을 바꾸자는 꿈 이루지 못했다

제4부 진보는 선, 보수는 악

제5부 진보의 가치는 하느님의 교리

제6부 대한민국은 아프리카 정글보다 못한 카지노 자본주의

제7부 언론은 조폭이며 흉기이자 불량상품

제8부 나의 임기중 투쟁에서 가장 큰 장애는 조․중․동

제9부 강남사람과는 밥도 먹지마라?

제10부 서울대 없애버리고 싶지만

제11부 전교조 없다면 내자식도 학교보내지 않겠다

제12부 행정수도 반대는 노무현 퇴진운동

제13부 나보고 경제파탄냈다고 하는 데 승복못한다

제14부 양극화는 물려받은 것, 내가 방어할 문제 아니다

제15부 부동산 말고는 끌릴게 없다

제16부 한미 FTA는 폐기하지 않으려면 재협상해야

제17부 미국 쇠고기문제 내 임기내 풀기로 부시에게 약속했다

제18부 용산 미군기지는 침략의 상징

제19부 북핵 때문에 왜 우리가 호들갑 떠느냐

제20부 존재하지도않은 북핵위협론을 퍼뜨리는 사람들 있다

제21부 전시작전권도 없는 군대만들었다면 그돈 다 떡사먹었냐

제22부 6.25는 내전...통일위해선 주권 일부도 포기해야

제23부 NLL은 우리 영토선 아니다

제24부 국보법은 유물,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야

제25부 대한민국은 미국을 업은 분열주의 세력이 건국

제26부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 둬라

제27부 나에게 탄핵사유 있다면 당선된 원죄밖에 더 있겠나

제28부 이명박씨! 그러지 마시오 당신보다 내가 나아

제29부 YS는 ‘탁월한 두목’, DJ는 ‘국보급 지도자’

제30부 노무현이 시정잡배면 이회창은 양아치냐

제31부 정동영은 기회주의자, 손학규는 보따리 장수

제32부 노무현에 반대하면 다 정의라는 것 아니겠느냐

제33부 여자는 조져야‧‧‧그리고 남자한테 여자 서너명은 있어야

제34부 호남이 노무현 좋아 표찍었나, 이회창 미워서 찍었지

제35부 한나라당이 정권잡을 것 생각하면 끔찍

제36부 도덕성은 나의 정치적 자산 어떤 범법행위도 없었다

제37부 돈은 내모르게 아내가 받았다

제38부 퇴임후 黨고문이라도 시켜달라

제39부 나는 성공하지 못한 대통령

제40부 노대통령의 국정 ‘직접 챙기겠다’ 퍼레이드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全文

◉유서전문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약력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후 일지

 

<저자소개>

서옥식은 서울대학교 문리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1973년 동양통신사에서 외신부-사회부 기자로 일했고 1981년부터 2002년 5월까지는 연합뉴스에서 외신부장, 북한부장, 편집국장, 논설고문 등으로 근무했다. 기자시절에는 언론통제가 극에 달하였을 때 사건기자로 활동하면서 주로 긴급조치위반사건 등 시국사건을 취재∙보도했다. 특히 1976년 명동 3∙1 민주구국선언(재야지도자 김대중, 함석헌, 문익환씨 등이 명동성당에서 주도한 유신철폐요구사건)과 1979년 10∙26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취재∙보도했으며, 1980년 광주 5∙18 때는 동양통신사의 제휴 외신사였던 미 UPI 통신 서울지국의 배려로 UPI 특파원증을 발급받아 현지에서 생생한 기사를 취재하여 광주의 목소리를 국내 외에 알렸다.

 

신군부의 게엄확대조치에 따른 보도통제와 기사검열로 광주시민들의 한국언론에 대한 불신과 취재거부가 극에 달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미국 언론사 특파원으로 ‘위장’한 것이다.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 붕괴 때는 동유럽 현지에 약 1개월간 파견취재를 나갔으며 1991년 1월 걸프전 발발 때는 종군기자로 43일간 이라크-요르단 국경과 이스라엘, 이집트에 특파되기도 했다. 퇴임 후에는 경기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호남대, 숭실대, 한남대, 경기대, 경남대 등에서 초빙교수, 연구교수, 강의교수, 초빙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해 왔다.

 

2008년에는 성결대 행정학부 외래교수,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선거기사심의위원회 심의위원을 지냈다. 2008년 11월25일 한국언론재단 사업이사로 선임돼 2009년 12월 31일까지 근무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대 동양사학과 총동문회장, 서울대 인문대학 총동창회 부회장, 서울대 관악언론인회 감사를 각각 역임했다. 2010년부터 2012년 까지 한국언론진흥재단 전문위원과 언론인금고관리위원,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기사형광고 심의위원을 각각 지냈다. 2012년 3월이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2014년 2월5일에는 서울대총장 추천위원회 추천위원에 선임됐다.

 

주요 논문으로는 ‘남북한 통일정책과 논의에 대한 비교연구’(2002,석사논문), ‘김정일체제의 지배이데올로기 연구-선군정치를 중심으로’(2005, 박사논문)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통일을 위한 남남갈등 극복방향과 과제’(2003), ‘신동북아 질서의 제 문제’(2004, 공저), ‘북한의 선군정치론’(2006),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말말말’(2010), ‘오역의 제국-그 거짓과 왜곡의 세계’(2013)등이 있다. (끝)

 

기사입력: 2014/06/18 [11:28]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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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바우 14/06/18 [22:25] 수정 삭제  
 
정말 양아치만도 못한 빨갱이 괴물이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는 진실이
지극히 혐오스러워 견딜 수 없다.

난 개대징과 더불어 그쪽 동네 출신들이
(참고: 노고무통은 전남 강진이 원래 고향임)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다.
난 그 쪽 인간들과는 말도 하기 싫다.

(참고 : 난 서울 을지로3가에서 태어난 서울 본토박이다. 조상 대대로 서울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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