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에 교황의 망상적 평화와 화해
전체주의집단에 낭만적 용서 강요하는 망상
 
조영환 편집인

 

해방신학이 휩쓴 남미(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기간에 몹쓸 짓을 하고 다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음성 꽃동네를 방해에도 불구하고 방문한 것은 옳은 일이지만, 분단국가에서 좌익세력의 구미에 맞는 언행을 한 것은 평화와 국익을 허무는 몹쓸 짓으로 평가된다. 대한민국 수준의 경제체제를 두고 마치 살인적 착취구조라는 취지의 혹평을 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류역사의 현실에 대해 무지하거나 속이는 지나친 이상주의적 망발을 이 과잉민주사회에 쏟아낸 것이다. 프란치스코가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가진 교황이라면, 한국의 노인세대가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을 극복하면서 인류에 공헌한 업적(산업화와 민주화)을 지적하고 칭찬했어야 했는데, 산업화세대에 대해 미몽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당한 평가도 하지 않고, 젊은 세대에게 기존체제에 대한 저항을 선동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성숙한 한국의 좌익신부들처럼, 청년들을 겨냥해서 희망이란 이름으로 망상적인 정치선동을 하고 돌아다녔다. 한국의 경제제도에 대해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을 거부하기를 빈다. 생명이신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상(인간을 뜻함)을 경시하고,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빈다”고 혹평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한림 주교의 “교황님의 이런 메시지 밑에 흐르는 것은 남미 해방신학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휴머니티이자 그리스도의 사랑”이는 변명에도 불구하고, 해방신학자의 뉘앙스를 풍긴다. 더 이상의 현실적 대안도 없이 한국의 성공적 경제풍토를 ‘죽음의 문화’로 배척한 교황은 망상적 선동꾼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의 경제체제를 ‘죽음의 문화’라고 혹평한 교황은 북한 전체주의사회에 일체 비판을 하지 않은 편향적 언행을 보여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한 ‘방한 마지막 명동성당 미사(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도 남북관계에 대해 천주교 특유의 망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사이비 평화주의(pseudo-pacifism)’를 늘어놓았다. 중앙일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집전한 18일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했다”며 “‘예수는 죄 지은 형제를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셨다’며 남북한 간, 한국 사회 내 화해를 촉구했다”고 전했다. 이런 교황의 지나치게 이상적인 평화와 화해는 개인 간에서도 불가능한 천주교의 이상이다. 이런 사이비 평화와 화해가 군중들을 미혹하는 데에 작동되는 군중사회는 전란의 고통을 겪게 된다. 전쟁은 역설적이게도 대결적 상황에서보다는 거짓 화해와 평화가 무르익은 상황에서 더 쉽게 일어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낭만적인 그래서 기만적인 평화주의를 우리는 따르면 망한다. 성숙한 세속인들은 미성숙한 종교지배자들에게 미혹되지 않는다.

 

중앙일보는 “교황의 강론 내용은 화해와 용서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강론 전반에서 남북 대화와 화해에 대해 강조했다”며 교황의 “오늘의 미사는 첫째로, 또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한 가정을 이루는 이 한민족의 화해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다. 하느님의 약속을 한민족이 체험한 역사적 맥락에서 알아듣게 된다. 그것은 바로 지난 60년 이상 지속되어 온 분열과 갈등의 체험”이라는 강론 내용을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께서는 죄를 지은 형제에게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것이 제가 한국 방문을 마치며 여러분에게 남기는 메시지”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분열의 간격을 메우고, 모든 상처를 치유하며, 형제적 사랑을 이룬다”며 남북화해의 당부를 했다고 중앙일보는 전했다. 개인 간의 용서와 화해를 집단 간의 갈등에 적용하면, 악당에게 유리하다.

 

“남북 간 화해에 대한 교황의 메시지는 계속 이어졌다”며 중앙일보는 교황의 “이제 대화하고, 만나고, 차이점들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기회들이 샘솟듯 생겨나도록 우리 모두 기도하자.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인도주의적 원조를 제공함에 있어 관대함이 지속될 수 있도록, 모든 한국인이 같은 형제자매이고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더욱더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기도하자”는 강론도 전했다. 그럴싸 하지만, 이런 교황의 이상주의적 주장은 북한의 현실과 남한의 사정을 간과한 망상적 선동에 가깝다. 물론 종교는 이상적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도 하지만, 지난 며칠 사이에 교황이 보여준 언행을 감안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남북관계에 대한 당부는 전쟁을 부르는 망발에 가깝다. 독일이나 북한 전체주의집단을 비판하지 않는 천주교의 사이비 평화주의가 가는 곳에 전쟁의 위험성이 높다.

 

“교황은 또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기여에 대한 메시지도 전했다”며 중앙일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는 데에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얼마나 질적으로 기여했는가를 점검해보라는 부르심이 있다. 불운한 이들, 소외된 이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이들, 많은 이가 누리는 번영에서 배제된 이들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관심 가졌는가 반성하라”며 “의심과 대립과 경쟁의 사고방식을 확고히 거부하고, 그 대신에 복음의 가르침과 한민족의 고귀한 전통 가치에 입각한 문화를 형성해 나가라”는 당부도 전했다. 이는 한국사회의 기득권층에 대한 의심과 대립으로 가득찬 교황의 계급갈등적 가치관이 잘 드러나는 정치선동으로 평가된다. 해방신학의 본고장에서 온 교황답게 그의 강론이나 연설에는 끊임없이 물질적 빈부에 대한 차별의식이 배제된 적이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맘 속에 해방신학 신봉자인가?

 

중앙일보는 “박 대통령이 명동성당 미사에 참석한 것은 지난 5월 18일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추모 미사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라며 “이날 미사에는 박 대통령 외에도 7대 종단지도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세월호 유가족, 쌍용차 해고 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지역 주민, 용산 참사 피해자, 새터민과 납북자 가족 등이 초청받아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부적절한 초청자도 보인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특정종교행사에 두 번이나 참석하여 몽상한 발언을 듣는 것도 보기에 좋지 않다. 국가 간에는 ‘보복적 정의(retributive justice)’가 사랑의 가장 적절한 표현인데, 남북한 간에 현실성도 없는 “죄를 지은 형제에게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몽상한 발언을 대통령이 듣고 있어야 하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현실주의적 판단으로 교황의 몽상한 평화주의에 따라가면 안 된다.

 

국민들은 교황의 망상적 발언을 비판했다. <교황 마지막 미사,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중앙일보의 기사에 한 네티즌(nayawls)은 “용서?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그 용서도 이해와 공감이 되었을 때 가능한 것인데, 지금의 남북이 가능할까? 총칼을 앞세워 협박을 하고, 김개중이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돈 가져다주고, 잘못에 대한 사과도 없는데 용서하라는 말이 가능할까? 제발 말장난 좀 하지 마라. 이런 말장난에 국민은 피멍이 든다”고 했고, 다른 네티즌(fulloflove)은 “그럼 연평도 백령도에 이어 진도 강화도 거제도 제주도 다 날아갑니다. 형제다운 형제를 말씀하신 거겠죠”라고 했고, 또 다른 네티즌(donchilee)은 “김일성 주체사상에 물든 좌파들처럼 ‘그게 공산주의든 뭐든 통일만 되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생각한다면 크게 잘못 되었다고 본다”고 반응했다.

 

또 한 네티즌(cheilk)은 “말도 안 같은 실현 불가능한 말들 좀 그만 하시라. 그런 말이 진리라면 당신부터 몸소 실천하고 다른 사람한테도 말해라. 세월호 여행 가다 배가 뒤집어진 사고다. 다시 그런 일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명목으로 자기들이 사법권 기소권 가지고 복수 할려고 한다. 기존 사법체계 무너뜨리고 말여. 그런 사람 편에 서서 국민들한테 염장쥑이는 게 사리에 맞냐. 고만 꺼지시라”고 했고, 다른 네티즌(wsyz29jj)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뭘 용서하라고. 6.25전쟁으로 죽은 약 5백명의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라고. 도대체 제 정신이야, 아니면 정신병자야”라며 “저기 군산 전북 가봐. 천주교놈들이 5백명을 죽인 살인을 옹호하고 있어. 그러면서 현 정권을 욕하고 있어. 이런 놈들이 모인 패거리들이 천주고 성당이야. 갯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교황의 낭만적 용서 요구에 대한 저변 국민의 현실성 있는 반발이다.

 

그리고 한 네티즌(Cheong Heuyong)은 “눈앞에 칼 든 강도도 용서할 수 있나요. 용서의 대전제는 반성입니다. 반성도 없고 눈앞에 있는 위협을 용서하라니요?”라며 교황의 망상을 질타했고, 다른 네티즌(aho9496)은 “북한핵 계속 용서하면 진짜 한국은 핵폭탄 맞아 패망해요? 시리아에서 화학무기 사용도 수천명 죽을 때 교황님은 일흔 일곱번 용서하라 하겠지요?”라고 했고, 또 다른 네티즌(trutice)은 “일흔 일곱 번이 아니라 용서한 것이 벌써 백 번도 넘었수. 뭘 얘기하려면 제대로 알고나 얘기해야지 젠장... 거 뜬구름 잡는 맥아리 없는 소리 좀 작작하슈. 미친 개는 어서 때려잡아야지, 용서니 뭐니 뜬구름 잡는 소리 떠들어 봤자 아무 현실성 없는 소리요. 그런다고 미친 개가 안 뭅니까? 북개 같은 것들한테나 한 번 제대로 입바른 소리 해봐요. 엉뚱한 데다가만 한가한 소리 떠들지 말고. 나원참”이라고 질타했다.

 

그 네티즌(trutice)은 “(교황은) 거 입에 발린 흐리멍텅한 소리 좀 작작하슈. 용서라는 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죄를 뉘우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하다못해 상대방이 자신의 잘못을 인식할 능력이라도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용서하려 해도 상대방이 전혀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나의 호의를 기회 삼아 호시탐탐 침범할 기회만을 노리는 자라면 그런 자를 어떻게 용서하고 자시고 할 게 있겠습니까?”라며 “죄를 뉘우치지 않고 악행을 계속하려 드는 악인은 과감히 꺾어버려야 하고, 죄인은 명확히 벌해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 법이에요. 죄인이 그 죄를 깨닫고, 악인이 그 악행을 인식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용서도 가능한 것입니다. 분별 없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라 오히려 흐리멍텅함일 뿐입니다‘라고 교황의 망상성을 질타했다. 원래 종교는 이상을 말한다지만, 남북관계에 교황은 너무 낭만적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개인 간에서 불가능한 화해와 용서를 너무 쉽게 악당국가에 적용하라고 강요한다.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집단에 일체의 비판을 삼가할 정도로 보복적 정의가 없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치 한국의 정의구현사제단처럼 북한에 무비판적이고 남한에는 비판적인 것 같다. 대한민국은 온 세계에 화해와 용서의 기운을 지나치게 품어대어서 문제가 생기는 나라가 아닌가? 대한민국이 6.25전쟁의 학살국가인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과거를 제대로 물은 적이 있는가? 일본의 위안부 문제에 집착하는 한국은 북괴의 천안함 공격에도 책임을 제대로 물을 의지나 능력이 없는데, 그런 한국에 대고 “일흔번의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촉구하는 교황은 형평성과 현실성을 상실한 망상가로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성숙한 세계관의 교황과는 다른 남북관계에 대한 성숙한 판단기준을 가져야 한다. [조영환 편집인: http://allinkorea.net/]

 

 

프란치스코 교황 미사 전문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저의 한국 방문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저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이 나라에, 그리고 특별한 방식으로 한국 교회에 베풀어 주신 많은 은혜에 대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러한 은혜들 가운데에서, 특히 지난 며칠 동안 아시아 전역에서 그토록 많은 젊은 순례자들이 이곳으로 와서 우리와 함께 한 체험을 제 마음에 간직하고자 합니다. 그들이 보여 준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 나라의 전파를 위한 열정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영감(靈感)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의 방문은 바로 이 미사 집전을 통해 마지막 정점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 미사에서 하느님께 평화와 화해의 은총을 간구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한반도 안에서 하나의 특별한 공명(共鳴)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오늘의 미사는 첫째로, 또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한 가정을 이루는 이 한민족의 화해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우리 가운데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무엇인가를 청할 때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큰 힘을 지니게 되는지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마태 18,19-20 참조). 그렇다면 온 민족이 함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간청을 하늘로 올려 드릴 때, 그 기도는 얼마나 더 큰 힘을 지니겠습니까!

 

오늘의 제1독서는 재난과 분열로 흩어졌던 백성을 일치와 번영 속에 다시 모아들이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제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것은 희망으로 가득 찬 하나의 약속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바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고 계시는 미래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하나의 명령과 분리할 수 없도록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느님께 돌아와 온 마음을 다하여 그분의 법에 순종해야 한다는 명령입니다(신명 30,2-3 참조). 화해, 일치, 평화라는 하느님의 은혜들은 이러한 회심의 은총과 분리될 수 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회심이란,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하나의 민족으로서, 우리의 삶과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마음의 새로운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 미사에서, 우리는 당연히 하느님의 이러한 약속을 한민족이 체험한 역사적 맥락에서 알아듣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지난 60년 이상 지속되어 온 분열과 갈등의 체험입니다. 하지만 회심을 촉구하는 하느님의 긴박한 부르심은 한국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도 하나의 도전을 제시합니다. 그 도전은, 참으로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는 데에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얼마나 질적으로 기여했는가를 점검해보라는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은 여러분 각자가, 개인으로서 또한 공동체 차원에서, 불운한 이들, 소외된 이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이들, 많은 이가 누리는 번영에서 배제된 이들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복음적 관심을 증언하는가에 대하여 반성하도록 도전해 옵니다. 또한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한국인으로서, 이제 의심과 대립과 경쟁의 사고방식을 확고히 거부하고, 그 대신에 복음의 가르침과 한민족의 고귀한 전통 가치에 입각한 문화를 형성해 나가도록 요청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베드로가 주님께 묻습니다.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1-22). 이 말씀은 화해와 평화에 관한 예수님 메시지의 깊은 핵심을 드러냅니다. 그분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해 주시라고 날마다 기도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평화와 화해를 위하여 정직한 기도를 바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용서야말로 화해로 이르게 하는 문임을 믿으라고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우리의 형제들을 아무런 남김없이 용서하라는 명령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전적으로 근원적인 무언가를 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또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은총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인간의 시각으로 볼 때에는 불가능하고 비실용적이며 심지어 때로는 거부감을 주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분께서는 당신 십자가의 무한한 능력을 통해 그것을 가능하게 하시고 또한 그것이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분열의 간격을 메우고, 모든 상처를 치유하며, 형제적 사랑을 이루는 본래적 유대를 재건하는,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한국 방문을 마치며 여러분에게 남기는 메시지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힘을 믿으십시오! 그 화해시키는 은총을 여러분의 마음에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 은총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십시오! 여러분의 집에서, 여러분의 공동체들 안에서, 그리고 국민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화해 메시지를 힘차게 증언하기를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또한 다른 종교의 신자들과 함께, 그리고 한국 사회의 미래를 염려하는 선의의 모든 형제자매와 함께 이루는 우정과 협력의 정신 안에서, 여러분은 이 땅에 하느님 나라의 누룩이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리하여 평화와 화해를 이루기 위한 우리의 기도가 이제 더욱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올려져, 그분께서 주시는 은총의 선물로 마침내 우리 모두가 열망하는 고귀한 선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대화하고, 만나고, 차이점들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기회들이 샘솟듯 생겨나도록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또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인도주의적 원조를 제공함에 있어 관대함이 지속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한국인이 같은 형제자매이고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더욱더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저는 이제 한국을 떠나기에 앞서, 대통령님과 정부 당국자들과 교회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방문이 이루어지도록 어떠한 방식으로든 도움을 주신 모든 분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저는 특별히 복음에 봉사하기 위하여, 또 믿음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건설하기 위하여 날마다 일하고 있는 한국의 사제들에게 직접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사절로서, 또 그분의 화해시키는 사랑의 직분을 맡은 사람으로서(2코린 5,18-20 참조), 존경하고 신뢰하며 조화롭게 협력하는 유대를 여러분의 본당 안에서, 여러분 사제들 사이에서, 그리고 여러분의 주교들과 함께 계속 이루어 나가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향한 여러분의 남김 없는 사랑의 모범, 여러분 직무에 대한 충실성과 헌신,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애덕 가득한 관심으로, 이 나라에서 화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돌아오라고, 당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조상들이 알았던 것보다 훨씬 큰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땅 위에 우리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부디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화합과 평화를 이루는 가장 풍요로운 하느님의 강복 속에서 참으로 기뻐하는 그 날이 오기까지, 한국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 그 새로운 날의 새벽을 준비해 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기사입력: 2014/08/18 [12:44]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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