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파괴에 대한 조영환 편집인 대담
좌파정권+좌파시민단체+국제투기세력이 삼성의 경영권 약탈 노려
 
올인코리아 편집부
2006년 6월 30일 평화방송 <열린 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에서 조영환의 책 "삼성, 우리의 삼성은 없다"에 대한 조영환 올인코리아 대표와의 인터뷰 요약


◆장성민(사회자): <삼성, 우리의 삼성은 없다>는 논쟁적인 제목의 책을 내셨군요. 우선 삼성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세계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에 대한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봤으면 합니다.

조영환(저자): 뉴욕타임즈는 ‘현재 삼성은 10년 전 소니가 세계에서 누린 위상을 즐긴다’고 평가 했습니다. 삼성의 주가총액이 소니의 주가총액을 넘긴 것은 이미 한참 전의 뉴스입니다. 삼성은 IMF 침공 이후에 더 매출액이 늘어났습니다. 10대 그룹 내에서 삼성의 매출비중은 1997년 24%에서 2004년 30%, 순이익은 27%에서 35%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한국 전체 수출의 약 23%를 삼성이 담당했습니다. 삼성의 첨단기술로 인하여, 한국은 세계체제에서 준주변국가에서 핵심국가의 지위를 넘보게 되었습니다. 삼성은 한국도 세계에서 1류 기업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기업입니다. 삼성은 한국의 자랑이고 자산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장성민: 그런데 책 제목이 다소 도발적입니다. <삼성, 우리의 삼성은 없다>고 제목을 붙이셨는데요, 제목에 담긴 뜻은 무엇입니까.

조영환: 원래 이병철 회장의 ‘기업보국’ 정신을 받들어 <삼성보국> 혹은 오늘날의 반삼성 여론을 반영하여 <누구 좋으라고, 삼성 죽이나>로 지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약간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된 <삼성, 우리의 삼성은 없다>로 후퇴하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주식의 2/3가 이미 외국인들의 손에 있는 삼성은 한국의 기업이라고 하기 힘들죠. 삼성의 소유권은 이미 외국인들에 손에 넘어가 있고, 경영권만 이건희 세력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고 봅니다. 한국인 이건희가 경영하는 “우리의 삼성”이 외국인이 경영하는 “그들의 삼성”보다 더 낫다는 판단이 책 제목에 반영된 것입니다.


◆장성민: 책의 제목은 반삼성 냄새가 어렴풋이 나는데, 내용은 완전히 삼성 찬양으로 일색입니까? 이 책은 겉은 빨갛고 속은 하얀 무슨 사과 같은 이중적 책입니까?

조영환: 겉과 속이 모두 삼성 찬양하는 책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도 대기업에 대한 반감이 일부 층에서 강하여, 쉽게 삼성을 찬양하기도 힘들지요. 제목이라도 반삼성 냄새가 풍겨야 한다는 주장은 오늘날 한국에 팽배한 반기업 정서의 반영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장성민: 이 책에서는 삼성 창업자인 이병철 선대 회장에서 이건희 현 회장으로 이어지는 삼성의 경영철학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요, 삼성이 가진 경영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조영환: 시대나 상황에 따라서 삼성의 경형철학은 달리 단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일류경영, 천재경영, 마하경영 등의 호칭들이 삼성의 경영에 종종 붙여지는데, 저는 이 시기에 삼성의 경영을 “책임경영”이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일류기업으로 살아남아 보국의 책임을 다하는 삼성, 엘리트직원들이 소리 없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삼성, 세계적 기업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도록 미래를 책임지는 삼성이 바로 “책임경영”이라는 것이죠. 국가와 회사와 미래에 책임적인 경영을 하는 기업이 바로 삼성이라고 저는 규정하고 싶습니다.


◆장성민: 흔히 시민단체 쪽에서는 ‘반 삼성 정서는 없다, 반 삼성총수일가 정서가 있을 뿐이다’라면서 삼성일가의 경영권 장악과 경영권 세습 문제를 거론합니다. 이것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아닐까요.

조영환: 어제 사회자이신 장성민 대표께서 납북된 김영남씨에 관해서 대담하는 것을 청취했습니다. 납북된 김영남씨는 “돌발입북”이라는 전술적 용어로써 남한에서 사용하는 “납북”이란 용어를 무력화시키려고 시도했습니다. 이것은 북한의 얕은 수작이 반영된 말장난이지요. 반삼성 인사들이나 단체들이 ‘삼성’이 아니라 ‘삼성 총수 일가’가 비판의 대상이라고 하는 것도 김영남씨가 한 “돌발월북”과 같은 종류의 말장난이라고 저는 봅니다.

이건희에 의해 장악된 삼성의 경영권을 약탈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으로 부역하는 궤변이 바로 ‘삼성이 아니라, 삼성 총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이죠. 이건희의 삼성이 아니면, 주식의 실소유주인 외국인의 삼성 밖에 더 있습니까? 한국 재벌에게서 경영권을 빼앗아서 국민의 기업으로 하자는 한 좌파시민단체 간부의 말은 몽상가의 파괴집착증입니다. 삼성 총수 일가만 비판하지 삼성을 비판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납북된 김영남씨의 ‘돌발입북’이란 말장난을 연상시켜주는 궤변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삼성 경영권 세습의 문제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지금 삼성의 주식을 장악하고 있는 국제금융세력은 2-300년 동안 국가에 제대로 세금내지 않고 부를 세습한 국제금융가들입니다. 한국에서 수조원을 금융사기 한방으로 벌고도 세금을 한 푼도 안 내려는 국제투기꾼들을 눈으로 확인했지요? 이들은 국가 세금을 내지 않고 자기 후손들에게 부를 세습시킨 악랄한 탈세자들입니다.

이건희 일가의 삼성 세습은 삼성의 경영권을 노리는 국제금융세력의 악랄한 세습에 비하면 덜 부도덕합니다. 저는 한국인에 의한 삼성의 세습을 크게 문제 삼지 않습니다. 축적된 부의 세습은 책임경영의 가장 본능적 자극제입니다. 부의 상속은 매도의 대상이 아닙니다. 저는 국적 없는 외국자본에 소유권과 경영권을 빼앗기는 것보다, 한국 기업가의 후손들에 의해서 기업이 세습되는 것을 더 낫다고 봅니다.


◆장성민: 한국경제를 선도하는 대기업 삼성이 갖고 있는 문제점 중의 하나로 무노조 경영을 지적합니다. 삼성은 수십 년 째 무노조 신화를 만들어가면서 노조탄생 자체를 막기 위한 각종 반 노동자적 활동을 벌여 법정다툼으로 비화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이 글로벌 기업을 자처하는 삼성의 한계로 작용하지는 않을까요.

조영환: 저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대해서, 부정적인 측면이 당연히 있겠지만, 긍정적으로 보고 싶습니다. 노조의 궁극적 목적은 ‘고용의 안정과 보수의 극대화’입니다. 평생 직장을 가지고 고봉을 받는 것이 노조 설립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그런데 삼성은 무노조 혹은 비노조 경영을 지속하면서, 노조운동가들에게 ‘노조지옥’입니다. 하지만 삼성의 노동자들에게 실제로 지옥이었는가는 별개의 문제라고 봅니다. ‘노조천국’인 대우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해체 내지는 퇴출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노조천국의 근로자들은 뿔뿔이 흩어지는 신세가 되었고, 노조지옥의 회사에 다니던 근로자들은 세계적 기업에 높은 보수를 받는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노조와 사주가 좋은 화합을 이뤄내는 것은 이상적이지만, 한국사회가 과잉민주화 되면서 노사간의 갈등은 종종 파괴적 결과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노조의 유무에 상관없이 삼성의 노사관계는 노조가 노렸던 바의 목표인 고용의 안정, 보수의 극대화, 경쟁력 있는 직장인을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노조 없는 삼성은 세계적 일류기업에 근로자들은 퇴출되어도, 취업회사들의 조사에 의하면, 다른 회사에 영입되는 1순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된 훈련을 겪은 삼성의 노사문화는 직장의 유동성이 아주 강한 오늘날, 경쟁력 있는 노동자들을 만들어 내놓습니다.

오늘날 세계화된 기업들 중에 노조에 장악된 기업은 없습니다.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인 나이키나 시티그룹에 노조가 득세합디까? 그런 점에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비록 나쁘게 평가될 수도 있지만, 일찍 세계화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노조가 비대해져서, 기업이 번성하는 경우는 드물고, 기업이 무너지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역시 가난한 노동자들이다. 노조의 유무가 근로자의 복지나 권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삼성에서 봅니다.


◆장성민: 저자께서는 시민단체 등의 이른바 삼성 때리기가 외국자본을 이롭게 하는 결과를 나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데요, 어떤 의미입니까.

조영환: 좌파 성향의 인사들이나 시민단체들이 삼성 때리기에 몰두했는데, 그 부수적 효과가 포괄적으로 무엇입니까? 삼성 때리기에 적용하는 도덕적 완벽주의가 국부를 외국에 넘겨주는 가장 효과적인 지렛대임을 좌파세력이 얼마나 신중하게 고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상하게도 좌파 정치세력과 우파 국제금융세력은 공히 한국의 국가해체를 전제로 한 세계정부를 목표로 양측에서 따로 공조하여 공격한다는 느낌도 줍니다.

외국투기세력에 거의 절대적 침묵을 유지하는 좌파 인사들과 시민단체들은 한국의 재벌들에는 이빨을 하얗게 드러내고 달려듭니다. 한국의 노조와 시민단체가 국부유출 방지에 어떤 적극적인 역할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대기업에 대한 과도한 도덕주의적 비판이 결과적으로 국제사회의 경쟁에서 한국 경제와 기업경영에 어떤 역효과를 내는지 좀더 고민하는 좌파 시민단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장성민: 저자께서는 외국자본과 국내자본의 관점에서 삼성의 문제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자본이 외국 것이나 국내 것이냐 하는 문제 보다 자본 그 자체가 갖는 속성이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만큼 자본의 국적성 보다 자본이 갖고 있는 문제점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영환: 자본의 속성은, 국내와 국외를 구분할 필요도 없이, 이익의 극대화(maximization of interest)입니다.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불법과 부도덕도 감행하는 것이 자본의 근본적 속성입니다. 하지만 이익추구를 목표로 하는 자본은 근본적으로 착취의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같은 값이면 국내 착취자들이 국외 착취자들보다 더 낫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외국의 자본도 초기투자의 성격을 띠면, 바람직하지요. 그런데 지금 한국경제를 유린하는 외국자본은 투기성을 심하게 띠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이 해방 직후에 외국으로부터 초기투자를 구할 때에 오늘날 한국의 기업들을 장악한 국제금융세력은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경제개발에 도움을 준 나라가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이었던 것을 이병철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독일과 일본이 초기투자를 많이 했다면, 오늘날 한국의 금융과 산업을 장악한 국제금융세력은 주식투기와 환율조작으로 약소국가들을 약탈합니다.

외자보다 민족자본이 한국경제를 장악하면 더 바람직한 이유는 바로 ‘얼굴 있는 민족자본의 세계화’가 ‘얼굴 없는 국제자본의 세계화’보다 더 약소국 백성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은행을 모두 유태계 투기자본에 장악당한 한국은 경제적 통제력을 상실했습니다. 얼굴 없는 유령자본의 보이지 않는 손이 한국경제를 주무르는 것이 좋습니까? 얼굴 없는 국제금융세력은, IMF 침공으로 경험했듯이, 약소국가와 그 국가의 기업들을 무자비하게 약탈해서는 그림자도 없이 사라지거나 지배합니다.

한국의 재정경제 담당부처가 외국 자본의 앞잡이가 되어있는 현실은 바로 외국투기자본의 병폐를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정부 여당이 금산법과 금융통합법을 만들어서 국내자본의 손발은 묶고 외국자본에만 특혜를 주는 것은 매국적입니다. 비록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자본시장의 개방은 불가피하고 외국자본의 국내 유입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이지만, 외국 투기자본에 대한 국가의 대비는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건전한 외국자본의 초기 투자는 권장해야 하겠지만, 초기투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투기성 자본의 한국경제 장악과 농락은 그야말로 망국적 현상이라고 봅니다.


◆장성민: 저자께서는 이 책을 쓰기 전에 IMF 이후 한국경제가 어떻게 국제금융세력에게 장악당하고 있는지를 추적한 책을 발간 한 바 있습니다. 또 이 책에서도 주식과 환율을 통제하는 국제금융세력이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으면서 손쉽게 한국 경제를 장악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조영환: 필리핀 대학의 왈든 벨로우나 캐빈 다나허는 신흥 산업국의 재정경제부가 구조조정을 외국자본의 요구대로 하는 과정에서 국제투기자본의 프락치 역할을 하는 점을 지적합니다. 저의 책 서문과 첫 번째 글의 서두에서 재정경제부가 바로 국부유출을 돕는 식민지 총독부의 역할을 한다고 지적해 두고 있습니다. 재정경제부나 금융감독원 같은 금융관련 국가기관이 외국자본의 수족 노릇을 하니까, 한국의 모든 은행들이 외국인들의 수중에 장악되는 것 아닙니까?

외환은행의 일개 과장이 BIS를 낮추어서 외환은행을 외국에 넘겨주는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대우가 사라질 때에도 금융관련 고급관료들이 언론과 검찰의 협조를 받아서 매국적 행위를 한 사실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재경부 고급간부들 중에 외국투기자본에 봉사하는 매국노들이 많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외환은행의 헐값매각에 재경부를 비롯한 금융관련 고급관료들이 개입된 것은 일시적인 우발사건이 아니라,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로 보입니다.


◆장성민: 왜 국제금융세력의 삼성 경영권 약탈이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조영환: 1997년 IMF침공으로 한국의 경제가 박살나고 가정이 파탄되는 것이 허다할 때에, 한국에 태어난 민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저의 전공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한국경제가 국제금융세력에 예속되는 부조리에 눈을 뜨게 된 것이지요. 이제 군사, 정치, 문화는 물론이고, 한국의 경제도 완전히 국제투기세력에 예속되었다고 봅니다. 한국 경제의 마지막 자존심처럼 보이는 삼성도 이제 그 운명이 우리의 손이 아니라, 남의 손에 달리게 된 것이지요. 한국 은행과 대기업의 외세종속성에 관심을 두는 것은 민족과 국가의 운명에 대한 한 소시민의 반응으로 보면 됩니다.


◆장성민: 한나라당에 삼성이 차떼기로 정치헌금을 갖다 바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영환: 정치권에 뇌물을 갖다 바치는 기업도 문제이지만, 갖다 바치지 않으면 보복을 당하는 정치풍토가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앞으로도 계속 척결해야 되겠지만, 정경유착은 역사가 지속되는 한 사라지지 않을 현상일 것입니다. 기업은 이윤추구를 위해서 할 짓 못할 짓을 다할 것입니다. 기업은 정치와 종교와 또 다른 윤리를 가지고 있다고 저는 봅니다. 명분과 이상을 중시하는 정치나 종교의 세계와는 달리, 기업은 실리를 중시한다고 봅니다. 한국에서 기업은 실리를 챙기기 위하여 정치권에 눈치를 살펴야 합니다. 대기업이나 은행들도 뇌물 바치기에 능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당합니다.

매우 바람직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뇌물사용의 기술이 기업경영의 기술과 비례하는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면, 외환은행 헐값매각과 관련이 있는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에 대해 저의 책 75페이지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정부가 칼을 잡고 휘두르는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은 뭐든지 권력에 바쳐야 했습니다. 정경유착의 정치풍토 속에서, 분명히 나쁘지만, 뇌물을 안 바치면 보복을 당하는 기업가의 심정을 수용하지는 않지만 이해는 합니다. 정치권의 횡포 혹은 정경유착의 구조가 사라지지 않는 한, 기업가들은 뇌물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정부가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최근 대기업들의 사회헌납금 유행도 ‘변종된 차떼기’인지도 모릅니다.


◆장성민: 왜 이건희를 후기산업사회의 영웅이라고 합니까?

조영환: 그것은 나의 규정이 아닙니다. 버클리의 저명한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의 규정입니다. 벨라는 다원적 가치와 세력이 충돌하는 후기현대사회에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치료할 심리치료사(psychotherapist)와 경영자(manager)를 후기현대사회의 영웅들이라고 지칭했습니다. 20만 명의 식솔을 거느린 이건희는 20만 명의 영웅이고, 10명의 직원을 거느린 사장은 10명의 영웅이라고 봅니다. 산업화시대에 기업가들이 착취자가 아니라 산업역군으로서 칭송받았던 것처럼, 후기산업사회에서 최고경영자들이 영웅 대접받는 시대가 되돌아 온 것입니다.

더욱이 인건비가 맞지 않아서 중국으로 한국의 공장들이 옮아가고 제조업이 몰락하는 오늘날의 한국 상황에서 제조업 회사를 운영하면서 20만 명의 직원들에게 봉급을 주는 이건희는 누가 뭐래도 영웅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더욱이 세계적 첨단 전자산업을 이끌면서 선진 핵심국가에 한국을 끼어들게 만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후기정보화시대에 반드시 영웅이 아닌가요? 기업가를 착취자로 보는 좌파적 시각은 이미 몰락했습니다. 군사적 정치적 영웅들이 사라지는 시대에, CEO가 영웅이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장성민: 이건희 회장의 귀가 크다고 칭찬한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조영환: 실제로 그의 귀가 커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에 대한 캐리커처는 모두 귀가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는 듣기를 오래하고 말하기를 더디게 합니다. 이건희가 여러 형제를 제치고 이병철 회장에게 후계자로 선택된 것도 아마 그의 큰 귀의 덕을 본 것이 아닐까요? 이병철과 이건희는 ‘목계의 도“를 존중한다. 즉 싸움닭들 중에 ’나무닭‘처럼 움직이지 않고 상대를 파악하는 닭이 고수입니다. 비록 한번 일을 시작하면 과감하게 추진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건희는 근본적으로 듣기를 존중한 ’경청의 지도자‘로 보입니다. 이건희의 경청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라서 그의 귀가 크다고 한 저의 주장에 좀 아첨적인 냄새가 나는가요? ㅎㅎㅎ


◆장성민: 마치 북한에서 김일성 체제를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현상을 이건희의 삼성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발견했다면, 너무 과분한 평가일까요? 삼성과 전혀 상관없는 저자의 맹목적 삼성 찬송가를 독자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자못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기사입력: 2006/08/26 [12:14]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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