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창건일은 김일성 우상화 날조품
김일성회고록·교과서·역사서 등 모조리 왜곡·날조
 
조영환 편집인

 

1010일 북한 노동당 창건일은 김일성 우상화 위해 날조된 것

노동당의 뿌리를 김일성이 14세 때 만들었다는 타도제국주의동맹으로 조작

김일성이 만든 최초의 공산당당조직이라는 건설동지사도 꾸며낸 허구

김일성회고록·교과서·역사서·백과사전 등 모조리 왜곡-날조 투성이 [조영환 편집인]

 

1010일은 북한의 조선노동당창건 71주년 기념일. 이날은 또한 북한의 대남적화통일방안인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발표 36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북한은 조선노동당이 19451010일 창건됐다며 매년 성대한 행사를 벌이고 있지만, 이는 역사의 날조다. 서옥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은 8북한의 교과서와 김일성회고록, 역사서, 선전매체 등에 기술된 조선노동당 창건과정과 창건일 등은 우리의 역사를 김일성 1인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모조리 날조된 것이라고 밝히고 이들 문헌에 수록된 가짜 내용들을 낱낱이 공개했다.

 

서옥식 초빙연구위원은 특히 김일성이 14세인 19261017일 만주에서 만들었다는 타도제국주의동맹(異名: ·, /드로 읽는다)이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기반으로 한 조선노동당의 뿌리라는 북한의 주장은 완전히 날조된 것이라면서, 그러한 날조의 증거로 타도제국주의 동맹이란 말은 1968년 이전 북한의 어느 문헌이나 선전매체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밝혔다. 서 연구위원은 특히 주체라는 용어는 19551228일 김일성의 사상에서의 주체라는 제목의 연설 이후 19621219일자 노동신문에서 처음 사용했고, ‘선군이란 말은 김일성 사후 한참 지난 후인 1997107일 조선중앙방송에 처음 등장한 말인데, 이들의 기원이 1926년이란 것은 날조의 극치라고 덧붙였다.

 

조선노동당이 창건된 날은 1949630일이다. 19451010일은 조선노동당 창당일이 아니라 평양에서 열린 조선공산당 서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에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결성한 날이다. 당시 조선공산당 본부(중앙당)는 서울에 있었고, 조선공산당 북한지부가 서울 중앙당의 승인 아래 결성된 것이다. 소련 군정의 로마넨코 민정사령관은 1945108일 서울의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당수)인 박헌영을 개성으로 오게 하여, 평양에서 함께온 김일성과 회동하던 중 논쟁 끝에 결국 서울의 조선공산당을 중앙당으로 인정하고 평양에는 지부인 북조선분국을 둔다고 합의했다.

 

북조선분국의 책임비서는 국내파 공산주의자 김용범(金容範)이 선출됐다. 김일성이 북조선분국을 장악한 것은 19451217일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 소련의 지원으로 총비서에 선출되면서부터다. 김일성의 등장과 관련된 모든 작업은 북한에 단독정권을 세우라는 스탈린의 1945920일자 지령에 따라 소련 극동군 제25군 정치위원 스티코프의 치밀한 지휘로 이루어졌다.

 

▲ 북한의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우표. 북한은 당 창건 7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2015109일 평양에서 중앙보고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10일에는 성대한 군사퍼레이드를 가졌다.

 

조선노동당이 19451010일 창건됐다는 날조된 사실을 기술한 북한교과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1945) 1010일 력사적인 우리 당 창립대회를 여시였다. 대회는 여러 날에 걸쳐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회에서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우리 혁명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력사적인 보고는 대표들의 심장을 틀어 잡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회 첫날인 1010일 당중앙지도기관으로서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를 결성하시고 우리당의 창건을 선포하시였다. 그리하여 위대한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하고 항일의 혁명전통을 계승한 주체형의 혁명적 정당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로써 <타도제국주의동맹(.)>의 결성으로부터 시작된 당창건위업이 빛나게 실현되였다.(출처: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력사(고급중학교 제1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102(2013), pp. 121-122..)

 

김일성은 이후 서울에 본부를 둔 조선공산당과 대등한 위상을 연출하기 위해 1946419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북조선공산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국내에서 조선공산당이 조선정판사사건 등으로 19467월 미군정에 의해 불법화돼 해산되자, 북한은 194611월 남조선노동당(남로당) 결성에 앞서, 1946829일 북조선노동당(북로당)을 창당하고 이후 1949624북로당남로당을 통합해 조선노동당’(위원장 김일성, 1부위원장 박헌영)을 출범시켰다. 따라서 당창건일을 19451010일로 기념하는 것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자 날조인 것이다.

 

조선공산당은 1925417일 경성부(京城府) 황금정(黃金町, 현 을지로)소재 중국음식점 아서원(雅敍園)에서 김재봉(金在鳳), 김낙준(金洛俊, 이명(異名): 金燦), 김약수(金若水), 주종건(朱鍾建), 윤덕병(尹德炳), 진병기(陳秉基), 조동호(趙東祜), 조봉암(曺奉岩), 송봉우(宋奉瑀), 김상주(金尙珠), 유진희(兪鎭熙), 독고전(獨孤佺), 정운해(鄭雲海), 최원택(崔元澤), 이봉수(李鳳洙), 김기수(金基洙), 신동호(申東浩), 박헌영(朴憲永), 홍덕유(洪悳裕) 19인이 비밀리에 조직했다. 초대 책임비서는 김재봉이었다. 192812월 일제의 탄압과 내부분열로 해체되었다가, 해방후인 1945820일 박헌영을 중심으로 여운형(呂運亨허헌(許憲김원봉·한빈(韓斌이주하(李周河) 등이 함께 조선공산당을 재건했다.

 

1945911일에는 공산주의의 ‘11당 원칙에 따라 소련군정의 승인도 받았다. 이후 19461123일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과 함께 남조선노동당(남로당)으로 통합·결성됐다. 결과적으로 조선공산당이 남한지역의 남조선노동당과 김일성의 북조선노동당으로 양립된 것이다. 하지만 남조선노동당은 미군정의 조선공산당불법화 조치와 함께 공산당 간부 체포령으로 박헌영은 월북했고, 나머지 인사들도 모두 숙청·체포됐다.

 

1958년에 출간된 북한의 조선통사’(과학원 역사연구소 편)에서는 19451010일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창건일로 기술하고 있으며, 1946829일 북조선노동당을 창건했고, 19496월 북로당과 남로당이 합쳐 현재의 조선노동당이 창건했다고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김일성이 소련파’ ‘연안파’ ‘빨치산파를 차례로 제거하고 김일성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한 1970년대에 들어 북한의 문헌에서는 김일성 우상화를 위해 역사 날조가 본격화됐다. 이후 북한의 공식 문헌인 정치사전’ ‘력사사전’ ‘현대조선력사’ ‘조선노동당력사’ ‘조선대백과사전과 교과서들은 19451010일을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일이라고 역사를 왜곡, 날조하고 있다.

 

이들 문헌과 교과서에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설립은 아예 기술돼 있지 않다. 1920년대 1차 조선공산당 설립 역사, 그리고 1945년 국내파 공산주의 거두인 박헌영이 주도한 2차 조선공산당 설립 역사도 모두 묻어버린 것이다. 북한이 이처럼 조선노동당 창당일을 조작한 것은 조선공산당 중앙당 박헌영 책임비서의 승인을 받아 북조선분국이 창당됐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밝혀지면 조선 공산주의운동의 시조로 추앙받고있는 김일성의 경력이 탄로날 것을 우려해서이다.

 

그런데 북한의 조선노동당 창건과 관련 북한의 교과서와 김일성회고록, 선전매체들이 또 하나의 코미디 같은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일성이 18세되던 1930년 최초의 공산당 조직인 건설동지사를 만들고 이것이 조선노동당의 씨앗이자 모태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교과서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는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을 준비하기 위한 최초의 공산당조직으로 건설동지사를 만들었다고 또 하나의 조작된 허구를 주장하고 있다.

 

김일성은 회고록에서 카륜회의 직후인 193073일 차광수, 김혁, 최창걸, 계영춘, 김원우, 최효일 등과 같이 첫 당조직인 건설동지사를 결성했으며, 당의 강령과 규약을 채택하지 않고 타도제국주의동맹(打倒帝國主義同盟)’의 강령으로 이를 대신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카륜회의란 1930630일 김일성이 중국 만주 장춘현의 카륜에서 소집했다는 공청(조선공산주의 청년동맹)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대회를 말한다. 북한은 이 회의에서 김일성이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의 원리를 천명했으며, 조선혁명의 지도사상과 혁명노선 및 전략전술을 확립했다고 공식선전하고 있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은 김일성이 만주 화전현(樺甸縣)의 화성의숙(樺成義塾)을 중퇴한 직후, 1926101714세에 화전현에서 결성한 것으로 날조해낸 독립운동 조직이다. 대한민국은 1945년의 해방을 현대사의 시발로 보고 있으나 북한은 김일성이 14세 때 결성했다고 주장하는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조선노동당의 뿌리이자 현대사의 시발점, 즉 김일성 혁명역사의 출발점으로 설정하고 있다.

 

▲ 1920년대 중학생 신분으로 중국 동북지역에서 혁명활동을 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담은 김일성 초상’. 캐나다 일간신문 글로브 앤 메일’(Globe and Mail)이 함경북도 나선시 나진 미술관에서 촬영한 이 초상화는 2010127일자 이 신문에 보도됐다(사진=글로브 앤 메일 캡쳐)

 

북한의 교과서와 역사서를 비롯한 문헌들은 김일성이 19261017일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고 타도제국주의동맹의 당면과업은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이룩하는 것이며 최종 목적은 조선에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며 나아가서는 모든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세계에 공산주의를 건설하자는 것이였다는 강령을 발표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북한은 헌법보다 상위 규범인 노동당규약 전문(前文)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1926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공산주의적 혁명조직으로서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으며 오랜 항일혁명투쟁을 통해 당 창건을 위한 조직적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으며 이에 기초하여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을 건설하였다고 명시함으로써 타도제국주의동맹이 노동당의 뿌리이자 김일성 혁명역사의 출발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김일성이 화성의숙 재학시절 타도제국주의동맹을 만들었다는 것은 역사의 허구이자 날조다. 북한에서 타도제국주의동맹이 처음 언급된 공식자료는 평양의 인문과학사가 1968에 출간한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백봉(白峯) 지음)이란 책이다. 1926년이 근대와 현대를 가르는 현대사의 시발이라면 김일성이 타도제국주의동맹을 만들었다는 보도나 기록이 일제식민지시대를 포함, 1968년 이전에 있어야 하나 당시 북한의 어느 기록이나 문헌, 언론보도에도 그런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김일성이 조직했다는 ·은 사실은 이종락(李鍾洛)1929-1930년 경 조직한 반제국주의 운동단체인 길흑농민동맹’(吉黑農民同盟)을 이름을 바꿔 1926년에 결성한 것처럼 조작한 것이다.

 

만약 타도제국주의동맹이 조선로동당의 뿌리라면 19451010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설치(현재 북한이 조선노동당 창당일로 지키고 있는 날), 19451217일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선출한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위원회, 194628일 김일성을 임시위원장으로 선출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1946828북조선공산당간판 내리고 열린 북조선노동당창당대회, 1947217일 제1차 북조선인민회의, 1948327일 북조선노동당 제2차 당대회, 1949630일 북조선노동당과 남조선노동당 합당을 통한 조선노동당 출범식, 1956423일 조선노동당 제3차 당대회, 195833일 제1차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의, 1961911일 조선노동당 제4차 당대회 등 초기 인민회의와 노동당대회에 타도제국주의동맹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언급될만도 하지만 단 한 번도 언급됐다는 기록이 없다.

 

특히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조선노동당의 뿌리라고 규정하면서도 1945년 창당대회에서 이 용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북한의 문헌 기록상 1968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에 처음 언급된 타도제국주의동맹은 1971년의 역사사전’, 1973년의 정치사전에서 조금씩 언급되다가 1980-1981년 출간된 조선전사’(朝鮮全史)에서 현대사의 기점으로 승격된다.

 

조선전사김일성회고록등 북한 간행물들은 김일성(왼쪽에서 세 번째) 조선노동당의 뿌리가 되는 타도제국주의동맹14세때인 19261017일에 조직했다고 날조하고 있다. 김일성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는 위 사진에 대해 김일성이 동지들과 함께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는 장면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김일성이 14세 때 공산주의건설 위한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다고 가르치는 교과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주체 15(1926)1017일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시였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는 모임은 연탁도 없는 수수한 온돌방에서 진행되였다. 모임에는 최창걸, 김리갑, 리제우, 강병선, 김원우, 박근원 등 핵심성원들이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하신 보고에서 타도제국주의동맹의 당면과업과 최종목적을 밝힌 투쟁강령을 내놓으시였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의 당면과업은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이룩하는 것이며 최종목적은 조선에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며 나아가서는 모든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세계에 공산주의를 건설하자는 것이였다.>(출처: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력사(고급중학교 제1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102(2013), p. 15.)

 

따라서 건설동지사가 조선로동당의 뿌리라는 김일성의 주장은 완전한 날조다. 건설동지사가 첫 당조직이란 것은 해방 후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가 1983년에 와서야 조선노동당 기관지 근로자에 게재된 어용학자 주용목(조선로동당 력사연구소 부소장)의 논문에서 처음 언급된다.

 

김일성은 1945년 해방 전까지 조선공산당을 만들거나 당원이 된 일이 전혀 없는 인물이다. 김일성은 오히려 1931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후 1930년대는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항일연군 소속으로 만주에서, 그리고 1940년대는 소련 극동군 25군 예하 88정찰여단 소속으로 연해주에서 청년시절을 보냈다. 당시 중국영토와 소련영토에서 외국인이 당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더구나 코민테른(Communist International)‘11당원칙에 중국공산당이나 소련공산당 외에 다른 당을 만들 수 없는 처지였다.

 

 

▲ ‘조선전사김일성회고록등 북한 간행물들은 김일성(왼쪽에서 세 번째) 조선노동당의 뿌리가 되는 타도제국주의동맹14세때인 19261017일에 조직했다고 날조하고 있다. 김일성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는 위 사진에 대해 김일성이 동지들과 함께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는 장면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조선노동당의 모체가 건설동지사라는 허구를 가르치는 북한 교과서 내용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카륜회의가 있은 다음날인 주체19(1930)73일 당조직을 내오기위한 회의를 여시였다. 회의에는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들이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첫 당조직을 무으신 다음 그의 결성을 엄숙히 선포하시였다. 첫 당조직에는 김형권, 차광수, 김혁, 최창걸선생님을 비롯한 핵심적인 청년공산주의자들이 망라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기층당조직을 하루빨리 넓은 지역에로 늘여 나가며 대오의 통일단결을 위하여 힘써야 한다고 하시였다. ...중략...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첫 당조직 - 건설동지사는 우리당의 태아였고 씨앗이였으며 당의 기층조직들을 내오고 확대하는 데서 모체적의의를 가지는 조직이였다.>(출처: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력사(중학교 제4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92(2003), pp. 25-26.)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카륜회의가 끝난 다음날인 주체19(1930)73일 당조직을 결성하시였다. 첫 당조직결성모임은 카륜의 진명학교 교실에서 진행되였다. 연탁 옆에는 혁명을 위하여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바쳐 싸우려는 청년공산주의자들의 의지를 그대로 담은 붉은 깃발이 세워져있었다. 회의에는 차광수, 김혁, 최창걸을 비롯한 공청및 반제청년동맹 지도 간부들이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더운 동지들을 둘러보시고 나서 오늘 우리는 첫 당조직을 뭇는 력사적인 회의를 가지게 된다고 하시였다.

 

청년공산주의자들은 끓어오르는 감격을 금할수 없어 서로서로 손들을 굳게 틀어잡았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하신 연설에서 첫 당조직의 지위와 사명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오늘 결성한 혁명적당조직은 장차 창건될 우리 당의 시원으로 되며 우리 당 창건을 위한 당의 기층조직들을 조직확대함에 있어서 모체적의의를 가지는 조직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연설에서 또한 당조직성원들 앞에 나서는 과업을 밝히시면서 하나의 사상의지로 뭉치자!”는 구호를 제시하시였다. 첫 당조직에 가입한 청년공산주의자들은 모두가 일어나서 격정에 넘치는 열변을 토하였다. 김혁은 출범이다. 우리의 배는 항구를 떠났다. 우리는 격랑을 헤치며 먼 바다로 노를 저어간다.” 내용으로 즉흥시를 읊었다. 첫 당조직의 명칭은 건설동지사였다.(출처: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력사(고급중학교 제1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102(2013), pp. 32-33.)

 

김일성이 첫 공산당조직을 결성했다는 거짓을 보도하고 있는 우리민족끼리기사

 

건설동지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주체19(1930)73일 카륜에서 결성하신 주체형의 첫 당조직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20년대 후반기에 타도제국주의동맹과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결성하시고 새 세대 혁명가들을 키우신데 기초하여 주체19(1930)년 여름 카륜에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회의를 소집하시고 자주적으로 당을 창건하며, 기층당조직을 먼저 내오고 그것을 확대강화하는 방법으로 당을 창건하며, 당창건준비사업을 반일투쟁과 밀접히 결부하여 진행할데 대한 독창적인 당창건방침을 내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카륜회의를 마치신 다음날인 주체19(1930)73일 첫 당조직을 결성하는 모임을 가지시였다. 모임에는 카륜회의에 참가했던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들이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임에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들의 입당을 보증하시였으며 첫 당조직의 결성을 엄숙히 선포하시고 당조직결성에 즈음하여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기층당조직을 먼저 내오는 방법으로 당조직건설사업을 추진시켜나갈데 대한 방침을 다시금 천명하시고 결성된 첫 당조직의 지위와 사명, 그 조직성원들앞에 나서는 과업에 대하여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결성하신 첫 당조직은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는 주체형의 혁명적당조직으로서 조선로동당의 영광스러운 시원이였으며 당의 기층조직들을 내오고 확대하는데서 모체적의의를 가지는 조직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지들을 얻는것으로부터 혁명을 시작하며 생사를 같이할수 있는 동지들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결속시켜 혁명을 심화발전시키고 종국적승리를 이룩해나가야 한다는 혁명적신념과 의지를 담아 첫 당조직의 명칭을 건설동지사로 부르게 하시였다.

 

첫 당조직이 결성됨으로써 우리 나라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령도하시는 참다운 혁명적당조직이 탄생하게 되였으며 새 세대 혁명가들이 혁명의 진정한 전위조직을 가지고 그 통일적지도밑에 당창건준비사업을 힘있게 벌려나갈수 있게 되였다. 첫 당조직을 모체로 하여 국내와 만주의 넓은 지역과 유격부대안에 당조직들이 급속히 확대되고 그에 대한 통일적인 당조직지도체계가 정연하게 서게 되였으며 이 과정에 위대한 수령님을 중심으로 하는 혁명대오의 통일과 단결이 강화되였다. 《ㅌ. ㄷ》에서 뿌리가 내리기 시작하고 첫 당조직에 시원을 둔 조선로동당은 이렇듯 튼튼한 조직사상적기초우에서 해방직후 지체 없이 창건되였다.(출처: 우리민족끼리, 주체104(2015)73일자 기사)

 

김일성 회고록도 자신이 18세 때 최초의 당조직을 결성했다고 날조

 

우리는 193073일 카륜의 진명학교교실에서 차광수, 김혁, 최창걸, 계영춘, 김원우, 최효일 동무들로 첫 당조직을 무었다. 회의에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김리갑, 김형권, 박근원, 이제우 동무들도 첫 당조직의 성원으로 되었으며 조선혁명군 대장으로 내정되어있던 이종락과 박차석도 이 조직의 성원으로 되었다. ...중략... 다만 당조직성원들이 해야 할 과업으로 기층당조직을 확대하고 그에 대한 통일적 지도체계를 수립할 데 대한 문제, 대오의 조직사상적 통일과 동지적 단합을 확고히 이룩할 데 대한 문제, 혁명의 대중적 지반을 튼튼히 다질 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그 실현방도로서 당조직이 모든 활동에서 자주적 입장을 확고히 견지할 데 대해서와 당조직 건설사업을 반일투쟁과 밀접히 결부시킬 데 대하여 강조하였을 뿐이다. ...중략...

 

첫 당조직 건설동지사는 우리 당의 태아였고 씨앗이었으며 당의 기층조직들을 내오고 확대하는데서 모체적 의의를 가지는 조직이었다. ...중략... 국내에 당조직을 내오는 일은 내가 맡아하였다. 나는 1930년 가을에 우리의 영향이 비교적 강하게 미치고 있던 함경북도 온성군에 나가 국내 당조직을 무었다. ...중략... 우리가 중국공산당과의 깊은 연계밑에 공동투쟁을 발전시켜나간 것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이 남의 나라 땅에서 혁명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당시의 복잡다단한 정세와 11당제에 관한 국제당 노선의 요구에 부합되는 주동적이면서도 신축성있는 조치였다. 우리는 중국공산당과의 이러한 공동투쟁을 적극 발전시키면서 시종일관 조국해방의 기치, 조선혁명의 주체노선을 견지하였으며 그것을 빛나게 관철하였다. ...중략...

 

반일인민유격대가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된 후 우리는 유격대 안에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를 내왔다. 그것은 카륜에서 조직된 첫 당조직의 확대발전으로 이루어진 결실이었다. 우리의 자주적인 당조직은 그 후 조국광복회 국내조직인 조선민족해방동맹과 농조, 노조들에도 뿌리를 뻗치었다. 우리가 조국에 개선한 후 한 달도 못되는 사이에 당창건의 위업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항일혁명의 장구한 나날 당건설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과정에서 이룩한 성과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출처: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2<첫 당조직 - 건설동지사>

 

한심한 것은 이처럼 조선노동당 창건의 역사는 철저한 역사 조작인데도 우리 언론들은 이를 기정사실화하면서 해마다 1010(쌍십절)이면 북한에 벌어지는 행사와 함께 북한 지도자들의 관련 동향을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1010일을 무조건 북한 노동당 창건일이라고 보도하는 것은 김씨 세습 전체주의 왕조를 정당화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사입력: 2016/10/08 [19:19]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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