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생포럼, 4·19의거 57주년 성명
"反자유적 중우정치에 종말을 고해야"
 
류상우 기자

 

한국대학생포럼(이하 대학생포럼)이 4.19의거 57주년에 “反자유적 중우정치에 종말을 고해야 할 때”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대학생포럼 일동은 수 십 세기 넘도록 전근대적이고 인습적인 정치 체제를 유지해왔던 한반도에서 민중들 스스로가 자유민주주의를 꽃 피운 1960년 4월 19일을 기념한다. 순국한 선배들과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자유’를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자유’와 ‘법치’라는 두 기둥은 그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기업에 대한 권력의 가격 통제가, 규제가, 갈취가 만연하고 있고, 구속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가진 자’라는 이유만으로 구속 기소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을 빌리자면, 늑대 두 마리와 양 한 마리가 식사로 무얼 먹을지 투표하는 형국”이라며 “대중을 내세운 늑대들의 저돌적 포효 앞에 법치와 자유는 없다. 법치와 자유라는 방패가 양에겐 가당치 않고, 늑대들은 얼핏 정의로워 보이는 ‘민의(民意)’라는 대검으로 양의 머리를 베어버린다”고 비유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과잉민주화의 적폐를 지적했다.

 

대학생포럼은 “광장은 ‘민주주의’라는 선한 탈을 쓰고 한 마리의 양을 늑대로 만들어준다. 스스로가 양임을 깨달을 때, 이미 그는 늑대만의 정의를 실현키 위한 피의 제물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것이 광장에서 생산되는 ‘유사(pseudo) 민주주의,’ 즉 중우정치의 생태”라며 “우리 사회와 정치권은 이처럼 명징한 진리를 잊어버리고, 국가 경제를 좀먹는 노동 권문세족과 종북세력, 설계주의자들의 농간에 휘둘려 수단을 본위로 삼는 중대한 과오를 범하였다”고 지적했다. 대학생포럼은 “오늘날 민주주의를 압제하는 것은 더 이상 총칼이 아니다”라며 “광장이 건네주는 늑대라는 ‘작위’”라고 규정했다.

  

대학생포럼은 “늑대들은 우리에게 죽음을 줄 뿐이다. 우리의 목초지를 불태워 우리의 살덩이로 바비큐 파티를 벌일 것”이라며 “중우정치의 쓰나미를 마주한 자유의 등대는 청년들 스스로가 방파제가 되어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4.19 선배들의 거대한 족적 앞에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며 대학생포럼은 “한 줄의 반성문을 쓰기 위한 햇빛조차 늑대와 로베스피에르들의 그림자에 가려져있다. 우리는 이 부끄러움을 딛고, 중우정치와 설계주의로부터 시장 경제와 사상의 자유를 지킬 것”이라며 “이제는 광장은 '양들의 에덴(Eden)'이 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류상우 기자]

 

 

한국대학생포럼 성명: "4.19 57주년, 反자유적 중우정치에 종말을 고해야 할 때"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정의를 지키기 위한 국민들의 뜨거운 함성은 57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법전 속에 시퍼렇게 살아있다. 한국대학생포럼 일동은 수 십 세기 넘도록 전근대적이고 인습적인 정치 체제를 유지해왔던 한반도에서 민중들 스스로가 자유민주주의를 꽃 피운 1960년 4월 19일을 기념한다. 순국한 선배들과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자유’를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자유’와 ‘법치’라는 두 기둥은 그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에 대한 권력의 가격 통제가, 규제가, 갈취가 만연하고 있고, 구속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가진 자’라는 이유만으로 구속 기소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을 빌리자면, 늑대 두 마리와 양 한 마리가 식사로 무얼 먹을지 투표하는 형국이다. 대중을 내세운 늑대들의 저돌적 포효 앞에 법치와 자유는 없다. 법치와 자유라는 방패가 양에겐 가당치 않고, 늑대들은 얼핏 정의로워 보이는 ‘민의(民意)’라는 대검으로 양의 머리를 베어버린다.

 

그러나 실상 두 마리의 늑대 중 한 마리는 스스로를 늑대라 생각하는 양에 불과하다. 그 양은 한 마리의 늑대만을 위한 정의에 호도되어 옆에 있는 동료에게 죽음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을 뿐이다. 광장은 ‘민주주의’라는 선한 탈을 쓰고 한 마리의 양을 늑대로 만들어준다. 스스로가 양임을 깨달을 때, 이미 그는 늑대만의 정의를 실현키 위한 피의 제물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것이 광장에서 생산되는 ‘유사(pseudo) 민주주의,’ 즉 중우정치의 생태다.

 

우리 선배들은 피의 혁명으로 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정치권력의 부패와 불의로부터 ‘국민이 주인’임을 천명하고 주권을 쟁취한 4.19 혁명은 분명 숭고하였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본위는 피와 혁명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본위는 ‘자유’와 ‘법치’여야만 한다. 피와 혁명은 그 본위를 지키기 위한 제한적이고 일시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와 정치권은 이처럼 명징한 진리를 잊어버리고, 국가 경제를 좀먹는 노동 권문세족과 종북세력, 설계주의자들의 농간에 휘둘려 수단을 본위로 삼는 중대한 과오를 범하였다.

 

패기 넘치는 청년들이었던 4.19 민주화 세대는 지금 여든을 넘나드는 백발 무성한 노인들이 되었다. 태극기로 감싼 친구의 주검 앞에 그들이 내지른 추상(秋霜)같은 함성은 진정한 지유민주주의를 가져왔다. 그러나 60여 년 전 지키고자 했던 숭고한 가치가 끝없이 침잠(沈潛)하는 처참한 상황 속에 그들은 수많은 로베스피에르들의 거친 숨결이 지배하는 광장으로 몸을 내던졌다. 그러나 늙고 지친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늑대들의, 그리고 스스로를 늑대라 착각하는 젊은 양떼들의 조롱과 협박뿐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를 압제하는 것은 더 이상 총칼이 아니다. 광장이 건네주는 늑대라는 ‘작위’다. 작위에 춤추며 파안대소하는 청년들이여, 양들이여! 그대들은 늑대가 아니다. 양의 무리로 돌아오라. 늙은 양들이 지난 날 우리에게 넓은 목초지를 선사했듯, 우리도 후세들에게 드넓은 초원을 선물하자. 늑대들은 우리에게 죽음을 줄 뿐이다. 우리의 목초지를 불태워 우리의 살덩이로 바비큐 파티를 벌일 것이다. 중우정치의 쓰나미를 마주한 자유의 등대는 청년들 스스로가 방파제가 되어 지켜야만 한다.

 

한국대학생포럼 일동은 4.19 선배들의 거대한 족적 앞에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한 줄의 반성문을 쓰기 위한 햇빛조차 늑대와 로베스피에르들의 그림자에 가려져있다. 우리는 이 부끄러움을 딛고, 중우정치와 설계주의로부터 시장 경제와 사상의 자유를 지킬 것이다. 이제는 광장은 '양들의 에덴(Eden)'이 되어야 한다.

 

2017.04.19 행동하는 지성, 한국대학생포럼 

 

 

기사입력: 2017/04/19 [16:08]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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