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김일성의 지시에 따른 '인민봉기'
서옥식 박사 "광주사태는 북한 개입" 북한 문헌 소개
 
조영환 편집인

 

박근혜 정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가기념곡으로 제창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탄핵 이후 졸속대선을 거쳐 집권한 문재인 정권은 이번 518일 '광주사태' 기념식을 거창하게 거행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사태'는 민주화세력이 득세한 오늘날 법적으로 민주화운동으로 지칭되고 있지만, 여전히 군중선동혹은 군중봉기로 평가받을 수 있다. 더욱이 일부 우익진영에서는 북한 개입설까지 주장하면서 광주사태의 민주화운동적 성격에 대치하여 반란폭동의 측면을 강조하기도 한다. 북한은 '광주사태'가 남조선 사람들이 김일성의 뜻을 받들어 일으킨 '인민봉기'로 규정한다. 아래는 광주사태를 보는 북한의 시각을 서옥식 박사가 북한의 각종 문헌들 토대로 정리한 것이다. [조영환 편집인]

 

 

“5.18은 김일성의 지시 따른 인민봉기

서옥식 박사, 북한 문헌에 나타난 광주항쟁분석 

주체의 기치따라 남조선 인민이 봉기했다

남조선 반파쇼-반미투쟁 중 가장 성공한 사건 규정

온갖 악성유언비어 진원지는 북한과 국내 동조세력

최악의 유언비어는 대검으로 배가르고 태아꺼내 내동댕이쳤다

탈북자들, “북한 특수군 개입으로 사태 악화시켰다

 

  

18일은 광주항쟁’ 37주년이 되는 날! 1980518일부터 27일까지 계속된 이 사건에 대해서는 5.18, 광주사태, 광주항쟁, 광주민중봉기, 광주민중(시민)항쟁, 광주무장폭동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다가 1988년 정부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이 이름이 보편화됐다. 국내에서의 공식적인 영어표현도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이다.

 

하지만 광주민주화운동이란 이름은 그 자체에 가치가 개입돼 있다는 점에서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래 민주화운동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민주화를 위한 대의명분을 정강정책으로 내세워 결사조직체 내지 본부(本部)가 미리 결성돼 장기지속적인 사회운동을 하면서, 일종의 평화시위 내지 가두서명 등 평화적인 의사표현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대한민국의 헌법을 지키고 자유민주주의적 질서 내에서 사회적 문제점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 체제를 전복하거나 거사나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서 무장폭동으로 변질되는 것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북한문제 연구가인 서옥식 박사(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는 해외 언론에서는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대신 Revolt, Uprising’ 등의 용어를 사용, ‘the Gwangju Revolt of May 1980’, ‘the May 18th (anti-government) Uprising in Gwangju’와 같은 표현을 즐겨 쓰고 있다고 소개했다. 서옥식 박사는 “revoltuprising은 다같이 지배에 대한 저항이라는 가치중립적인 의미로 널리 쓰이는 말이라고 전제하고, 실제 광주민주화운동이 2011년 유네스코 인권기록유산으로 등재될 때 한국어 명칭은 <1980년 인권기록유산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록물>이지만 영어 공식 명칭은 <Human Rights Documentary Heritage 1980 Archives for the May 18th Democratic Uprising against Military Regime in Gwangju, Republic of Korea>임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광주항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해방 이후 남한에서 일어난 소요사태19805월의 광주항쟁만큼 북한의 관심을 끈 사건도 드물다. 북한은 광주항쟁을 계급투쟁적 시각에서 노동자, 농민, 근로인텔리에 의한 인민봉기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민봉기는 김일성을 지지하여 김일성의 뜻을 받들어 일어났다고 주장하면서 각종 문헌과 보도물에 기술하고 있다.

 

북한이 5.18 광주항쟁 이후 발간해 주민교육과 각급학교 부교재 등으로 활용하고있는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1982)’이라는 책은 5.18을 민중봉기로 규정하면서 5.18광주인민봉기는 주체의 기치에 따라 남조선 애국인민들이 호응하여 일으킨 반파쇼-반미 투쟁중에서 가장 성공한 인민혁명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5.18을 소재로 한 북한책 광주의 분노'와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 그리고 이들 책에 나와있는 유언비어들을 베꼈다는 지적을 받고있는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 1985년판.

 

이를 부연하면 남조선에서의 봉기들은 다 주체(김일성)의 지시아래 남조선 인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투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중에서 광주항쟁이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는 것이다. 이는 소학교 4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다음의 내용으로도 뒷받침된다.

 

밤이면 아버지 원수님(김일성)의 품속에서 세상에 부럼없이 행복하게 자라는 공화국 북반부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소곤소곤 들려주던 누나! 미제와 전두환 악당놈들을 반대하여 싸우는 길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또박또박 가르쳐주던 누나를 남조선 괴뢰군의 총칼에 잃었다는 남철이라는 이름의 한 가공 소년을 내세워 그가 죽은 누나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누나, 내 기어이 미제와 전두환 악당놈들을 복수하겠어. 그리고 누나가 그처럼 바라던 아버지 원수님(김일성)과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김정일)의 품에 꼭 안기겠어라고 맹세하는 장면이다.

 

북한은 매년 군중대회를 열어서 5.18을 기념하면서 남한을 비방하고 반미투쟁으로 활용하는 계기로 삼아왔다. 북한의 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1980년 이후 매년 518일이면 사설 또는 논설을 통해 5.18의 의미를 높이 평가하고 남한당국을 비난해왔다.

 

로동신문이 사설을 통해 5.18을 처음 논평한 것은 소요사태가 진압된 이틀 후인 1980529일자에서였다. 로동신문은 남조선 인민들의 반파쇼민주화 투쟁사에 빛나는 장을 기록한 력사적 사변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광주인민봉기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피압박인민들의 투쟁에서 특출한 의의를 가지는 역사적 사변이라고 정의하고 봉기는 전제정치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동방 인민들의 근대역사에서 처음 있는 사변이라고 평가했다.

   

소설가 황석영, 목사 문익환 등이 1989327일 평양에서 김일성과 함께 찍은 사진. 왼쪽으로부터 정경문, 문익환, 김일성, 황석영, 유원호씨. 5.18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개사 작시로도 유명한 황석영은 다섯 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하고 일곱 차례 김일성을 만났다. 문 목사는 1989325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고문 자격으로 통일민주당 당원 유원호와 재일평론가 정경모와 함께 평양을 불법, 비밀 방문해 다른 경로로 미리 방북해있던 황석영과 합류했다. 문목사는 42일에는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 허담과 연방제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조선중앙방송 TV화면 촬영: 안기부 제공)

 

로동신문은 이어 61일자에서 모든 애국적인 민중은 반파쇼 구국의 기치아래 민주화의 아침을 앞 당겨오기 위해 총 분기하라는 제목의 격문을 통일혁명당중앙위원회 명의로 발표하고 노동대중, 지성인, 언론인, 장병과 경찰들이 모두 함께 반파쇼구국투쟁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신문은 614일자에서는 지면의 3면 전면을 할애해 만천하에 고발함광주살륙만행백서를 통일혁명당중앙위원회명의로 발표했다.

 

‘5.18 유언비어 역사를 가장 먼저 쓴 곳도 북한 당국이다. 19805.18항쟁이 끝나기도 무섭게 평양의 삼학사라는 출판사가 광주사태란 총 83쪽의 소책자를 냈고, 이어 1982410조국통일사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이라는 631쪽의 역사책을 썼으며, 이어 조선로동당출판사가 1985516119쪽에 달하는 광주의 분노를 출간했다.

 

김일성은 1991년 황석영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광주사태를 소재로 한 영화, ‘임을 위한 교향시를 만들었다. 황석영이 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이 원본이 됐고 주제곡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황석영은 2017511일 이 책의 개정증보판을 출간했다고 발표했다.

 

5.18유언비어의 원전은 찢어진 깃폭이다. 조총련 또는 북한 첩자로 알려져있는 전남 무안출신의 김건남이란 사람이 북한의 유언비어 책자 광주사태를 참고하고, 5.18당시 시시각각 광주 일원에서 청취한 북한발 유언비어들을 수기형태로 기록한 책으로, 1980530일 서울의 명동에서 은밀히 소개됐다(하지만 이 찢어진 깃폭은 북한에서 먼저 만들어졌다는 주장 또한 만만치 않다). 이 수기집은 국내 종북 천주교 신부들의 주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천주교정의평화협의회명의로 198066일 출판됐는데, 이 책 내용을 훔쳐 그대로 베껴서 다른 이름으로 남한에서 내 놓았던 책들이 광주백서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이다.

 

광주백서는 1982년 초 소준섭(전 국회도서관 조사관)이란 사람이 남민전의 5.18자료와 찢어진 깃폭을 베껴 만들었다고 하나 소준섭의 작품이 아니라 원 저자는 북한에 있다는 설 또한 만만치 않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은 전남대를 갖 졸업한 이재의가 찢어진 깃폭광주백서를 짜깁기해 만들었으나 1985515일 황석영의 이름으로 출간됐다. 이처럼 남한에서 출간된 5.18관련 유언비어-왜곡날조의 책들 찢어진 깃폭’, ‘광주백서’,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의 출판 년도는 북한 책들인 광주사태’,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의 투쟁’, ‘광주의 분노의 출판 년도와 정확하게 일치할 뿐 아니라 내용역시 비숫하다.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1987년 작성한 ‘5월 그날이 다시오면: 광주의거 자료집도 이들 남북한의 유언비어집을 베꼈다는 지적을 받는다.

 

5.18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청년 이재의가 1985년 자신의 책에서 시위대의 전투적 용어들을 사용해 기술한 내용은 북한에서 1982년에 발간된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에 나타나 있는 표현들과 대동소이하다. 이재의가 기술한 도심지 투쟁’, ‘기동성’, ‘전위대’, ‘대열’, ‘가두투쟁등의 전투용어는 북한 책에서 사용한 용어와 너무 유사하다. 이재의의 1985년 책 내용을 북한이 1982년 책에 베껴 쓸 수는 없지 않겠는가.

 

19892월 국회 5.18 청문회에서 당시 노무현 의원은 황석영의 책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을 달달 외운 지식으로 전두환 전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지면서 스타가 된 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선택됐으며,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사건의 핵심 인사인 박형선(남민전 여전사 임을 위한 행진곡속의 여 주인공 박기순의 오빠)이 공동 조직한 노사모의 힘을 얻어 대권을 거머쥐었다. 김대중 대통령도 황석영의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이 영문으로 번역돼 자신의 민주화운동 선전물로 해외에 소개됨으로써 노벨평화상을 받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5.18단체들이 201035.18역사 기록물을 유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신청을 할 때 그 내용의 대부분은 이재의가 쓰고 황석영 이름으로 출간된 유언비어집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이 기초가 된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국군을 살인마로 왜곡, 날조한 북한 김일성 집단의 유언비어집을 베껴 온 세계에 퍼뜨리는 꼴이 됐다.

 

로동신문은 2010518일에는 광주인민봉기 30돐 기념 평양시 보고대회개최를 소개하며 광주 민주화 운동을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식민지 파쇼통치를 반대하고 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일떠선 남조선인민들의 정의의 반미반파쇼민주항쟁이라고 규정하며 미제침략군을 몰아내고 미국의 지배와 예속에 반대하며 북침전쟁책동을 분쇄하기 위한 반미반전 투쟁의 불길을 세차게 지퍼 올려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북한은 특히 1985년 이후 인민학교(2002년부터는 소학교로 개칭) 4학년 국어교과서에 누나의 사진이라는 제목으로 5.18광주항쟁 때 게엄군의 총칼에 누나를 잃었다는 남철이란 이름의 한 소년이 몇 년 뒤 광주시가 내려다보이는 산언덕의 누나 무덤에서 누나 사진을 꺼내보며 미제와 전두환 악당놈들에게 복수를 다짐하고 김일성 원수님(1992년에 대원수로 추대)과 김정일 지도자선생님의 품에 안기겠다는 내용의 글이 실려 있다.

 

함께 거리에 나선 누나가 , 이것이 전두환이 보내는 선물이다!”라고 외치는 게엄군의 총칼에 찔리어 죽었다는 얘기다. 괴뢰군놈들이 시퍼런 총창으로 누나의 유방을 쿡쿡 찔러 후벼대고 길바닥에 내동이쳤다고 적고 있다. 이런 내용은 북한의 대남공작 문건이나 언론보도에 실려 있는 사실무근의 유언비어와 대동소이하다.

 

공수대원들에 환각제를 먹였다’, ‘전라도의 씨를 말리라 명령했다’, “젊은 놈은 모조리 죽여라, 광주시민 70%는 죽어도 좋다‘, ‘여학생의 유방을 대검으로 도려냈다’, ‘임산부의 배를 대검으로 찔러 가르고 태아를 꺼냈다’, ‘여성의 국부에 장검을 깊숙이 박아 넣었다는 등은 검찰조사 결과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런 말들은 북한당국과 남한 내 북한 동조세력이 계엄군과 국가를 모략하고, 남한 국민은 물론 북한 주민들을 선동하기 위해 지어낸 유언비어였다.

 

  

광주의 분노’(김선철, 북한 조선로동당출판사 1985.5.16)광주백서’(1982 발행)가 소개한 에피소드를 부지기수로 베꼈다. 그중 한 대목만 소개한다. 광주에서 직접 확보한 증언을 바탕으로 썼다는 광주백서한 부분을 먼저 읽어보자.

 

<여대생으로 짐작되는 세 명의 아가씨들이 공수병에 의해서 서서히 껍질이 벗겨지고 부라자와 팬티까지 모조리 찢어내고 그중 유독 험하게 생긴 공수병이 워커발로 아가씨의 궁둥이를 걷어차면서 빨리 꺼져 이년들아. 지금이 어느 때인 줄 알고 데모하고 지랄이야.” 성난 늑대처럼 내몰았다. 그러나 이 일을 어찌하랴. 처녀들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같이 가슴을 쓸어안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 이때 한 놈이 고함쳤다. “이 썅년들이 살기가 싫은가봐. 그럼 할 수 없지.” 순간 아가씨들의 등에는 대검이 똑같이 꽂아지면서 분수를 뿜어냈다.>

 

광주의 분노광주백서의 이 대목을 이렇게 베꼈다: 

 

<공정대 놈들은 붙잡아온 세 명의 녀학생을 세워놓고 갖은 희롱을 다하면서 겉옷부터 시작하여 속옷까지 차례차례 벗겼다. 세 녀학생을 알몸으로 만들어놓은 놈들은 한참 히히닥거리더니 군화발로 녀학생들을 걷어차며 빨리 꺼져 이년들아, 지금이 어느 때라고 지랄이야!” 하고 울부짖었다. 녀학생들은 도망치는 게 아니라 알몸이 된 것이 부끄러워 앞가슴을 그러안고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우악스럽게 생긴 한 놈이 이 썅년들이 살기가 싫은가봐하고 지껄이며 녀학생들의 잔등에 차례차례로 총검을 내려박았다.>(출처: 김선철, 광주의 분노, 조선로동당출판사, 1985, pp.19-20)

 

황석영(이재의)이 쓴 책‘5월 민중항쟁의 기록과 북한에서 발간되었던 책 광주의 분노그리고 5.18사료편찬위원회의가 기술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내용 중 일부도 대조해본다.

 

공수대원들은 얼굴이 붉어 있었고 눈은 술기운과 살기로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22일에 시민군에 의하여 포로가 된 몇 명의 공수대원의 진술에 의하면, 이들은 출동하기 전에 독한 술에다 환각제를 타서 마신 상태였으며, 수통에는 빼갈을 담고 있었다.(황석영, 5월 민중항쟁의 기록, 1985, p. 50.)

 

전두환 놈은 그 놈들을 이틀 동안 굶긴 후 환각제를 탄 술을 먹여 마취시켰다. 원래 살인기술만을 익혀 온 데다 환각제까지 먹은 공정대놈들은 야수의 본성을 남김없이 드러냈다(김선철, 광주의 분노, 1985, p. 18.)

 

1819일 환각제와 술을 마신 흡혈귀 계엄군들에 의해 학생.시민이 머리가 깨지고, 팔이 잘리며, 창자가 밖으로 튀어 나오는 등 처참한 모습으로 연행되는 것을 지켜보던 광주 시민들은(광주광역시 5.18사료편찬위원회, 5.18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 제2, 2009, p.104.)

 

다음은 서옥식 박사의 저서 <거짓과 왜곡 조작 날조를 가르치는 사회 - 북한 교과서 대해부>(해맞이미디어, 2015)>에 나타나있는 북한 각종 문헌들의 5.18관련 기술내용이다. 북한 교과서에는 1983년 처음 5.18이 기술된 후 2017년 현재도 실려있다. 그 내용은 거의가 유언비어로 가득차 북한의 대남공작 서적이나 선전물과 비슷하고 소설가 황석영의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 그리고 남한의 5.18영화 화려한 휴가와 북한의 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광주인민봉기는 수령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일어난 것

 

 

파쑈독재를 반대하고 민주주의적 자유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19805월에 벌린 전라남도 광주 시민들의 대중적 인민봉기... 광주인민봉기는 남조선인민들의 반파쑈 민주화투쟁에 빛나는 장을 기록한 력사적인 사변이었다.(출처: 조선대백과사전 4, 평양: 백과사전출판사, 1996, pp. 636-637.)

 

광주인민봉기는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식민지 파쇼통치를 반대하고 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일떠선 남조선인민들의 정의의 반미반파쇼민주항쟁(출처: 로동신문 2010518일자, ‘광주인민봉기 30돐 기념 평양시 보고대회개최를 소개하며)

 

남조선인민의 해방투쟁의 력사에 불멸의 위훈의 탑을 쌓아올린 영웅적 광주인민봉기는 커다란 력사적 의의를 가지는 사변으로 된다. 영웅적 광주인민봉기는 그 성격에 있어서 민주와 통일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한결같은 지향을 반영한 대중적인 애국적 항쟁이며 가장 높은 형태의 반파쑈민주화투쟁으로 된다.(출처: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 조국통일사, 1982. p. 596)

 

광주인민봉기는 유신체제를 전면적으로 철폐기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반파쑈민주화투쟁발점의 가장 높은 단계이다.(출처: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 조국통일사, 1982. p. 571.)

 

남조선 혁명가들과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매 시기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새로운 구국통일방안을 내놓으실 때마다 그것을 전적으로 지지하여 나섰으며, 원쑤들의 파쑈폭압과 분렬책동이 극도에 이른 어려운 속에서도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을 끊임없이 벌려왔다.(출처,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 조국통일사, 1982, p. 611).

 

남조선 인민의 불같은 김일성 흠모가 역사적인 광주인민봉기 불렀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하 생략-------

광주인민봉기자들이 투쟁의 광장에서 부른 이 노래는 그대로 광주인민봉기의 숭고한 정신이고 위력한 추동력이였다.

민주와 통일에 대한 광주인민봉기자들의 이러한 뜨거운 열망은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를 통일조국에 모시고 그 따사로운 품속에 안기려는 숭고한 열망으로 세차게 굽이쳤다.

항쟁의 광장에서 꽃다운 청춘을 바친 광주의 이름없는 한 녀학생에 대한 가슴 뜨거운 이야기가 그것을 잘 말하여준다. 그는 항쟁의 거리를 누벼가는 시위대오에 서서 동료들과 함께 통일의 노래를 부르며 전진하던중 괴뢰도청앞 광장의 격전장에서 불행하게도 총탄을 맞고 피흘리며 쓰러졌다. 치명상을 입은 녀학생은 자기를 둘러싸고 흐느끼는 동료들과 시민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길을 달려 경애하는 아버지 김일성장군님의 품에 안기려했어요. ...여러분, ...

아버지 장군님의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서 노래를 불러요. 통일의 노래를 ... 저 인간백정들을 요정내고 우리의 소원인 통일의 문을 열자요.

, 김일성장군님, 단 한순간이라도 뵙고싶어요>

채 피지도 못한 18살의 꽃다운 녀학생이 마지막으로 남긴 이 말은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품만을 한없이 그리는 광주의 봉기자들과 남녘의 인민들 모두의 간절한 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민족의 태양으로 우러러 흠모하면서 그이의 품에 하루빨리 안기려는 남조선인민들의 불같은 지향이 막을 수 없는 추세로 도도히 굽이치고있기에 그 강력한 추세를 따라 광주인민봉기와 같은 력사에 빛날 대중적인 애국적구국항쟁의 영웅서사시가 펼쳐질 수있었던 것이다.(출처: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 조국통일사, 1982, pp. 597-598)

 

칼로 여학생 유방 도려내고 임산부 찔러 태아까지 꺼내 던져 죽였다

 

 

심지어 파쑈살인마들은 환각제를 먹인 공수특전대놈들을 봉기진압에 내몰면서 <광주시민 70%를 죽여도 좋다. 젊은이들은 모조리 죽이라.>는 살인명령을 내리였으며 신경가스탄을 비롯한 유독성화학무기까지 사용하여 봉기군중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하다 못해 녀학생들의 유방을 도려내여 죽이고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까지 꺼내여 참살하는 등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광주의 거리거리에는 항쟁용사들의 붉은 피가 랑자하였다. 여기에 한 해외동포가 친척집을 방문하기 위하여 광주에 갔다가 인간백정들의 피비린 살육만행을 목격하고 쓴 수기의 일부가 있다. <...참으로 무섭고 끔찍한 살인 행위였다. 여자대학생으로 짐작되는 세명의 처녀들이 공수병에 의하여 옷을 벗기우고 있었다. 속옷까지 모조리 찢어낸 다음 험악하게 생긴 공수병이 처녀들의 앞가슴을 걷어차면서 성난 늑대처럼 내몰았다. 처녀들은 하나와 같이 가슴을 감싸고 길바닥에 꺼꾸러졌다. 순간 처녀들의 등에는 대검이 똑같이 박아지면서 피가 분수처럼 뿜었다. 역전광장앞에서도 조선대학교의 6명의 대학생들과 3명의 녀공들을 창고에 가두고 발가벗겨 희롱하다가 나중에는 광장에 끌어내여 분수대에 매달고 유방을 도려내어 전선대에 묶어높고 칼로 가슴과 배를 찌르던 나머지 사지를 찢어죽이였다. 두명의 공수병이 만삭이 가까운 임신부를 끌어다놓고 <, 이년아, 이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이 뭐냐?>하고 묻자 임신부는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한 공수병이 <머슴애는 모조리 죽이라는 것이 전두환총장의 분부다.>하고 소리치면서 <새끼주머니에 든것이 머슴인가 계집앤가,>고 다그쳐물었다. 이때 옆에 있던 다른 공수병이 <내가 알려주지,>라고 하면서 녀인이 반항할 짬도 없이 옷을 나꿔채자 원피스가 쭉 찢어지고 속살이 드러났다. 후비면서 찔렀는지 금방 창자가 튀여나왔다. 그들은 다시 그 녀인의 아랫배를 가르더니 태아를 끄집어내여 아직도 할딱거리며 마지막으로 숨져가는 녀인에게 던졌다.(출처: ‘광주는 잊지 않는다’, 조선녀성, 1990년 제3(루계 제448), pp.39-40.)

 

굴복않는다고 두 눈 알 뽑고 심장까지 도려내어 죽였다

 

항쟁용사들에게 돌과 기와장을 날라다주었다고 하여 어린 고등학교 녀학생을 칼탕쳐죽이고 빵과 물을 보장해주었다고 하여 할머니를 군견을 풀어놓아 물어뜯게 하고 부상자들에게 피를 뽑아주었다고 하여 폭도를 도와준 너도 폭도라고 하면서 불태워 죽이고 굴복하지 않는다고 하여 두 눈 알을 뽑고 심장까지 도려내어 죽이는 잔인한 학살참극이 전두환, 로태우 괴뢰도당에 의하여 가는 곳마다에서 헤아릴 수 없이 벌어졌다.(출처: ‘광주는 잊지 않는다’, 조선녀성, 1990년 제3(루계 제448), p.40.)

 

“4살 어린이를폭도의 종자를 멸종시키라며 총검으로 참살

 

악귀 같은 교형리(: 괴뢰군)들은 녀학생들을 그들의 부모가 보는 가운데 발가벗기고 젖가슴을 도려낸 다음 화염방사기로 불태워 죽였다. 무차별 학살의 잔학성은 어린이나 늙은이, 임산부들에 대한 만행에서 더욱 몸서리치게 드러났는데 놈들은 광주천 기슭에 쓰러진 어머니의 시체를 붙잡고 우는 4살짜리 어린이에게도 달려들어 폭도의 종자를 멸종시키라고 하면서 총검으로 참살하고 살인만행에 항거하였다 하여 70대의 할아버지도 하수구에 밀어 넣어 죽였고, 임신부의 배를 가르고 창자가 튀어나온 배에서 태아를 꺼내 던지는 귀축 같은 만행도 서슴치 않았다.(출처: 주체의 기치에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 조국통일사, 1982, pp. 590.)

 

광주인민봉기로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얻었다는 교훈

 

광주인민봉기는 새로운 단계의 반파쇼민주화투쟁을 위해서 귀중한 교훈들을 남기었는데 그 교훈은 첫째로, 남조선인민의 해방투쟁의 승리는 반미투쟁과 결합될 때에만 확고한 것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광주인민봉기가 남긴 교훈은 둘째로, 남조선인민의 해방투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청년학생운동과 로동운동과의 결합을 새로운 높은 단계로 심화발전 시켜야만 한다는 것이다광주인민봉기가 남긴 교훈은 셋째로, 남조선인민의 해방투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보다 광범한 대중적 지반 위에서 반파쑈민주 역량을 형성하고 그것을 조직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출처: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 조국통일사, 1982, pp. 609-610.)

 

북한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5.18

 

괴뢰군놈들이 총창으로 누나의 젖가슴을 쿡쿡 찔러 후벼대고 내동이쳤다

 

누나의 사진

 

봄볕이 따스하게 내려 쪼이는 어느 날 이였습니다. 광주시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산언덕 나지막한 무덤가에 한 소년이 앉아있었습니다. 원쑤놈들에게 누나를 빼앗긴 남철이였습니다. 외롭게 앉아 곱게 웃는 누나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남철이의 눈가에는 방울방울 이슬이 괴여 올랐습니다.

 

두 살 때 부모를 다 잃은 남철이가 어머니처럼 따르던 누나입니다. 그런데 그 누나가 지금은 이렇게 사진만 한 장 남겨놓고 땅속에 묻혀버렸습니다. 남철이는 눈물어린 얼굴을 천천히 들었습니다. 광주시가 안개 속처럼 뿌엿하게 안겨왔습니다. 벌서 몇해가 흘렀지만 남철이의 머릿속에는 광주의 거리에서 최후를 마친 누나의 모습이 더욱더 뚜렷이 떠오릅니다.

 

전두환을 찢어죽이라!

민주를 위해 싸우자!

 

온 광주가 싸움에 일떠섰을 때 남철이의 누나도 그 속에 있었습니다. 누나는 그날 남철이에게 밖에 나가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남철이는 가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리에 나서니 머리 우에서는 직승기가 날까마귀처럼 돌아치면서 삐라를 하얗게 뿌리며 투항하라, 항복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죽일테다!라고 짖어댔습니다. 남철이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네거리에 들어섰습니다.

거기서는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 수천명 군중이 함성을 지르고 노래를 부르며 전두환 괴뢰놈이 보낸 악질 괴뢰군놈들을 맞받아 용감히 나가고 있었습니다. 악에 받친 괴뢰군놈들은 기관총을 휘둘려대며 미친 승냥이떼처럼 달려들었습니다. 군중들은 잠시 뒤로 물러섰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관총에 맞고 피를 토하며 거리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사람잡이에 눈이 뒤집힌 괴뢰군놈들은 마구 총을 쏘아대며 사람들을 전기곤봉으로 때리고 칼로 찌르고 쇠줄로 칭칭 묶어 끌어갔습니다.

이 처참한 광경에 몸서리치던 한 할머니가 이 백정놈들아, 네놈들도 사람의 종자냐!하고 침을 뱉자 괴뢰군놈이 시퍼런 칼로 할머니의 목을 내리쳤습니다. 순간 검붉은 피가 콸콸 쏟아져 땅을 적시였습니다. 남철이는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피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도 아픈 줄을 몰랐습니다. 이때 잠시 물러섰던 군중이 다시 와- 하고 성난 물결처럼 밀려나와 미친 듯이 돌아치는 괴뢰군놈들을 몽둥이로 후려치고 총으로 쏘아눕혔습니다.

 

누나!

그 속에는 남철이의 누나도 있었습니다. 흰 위생복을 입은 누나는 우박치는 총탄도 아랑곳하지 않고 땀을 철철 흘리며 부상당한 사람들을 담가로 날라가고 있었습니다. 누나를 보는 남철이의 가슴은 후둑후둑 뛰였습니다. 싸움에 용감히 나선 누나가 더없이 장해보였습니다. 남철이는 누나를 돕고 싶어 달려가려다가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습니다.

시커먼 땅크들이 와르릉거리며 밀려왔기 때문이였습니다. 쫓겨갔던 괴뢰군놈들이 이번에는 땅크를 앞세우고 달려들었습니다. 거리바닥을 사납게 물어뜯으며 달려온 땅크들은 사람들을 깔아 눕히고 짓이겨놓았습니다. 괴뢰군놈들은 더욱 미쳐날뛰며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찔려죽이고 쏘아죽이였습니다. 온 거리에 붉은 피가 강물처럼 흐르고 시체들이 쭉 깔렸습니다.

 

!

골목에서 한 할아버지와 같이 서있던 남철이는 외마디소리를 지르며 달려나가려고 하였습니다. 누나가 놈들에게 붙잡혀 끌려왔던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발버둥치는 남철이를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누나를 거리 한가운데로 끌고온 괴뢰군놈들은 그의 옷을 와락와락 찢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것이 전두환이 보내는 선물이다!라고 웨치면서 시퍼런 총창으로 누나의 앞가슴을 쿡쿡 찔러 후벼대고 내동이쳤습니다.

 

누나!

남철이는 그만 그 자리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하루종일 병원에서 시달릴대로 시달리면서도 언제나 웃는 얼굴로 어머니를 대신해주던 누나! 밤이면 아버지 원수님의 품속에서 세상에 부럼없이 행복하게 자라는 공화국북반부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소곤소곤 들려주던 누나! 미제와 전두환 악당놈들을 반대하여 싸우는 길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또박또박 가르쳐주던 누나! 남철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눈에서는 불길이 펄펄 일었습니다.

(누나, 내 기어이 미제와 전두환 악당놈들을 복수하겠어. 그리고 누나가 그처럼 바라던 아버지 원수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의 품에 꼭 안기겠어.)

남철이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누나의 사진을 다시 보았습니다. 누나는 사진 속에서 여전히 밝은 웃음을 보내고 있었습니다.(출처: 국어(인민학교 제4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1985(초판), pp. 130-134; 국어(소학교 제4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98(2009), pp.118-122.)

 

전두환괴뢰도당을 쓸어버리고 온 남조선인민들의 원한을 풀어줍시다!’

 

광주의 어린 용사

싸우는 광주에 또 하루 새날이 밝았습니다.

철수는 이날도 아침 일찍이 대학생형님들이 싸우고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너 왜 또 왔니? 여기는 위험해! 어서 집으로 가거라.

한 형님이 철수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일없어요. 난 무섭지 않아요.

철수는 손을 뿌리치고 날쌔게 뛰어가 형님들에게 돌과 탄알을 날라다 주었습니다.

형님들은 그 돌과 탄알로 괴뢰군놈들은 족쳐됐습니다. 괴뢰군놈들은 무리로 쓰러지면서도 악을 쓰며 달려들었습니다. 싸움은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게다가 탄알마저 떨어져갔습니다.

 

탄알! 탄알!

여기저기서 형님들이 소리쳤습니다. 철수는 상자들을 헤치며 탄알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탄알은 없었습니다.

철수의 마음은 안타까왔습니다. 형님들이 하나 둘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철수는 입을 다물고 앞거리를 내다보왔습니다. 거리바닥에는 괴뢰군놈들의 시체가 너저분하게 깔리고 총들이 널려있었습니다.

철수는 더 생각할 사이없이 앞을 향해 냅다 달렸습니다. 탄알이 비오듯 날아와 앞뒤에 푹푹 박히였습니다. 철수는 요리조리 탄알을 피해 기여다니며 어러자루의 총을 주어가지고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몇걸음 달려오던 철수는 그만 괴뢰군놈들의 총알에 맞고 쓰러졌습니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철수는 눈을 떴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죽이구 동생마저 빼앗아간 전두환괴뢰놈들을 그냥 둘수 없어!)

철수는 가까스로 일어나 한발자국 또 한발자국 걸음을 옮기다가 또다시 총탄에 맞고 넘어졌습니다.

마음을 조이며 철수를 지켜보던 형님들이 달려나가 그를 업어왔습니다.

 

철수야, 철수야! 죽어서는 안돼...

형님들은 철수를 품에 안고 애타게 부르짖었습니다.

형님, 원쑤를... 꼭 갚아주세요.

철수는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철수야-》

철수를 부등켜안고 눈물을 뿌리던 한 형님이 주먹을 부르쥐고 웨쳤습니다.

전두환괴뢰도당을 쓸어버리고 철수의 원한, 온 남조선인민들의 원한을 풀어줍시다! 형님들은 사자처럼 달려나가 괴뢰군놈들에게 불벼락을 안겼습니다.(출처: 출처: 국어(인민학교 제2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83(1994), pp. 115; 국어(소학교 제2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98(2009), pp.90-92.)

    

 

문제는 당시 광주사건에 북한 특수군이 개입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주장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주장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치지 않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현재 북한의 함경북도 청진시 천마산 마루에는 광주사태에 시민군 등으로 위장 참가했다가 사망한 북한 전투영웅들의 시신없는 묘지가 묘비와 함께 설치돼 있다는 점이다

 

탈북자와 탈북 군인들이 2009년에 발간한 증언집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16명의 탈북자와 탈북 군인들의 수많은 증언들을 통해 북한특수군 개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북한 전 노동당비서 황장엽과 함께 망명한 김덕홍씨도 1998년 언론 인터뷰에서 조선로동당 대남부서에 소속된 사람들 상당수가 광주민주화운동이 끝난후 일제히 김일성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고 밝힘으로써 북한 특수군이 광주사태에 개입했음을 인정했다

 

예컨대 한 묘지 비석에는 조선로동당 중앙당에서 직접 새긴 문구 공화국 영웅 고 장중한 동지는 1980518, 남조선의 광주인민항쟁을 비롯해서 당과 수령,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적으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조국을 위해 젊음을 바친 고 장중한 동지의 고귀한 혁명업적은 후손만대에 영원히 전해질 것이다. 장중한 동지에게 영광이 있으라!”가 들어있다(자유북한군인연합,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 2009, pp. 138-139.). 

 

탈북자들은 광주와 전라도는 자기들을 죽이려던 자들(북한 특수군)의 편에 서서 죽기 살기로 싸우면서 자기들을 살려낸 사람들(게엄군)을 욕하고 있다며 당시 광주 사람들을 몰살의 위기로부터 구해낸 배승일 문관을 아는가고 되묻는다. 당시 전남도청 지하실에는 광주 인근 무기고 등에서 탈취한 다이너마이트 폭탄 2100, 수류탄 450, 최루탄 500개 등 엄청난 양의 폭탄을 조립해 놓고 있었다. 이는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 첨럼 광주시민을 완전히 몰살하고 광주시를 폐허화 할 수 있는 위력이었다. 탈북자들은 북한 시민군으로 위장한 북한 특수군이 유사시 게엄군의 소행으로 몰아 국민불신을 유발하기위해 이런 엄청난 일을 꾸민 것으로 보고있다. 배승일 문관은 25-26일 양일간 목숨을 걸고 잠입해 폭탄의 뇌관을 제거했다. 그는 이 선행으로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았지만 노무현 정부 때 박탈됐다. 그 후 그는 소송을 통해 훈장을 돌려받았다

 

 

기사입력: 2017/05/15 [19:48]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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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국가무기고탈취는 어느누가해도 민주화가 아니고 국가전복반란이다. ttt 17/05/17 [06:57] 수정 삭제
  5.18국가무기고탈취는 어느누가해도 민주화가 아니고 국가전복반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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