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사실에 북괴의 왜곡·날조
서옥식 박사, 67주년 맞아 북괴의 허위주장 반박
 
조영환 편집인

, 인천상륙작전 사실왜곡-날조

서옥식 박사, 67주년 맞아 북괴의 허위주장 반박

4문으로 연합군 5-함정 200여척 섬멸적 타격주장

맥아더도 작전실패 자인했다고 허위 기술

 

915일은 6.25전쟁의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켜 사실상 절멸 직전의 대한민국 운명을 바꾼 인천상륙작전 67주년이 되는 날1950625일 전쟁발발 단 사흘 만인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한 달 만에 낙동강까지 후퇴하며 수세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상륙작전은 이날 새벽 5시 만조(滿潮)를 기해 단행, 두시간만에 끝난다. 작전 암호명은 크로마이트’(Operation Chromite). 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함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상륙 작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한국참전 유엔군총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장군 지휘하의 인천상륙작전은 75천명의 국군과 유엔군, 261척의 함정이 투입된 대규모 작전이지만 인천의 수로가 좁을 뿐 아니라 7m에 달하는 세계 최악의 조수간만차로 인해 상륙시간이 단 두 시간만 가능한 악조건을 안고 있었다. 

 

성공확률 5천분의 1, 미 합참본부도 말렸지만 맥아더는 기어이 해내고 말았다작전의 제 1단계는 월미도의 점령으로 시작됐다. 새벽 5시에 시작된 공격 준비 사격에 이어 미 제5 해병 연대의 3대대가 전차 9대를 앞세우고 월미도 전면에 상륙했다. 월미도는 2시간만에 완전히 미군에 의해 장악됐다. 미군은 부상 7명의 경미한 피해만 입었다. 인민군은 108명이 죽고, 106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네이팜탄 투하 및 기총소사로 민간인의 피해도 발생했다.

 

2단계는 국군 해병대 1연대와 육군 제17연대, 미군 보병 7사단과 해병 1사단의 주도로 인천반도 공격으로 이어졌다. 인민군 제18사단과 인천 경비 병력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 미군 해병 1사단과 국군 해병 제1 연대는 성공적으로 조선인민군의 주력이 규합할 시간적 여유를 빼앗아버리며 인천 장악에 성공했다인민군이 38선에서 낙동강 방어선까지 진격하는 데 81일이 걸렸지만, 인천 상륙 이후 국군이 38선까지 돌아오는 데 15일 밖에 안 걸렸으니, 적의 배후를 기습한 이 작전의 성과는 매우 컸다.

 

그런데도 북한의 보도선전문과 문헌들은 인천상륙작전을 월미도 방어전투에 이은 인천-서울지구방어전투로 부르면서 천재적군사전략가이신 최고사령관 김일성 동지의 탁월한 전략전술적방침을 높이 받들고 조선인민군부대들이 조국해방전쟁의 제2계단 초기시기 대규모적인 상륙작전을 감행한 미제침략군에게 인천-서울지구에서 섬멸적인 타격을 주고 전선의 인민군주력부대들의 조직적후퇴를 보장한 영웅적방어전투라고 선전한다. 북한은 이 전투에서 인민군부대들이 적 장병 13천여명을 살상하고 전차 64, 상륙용전차 13, 함선 19, 포 수십문(노획 18문 포함), 자동차 64대를 파괴하고 ‘B29’중폭격기 5대를 포함한 26대의 적비행기를 쏴 떨구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고 주장한다.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미 작전지휘선 마운틴 맥킨리(Mountain Mckinley)함상에서 망원경으로 상륙지점을 살피고 있다.

 

북한은 특히 월미도전투에 대해서는 적의 함포탄이 우박처럼 떨어지고 온 섬이 타번지는 속에서도 월미도방위자들은 조금도 당황함이 없이 상륙하는 적들과 맞서 싸웠다면서 리대훈 중대장이 지휘한 조선인민군 해안포중대 전투원들은 결사전으로 적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4문의 포를 가진 1개의 포병중대와 1개의 보병중대로 편성된 월미도방위자들은 913일부터 15일까지의 3일간에 적 구축함 3척을 포함하여 각종함선 13척을 격침-격파하고 적의 상륙을 사흘간 지연시킴으로써 적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고 결과적으로 인천-서울지역방어부대들에게도 적의 공격을 14일간이나 지연시켜 전략적 후퇴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애국심을 고취하는 북한의 대표적인 전쟁영화에 월미도란 것이 있다. ‘월미도는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결사항전을 벌였다는 인민군 해안 포병들의 무용담을 담은 것이다.

 

1950915일 맥아더 장군이 작전 지휘선 마운틴 맥킨리(Mountain Mckinley)함상에서 “Go!”라고 인천상륙작전 공격명령을 내리고 있다(맥아더기념관 소장 캡쳐)

 

19509월 부산. 미군들이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기위해 거물 망을 타고 군함에 승선하고 있다(맥아더기념관 소장 캡쳐)

 

1950913일부터 북한군 해안 포병들은 단 4문의 76해안포로 전투를 벌여 5만 대군과 수백 척의 군함, 1천여 대의 폭격기를 동원한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을 사흘간이나 성공적으로 저지했다는 공상 만화 같은 영화다. 4문을 가진 인민군 해안포 중대가 상륙작전을 3일간이나 저지시켜 낙동강 계선까지 내려갔던 인민군대가 북측 지역으로 전략적 후퇴를 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벌어주었다는 내용을 그렸다.

 

북한의 대남선전선동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남한에서 미국 할리우두의 유명 배우 리암 니슨, 인기 배우 이정재, 김범수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한 인천상륙작전개봉 사흘 뒤인 2016730아큐식 사고방식의 극치 -잊혀진 승리놀음이라는 글을 올리고 영화를 비난하기도 했다. 아큐정전(Q正傳, 영문명: The True Story of Ah Q)1921년에 나온 중국작가 루쉰(魯迅)의 소설로 북한은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바보 아큐처럼 어리석다고 남한 사람들을 비난한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들은 모두 거짓말이다. 북한문제 연구가인 서옥식 박사(정치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 전 연합뉴스 북한부장-편집국장)“1950년 가을 인천 해안에서 상륙작전이 가능한 만조일은 915, 1011, 113일과 이 날짜를 포함한 전후 2-3일 뿐이나 10월 이후는 작전상으로나 기후관계상 상륙하기에 늦은 시기여서 가장 적절한 시기는 915일로 결정된 것으로 안다고 말하고 북한의 역사기록이나 주장대로 사흘간 상륙작전을 지연시켰다면 썰물현상으로 인해 갯벌이 드러나 모든 함정이 옴짝달싹 하지못할 처지에서 상륙작전 자체가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라며 북한의 허위사실 주장을 반박했다.

 

실제로 북한의 대남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당시 맥아더 자신도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실패한 작전이라고 실토할 정도로 완전한 패전이였다고 적고 있다. 이는 마치 6.25전쟁당시 유엔군사령관이었던 클라크 대장이 유엔군의 참패를 인정했다는 북한의 억지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북한의 역사교과서는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정전협정문에 서명하면서 나는 정부의 지시를 수행함으로써 역사상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조인한 최초의 미군 사령관이라는 영예롭지 못한 이름을 띠게 되었다고 고백했다고 적고 있다.

 

서옥식 박사는 또 이른바 인천-서울지구방어전투에서 14일간 적의 전투를 지연시켰다는 북한의 주장도 한미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 성공이후 시가전을 벌이며 인천에서 서울로 진격, 928일 서울을 완전탈환 하기까지의 기간을 그들 멋대로 그렇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인천상륙작전은 월미도 상륙으로부터 시작됐다. 미 제10군단 예하 해병 제3대대 등이 그린비치’(Green Beach)에 투입, 불도저로 상륙지점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다.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하기에 앞서 맥아더는 적을 혼동시키기위해 양동작전을 전개했다. 95일부터 북으로는 평양에서부터 남으로는 군산에 이르기까지, 서해안의 상륙작전 가능지역에 폭격을 실시했다. 912일부터는 미국과 영국의 혼성 기습부대가 군산을 공격하고, 동해안 전대는 914일과 15일 삼척 일대에 맹포격을 가했다. 한편 912일부터 관문인 월미도를 제압하기 위한 폭격이 시작됐다. 상륙작전이 인천 이외의 지역에서 개시될 수도 있다는 신호였다. 실제 맥아더 사령관이 처음 상륙작전을 계획하자 극동군사령부는 작전 100-B, 작전 100-C, 작전 100-D의 세 가지 안을 제출했다. 작전 100-B는 서해안 중 인천에 상륙하는 것이고, 작전 100-C는 군산에, 그리고 작전 100-D는 동해안 주문진 근처에 상륙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 세 가지 안 중에서 최종적으로 작전 100-B가 채택됐고, 잠정적인 D-Day915일이었다.

 

상륙작전은 3단계로 전개됐다. 1단계로 915일 오전 5시 한-미 해병대는 월미도에 상륙하기 시작해 작전개시 2시간 만에 점령을 끝냈다2단계로 한국 해병 4개 대대, 미국 보병 제7사단, 해병 제1사단은 전격공격을 감행, 인천을 점령하고 김포비행장과 수원을 확보함으로써 인천반도를 완전히 수중에 넣었다마지막 제3단계로 한국 해병 2개 대대는 미국 해병 제1사단 병력과 함께 19일 한강을 건너 공격을 개시하고 20일 주력부대가 한강을 건너 27일 정오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함으로써 작전을 끝냈다. 28일 수도서울은 완전 수복(탈환)됐다.

 

1950915일 인천상륙작전 성공후 김포로 이동 중인 맥아더 장군과 미 해병대원들

 

북한의 허위 주장과는 달리 유엔군은 한 명의 사상자 없이 인천항을 접수했다. 다만 상륙 첫날 시가지전투에서 20명의 미군 사망자가 발생했으나 진격과정은 매우 순조로웠다. 뉴욕타임스 기자로 한국전쟁을 다룬 가장 추웠던 겨울’(Coldest Winter)의 저자인 고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은 생전 계획이 치밀하고 노련한 면도 있었고, 전쟁의 신이 인민군에게 김일성이라는 부주의한 지휘관을 내려준 덕도 있었다며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높이 평가했다.

  

1950919일 상륙작전에 성공한 유엔군을 환영하기위해 몰려든 인천시민들(맥아더기념관 소장 캡쳐)

 

다음은 서옥식 박사가 공개한 북한 문헌들의 인천상륙작전 왜곡-날조기록들이다

 

인천상륙작전이란 것은 역량상 대비할수도 없이 적은 우리 인민군 용사들에 의해 미제침략군의 대무력이 헤아릴 수 없는 막대한 손실을 입은 전투로 역사에 생생히 기록되여있다(우리민족끼리, 201685일자 보도)

 

(인천상륙작전이란) 5만여명의 대병력과 300척의 함선, 1000여대의 비행기가 동원되고서도 4문의 포를 가진 한 개의 인민군 해안포병중대와 보병중대 앞에서 대손실을 당한 전투로 기록되여 있다. 이런 망신스러운 전투를 놓고 영화까지 만들어 내돌려대며 성공이니, 불사(不死)니 하는 말을 염불처럼 외워대고 있다. 당시 맥아더 자신도 인천상륙작전에 대실패한 작전이라고 실토할 정도로 완전한 패전이였다고 주장했다(우리민족끼리, 2016729자 보도)

 

미제는 세계 여러곳에 있는 제놈들의 군대뿐아니라 미국본토의 무력과 15개 추종국가군대까지 합쳐 수십만의 대병력을 조선전선에 더 들이밀었다. 이 증강된 대병력으로 락동강계선에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는 한편 약 1000대의 비행기, 수백척의 군함과 5만여명이나 되는 숱한 병력을 동원하여 인천상륙작전을 벌리였다. 인민군부대들은 락동강계선과 인천-서울지구에서 적의 공세를 물리치기위한 가렬한 전투를 벌리였다. 특히 인천 앞바다를 지키던 월미도해안포병들은 단 4문의 포와 한 개 중대 인원으로 수백배나 되는 적들과 마지막 한 사람까지 육탄이 되여 싸워 놈들의 상륙작전을 3일간이나 저지시켰다. 그러나 적들이 인천-서울지구와 락동강계선에 대병력을 들이밀면서 발악하는 조건에서 이에 대한 대책을 어떻게 세우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주채39(1950)9월 하순 조성된 난국을 주동적으로 타개하기위한 전쟁 제2계단의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현계단에 있어서 우리당의 전략적 방침은 적들의 진공속도를 최대한으로 지연시키면서 시간을 쟁취하여 인민군주력부대들을 구출하고 새로운 후비부대들을 편성하여 강력한 반공격집단을 형성하며 계획적인 후퇴를 조직하는 것입니다(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력사(고급중 1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102(2013), pp. 172-173.)

 

미제 침략자들은 인천의 관문인 월미도(0.66)910일부터 수많은 비행대와 함선들을 동원하여 폭격과 함포사격을 대대적으로 감행한 다음 13일부터 월미도에 대한 상륙을 개시하였다. 이날 적들은 수많은 비행대와 각종 함선의 엄호밑에 80척의 경비정, 상륙정, 상륙함 등에 미군 제10군단의 선견대를 태워 월미도에 들이밀기 시작하였다...(중략)...리대훈 중대장이 지휘한 조선인민군 해안포중대전투원들은 결사전으로 적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1개 포병중대와 1개 보병중대로 편성된 월미도의 방위자들은 9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에 적구축함 3척을 포함하여 각종 함선 13척을 격침격파하고 적의 상륙을 지연시킴으로써 적들의 상륙작전에 커다란 타격을 주고 인천-서울지역방어부대들에 귀중한 시간을 보장해주어 이 지구의 전반적 방어작전수행에 크게 기여하였다. 적들은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락동강계선에서도 방대한 침략무력을 집결하여 전반적전선에서 공격을 감행하여 나섰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적들의 대규모적인 총공세에 대처하여 적에 대한 새로운 결정적타격을 준비하며 전쟁의 전반적인 국면을 전환시키기위한 조국해방전쟁 제2계단의 전략적 방침을 제시하시였다...(중략)...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 제2계단의 전략방침을 성과적으로 실현하기위한 인천-서울지구와 락동강계선방어작전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광명대백과사전 제1, 평양: 백과사전출판사, 주체96(2007), p. 556 .

  

천재적군사전략가이신 최고사령관 김일성 동지의 탁월한 전략전술적방침을 높이 받들고 조선인민군부대들이 조국해방전쟁의 제2계단 초기시기 대규모적인 상륙작전을 감행한 미제침략군에게 인천-서울지구에서 섬멸적인 타격을 주고 전선의 인민군주력부대들의 조직적후퇴를 보장한 영웅적방어전투. 인민군부대들은 적 장병 13000여명을 살상하고 전차 64, 수륙량육전차 13, 함선 19, 포 수십문(그중 로획 18), 자동차 64대를 파괴하고 29’중폭격기 5대를 포함한 26대의 적비행기를 쏴 떨구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 이 전투를 통하여 천재적인 군사전략가이시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최고사령관 김일성 동지의 탁월한 전략전술과 령군술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또한 이 전투는 수령의 두리에 철석같이 뭉친 인민군용사들과 인민들의 불패 위력을 시위하였다(력사사전, 평양: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1972)

기사입력: 2017/09/14 [10:21]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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