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장군 증오자들과 그들의 망언들
서옥식 박사 9.15인천상륙작전 60년 맞아 소개
 
조영환 편집인

▲인천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 

 

맥아더동상 파괴투쟁은 북한지령으로 밝혀졌으나, 

노무현정권은 파괴 기도범들 검거·입건도 안 해 

“맥아더는 전쟁광, 살인마, 철천지원수, 만악의 근원”

노무현: 맥아더동상은 좋던 나쁘던 우리 역사다

문재인: 인천자유공원엔 왜 맥아더동상만 서있나

이재정: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쟁결과가 험해졌다

강정구: 맥아더는 38선 분단 집행의 집달리

한상렬: 맥아더는 분단원흉, 전쟁과 학살의 책임자

정광훈: 전쟁미치광이를 동상승배하는 꼴 못본다

김수남: 점령군두목 동상에 꽃다발 바치는 나라

강희남: 맥아더 동상은 미제국주의 침략의 상징

 

 

맥아더 유엔군총사령관은 대한민국이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의 불법 남침으로 사흘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국군과 유엔군이 한 달 만에 낙동강까지 밀리자 인천상륙전쟁을 단행, 대한민국을 패망의 위기에서 구출한 장군이다.

 

당시 미 해군은 인천항의 간만의 차가 평균 7m로, 상륙하기 전에 월미도를 먼저 점령해야 하는데다 선단의 접안지역이 좁고 상륙 후 시가전이 불가피한 점 등의 이유로 최악의 상륙조건 지형이라며 완강히 반대했다. 해군 인사들은 작전 성공률이 5천분의 1이라며 극구 반대했지만, 맥아더는 이런 난점이 오히려 적의 허점을 찌르는 기습이 될 수 있다며 끝까지 인천상륙을 주장, 결국 미합참본부로부터 승인을 얻어냈고 작전은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내부의 종북좌익세력들은 맥아더를 ‘침략과 학살의 원흉’, ‘극악무도한 살인마’, ‘전쟁 미치광이’, ‘민족의 철천지원수’, ‘분단 고착의 근원’이며 주한미군을 ‘침략-전쟁-살육-약탈’을 벌여 온 ‘만악의 근원’ 이라고 규정한 뒤 “맥아더동상 철거투쟁은 단순히 동상을 철거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군사적 강점과 식민지통치를 끝장내고 민족의 자주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일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2005년 9월 23일 맥아더 동상 철거 문제로 시끄러웠을 때 SBS ‘시시비비’에 출연한 철거 찬성자들은 맥아더는 인천 상륙작전의 패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 패전이냐는 물음에 “인천에서 상륙했지만 인민군은 압록강까지 질서정연하게 다 철수했다. 따라서 실패한 작전이다”라고 대답했다. 이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천상륙작전이란 것은 그 자체가 야비한 것이다. 북한군 본대가 낙동강에 내려와 있었는데, 맥아더가 북한군 후방인 인천을 쳤다. 비겁한 작전이다”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은 북한의 대남 지령과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일치한다. 이명박 정부들어 2010년 8월 드러난 맥아더동상철거 주도단체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련방통추)’ 수사결과에 의하면 2005년 9월 온 나라를 뒤흔들고 한미관계까지 악화시킬뻔했던 맥아더동상 파괴운동은 북한의 지령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당시 노무현 정권은 동상파괴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극렬 폭력 세력들에 대한 신원파악도, 검거도, 입건도 제대로 하지않았다.

 

물론 맥아더 장군에 대해서는 6.25전쟁 때 중공군개입 오판 등 평가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출한 그를 ‘학살의 원흉’, ‘살인마’, ‘전쟁광신자’ 등으로 내모는 것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배은망덕의 극치다. 맥아더 장군과 불화관계에 있었던 트루만 대통령까지도 맥아더 해임 이유에 대해 “나는 그가 대통령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으려해서 해임했다. 나는 그가 멍청한 ‘개자식’이라서 해임한 게 아니다”(I fired him because he wouldn't respect the authority of the President. I didn't fire him because he was a dumb son of a bitch.)라고 말했다. 군인으로서의 능력을 인정한 것이다.

 

다음은 북한문제연구가인 서옥식 박사(정치학, 전 연합뉴스 북한부장-편집국장)가 9.15 인천상륙작전 67주년을 맞아 맥아더 장군을 증오하고 폄훼한 우리 내부의 인사들과 그 ‘망언’을 소개한 것이다.(직책은 발언당시)

  

▲노무현 대통령=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과 맥아더 동상은 우리의 역사다. 동상은 그대로 두고 역사로서 존중하되, 나쁜 건 나쁜 대로 기억하고 좋은 것은 좋은 대로 기억해야 한다(2005년 9월 13일 방미 중 뉴욕 월돌프 아스트리아(Waldorf Astoria)호텔에서 가진 교포간담회)

 

※노무현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국가안보를 총체적으로 책임져야 할 대통령으로서, 김일성북한괴뢰정권의 야만적인 불법남침으로 대한민국을 패망직전의 위기에서 구출한 유엔군총사령관에게 할 말은 아니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05년 9월 14일 미국 하원의 헨리 하이드(Henry Hyde, Illinois) 국제관계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5명의 의원들은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9월 15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맥아더장군 동상 철거에 반대 한다는 서신을 보냈다. 이들은 이 서신에서 “맥아더장군 동상 철거를 둘러싼 한국에서의 논란에 강한 유감을 표시하고 동상을 철거할 거라면 차라리 미국인들에게 양도해 달라”고 제의했다. 이들은 “맥아더 장군이 주도한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또 연합군을 이끌며 한국을 군국주의 일본, 공산주의 북한으로부터 두 번 해방시킨 영웅을‘전범’운운하며 폄하하는 것에 대해, 미 의회와 미국인들은 동의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재인(더불어민주당 전대표)= 인천 자유공원은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알고보면 조선시대, 서울의 파고다공원보다 앞선 1880년대에 조성된 유서 깊은 곳이다. 3.1 독립운동 이후 전국 13도 대표들과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한성임시정부수립을 결의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 당시 상해와 블라디보스토크 등 해외 여러 곳에서 임시정부수립이 선언됐지만, 엄혹한 일제치하의 국내에서도 국민대회를 통해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은 우리 독립운동사의 큰 쾌거였다. 그 후 독립운동의 통일을 위해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한성의 임시정부가 통합한 것이 대한민국임시정부였다. 이렇게 인천 자유공원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태동한 곳 중의 하나로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큰 곳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맥아더 장군의 동상 뿐 ‘한성임시정부’와 관련한 아무런 기념물이나 표지가 없다. 독립운동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 소홀함이 이와 같으니 안타까운 일이다...중략...그런데 요즘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 건립됐으므로 그날을 건국절로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를 왜곡하고 헌법을 부정하는 반역사적, 반헌법적 주장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얼빠진 주장이다(2016년 8월 15일 ‘진정한 광복’이란 제목으로 페이스북에 올린 글)

 

※종북좌익세력의 맥아더동상 파괴 움직임이 사그라들지않고 있는 가운데 나온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이 글은 인천자유공원에 맥아더동상만 서있는 것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6.25전쟁 중 맥아더장군 덕분에 미군이 제공한 선박편으로 아버지가 흥남에서 거제도로 내려와서 자기를 낳았는데도, 맥아더장군 동상에 불편함을 느끼는 그의 속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문 전 대표는 이 글을 쓰기전인 8월 13일 인천 자유공원을 찾았는데 “인천 자유공원을 찾은 것은 맥아더장군 동상과는 무관하며 한성임시정부 때문에 간 것이라고 문 전 대표측이 밝혔다”고 조선닷컴은 2017년 8월 16일 보도했다.

 

※6.25전쟁 당시 ‘흥남철수 작전’을 도왔던 미국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함의 상급 선원인 로버트 러니(90)는 2017년 6월 12일 미국 뉴욕주 브롱스빌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흥남철수 작전은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면서 “1950년 12월 8일 ‘피난민을 구출하라’는 취지의 맥아더 총사령관 명령문이 내려왔다”고 회고했다. 빅토리함은 1950년 12월 22일 피난민 1만4 천여명과 함께 흥남항을 출발해 12월 25일 거제도에 도착,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흥남철수 작전이 없었다면 지금의 문재인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식적인 국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1948년 대한민국 건국’ 부정 발언을 그가 존경한다는 그의 전임자들의 발언에 비춰 이상하게 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1948년에 ‘건국’이라는 표현을 썼다. 김대통령은 1998년 8월 11일 보훈단체장들을 초청해 “우리는 지금 광복 53주년, 건국 5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경축의 날을 앞두고 있는 것은 오로지 애국선열, 국군용사, 민주인사들의 희생과 덕택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연설했고, 1998년 50주년 8.15 경축사에서는 “대한민국 건국 50년사는 우리에게 영광과 오욕이 함께 했던 파란의 시기였습니다”라고 했다. 1998년 12월 28일 아시안게임 참가선수단 격려 오찬에서는 “우리는 건국 이래 50년 만에, 해방 이래 53년 만에 처음으로 국민의 힘에 의해서 민주화를 이룩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3년과 2007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해방) 3년 후에 이 나라(민주공화국)를 세웠습니다”라고 말했고, 200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대한민국 건국 60년은 ‘성공의 역사’였습니다”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극렬 종북좌익극단체들이 본격적으로 맥아더동상 파괴행동에 나선 날은 2005년 9월 11일(9.11이라면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미국의 쌍둥이 무역센터 빌딩이 테러공격을 받아 미국인들에게는 악몽의 날이었다)로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대통령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였다. 바로 그날 인천 자유공원에 있는 맥아더 동상이 공격을 받은 것이다. 맥아더가 지휘한 9.15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을 나흘 앞두고, 이미 대법원에서 이적(利敵)단체 판결을 받은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련방통추),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실천연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및 통일연대, 전국민중연대 등 9개 반미종북좌익단체 주도의 4천여 시위대가 동상 철거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무시무시한 폭력시위를 벌였다. 북한정권의 전위대 역할을 해온 이들 단체의 일부 극렬 세력은 쇠파이프와 길이 2.5m나 되는 죽창을 휘둘렀다. 경찰의 진압봉은 죽창 길이의 약 절반에 달하는 1.25m였다. 죽창은 어린 전경의 얼굴을 찔렀고 쇠파이프는 어깨를 부쉈다. 가장 심하게 다친 전경이 문정현 상경이다. 그러나 전경을 찌른 시위대원은 신원파악도, 잡히지도 않았다. 당시 사실상 검경의 공권력행사와 법질서의 총책인 문재인 민정수석은 반미폭력시위대를 설득하지도, 공권력을 통해 입건하지도, 부상당한 전경을 위문하지도 않았다. 1993년 5월 27일 조직된 한총련은 북한정권비호와 함께 국보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통일을 노골적으로 주장해 1998년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았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2003년 8월 11일 한총련의 합법화를 주장했다.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 6.25전쟁때 두 사람의 협력은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 맥아더는 38선 분단집행의 집달리였다(2005년 7월 27일 인터넷매체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기고한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라는 글에서)

 

▲강정구 동국대 교수=우리는 광복후 공산주의를 택했어야 했다. 6.25전쟁에 맥아더의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한달안에 전쟁은 끝났고 인명피해는 1만명 이하였을 것이다(2005년 9월 30일 한반도정세토론회)

 

※이에 대해 전 크리스찬 아카데미원장 강원룡 목사는 2005년 10월 20일 특별 기자회견에서 “대학교수가 대한민국 땅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도 빨리 끝나고 통일도 됐을 것이라는 주장을 북한에서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6.25전쟁 때 시골에서 구덩이를 파고 거기 숨어서 지냈다.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해 들어온다는 소식에 그때 구덩이 속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일시에 일어서서 춤을 췄다. 이런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대한민국 땅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라며 강 교수를 비판했다.

 

▲이재정 전통일부장관(현 경기도교육감)= 이 비극적인 월미도 상륙작전(인천 상륙작전)이 성공은 했지만, 이것이 가져온 한국전쟁의 여러 가지 결과는 대단히 무서운 것이었다. 북한이 6.25전쟁을 일으켰지만 미국은 38선으로 미-소가 분할점령해서 통치하자는 것을 깨고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중공군이 내려오고 험악한 전쟁의 결과가 나왔다(경기도교육감후보 시절인 2013년 10월 2일 10.4 남북정상선언 6주년 기념 참여네트워크 초청 강연회 강연)

 

※이재정 전통일부장관의 이같은 언급은 한국이 공산화 직전까지 치달았던 전세를 한 순간에 뒤집은 인천상륙작전이 미-소 분할점령 통치의 합의를 깬 것이고, 이 때문에 중공군이 개입했다는 것으로 마치 맥아더 장군의 작전으로 인해 한반도 분단이 고착화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전 장관은 38선으로 미-소가 분할점령해서 통치하자는 것을 위반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은 실행되지 말았어야 했는지 답해야 한다. 북한이 6.25남침전쟁을 일으킨 것을 언급하면서도 중공군의 개입과 분단의 고착화를 마치 미국 때문에(인천상륙작전) 벌어진 일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이다. 인천상륙작전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불법남침으로 패망직전의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낸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수남 맥아더 동상 타도 특별위원회위원장= 우리나라 사람들이 은인이라고 하는 맥아더는 역사상 가장 악질적인 군인으로 수백 만 인민을 때려죽인 인간이다. 맥아더가 없었다면 6.25전쟁 당시 400만이 죽지도 않았을 것이고 1천만 이산가족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 청산을 위해서는 저 동상부터 깨버려 조선 민족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2006년 9월 9일 인천자유공원에서 열린 맥아더동상 철거촉구집회에서 ‘흉물스러운 저 맥아더 동상을 우리 민중의 손으로 반드시 철거하자’며)

 

※맥아더 동상 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됐던 2005년은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선군정치’가 시작된 지 10년이며 광복 60주년이었다. 북한은 그해 1월 ‘구국전선’의 신년사를 통해 “ ‘미군 강점 60년’을 더 이상 넘기지 말자”고 주장했다. 같은 달 련방통추, 실천연대 등 9개 단체는 연석회의를 열었다. 그 결과 출범한 것이 ‘주한미군철수공동대책위원회’였다. 대책위 산하에 ‘맥아더 동상 타도 특위’가 구성됐다. 철거운동 당시 북한은 민주조선, 로동신문 등을 통해 “맥아더 동상은 폭파돼야 한다”며 수차례 옹호 성명을 냈다. 공안당국은 이 시기를 전후해 시위주도 단체 간부들이 북 공작원들로부터 ‘반미 투쟁’의 지령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정광훈 전국민중연대 상임대표/한상렬 통일연대 상임대표=9.11 인천투쟁 승리로 미군강점 60년을 청산하는 대장정에 나서자! 분단과 학살의 원흉, 전쟁미치광이를 동상으로 숭배하는 이 눈 뒤집어지는 현실을 어찌 두고 볼 수 있냔 말이다...중략...이제 우리는 만천하에 낱낱이 폭로할 것이다. 지난 60년간 미군이 이 땅에서 저지른 침략과 학살과 범죄, 그 추악한 죄상을 고발할 것이다. 해방된 나라에서 죽어간 독립투사들의 이름으로, 미군의 기총소사에 죽어간 노근리 주민의 이름으로, 300만 전쟁희생자의 이름으로, 미군에게 능욕당하고 무참히 살해당한 윤금이 누이의 이름으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탱크에 깔려 참혹하게 꺾여버린 효순이, 미선이 순결한 넋으로 주한미군 그 추악한 실체를 만천하에 고발할 것이다...중략...동지들! 9월11일 인천에서 맥아더 동상을 끌어내리자. 오늘 우리가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겠다고 나선 것은 바로 분단의 원흉이요 전쟁과 학살의 책임자이며, 이 땅 만악(萬惡)의 근원인 주한미군을 몰아내겠다는 의지의 선언이다...인천에 모이자. 민족의 이름으로 만천하에 선언하자. 미군강점 60년! 더는 연장할 수 없다. 주한미군 철수하라! (2005년 9.11 맥아더 동상 철거집회에 즈음해 발표한 성명)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8월에 드러난 공안당국의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련방통추) 수사결과에 따르면, 2004년 9월 초 북한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등 명의로 남한의 6.15실천연대, 한총련 등 9개 단체에 ‘북측단체들이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편지를 보내 ‘미군철수 남북공동대책위원회’구성을 제안했다. 이처럼 맥아더동상 파괴는 북한의 지령에 의한 것이었다. 이는 미군 주둔 60년인 2005년을 앞두고 시작된 집요한 주한미군 철수와 맥아더동상 파괴 공작의 시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와 당시 청와대 문재인 민정수석은 이렇다할 강력한 대응을 하지않았다.

당시 북한은 “온 겨레는 ‘미국의 강점 60년을 더 이상 넘기지 말자!’는 구호를 높이 들고 조국광복 60돐, 6.15북남공동선언발표 5돐이 되는 2005년을 미군철수의 원년으로 만들기 위한 반미대결전에 총궐기해야 합니다”라며 “ ‘미군철수 북남공동대책위원회’를 내올 데 대한 우리의 제의에 적극 호응 하리라는 확신을 표명합니다”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주한미군철수공대위’ 지령은 개별적으로도 이뤄졌다. 련방통추 수사결과는 “2004년 12월말 중국 베이징에서 남한의 이적단체 구성원이 북한의 통일전선부 공작원 리창덕으로부터 ‘주한미군철수공대위’를 구성하여 투쟁할 것을 개별적으로 지령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따라 남한 내 종북좌익세력은 북한의 선동과 지령을 충실히 실천해간다.

범민련, 한총련, 6.15실천연대, 6,15청학연대 및 련방통추 실무자들은 북한의 ‘주한미군철수공대위’ 제안에 2차례 연석회의를 갖고 협의했다고 련방통추 수사결과는 밝히고 있다. 실제 2005년 1월28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2층에서 ‘미군철수남북공동대책위’ 남측추진기구 결성을 위한 각계 시국회의가 개최됐다.

2005년 5월10일. 드디어 북한의 ‘주한미군철수공대위’제안은 ‘양키추방공동대책위원회(양키추방委)’라는 이름으로 현실화됐다. 양키추방위는 위원장에는 ‘련방통추’ 1기 상임의장 강희남, 사무총장에 ‘련방통추’ 2기 상임의장 김수남이 선임됐고, 특히 양키추방위 산하에는 ‘맥아더동상타도특별위원회’가 구성되기에 이른다.

련방통추 수사결과는 △“2003-2005년간 당시 1기 상임의장 강○○은 ‘련방통추’의 강령, 규약과 심의위원명단 등 결성과정과 맥아더동상 철거 투쟁사항 등을 해외 북한공작원 강○○에게 보고하고 투쟁방향에 대하여 지령을 받아왔다” △“2기 상임의장 김○○은 2003-2010년 까지 중국 심양으로 10여회 출국해 북한과 연계된 ‘재중 조선인총연합회’회장 양○○을 만나 단체 결성사실 및 주한미군 철수 투쟁 내용, 향후계획 등을 협의하고”라고 돼 있다.

북한의 대남선전선동매체들도 맥아더동상 파괴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북한의 ‘반제민전’은 △ 2005년 5월 “광복 60주년(2005년)인 올해는 남조선의 주한미군철수원년이며 이는 맥아더동상철거로부터 시작된다”고 선포했고, ‘민주조선’은 2005년 6월16일 북한 △“맥아더동상은 꺼꾸러지고야 말 것이다”고 선동했다.

련방통추는 같은 해 5월에서 9월까지 맥아더동상이 있는 인천 자유공원 등지에서 69일간 맥아더동상 파괴를 위한 폭력시위 및 철거농성을 간헐적으로 주도했다.

 

▲한상렬 목사(통일연대 대표)= 맥아더는 민족의 원수다. 자주공조로 미국을 몰아내자(2005년 9월 11일 인천자유공원에서 맥아더 동상 파괴를 주도하며)

 

▲김수남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 대표의장= 점령군 두목 동상을 세워놓고 꽃다발 갖다놓고 그런 나라가 이 나라 국민이 아니고 누구란 얘기드냐. 올해도 주둔비 9200억 조공을 바쳤다. 이 나라 48군데 우리 땅을 사용하고 있다더 했다(2014년 09월 12일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서 철거 집회를 열고 동상 파괴 주장과 함께 주한미군 철수를 선동하며)

 

▲장영달 열린우리당 최고위원=맥아더 장군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민족적 순수성에 대해 여러 가지 깊은 평가를 갖고 있다. 다만 수구세력들이 이 문제를 빙자해서 결속하고 우리 정책에 대해 반기를 들려는 움직임 또한 주시해야 한다(2005년 9월 12일 열린우리당 당대회에서 인천 맥아더동상 철거논란과 관련)

 

※장의원은 같은 날 ‘한반도분단책임에 가장 큰 국가가 미국’이라는 여론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여론조사는 장영달 의원실이 국정감사를 앞두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같은 달 5일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4선인 장의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8년을 복역했던 인물로서 1992년 국회에 들어온 후 국가보안법철폐, 한총련합법화 등을 주장해왔다.

 

▲강희남 목사(양키추방공동대책위 대표)= 미제국주의 침략의 상징 맥아더동상을 (2005년) 7월 17일에 끌어 내리겠다(2005년 5월 10일 ‘양키추방공동대책위’를 만들고 자유공원 등 인천 각지를 돌며)

 

▲강희남 목사(전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 의장)=6.25당시 맥아더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양키의 식민지 지배를 받지않고 살 수 있었다( 2005년 5월 19일 ‘통일뉴스’ 인터뷰)

 

※한상렬은 6·15 남북 공동선언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10년 6월 20일 북한에 불법입국 해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명박 대통령을 천안함 침몰 사건의 원흉이라고 지목하는 한편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을 지혜로운 지도자라고 찬양했다. 그는 6월 22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천안함 사건은 한미 동맹으로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미국과, 선거에 이용하고자 했던 이명박 정권의 합동 사기극”이라면서 “6.15를 파탄내고 한미 군사훈련 등으로 긴장을 고조시켜 온 이명박이야말로 천안함 희생 생명들의 살인 원흉”이라고 말했다.

 

◈기타 6.25전쟁 왜곡 발언

 

▲노무현 대통령= 6.25 전쟁은 내전(2006년 11월 20일 캄보디아 동포 간담회).

 

※6.25에 대한 노무현대통령의 이같은 역사관은 국내 좌익과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역사관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6.25전쟁은 북한이 소련과 중공이라는 두 공산주의 국가의 사주를 받아 김일성이 일으킨 침략전쟁(남침전쟁)이지 내전이 아니다. 내전이라면 집안싸움에 유엔이 개입할 근거가 약해진다. 대한민국은 유엔 감시하의 자유선거 후 유엔총회 승인을 거쳐 탄생했지만, 북한은 반국가단체에 불과했다.

 

▲노무현 대통령= 북한은 패전당사자 아니다...6.25남침 사과받으라는 것은 비현실적(2007년 10월 19일 청와대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전에 6.25 전쟁에 대한 북측의 사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CNN 기자의 질문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 (6.25전쟁 모의에 가담하고 개입한) 마오쩌둥을 존경한다2003년 7월 10일 중국 CCTV 방송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2003년 6월9일 일본 방문 중)

 

▲김대중 대통령= 6.25는 실패한 통일전쟁(2001년 국군의 날 행사에서)

 

※이것은 6.25를 ‘조국해방전쟁’으로 규정한 북한의 통일관이고 역사관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 6.25는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자 내전(2005년 7월 27일 인터넷 매체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올린 글)

 

▲이재정 통일부장관 지명자= (6.25는 남침인가?라는 질문에) 규정해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2006년 11월 18일 국회 통외통위 인사청문회)

 

▲이정희 민주노동당대표=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는 좀 더 치밀하게 생각해서 나중에 답하겠다(2010년 8월4일, KBS 라디오 ‘열린토론’에서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청취자의 질문에)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 6.25를 전후로 진정한 애국자들과 양심적 지도자들은 남한을 버리고 북으로 갔다...이북에서는 새나라 건설을 위해서 ‘새술을 새 부대’에 담는 민족정기가 넘쳐있는 데 같은 시각 남한은 ‘썩은 술을 낡은 부대’에 그대로 담고있는 꼴이었다(2007년 4월 19일 한겨레통일문화상 시상식)

 

▲사진 위는 연방통추가 인천자유공원에서 맥아더 동상 철거를 외치고있는 모습. 사진 아래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연방제 선동을 하고 있는 연방통추 회원들  

▲2005년 9월11일 미군의 한반도 주둔 60주년 되는 날에 맞춰 맥아더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오종렬, 한상렬(원내 왼쪽으로부터)등 시위대원들

기사입력: 2017/09/14 [16:05]  최종편집: ⓒ allinkorea.net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고학과 종교 진실 17/09/14 [23:51] 수정 삭제
  내세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현세의 부귀영화는 중요한 의미가 없다. 성직자들을 포함해서 많은 구도자들이 경전이나 명상에만 의존해서 우주와 생명의 본질을 탐구했기 때문에 올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그들의 탐구는 결국 우물 안의 개구리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와 종교학자도 유능한 학자로 출세하기 위해서 무비판적이며 맹목적으로 기존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데만 치중하므로 학문의 오류를 탐지하지 못한다. 인간의 장기가 다른 사람에게 이식되면 원래 주인의 생명과 상관없이 생명을 유지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하나의 주체에 의해서 통제되는 단일생명체인가 아니면 여러 생명체가 함께 살고 있는 집단생명체인가? 기존의 과학과 종교이론을 180도 뒤집는 이론으로 우주와 생명을 새롭게 설명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과학자와 종교학자들이 반론을 못한다. 이 책은 서양과학으로 동양철학을 증명하고 동양철학으로 서양과학을 완성한 통일장이론서다. 아인슈타인의 공식(E=mc^2)이 옳다면 물질양자가 소멸하면서 에너지양자로 변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양자가 다른 양자로 변할 때에 양자는 더 작아질 수 없으므로 변화의 과정이 없이 변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우주의 모든 변화는 양자의 위치이동(결합이나 분해)에 불과하며 진정한 변화(양자의 소멸과 생성)는 창조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므로 불가능하다. 핵반응에서 나오는 열(에너지)은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상관없는 다른 방법으로 생성된다. 기독교인들이 비성경적으로 행동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비판은 성경이 진리일 때만 가치가 있다. 성경이 진리가 아니라면 성경을 근거로 그들의 행동을 비판해야할 이유도 없다. 기독교인들이 수천 년간 비성경적으로 행동해도 왜 하나님이 그것을 방치하고 있을까? 세월호처럼 안전 규칙을 안 지키면 기독교인들도 사고가 난다. 기독교인들도 일반인들과 똑같은 확률로 암이 걸린다. 하나님은 공평한 건가? 아니면 기독교에 무관심한 건가?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