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고구려 귀족무덤을 단군릉으로 조작
서옥식, 개천절 맞아 북한 교과서 날조 반박
 
조영환 편집인

단군을 실재인물-동양최초 국가 창설자로 기술

“BC 2333년보다 660년 빠른 BC 2993년 고조선 설립

연대측정결과 檀君부부 유골-유품 5천여년 전 것으로 판명

단군 출생지와 묻힌 곳 모두 평양으로 발표, 김일성왕조 정통성 주장

대동강 유역을 세계 5대 문명발상지로 교과서 기술

사실이면, 한반도와 세계사 다시 써야 할 대발견

 

북한은 단기 4350년은 맞아 지난 3일 평양의 단군릉에서 개천절 기념행사와 함께 단군제를 개최했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를 인용한 국내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날 행사에는 북한 민족화해협의회 회장이자 조선사회민주당 위원장인 김영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인 리길송과 김완수를 비롯해 단군민족통일협의회 관계자 및 평양시민이 참석했다.

   

▲ 복원된 단군릉 전경. 사실은 고구려 귀족무덤을 개건(改建)한 것이다

 

특히 북한 웹사이트인 오늘의 조선은 이날 기념행사 및 단군제 개최소식을 자세히 전하면서 단군(檀君)은 반만년전에 지금의 평양 일대에서 태어난 실존인물로, 이곳을 수도로 정해 동방에서 처음으로 고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고 보도했다. ‘오늘의 조선은 또 단군은 약 3천년 동안 존속한 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로 발전한 고조선의 시조로서 죽어서 묻힌 곳도 평양이라고 설명했다.

 

이 웹사이트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원수님에 의해 신화적인 존재로만 전해오던 단군이 실존한 민족의 원시조로 고증됨으로써 우리 민족이 단군의 혈통을 이은 단일민족이라는 것이 확증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북에서는 단군릉이 민족의 만년재보로 개건돼 해마다 이곳에서 개천절 기념행사가 열리고 단군제례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북한문제 연구가인 서옥식 박사(정치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 전 연합뉴스 북한부장-편집국장)남한의 역사학계에서는 단군과 단군이 세웠다는 고조선(古朝鮮)이 신화냐 역사냐를 두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지적하고 북한에서 고조선은 이미 고증된역사이지만, 남한에서는 실체가 충분히 고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7103일 북한 단군릉서 열린 개천절 기념행사 모습(사진 =연합뉴스 캡쳐)

   

단군제례를 진행하는 모습(사진=조선의오늘 캡쳐)

 

북한은 1993102일 소위 단군릉 발굴이라는 조선사회과학원 보고를 통해 평양시 강동군 강동읍 북서쪽의 대박산(大朴山) 동남쪽 비탈에 있는 고구려 양식의 지하식 돌칸흙무덤, 즉 석실봉토분(石室封土墳)에서 86개의 남녀 뼈 조각이 발견됐고, 연대를 측정한 결과 5011년 전의 인골(人骨)로 나타나 이것이 단군부부의 유해가 틀림없다고 밝혔다.

 

무덤 발굴은 김일성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김일성은 19931단군릉이라고 구전(口傳)돼온 강동군 소재 이 무덤을 발굴하라고 지시했다.

 

사회과학원은 발굴보고서를 통해 이 인골을 전자상자성공명법(電子常磁性共鳴法: Electron Spin Resonance, ESR)을 적용해 측정한 결과 그 연대가 1993년으로부터 약 5011± 267년 전의 것으로 확증됐다고 밝혔다. 사회과학원은 유골 중 골반뼈를 감정한 결과 하나는 남자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의 것으로 판명됐다면서 남자의 뼈는 길고 굵고, 키는 170cm에 달해 체격이 건장한 편인데다 왕이나 쓸 수 있는 금동관(金銅冠) 조각이 함께 출토된 점에 비춰 이 유골이 당시 최고 지배층 인물인 단군의 것임이 틀림없다고 밝혔다. 현재 평양의 조선중앙력사박물관에 마련된 단군릉 코너에는 대박산에서 발굴했다는 단군 부부 유골의 실물 크기 복제품이 나무와 유리로 만든 관 안에 전시돼 있다.

 

보고서는 이어 고조선의 건국시조인 단군이 태어난 곳은 평양일대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응제시주’(應製詩註)의 저자들은 단군신화를 전하면서 환웅이 하늘에서 땅위에 처음 내렸다고 하는 곳인 태백산을 묘향산이라고 하였다. ‘팔역지’(八域志)에서는 묘향산의 박달나무(神檀樹) 아래에 단군이 태어난 석굴이 있다고 하였으며, ‘녕변지’(寧邊誌)에서는 묘향산의 향로봉 남쪽에 단군이 태어난 굴이 있다고 하였다(물론 조선시대 역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숙종실록’, ‘영조실록’, ‘정조실록등에도 평양 강동지방에 '단군릉'이 있었다고 하고, 그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관리가 행해졌음이 기록돼있다). 단군은 오늘의 평양에서 나라를 세운 후 주변의 소국들을 통합하여 점차 영토를 넓혀 나갔으며 이후 단군이 세운 고조선은 근 3천년 동안 전속하면서 멀리 중국의 만리장성 계선까지 영역을 확장하여 아시아의 강대한 고대국가로 발전하였다. 단군이 죽어 묻힌 곳도 역시 평양 일대였다고 발표했다.

 

▲ 단군릉 개건 20돌을 맞아 2014년 개천절 민족공동행사가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단통협)등 남측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단군릉에서 열렸다. 무덤앞 양쪽 합쳐 8개의 상은 단군조선 초기에 불리던 대신급의 중앙관료 8명인 단군 8를 가리킨다. 이들의 명칭은 호가(虎加, 모든 가 를 총괄하는 직책), 마가(馬加, 임금의 말씀을 가르치는 직책), 우가(牛加, 곡식을 주관하는 직책), 웅가(熊加, 군사를 주관하는 직책), 응가(鷹加, 형벌을 주관하는 직책), 노가(鷺加, 질병을 주관하는 직책), 학가(鶴加, 윤리도덕을 주관하는 직책), 구가(狗加, 고을을 다스리는 직책)이다(사진=단통협 제공)

 

서옥식 박사는 평양의 백과사전출판사가 2007년에 출간한 광명백과사전(1)’ 39쪽을 보면 단군이 B.C. 31세기말(정확히 B.C. 3018) 평양에서 태어나 25살때인 B.C. 2993년에 동방의 첫 고대국가 고조선을 세우고 초대국왕이 됐다고 기술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단군조선의 건국 연대는 동국통감(東國通鑑)의 기술에 따라 B.C. 2333년인데 북한의 단군릉 발굴 발표로 보면 이보다 660년이 빠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그러면서 이러한 기술은 고조선의 건국 시기가 B.C. 2333년 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부시절 동양사를 전공한 서옥식 박사는 이어 만약 북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반도에서는 황허(黃河)유역에서 청동기를 만들기 시작한 때보다 1천년 이전에 이미 고도의 청동금속문명이 등장했음을 의미하며, 이야말로 한반도 역사는 물론이고 세계사를 새로 쓰지 않을 수 없게끔 하는 대발견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서옥식 박사가 공개한 북한 교과서의 날조된 부분들이다.

   

단군이 신화 아닌 실재인물로 우리나라 원시조라고 서술한 북한 교과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김정일은 사망후인 2012214일에 대원수로 추대됐기 때문에 생전에는 원수로 불렸다)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고조선은 우리민족이 자체로 세운 나라입니다.>

오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들보다 훨씬 먼저 나라를 세웠다.

우리 민족이 세운 첫 국가는 <조선>(고조선)이었다.

조선을 세운 사람은 단군이였다. 그래서 단군조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 단군의 출생과 성장

단군은 지금으로부터 5,000년전에 평양에서 태여났다.

평양지방은 대동강이 감돌아 흐르고 높고 낮은 산들과 기름진 들이 펼쳐져 있어 예로부터 사람들의 삶의 보금자리로 되여있었다.

평양에서는 검은모루유적을 남긴 원인을 비롯하여 고인, 신인이 발생하여 대를 이어 살아오면서 깊이 뿌리를 내렸고 그들은 마침내 조선사람의 선조로 되였다.

단군의 아버지는 환웅이였다.

환웅은 단군이 태어날 때 박달(‘배달의 딴 이름)종족련맹의 추장으로 있었다.

어머니는 이웃한 지역에서 살고있던 다른 종족추장의 딸이였다.

단군이 자라나던 시기는 원시공동체사회가 무너져가고 종족들간의 싸움이 계속되던 때였다.

단군은 어릴때부터 활쏘기와 창쓰기, 칼쓰기 등 무술을 익히는 데 열중하였다.

그의 무술솜씨는 이웃 종족들에게까지 알려졌다.

2) 단군에 의한 고조선의 성립

어려서부터 남달리 영특하였던 단군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추장이 되였다.

단군은 이웃한 종족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자기 종족과 맞서는 종족들은 군사를 동원하여 강하게 눌러놓고 통합하였다.

그리하여 박달종족의 땅은 점차 넓어지고 인구도 불어났으며 재부도 전례없이 늘어나게 되였다.

단군은 지금으로부터 5,000년전에 나라를 세우고 나라이름을 <조선>이라고 하였으며 수도를 평양으로 정하였다.

단군이 세운 <조선>은 그후 <고조선>이라고 불리웠다.

그것은 그후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또 세워졌으므로 서로 갈라보기 위해서이다.

<고조선>이라는 말은 옛조선이라는 뜻이다.

단군은 나라를 세운후에 주변종족들을 통합하면서 계속 영토를 넓혀나갔다.

그리하여 고조선은 평양을 중심으로하여 북쪽과 남쪽으로 넓은 령토를 가진 강대한 나라로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 세계의 여러 지역에 사는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원시공동체사회에서 벗어나지못하고 있었다.

옛날책에 씌여있는 고조선의 건국전설인 <단군신화>는 단군이 평양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운 사실을 보여주고있다.

평양시 강동군에는 단군의 무덤이 있다.

단군은 우리 민족의 풍습대로 죽은 다음 자기의 고향인 평양에 묻혔던 것이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께서는 조선 민족의 첫 시조릉인 단군릉을 웅장하게 개건토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그리하여 주체 83(1994)년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기슭에 세워진 단군릉은 동방에서 가장 강하였던 단군조선의 기상을 상징하며 력사에 길이 빛나게 되었다.(출처: 조선력사(고등중학교 제3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88(1999), pp.13-15)

 

단군의 유골과 유품이 5천년전 것으로 고증됐다고 기술한 북한 교과서

 

단군은 우리 땅에 <조선>이라는 첫 나라를 세운 실지 있은 우리민족의 원시조이다.

그런데 일제의 조선민족말살책동으로 하여 모든 책들에는 단군이 신화적인 인물로 되여있었다.

력사학자들도 단군에 대해서는 그렇게 단정해버리고 실지로 존재한 원시조를 찾을 생각을 하지않고 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첫 국가를 세운 단군의 유적을 발굴하고 과학적으로 고증하도록 이끌어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일을 돌보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여러 가지 역사책들을 연구하고 자료들을 찾아 보면서 탐구에 탐구를 거듭하시였다.

주체81(1992)9월에는 일군들에게 단군에 대한 자료가 비록 신화적인 전설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무시 할수 없다. 일제에 의하여 여지없이 무시당하고 미제에 의하여 다 마사 진 단군유적들과 전설들을 되살려 놓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학자들이 단군과 관련한 유적들을 다 찾아내고 똑똑히 확증하여 단군전설을 과학적으로 해명해야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연구사업을 심화시켜 나가던 력사학자들은 마침내 평양시 강동군에 단군릉으로 알려진 고분이 있다는 것을 수령님께 보고 드리였다.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묘를 발굴해 보고 당시의 력사를 정확히 밝혀 내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리하여 주체82(1993)1월 강동군 강동읍에 있는 단군릉을 전면적으로 조사발굴하는 사업이 진행되게 되었다. 이 과정에 고분에서는 사람의 유골과 귀중한 유품들이 나왔다.

현재적인 년대측정기구로 알아본 결과 발굴된 유골과 유품이 5,000여년전의 것이라는 것이 확증되였으며 유골은 유골은 단군과 그의 안해(아내)의 것이라는 것도 증명되였다.

오랜 세월 신화로만 전해오던 단군은 드디어 실지로 있은 인물로, 우리 민족의 원시조로 확인 되였다.

이에대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참으로 단군릉을 발굴하고 단군유골을 찾아낸 것은 우리나라 고고학의 위대한 승리이며 조선민족의 크나큰 자랑입니다>라고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였다.(출처: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력사(중학교 제5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92(2003), pp. 86-87)

   

북한은 이에 따라 199412일 제 정당·단체 책임일꾼협의회에서 내련진 김일성의 단군릉개건확장지시199419일 단군릉 개건(改建)을 위한 단군릉 복구위원회를 조직하고 평양시당 책임비서·강희원 부총리·김정일 비서 라인을 주축으로 개축공사를 진행했다. 북한에서는 복원(復元)을 개건으로 부른다.

 

김일성은 사망 이틀 전인 199476일에도 단군릉의 최종 도안을 살펴보는 등 단군릉에 각별한 관심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일도 같은해 713일 아버지 김일성 국상기간으로 경황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단군릉 공사만은 챙겼다. 그는 단군의 생일인 개천절 전에 공사를 완공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공사는 본격화됐다. 하지만 개건 준공식은 김일성 사망 3개월 뒤인 1011일에 열렸다. 이어 1220일에는 단군제가 개최됐다. 당초 103일 개천절에 맞춰 진행하려던 단군릉 개건 준공식이 공사 지연으로 늦춰진 것이다. 이 공사로 단군릉은 총 부지면적이 45정보(135천평)에 달하게 됐으며, 무덤은 9단의 피라미드 형식으로 밑변 한 변의 길이가 50m, 높이는 22m의 장대한 규모로 변모했다.

 

 

북한은 소위 단군 부부 유골발굴을 계기로 평양의 조선중앙력사박물관에 단군과 그 부인의 밀랍인형과 의상을 제작, 전시해놓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캡쳐)

   

북한은 준공 후 매년 103일 개천절을 맞아 단군민족통일협의회 주관 아래 천도교인들과 각계층 근로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개건된 단군릉에서 단군제를 개최하고 있다. 제례는 천도교식과 대종교식, 조상 전례의 제법을 배합해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군릉은 과연 단군의 무덤인가서옥식 박사는 자신의 저서 <거짓과 왜곡 조작 날조를 가르치는 사회 - 북한 교과서 대해부>에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무덤양식으로 볼 때 단군의 무덤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면서 발굴된 무덤은 5세기 이후 고구려의 특징적인 무덤 양식이다. 북한측은 이 무덤이 고구려 때 개축됐다고 주장하나 단군무덤이 고구려 때 개축됐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어느 기록에도 없다. 더구나 고구려 사람들이 당시로부터 3700년 정도 앞선 시기의 인골을 어떻게 단군의 뼈로 확인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새로 복원했다면 과연 그렇게 작은 무덤으로 만들었을까라고 덧붙였다.

 

발굴을 위해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단군릉은 돌로 무덤 칸을 만들고 흙으로 둥글게 덮은 석실봉토분이었다. 크기는 동서 273cm, 남북 276cm의 작은 무덤으로 네 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모줄임천장(天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즐임천장(Intersecting Triangular Ceiling)이란 네 귀에서 세모의 굄돌을 걸치는 식으로 반복해 모를 줄여가며 올리는 돌방무덤으로 말각조정식천장(抹角藻井式天障)’이라고도 하며 삼국시대 고구려에서 유행했다. 평면이 4각인 방의 천장을 만들 때 한 벽의 중간점에서 인접벽의 중간점을 평편석으로 덮어서 모서리를 줄여 이 방법을 2, 3차 반복해 천장을 완성하는 건축법이다. 따라서 이러한 방법으로 완성된 천장을 올려다보면 4각형 속에 마름모꼴, 마름모꼴 속에 작은 4각형이 보인다.

 

이러한 양식은 고구려에서뿐만 아니라 중국의 석실묘나 소아시아 지방 흑해 연안 등의 석실묘에서도 볼 수 있는 점으로 미루어 그 발원지가 소아시아 지방으로 중국 간쑤성(甘肅省)을 거쳐 고구려에 전래되어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고구려에 불교가 전해지면서 함께 들어온 건축양식이다. 북한당국은 고구려식 무덤이 5천년전의 단군릉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아무런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국제적으로 공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유일한 주장은 민간인들한테 (단군릉이라) 전해져 내려오던 무덤을 팠더니 사람 뼈가 나왔으므로 단군부부가 틀림없다이런 식의 주장이다. 북한의 교과서도 단군릉이라고 전해오는 무덤을 발굴했더니 사람의 유골과 유적이 나왔고 이것을 현대적인 연대측정방식으로 측정한 결과 5천년전의 것으로 나타났으며 따라서 이 무덤은 단군의 것으로 확인되고 증명됐다고 서술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일반인들 사이에 ’()이 아닌 ’()로서 구전(口傳) 형태로, 세상 사람들이 단군 무덤이라고 하더라라는 반신반의 상태의 이야기가 전해져온 게 사실이다. 조선시대에 과거 왕조의 시조들에 대한 제사를 중시하면서 각 지역의 큰 무덤들이 시조의 무덤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이 강동군 대박산의 무덤이 단군릉으로 불린 이유의 하나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한편 단군릉 발굴과 개건을 통해 단군이 평양에서 태어난 실존 인물로서 동양 최초의 국가를 건설한 군주라고 공식 발표한 북한은 대동강 유역이 나일강변의 이집트 문명,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강 유역의 인더스 문명, 중국 황허 유역의 황허 문명과 같은 인류문명의 발상지라고 밝혔다.

 

북한의 조선력사학회는 1998311과학적으로 증명된 수많은 자료는 대동강 유역이 고대문화, 단군조선의 문화임을 입증한다며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 일대의 고대문화에 대해 대동강문화라는 학명을 부여하고 이를 대내외에 천명하는 한편 대동강문화를 세계 5대 문명의 하나라고 공식 선포했다.

 

북한 학계는 평양 일대에서 고인돌, 집터, 성터 등이 계속 발견됐으며, 이것들은 대동강 유역에 구석기시대부터 매우 발달한 고대 문화가 존재했다는 증거라고 설명한다. 예컨대 약 4800년 전 고인돌 무덤에서 하늘의 별자리를 표시한 구멍들이 발견됐으며, 이는 세계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3천년 정도 천문학이 앞선 증거라는 것이다.

 

대동강유역을 세계 5대 문화발상지로 조작한 북한 교과서

...이와같이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에서는 원인-고인-신인, 조선옛류형사람들이 남긴 수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였다이 일대에서는 후에 평양을 수도로 정하고 성립된 고조선시기의 유적유물들도 집중적으로 나타났다인류발생초기부터 고대시기의 문화유적유물이 수많이 드러난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의 문화를 <대동강문화>라고 한다.(출처: 조선력사(고등중학교 3학년용), 평양:교육도서출판사, 주체88(1999), pp.10-11)

 

기사입력: 2017/10/05 [20:08]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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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유신 17/10/06 [00:48] 수정 삭제
  21세기 개명천지에! 이런 사기꾼들이 들끓으니! 세상이 망하는 건 사필귀정이라 하죠? 정은아! 신화가 무언지 아니? 꾸며낸 이야기 지어낸 이야기를 신화라고 한단다! 사람을 바보로 아니? 꾸며낸 이야기 지어낸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그걸 믿을 사람이 있다고 선전하는 거니? 그러니 너를 바보라 하고 iq50이라 하지! 너의 하수인 죄인도 IQ 50은 마판가지! 남이나 북이나 조선이 안 망하니?
단군 한웅 한인 역사는 실사이다 chowoo 17/10/06 [19:20] 수정 삭제
  천부경은 한인천제께서 지어시고, 배달국 한웅천왕 때는 녹도의 글로써 기록케 하고, 단군성조님 때 전서로 기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필자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천부경은 천리와 수리가 부신처럼 부합한다고 하는 경정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桓歷이 거러하고, 우리의 민속문화인 곤놀이 곤판, 윷놀이 윷판, 바둑판 그리고 생태계의 문양, 광물의 결정체 등이 모두 천부경에 맥이 닿아 있다. 그래서 수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언어이다. 고로 한민족의 역사 상원갑자 시월 삼일에 한인천제께서 천부경이 반포된 고로 실사임이 필자의 천부경 해석으로 증명된다. 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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