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좌익단체, 천만 평화협정서명 돌입
문재인, 평화협정 제의 후 길거리 서명 본격화
 
조영환 편집인

 

친북좌익단체들, 1천만 평화협정서명 돌입

문재인, 평화협정 제의 후 길거리 서명 본격화

 

서옥식,“평화협정이 평화 보장한다는 것은 사기극

평화협정은 북한의 대남적화무력남침 초대장

북한,‘평화협정은 연방제통일 선결조건’ 규정

월남도 평화협정 때문에 망하고 공산화됐다

세계사의 평화협정 8천건 평균수명 2년 못가고 전쟁재발

북한의 평화협정 논리는 한미동맹 와해와 주한미군 철수

북한 모든 규범 심지어 백과사전도 평화협정=미군철수 규정

미군철수 후 연북용공세력과 손잡고 인민민주주의국가 건설

정전협정 43만건 위반의 장본인 북한은 평화협정 말할 자격 없다

북한은 평화협정 전제조건으로 핵폐기 말한 적 없어

국내 친북세력, 북핵 폐기없는 평화협정의 함정에 놀아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은 언제나 휴지조각 유혈충돌 못막아

1차대전 후 부전(不戰)약속 베르사유평화협정도 2차대전 못막았다

은 핵무기를 한반도 평화무기라고 하는데, 평화 보장되겠나?

역사상 최대의 평화협정 사기극은 베트남 평화협정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한데 이어 일부 시민단체들이 본격적인 평화협정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세계여성평화그룹(IWPG: International Women's Peace Group) 한국본부(본부장 윤현숙)는 한반도 전쟁종식을 위한다며 지난 113일부터 3개월간 1천만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서명운동은 IWPG 한국본부 67개지부와 한반도 평화통일여성조직위원회가 공동주관하고 있다. 이들은 전국의 길거리에 서명판을 차려놓고 왕래하는 주민들에게 평화를 외치며 평화협정 찬성서명을 받고있다. 이에 따라 30여 친북좌익단체들도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좌익단체들은 아주 간단한 2분법식의 당위(當爲: Sollen)를 강조하는 질문 <전쟁이냐, 평화냐>를 행인들에게 묻고있다. 문제는 평화협정내용을 잘 모르는 노인들이나 가정주부, 어린이들이 평화라는 말에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시하며 서명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북한문제 연구가인 서옥식 박사(정치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전쟁이냐 평화냐는 좌파들의 통일전선전략 구호라고 설명하고 평화협정이 평화를 보장한다는 것은 과거 베트남평화협정이나 중동평화협정에서 보듯 사기극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6일 주요20개국(G20) 정상회담 참석차 방문한 독일의 베를린 구()시청에서 열린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서 에서 종전(終戰)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북핵 문제와 평화 체제에 대한 포괄적 접근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선언했다. 이는 관련국이 참여하는 평화협정으로 종래 북한이 주장해 온 -미 평화협정과는 다르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남북한이 주도권을 행사하되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모두 참여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미사일 동결이 입구라면, 한반도 평화협정과 비핵화는 출구라며 문 대통령이 임기 내 추진할 대북정책의 전체 구상을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선호하는 북미평화협정이든 남북이 주도하고 관련국들이 참가하고 서명을 통해 보장하는 평화협정이든 평화를 담보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 지배적이다. 인류역사상 체결된 8천여건의 평화협정이 평균수명 2년을 못가 전쟁재발로 이어졌다는 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가장 완벽했다는 1973년의 베트남평화협정마저도 전쟁 당사자인 미국, 남베트남, 북베트남, 베트콩(베트남 임시혁명정부) 4개 주체가 서명하고 확실한 휴전을 담보하기 위해 휴전감시위원단인 캐나다, 이란, 헝가리, 폴란드 4개국 대표, 그리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인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 외무장관이 서명에 참여해 사실상 4+4+4 회담이었으나 평화협정은 깨지고 전쟁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국가간의 평화는 약속으로 지켜질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더구나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사실상 제로상태인데다 평화협정 체결을 그들의 통일방안인 고려민주연방제(공산화)의 선결조건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평화협정 체결은 난황이 예상되고 있다. 북한은 19801010일 조선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김일성의 사업총화 보고를 통해 기존의 통일방안과 제안들을 다시 정리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시하면서 평화협정체결이 선결조건임을 분명히 했다.

 

세계여성평화그룹(IWPG)이 1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평화협정 1천만 서명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한반도에서의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바꾸자는 제의는 여러 차례 있어왔으나, 문대통령이 이번에 평화협정 체결 추진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2016223일 워싱턴 D.C. 미 국무부 청사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회동한 뒤 기자회견에서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비핵화 협상과 평화협정 논의를 병행할 것을 미국 측에 공식 제의했다고 밝힌 것을 들 수 있다. 미국도 북한이 4차 핵실험(201616)을 감행하기 며칠 전에 북한과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논의에 합의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2016221일 온라인판에서 미국 정부가 북한 핵실험 수일 전에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기로 북한과 은밀히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조치를 먼저 취해야만 평화협정을 위한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주장해왔으나, 이같은 전제조치를 포기하고 논의에 합의했다고 이 신문은 설명했다. 이 신문은 미국 정부가 그 대신 북한의 핵무기 개발 문제를 평화협정 논의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으나, 북한은 이 요구를 거부했고 곧이어 핵실험을 감행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미국 국무부는 관련한 논의가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북한이 비핵화문제를 평화협정에 포함시키자는 미국의 제안을 거부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을 상대로 평화협정을 체결해 휴전협정을 대체할 것을 꾸준히 요구해왔으나,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우선돼야 한다며 이를 거부해왔다.

 

다음은 2016224일 작성한 글을 문대통령의 평화협정 제안을 계기로 재정리한 것.

 

평화협정은 연방제 선결조건...대한민국 공산화 멸망의 길

 

올해로 휴전협정 64년을 맞는 지금 북한 뿐 아니라, 우리사회 일각에서도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관련하여 정전협정 체제를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온 게 사실이다. 평화협정이 한반도의 평화를 실체적으로 보장한다면, 이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사 핵폐기를 전제로 평화협정이 체결된다하더라도 과거 1차대전의 베르사유 강화조약(Treaty of Versailles, 1919)이나 베트남평화협정(1973), 중동평화협정(1979)에서 보듯 전쟁과 분쟁이 지속되면서 평화를 담보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베트남 평화협정체결은 미국과 공산 북베트남(越盟)간의 전쟁을 종식시켰지만, 결국 남베트남(越南)이 적화되고 600여만명의 남베트남인이 죽임을 당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어찌됐 건 통일이 되지않았느냐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아닌 소위 인민민주주의체제의 공산화 통일이라면, 우리 국민 다수가 이런 통일방식을 수용한다고 보겠는가?

 

중동평화협정 역시 지역평화를 위한 외교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테러나 국지전쟁이 끊이지 않는 등 불안한 상태가 지속됨으로써,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연합국 간에 체결된 베르사유 강화조약은 대표적인 평화협정의 하나지만, 나치정권의 독일이 배상을 거부하면서 1933년에 파기됐다. 결국 평화 유지는 실패했고,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이어졌다.

 

평화협정(peace agreement)이란 군사적으로 대치 관계 또는 교전 중에 있는 국가들이 대치를 중지하고 평화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 맺는 협정이다. 국제법상의 효력은 평화조약에 준하지만, 행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대해서만 약정을 맺는 것으로 국회의 비준 등을 거치지 않아도 되기때문에 평화조약에 비해서 격이나 구속력이 떨어진다. 이에 반해 평화조약(treaty of peace, peace treaty)은 교전 중인 국가 간에 전쟁의 종료와 평화의 회복, 영토, 배상금 따위의 강화조건을 규정하고 그 이행을 위한 담보 수단을 정하는 조약으로, 조약의 체결권이 국가수반에 의해서 행사되고 국회의 비준을 거쳐 최종 확정되는 약정이다. 국회의 비준을 거침에 따라 국제법, 국내법 모두에 구속력을 가지는 평화체제 가운데 가장 강력한 약정이다.

 

평화협정이 한반도의 평화를 실체적으로 보장한다면, 이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추진할 과제이다. 북한은 1974년 최고인민회의의 대미(對美)서한 이래 평화협정을 주장해왔다. 북한은 특히 정전협정 60년이 되는 201336일 정전협정을 백지화 한다고 선언했다. 북한이 정전협정 폐기를 선언하면서 노리는 평화협정은 한마디로 주한미군의 철수에 있다. ‘핵전쟁’ ‘서울 불바다운운하며 공갈과 협박을 일삼고 미국과는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대한민국과는 6.15, 10.4선언에 따른 연방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핵개발 이전부터 평화협정을 그들이 주창하는 공식 통일방안인 고려민주연방제의 선결조건으로 못박고 있다. 북한은 19608월 처음 연방제(남북연방제)를 제안한 후 19736고려연방제를 거쳐 198010월 제6차 당대회에서 최종 정리된 형태인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Proposal for Founding a Democratic Confederal Republic of Koryo)을 제의했다. 당시 김일성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자는 제하의 연설을 통해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의 선결조건으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교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들었다.

 

북한은 평화협정만 달성되면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그들의 최고규범의 하나인 노동당규약에 명시된 대로 공산화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의 든든한 후원자인 우리 사회의 친북세력은 유사시 통일전선전략의 파트너가 될 것이다. 북한과 남한의 친북세력은 정전협정이야말로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에서 냉전을 지속시키는 틀이라면서 평화협정으로 전환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협정은 나라를 패망에 이르게 하는 길이다.

 

친북세력들은 미국 정부가 보호하는 가장 큰 세력이 군산복합체이기 때문에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보존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전쟁상태유지가 필수라는 점 때문에 미국이 평화협정체결에 반대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한반도에서의 전쟁, 즉 북한과의 대결과 전쟁을 통해 이익을 챙기려 한다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좌파 학자나 운동가들이 펼쳐온 전형적인 반자본주의적 논리다. 군사무기를 생산하는 기업들이 이익 확대를 위해 전쟁을 조장한다는 군산복합체론은 이미 낡은 개념이며, 사실로 검증되지도 않은 허구적 논리다.

 

전쟁을 통해서보다는 평화상태에서의 무역 확대나 안정적인 경제발전이 기업 이익 증진에 기여한다는 것은 이제 설득력 있는 사실이다. 걸프전이나 이라크전, 아프간전에서 보듯 전쟁은 미국과 같은 전쟁 당사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경제를 동반 위축시키고 무역 축소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군산복합체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항상 문제의 본질인 북한 또는 다른 테러국가의 불법적이고 반인권적 행위에 눈을 감고, 오직 미국 정부와 미국 기업을 공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공산주의국가나 테러국가를 옹호하고 있다. 이들은 항상 북한의 세습독재와 전체주의 등 반민주주의, 반자유주의, 반인권적 상황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친북논리 확산과 반미감정 부추기에 앞장선다.

 

설사 군사적 방식에 의한 대북 조치가 실제 이루어진다 해도 핵개발시설과 관련된 극히 제한된 정밀타격(surgical strikes)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제한된 폭격으로 미국의 군산복합체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거의 무의미한 수준이다. 오히려 동아시아의 전쟁위기에 따른 위험증대와 경제침체로 나타날 수 있는 손해가 훨씬 더 크다. 199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해 북한의 핵무기 개발문제가 불거졌을 때 우리 사회 여론 지도층의 첫 반응은 미국의 군산복합체 음모였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능력이 없는데 냉전종식으로 존재 가치가 줄어든 미 CIA(중앙정보국)와 국방부, 그리고 군수업자들이 결탁해 핵능력을 조작 내지 과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핵무기 개발에는 거액의 돈이 소요되기는 하지만 핵개발은 1960년대의 낡은 기술에 속한다. 지도자의 의지만 있으면 언제나 개발이 가능한 것이 핵무기이다. 그럼에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 능력과 의지를 애써 평가절하 해온 것이다. 예를 들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219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조찬모임에 대통령 당선자 자격으로 참석, “존재하지 않은 북한 핵 위협론을 중요 정보인 것처럼 퍼뜨리지 말라고 말했다.

 

평화협정체결에 가장 열광적인 지도자는 고 노무현 대통령

 

전쟁은 북한이 저지른 우리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남침전쟁이었으며, 김일성, 스탈린, 마오쩌둥(毛澤東) 3자가 합의해 공산주의 영향력을 동북아에서 확대하기 위해 일으킨 국제전쟁이자 자유-공산 양대 세력의 이데올로기전쟁이었다.

 

1950625일부터 1953727일 휴전협정체결까지 남북한과 유엔군을 통틀어 5백여만의 사상자와 1천만명이 넘는 이산가족을 만들어냈다. 그 경제적 손실은 전 국토의 90%정도가 초토화되면서 대한민국은 가히 계수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인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국은 195074일 스미스 대대가 참전하면서부터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3년간 연인원 175만 명의 병력을 참전시켜 54246명이 젊은 목숨을 바쳤고, 103284명이 부상했으며, 아직도 8천여명의 실종자를 남기고 있다.

 

당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다시는 이러한 식의 전쟁은 치르지 않겠다는 뜻의 ‘Never again Korea’를 토로했으며, 휴전 후에도 아물지 않는 상처를 달래기 위해 한국전을 아예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결코 잊혀진 전쟁이 아니다. 오히려 끝나지 않은 전쟁(Never Eending War)’이다. 오늘날도 거의 모든 국제문헌이나 세계 언론은 한반도의 정전상태에 대해 기술적으로 전쟁상태’(technically at a state of war)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 또한 전쟁이 일시적으로 중단됐지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6.25전쟁은 김일성, 스탈린, 마오쩌둥(毛澤東) 3자의 공모에 의해 치밀하게 준비된 남침이었다. 김일성은 1950330일부터 425일까지 부수상겸 외상 박헌영과 함께 모스크바를 방문, 스탈린과 남침계획을 최종적으로 논의했다. 이어 김일성은 513일에 베이징(北京)을 가서 다음날 모택동의 동의를 얻었다. 이같은 사실들은 6.25전쟁이 내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6.25전쟁은 소련, 중국, 북한이 연대하고 공조해 일으킨 전쟁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냉전이 붕괴되면서 공개된 소련측의 문서와 증언을 통해 전 세계에 다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스탈린과 김일성의 남침 목표는 신생 대한민국을 붕괴시켜서 스탈린이 대리 통치하는 조선인민공화국에 편입하는 것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6.25전쟁 이전부터 대한민국의 건국을 저지해왔다. 1946년의 ‘2.7 구국투쟁대구 폭동’, 1948년의 제주4.3사건여수·순천 반란사건에 이르기까지 무장폭동에 기반한 대한민국 건국 저지 및 공산화 작업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무장폭동으로 대한민국의 건국을 저지하지 못하자 마지막 수단으로 나온 것이 바로 전면 남침전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의 허울을 쓰고 한국전쟁을 내전(civil war, internal war)이니, 민족해방전쟁이니, 통일전쟁이니,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 간의 전쟁이니 하면서, 대한민국을 지킨 세력을 반혁명세력으로 몰아가고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린 16개 우방국을 내전에 개입한 제국주의세력으로 매도하는 세력이 날뛰는 곳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이러한 세력들이 요즘 북한의 주한미군철수를 통한 대남적화 논리인 평화체제요구에 장단을 맞추며, 지난 반세기 동안 가까스로 유지돼온 정전협정 체제를 이제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북한의 모든 문헌과 관영매체, 대남선전기구들은 평화체제 및 평화협정의 개념을 미군철수를 통한 고려연방제 수립이라고 못 박아 놓고 있다. 이러한 세력은 일부 정당을 비롯한 정치권, 시민운동단체와 노조는 물론 학계, 교육계, 종교계, 언론계 등에 산재해 있다.

 

우리의 정치지도자 중 한반도 평화체제에 가장 열광적인 사람은 아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일 것이다. 그는 200710월 평양방문 때 이 문제를 김정일에게 공식 제의, 10.4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 다음과 같이 반영시켰다: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노 대통령은 미국측으로부터 동맹자주를 혼동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문 대통령도 18대 대선 민주당 후보시절 평화협정체결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문 후보는 201210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진 10.4선언 기념 특별대담에서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북미관계와 북일관계를 정상화하며, 남북대결구도를 해소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위해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한반도 평화구상 초안 확정 2013년 여름까지 평화 구상 조율을 위한 한미-한중 정상회담 개최 2013년 내 평화구상에 대한 합의 도출 목적의 남북정상회담 실현 2014년 상반기에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한 6개국 정상선언도출 2014년 말까지 정상선언 이행을 위한 기구 출범 수순을 밟아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2012111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가진 정책 프리젠테이션에서 2014년 까지 평화체제구축 의지를 표명했다.

 

문 대통령의 이번 독일 연설은 그의 과거 주장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서 한반도의 냉전구조 해체와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한 한반도 평화구상 5대 원칙으로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계승을 통한 평화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추구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한반도 신 경제지도 구상 정치-군사적 상황과 분리한 비정치적 교류협력 사업 추진을 들었다.

 

기독교계 저명인사 350여명으로 구성된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독인연대(평통기연)’라는 단체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인 2013212일 새로 출범할 박근혜정부에 대해 6.1510.4선언 등을 포함한 소위 ‘6대 합의문을 실행하라는 성명을 내면서 한반도 분단 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위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적극적이고 실효성 있는 노력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평통기연은 같은해 417일 또 다시 한반도 전쟁 위기 해소와 평화 전환을 촉구하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독인 연대 성명서라는 이름의 성명을 냈었다. 이 성명 역시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이하여 평화체제로 전환시킬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며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주장했다. 평통기연은 김경원, 박종화, 손인웅, 이규학, 이영훈, 홍정길 목사 등 기독교계의 쟁쟁한 인물이 상임대표로 참여하고있던 단체다.

 

대표적 친북단체인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북한의 평화체제 논리를 그대로 수용해 2007727주한미군 철수가 한반도 평화체제다라는 제목으로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 단체는 성명에서 미국은 소위 북한의 남침을 억제한다는 구실로 한국의 군사적 주권을 장악하고 주한미군을 장기간 주둔시키고 있다면서 한국 전쟁과 북한의 남침 위협이 미군주둔의 이유라면 당연히 북미종전선언과 함께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해야 한다고 선동했다. 이 단체는 또 우리는 미국의 알맹이 없는 종전선언이니 평화체제니 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오직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그 순간 한반도 평화체제가 시작될 뿐이라고 주장했다.

 

세계사의 평화조약 8천 건 평균수명 2년 못가고 전쟁 재발

 

평화협정이나 평화조약이 반드시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그의 저서 건전한 사회’(The Sane Society)에서 프랑스 작가 빅토르 세르뷜리에(Victor Cherbulliez)의 조사결과를 인용, BC 1500년부터 1860년까지의 세계 역사에서 영구적인 평화의 보장을 전제로 하는 평화조약이 약 8천 건이나 체결됐으나 그 효력이 지속되기는 평균 2년 정도에 불과했다(According to Victor Cherbulliez, from 1500 B.C. to 1860 A.D. no less than about eight thousand peace treaties were signed, each one supposed to secure permanent peace, and each one lasting on an average two years!)고 말했다. 평화협정이 평균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전쟁재발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현실을 도외시하고 이상주의에 젖은 평화의 약속들이 얼마나 허구에 찬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교훈이다.

 

지금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으면서 연일 사상자 수를 경신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교전을 봐도 그렇다. 중동분쟁의 핵심 국가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1993913영토와 평화의 교환을 원칙으로 한 오슬로평화협정을 체결한 이후 지금까지 수차례의 크고 작은 휴전협정과 평화협정을 체결했으나, 평화와 공존은커녕 암살과 테러, 군사력을 동원한 보복의 악순환 등 유혈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엔 등 국제사회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결의도 평화보장이란 목표와는 달리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2002312일 팔레스타인을 사상 처음으로 국가로 명시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안전하고 공인된 국경 안에서 공존하는 비전을 지지한다고 결의(안보리 결의 1397)했으나 허사였다. 20034월에는 유엔과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유혈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중동평화 로드맵’(road map for Middle East peace)을 마련했지만, 이 역시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몇몇 평화협정이 전쟁재발에 일정부분 기여한 점은 있다. 예컨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간의 대립이라는 종교문제로 발발한 국제전쟁인 ‘30년 전쟁의 종전과 함께 16481024일 체결된 베스트팔렌조약(Peace of Westfalen, Treaty of Westphalia)이나, 2차대전 후의 파리강화조약이 그것이다. 가장 최근에는 1995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크로아티아, 유고슬라비아연방공화국(신유고연방간에 체결되어 보스니아 내전을 종결한 데이턴평화협정, 2014년 필리핀 정부와 이슬람 반군조직인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간에 체결되어 40년 이상 지속되었던 내전을 종식시킨 필리핀-모로이슬람해방전선 평화협정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화협정은 휴지조각이나 다름 없었다. 베르사유 강화조약(Treaty of Versailles, 1919)이나 영-독 불가침조약(1939), -소 불가침조약(1939), 베트남평화협정(1973)에서 보듯 평화협정은 평화를 담보하지 못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연합국 간에 체결된 베르사유 강화조약은 다시는 지구상에서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게 하자는 대표적인 평화협정의 하나였지만, 나치정권의 독일이 배상을 거부하면서 1933년에 파기됐다. 결국 평화 유지는 실패했고, 2차 세계대전의 발발도 막을 수 없었다. -독 불가침조약과 독-소 불가침조약도 비준서의 잉크가 마르기 전에 2차대전의 발발로 실효성이 없음이 입증됐다.

 

베트남 평화협정체결은 미국과 공산 북베트남(越盟간의 전쟁을 종식시켰지만 결국 남베트남(越南)을 포함한 국가 전체의 적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1973년 평화협정을 맺은 뒤 남베트남에 주둔한 미군이 철수했고, 2년 뒤 공산 북베트남이 남침했다. 적화통일이 되면서 남베트남인 600여만 명은 재교육 수용소로 끌려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100만 명 이상은 조국을 잃고 보트피플이 돼 바다 위를 유랑해야 했다.

 

지금 우리사회 친북좌파세력은 평화협정체결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것에는 언제나 주한미군철수, 연방제지지, 국보법폐지 등이 포함돼있다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길이 평화협정이라면, 협정체결을 거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한반도의 평화를 파괴할 수 있는 핵보유를 헌법에 명시하며 4차 핵실험(수소폭탄 전초단계 실험)에 이어 5차핵실험까지 하며 핵포기 결사반대를 천명하고 있는 북한은 핵무기가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담보하는 평화의 무기라는 헛소리를 하고 있다.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서는 핵무기 포기를 포함한 군비통제 등 전쟁억지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혹자는 핵문제를 평화협정에서 논의하면 될 것 아니냐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핵전쟁을 외치면서 평화협정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한은 자신들의 평화협정 제안을 미국 등 당사국들이 계속 외면해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다는 언급을 해 주목되기도 했다. 북한 노동당기관지 노동신문은 2011111일자에서 현 사태 타개의 근본열쇠라는 제목의 논평을 싣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조선반도에 공고한 평화체계를 마련하려는 우리 공화국의 입장은 일관하다면서 지난해 유관측들이 우리의 평화협정 체결 제안에 성근한(성실한) 자세로 호응했으면 연평도 포격 사건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북핵 문제 해결 없는 평화협정은 사기극

 

북한 외무성은 2010111조선전쟁( 6·25전쟁) 발발 60년이 되는 올해(2010)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조속히 시작할 것을 정전협정 당사국들에 정중히 제의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또한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을 맞아 201336일 정전협정의 백지화를 선언한 뒤 같은 해 725일 외국 인사들로 구성된 ‘7.27 국제평화대행진출정식을 열고 북·미 평화협정 체결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를 촉구했다.

 

정전협정당사국이란 한국이 배제된 가운데 협정에 서명한 북한, 중국, 그리고 유엔군을 대표하는 미국을 말한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문제는 1954년 제네바 회담을 비롯해 그동안 여러 차례 제기됐으나 실질적인 협상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지난 1997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남북한을 비롯해 미국, 중국대표들이 모여 평화협정 체결문제와 관련하여 4자회담을 열었으나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가장 최근에는 201512월 미국과 북한 사이에 이 문제가 논의 됐다고 전해진다.

 

북한은 남한이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평화협정은 남한이 배제된 가운데 북미 간에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는 조약 서명자(signatory)와 조약 당사자(party)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9537월 27일 마크 클라크 대장이 정전협정에 서명했을 때 그는 미군사령관이 아닌 유엔군사령관 자격이었다. 미국은 16개 참전국의 일원에 불과하므로 설령 앞으로 미북 간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해도 이는 두 나라 사이의 새로운 쌍무협정일 뿐, 정전협정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한국이 휴전협상 서명자가 아니므로 평화협정 당사자 자격이 없다는 주장은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규정, 평화협정 회담에서 제외시키려는 북한의 억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국전쟁은 기본적으로 남북한 간 갈등이며 남북한이 평화협정의 당사자이다. 정전협정 당사자와 평화협정 당사자는 별개의 것이다. 정전협정은 군사적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한 조약이며 정치적 문제 해결을 위한 평화협정과는 다르다. 실제로 한국전쟁의 정전협정 제460항은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쌍방 관계당사국 정부에 정치회담의 개최를 권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유엔총회결의(1953.8.28)에 의해 16개 참전국과 한국, 북한, 중국, 소련이 정치회담의 당사국으로 정해졌으며, 실제로 정치문제의 해결을 위한 제네바 정치회담이 1954411일부터 615일까지 개최됐다.

 

북한은 200710월 남북정상회담때 3자 또는 4자가 평화협정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며 다소 유연성을 보이기도 했다. 남한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2010111일자 외무성 성명에서는 정전협정 당사국이라고만 표현해 남한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회담당사국으로 보고 있는지는 아주 불투명하다. 200812월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북한은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를 위해 북한, 중국, 미국 외에 한국이 참여하는 ‘4자 대화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이 역시 공식 확인된 것은 아니다.

 

이에 앞서 20058월 베이징 북핵6자회담에서 평화협정 문제가 논의됐고 부시대통령도 200611월과 20079월 등 두 차례에 걸쳐 한반도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제도적 장치를 추진하자는 뜻을 밝힌 적이 있다. 관련국 사이에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북한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모든 핵을 폐기할 경우에만이라는 전제조건이 붙어 있다. 북한이 하도 핵포기를 거부하니까 북한을 유인하기 위한 하나의 미끼였다는 해석도 있었다.

 

이같은 부시대통령의 언급에 고무된 듯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200710월 평양방문을 앞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평화협정이라고 확언했다. 김정일과 회담에서 핵 문제를 논의하라는 많은 국민과 언론, 야당(당시 한나라당)의 요청에 대해 정략적인 의미로 평가한다” “시비거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 “가서 싸우고 오라는 뜻이라며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노대통령의 이 같은 자세는 평소 그의 북핵 관련 언급과도 일맥 상통한다. 그는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해 방어용’, ‘일리 있다는 주장으로 일관해 왔다. 북한의 핵실험 직전에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며 핵실험 가능성을 부인해오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그였다. 부시대통령이 언급한 내용의 의미를 모를 리 없는 노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북핵 얘기를 하라는 것은 싸움하고 오라는 뜻이라고 계속 어깃장을 놓았다. 중요한 것은 부시 대통령의 평화협정 의지가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라는 점이다.

 

노대통령의 그같은 고집은 핵문제는 6자회담에 맡기고 자신은 평화체제에만 매달리겠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남측이든 북측이든 핵문제 해결 없이 평화를 말하는 것은 사기’(詐欺). 국민은 노대통령에게 북한 가서 핵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고 돌아오라고 주문하지 않았다. 정상회담에서 핵문제가 당장 해결되면 좋겠지만, 최소한 핵 포기 등 비핵화에 대한 김정일의 책임 있는 언질을 받아내 6자회담이 좋은 결말을 내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반도에서의 종전선언과 평화선언, 평화협정 체결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북한은 평화협정의 전제조건으로 핵포기를 절대 말하지 않았다. 따라서 북핵 해결 없는 평화선언이나 평화협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평화의 가장 큰 장애가 북한 핵이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이 종전선언의 전제조건으로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제시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평화협정 체결되면 한미동맹 파기 미군주둔 근거 없어진다

 

남북한 간에 핵폐기는 물론 신뢰구축도, 군사적인 긴장완화 조치도 없는 상황에서 종전선언 또는 종전협정을 거쳐 평화협정을 위한 구체적 협상이 진행될 경우 6.25전쟁 이후 성립된 한반도 및 주변 안보 질서에는 심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임에 틀림 없다. 평화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은 한국의 작전지휘권 단독 행사로 인해 한미연합사 해체와 맞물리면서 유엔군 사령부와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된 혼란을 부를 뿐 아니라,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군이 남한에 주둔할 근거가 없어진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과거 베트남의 예에서 보듯 북한의 남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방대학원 산하 국가전략연구소(INSS) 스티브 플래너건 소장은 2005104일 국방대가 주최한 국제안보학술회의에서 북한의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이 한미동맹 파기라는 북한의 장기적 전략목표 구현을 위한 전술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발행한 백과전서와 북한의 대남선동 기구인 반제민전등은 평화체제 및 평화협정의 개념을 미군철수라고 못 박아 놓고 있다.

 

백과전서(1983년 발행) =평화협정은 쌍방이 서로 상대방을 침범하지 않고, 무력증강과 군비경쟁을 그만두며 미국은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통일을 방해하지 않으며, 남조선을 강점하고 있는 미군을 철거시키어 미군이 철거한 다음 조선은 그 어떤 다른 나라의 군사기지나 작전기지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본내용으로 하고 있다. 

반제민전 논평(2005819일자) =평화체제를 공고히 하고, 미군을 철거하여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성취하자. 

평양 인민문화궁전 결의 서한(2005813-14)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통일에 가장 큰 장애물로 되고 있는 남조선 강점 미군을 지체 없이 철수해야 한다.

 

정전협정 무력화 장본인은 북한... 협정위반 43만 건

 

사실상 정전협정체제를 무력화 한 것은 북한이다. 중립국감독위와 유엔사 집계에 의하면 19537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 통계를 매겼던 19944월말까지 북한은 425271건이나 휴전협정 위반행위를 저질렀다. 6.25 남침 이후 무장공비 남파, 땅굴, 비무장지대 총격, 군사분계선 월선, 북방한계선(NLL) 침범, 선박 포격, 어선 납치, 항공기 납치 및 폭파, 영공침범 등 굵직한 대남 군사도발은 2015년까지 총 2900여건에 달한다.

 

정전협정을 밥 먹듯이 위반한 장본인이면서도 이제는 파렴치하게 평화협정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정전협정 위반사례를 보면 경원선철도폭파테러,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1.21청와대 습격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양민학살사건, 대한항공(KAL) YS-11여객기 납북사건, 8.15 기념식장 박정희대통령내외 저격사건, 국립현충문 폭파사건, 판문점 도끼만행살해사건, 기습남침용 땅굴 굴착, 미얀마 아웅산묘소 한국 외교사절단 폭탄테러살상사건, 영화감독 신상옥씨 부부 납치사건,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 위장귀순사건, 대한항공(KAL) 858기 공중폭파테러사건, 강릉 잠수함 무장공비 침투사건, 서해 NLL에서의 도발로 발발한 제1차 연평해전 - 2차 연평해전 - 대청해전, 금강산 관광객 사살사건, 천안함폭침사건, 연평도 포격도발사건, 비무장지대 목함지뢰도발사건 등이다.

 

북한은 6.25전쟁을 북측에 의한 남침전쟁이 아니라 남한과 미국에 의한 북침전쟁이라고 우기고 있듯이 이들 사건의 거의 대부분을 남한의 자작극이라면서 부인하고 있다. 2006년 이후 네 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했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도발의 강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사이버 공격과 무인기를 이용한 우리 군사시설물 탐지 등 도발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평화협정 자체는 말 그대로 하나의 문서에 불과하다. 이는 평화협정문서가 남북한 간에 평화의 보증서가 절대 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발사, 그리고 여타의 도발행위를 통해서 국제적 합의를 얼마나 쉽게 어기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선언, 남북불가침협정은 휴지조각이 된지 이미 오래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평화협정체결을 위해서는 당사자 간의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도발을 밥먹듯이 해온 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했다고 해서 도발을 포기할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북한은 남한이 그들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미군이 없는 남측을 향해 핵과 미사일을 통한 위협과 도발을 더 강도 높게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핵무기 포기와 함께 남북한간의 신뢰조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평화협정을 수백번 체결하더라도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북이 규정하는 평화협정의 의미는 공산화

 

평화협정은 북한이 휴전협정체결 이후 꾸준히 주창해온 것이다. 그러면 북한이 말하는 평화란 무엇인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의하면 평화는 <전쟁이나 갈등이 없이 세상이 평온한 상태>로 요약된다. 그러나 북한이 말하는 평화는 결론부터 말하면 <공산화>.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이 지구상에서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완전히 말살된 상태를 의미한다. 북한은 자본주의의 본성은 전쟁과 침략이라고 규정하면서 전쟁의 근원이 자본주의에 있는 만큼 이를 타도하고 전 세계가 공산화되어야만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가 온다고 주장하고 있다(정치사전,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73, pp.1162-1163). 다시 말하면 북한이 말하는 평화란 폭력혁명이나 무력통일에 반대하는 개념이 아니라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세력, 즉 자유민주주의 국가, 자본주의 국가를 전쟁세력으로 규정, 이들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소멸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평화는 반드시 계급투쟁, 즉 전쟁을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와 전쟁으로 계급투쟁을 하고 계급소멸을 통해 진정한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무력과 폭력이 공산혁명을 위해 필요할 뿐 아니라, 이를 위한 정당한 수단으로 간주한다. 다시 말해 평화는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 달성된다는 뜻이다. 북한은 이점에서 자본주의국가들의 평화를 부르조아 평화주의로 규정한다. 북한은 이 부르주아 평화주의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인민들의 염원을 악용한 것으로, 제국주의가 전쟁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은폐하면서 제국주의를 때려 부수지 않아도 지구상에 영원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설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김일성 저작선집 4p.484).

 

북한은 궁극적으로 계급투쟁을 통해 국가가 소멸하고 법도 경찰도, 군대도 없는 사회를 평화로 규정한다. 왜냐하면 북한은 기본적으로 국가나 법, 경찰, 군대를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한 부르주아 계급의 착취를 위해 존재하는 억압기구 내지 억압장치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국가란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이 자기 재산을 지키고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로서 모든 악의 원천이라면서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이는 자연히 없어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이런 전도된 평화관을 가지고 용어혼란전술의 일환으로 평화란 용어를 대남 협상전략에 적극 이용하고 있다. 그들은 정전협정을 대미평화협정으로 대체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고, 연방제통일방안과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등을 제의하면서 평화적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이러한 평화공세는 결국 주한미군 철수,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적화통일 이란 수순을 밟아가기 위한 기만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 휴전선 남쪽에 자본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평화는 결코 올 수 없기 때문에 한국을 반드시 적화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노동당 규약에도 명시돼 있다.

 

평화공존은 공산주의 계급투쟁의 한 형태

 

북한은 평화공존을 글자대로 풀이해 평화적으로 공존한다는 뜻으로 선전하고 있는데, 남한 일각에서는 이것이 계급투쟁의 한 형태라는 북한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를 범해온 것이 사실이다. 평화공존이란 자유민주주의 세계를 타도하기 위한 저들의 극히 수준 높은 전술이다. 평화공존 전술은 통일전선전술과 마찬가지로 공산세력의 힘이 미약한 단계에서 충분히 실력행사가 가능해질 때까지 일시적으로 상대를 기만해 경계심을 이완시키는 전술이다. 이후 힘이 자라고 그들에게 유리한 정세가 조성되었을 때는 언제든지 침략을 자행하는 저의가 도사리고 있는 전형적인 기만전술이다.

 

역사적으로 평화공존 전술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전쟁에 의한 황폐를 복구시키기 위해 자본주의 제국과 강화조약을 맺는 것이 기원이 됐다. 이 전술이 크게 대두된 것은 1956년 후르쇼프에 의한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연설과 1954년 모택동에 의한 평화원칙선언 등이다. 1962년 쿠바위기가 있은 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동서 양진영 관계는 적어도 문서상으로 데탕트(냉전완화)의 원칙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 실체에 있어 평화공존이란 1982년 와인버거 국방장관이 개탄했던 것처럼 소련에게 전쟁준비 기간을 준 전술에 불과했다.

 

후르쇼프는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연설에서 평화공존은 계급투쟁의 포기나 타협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한 형태이다 평화공존 노선은 자본주의 국가들 안에서 공산당과 그 밖의 노동자계급의 진보적 여러 조직의 활동을 용이하게 한다. 평화공존은 국제적 규모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간의 계급투쟁의 특수한 형태이다. 평화공존 노선은 사회주의를 지향해서 싸우는 진보세력의 힘을 강화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소련의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도 1975미국에 경고한다는 글에서 평화공존에 대해 어떤 사람은 공산주의자들이 평화공존을 주장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이제는 비인간적 이념을 포기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단 1보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계급투쟁을 왜 평화공존이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계급투쟁을 평화공존이라고 바꿔서 주장하게 되면 저들의 전술을 간파하지 못하는 자본주의 국가들이 대공 경계심을 풀게 될 것이므로, 자본주의국가들 안에서 공산당과 기타 좌익조직의 적화공작활동이 용이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럴드 포드 미 대통령이 소련의 평화공존 전술에 속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앞으로는 소련과의 평화공존이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겠다고 언명한 것은 임기가 끝나기 겨우 4개월 전이었다. 이미 그 때는 소련이 힘의 축적을 통해 군사력에서 미국을 앞지른 뒤였다.

 

남한은 남북기본합의서(1991.12.13)를 남북한 쌍방이 성실히 이행한다면, 평화공존의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평화공존이 계급투쟁의 한 형태인 만큼 남한은 처음부터 북한의 진의를 전혀 모르고 합의한 셈이다. 아태평화재단이 1995년에 펴낸 金大中3단계 통일론에는 12-125쪽에서 평화공존이란 말이 무려 46회나 나오는데, 이것을 평화적으로 공존한다’(95)고 해석함으로써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같은 평화공존을 염두에 두고 이뤄졌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남북한 합의 통일3원칙자주평화민족대단결은 적화통일 원칙

 

남한과 북한은 7.4공동성명(1972)과 남북기본합의서(1992), 6.15공동선언(2000), 10.4공동선언(2007) 등을 채택하면서 조국통일의 원칙으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원칙에 합의했다. 그러나 각 원칙의 해석이 남북한 간에 너무 차이가 커 지금도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먼저 자주의 원칙과 관련, 우리는 이를 외세의 개입이나 간섭 없이 남북한의 자주적인 의사에 따른 문제해결로 이해하고 있지만, 북한은 남한이 자주사회가 아니라 미제의 식민지사회이므로 미제국주의가 남조선에서 나가도록 하는 것’,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지배를 끝장내는 것등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즉 북한이 말하는 자주는 주한미군 철수와 동의어인 것이다.

 

북한이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저의는 남한 혁명의 주된 걸림돌인 미군을 철수시켜 남한의 군사적 공백상태를 연출시키고 무력적화통일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평화의 원칙이란 남북이 무력적 방법이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하자는 것이다.

 

적화통일을 규정한 조선로동당규약 서문(2012411일 개정)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를 영원히 높이 모시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중심으로 하여 조직사상적으로 공고하게 결합된 로동계급과 근로인민대중의 핵심부대, 전위부대이다. ...중략...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북반부에서 사회주의강성국가를 건설하며 전국적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데 있다. ...중략...조선로동당은 전조선의 애국적민주력량과의 통일전선을 강화한다. 조선로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몰아내고 온갖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며 일본군국주의의 재침책동을 짓부시며 사회의 민주화와 생존의 권리를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하며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하고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발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출처: 로동신문 2012. 4. 12.)

 

북한은 자신들은 통일을 하기 위한 평화적 정세가 조성돼 있으나, 남한은 파쇼적인 폭압정치를 행하고 있고 침략군대인 미군을 끌어들여 전쟁연습(군사훈련)을 자행하는 등 평화적 정세가 조성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한미합동 훈련 등 군사훈련 중지, 국정원 등 대공수사기관 해체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 남한의 평화적 정세 조성을 위해 전민족적인 계급투쟁 전개를 주장하는 등 겉으로는 평화적 통일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폭력투쟁을 선동하고 있다.

 

북한은 이런 전도된 평화관을 가지고 용어혼란전술의 일환으로 평화란 용어를 대남 협상전략에 적극 이용하고 있다. 그들은 수년 전부터 정전협정을 대미평화협정으로 대체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으며, 연방제통일방안과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등을 제의하면서 평화적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이러한 평화공세는 결국 주한미군 철수,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적화통일 이란 수순을 밟아가기 위한 기만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 국내에서는 일부 정치권인사들과 친북좌파세력 사이에 북한과 같은 평화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민족대단결의 원칙이란 남북이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떠나 하나의 민족으로 대단결하여 통일을 이루자는 것이다. 북한은 남한의 국가보안법이 민족세력을 억압하고 탄압하여 민족대단결을 저해하고 통일을 방해한다며, 이 법의 철폐를 선동하며 공산당 합법화를 주장하고 연방제통일방안을 정당화하고 있다. 결국 북한이 내세우는 통일 3원칙인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원칙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인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우리 내부의 군사적 공백상태를 조성하고 자유민주 정권인 현 정권을 타도하고 반국가활동을 규제하는 법적 장치인 국가보안법을 철폐시켜 적화통일의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전술적 위계인 것이다.

 

북이 노리는 남한 선거 구도-전쟁세력이냐 vs. 평화세력이냐 

 

북한은 근자에 들어 핵무기개발을 합리화시키고 핵개발을 저지하려는 한국과 미국을 전쟁세력이라고 몰아가기 위해 평화란 말을 부쩍 많아 사용하고 있다. 북한은 특히 2006년 신년공동사설 발표 이후 한국의 대선 등 거의 모든 선거를 전쟁세력평화세력의 대결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특히 17대 대선을 앞둔 2007년 이후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은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한 남한에서의 반보수대연합을 촉구했었다. 원래 전쟁이냐, 평화냐는 노무현대통령 후보의 2002년 대선구호였었다. 민주당은 이를 선거구호로 만들고 신문광고에도 크게 냈다. 노무현 후보를 찍으면 평화가 오고, 이회창 후보를 찍으면 전쟁난다는 것이었다. 이 구호가 북한으로 갔다가 17대 대선을 앞두고 다시 남한으로 돌아와 그 뒤 18대 대선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2010326일 천안함폭침사건 이후 치러진 6.2지방선거의 야당 구호도 전쟁이냐 평화냐였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201073일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천안함 용사 46명이 죽었지만, 사실은 북한이 생존자까지 모두 노린 거 아니겠나. 그런 북한한테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북한에 화 좀 냈다고 해서 유권자들이 야당을 찍었다?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명백하게 의도적으로 쏴서 46명이 죽었는데도 그것에 강력하게 대응한다고 역풍이 불었다고 하니. 북한이 때리는 대로 맞고 참아야 한다는 논리가 되는데, 그런 나라는 내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아니다. 그런 대한민국은 나라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책(5.24조치)을 둘러싼 당시 야당의 전쟁이냐, 평화냐의 외침에 유권자들이 동조, 여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201616)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201627)이후 단행된 박근혜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조치에 대해서도 당시 야권에서는 4.13총선을 겨냥한듯 전쟁이냐, 평화냐며 유권자의 선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표적인 국제적 평화 사기극은 베트남평화협정

 

미국과 북베트남 사이에 1973127일 체결된 역사적인 파리평화협정은 결과적으로 국제적인 사기극이 되고 말았다. 협상의 주역인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와 북베트남(월맹정치국원 레둑토는 그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그러나 레둑토는 베트남에 평화가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수상을 거부했다. 그가 말한 평화공산화였다. 평화협정 체결 직후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남베트남은 공산화되고 말았다. 남베트남의 공산화는 평화협정도 노벨상도 결코 평화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겼다.

 

당시 평화협정에는 교전 당사국인 미국, 남베트남, 북베트남, 베트콩(베트남 임시혁명정부) 등이 서명했다. 키신저는 이 평화협정을 담보하기위해 북베트남에 40억달러(미국 직접원조 20억달러, IBRD 차관 20억달러)의 원조까지 제공, 이것으로 파괴된 북베트남의 경제를 재건키로 했다. 키신저는 보다 확실한 휴전을 담보하기 위해 휴전감시위원단인 캐나다, 이란, 헝가리, 폴란드 4개국을 서명에 참여시켰다. 그리하여 4개국 250명으로 구성된 휴전감시위원단은 하노이와 사이공(호치민시티), 그리고 휴전선을 감시하게 되었다

 

한편 북베트남에서는 하반라우 외무차관이 150명의 고문단과 함께 사이공에 체류했다. 일종의 인질 형식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믿지 못한 미국은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 4개국 외무장관까지 서명에 참여시켰다. 결과적으로 파리휴전협정은 4+4+4, 즉 무려 12개국이 담보하고 보증한 값비싼 서명문서였다그리고 남베트남과도 방위조약을 체결, 미군 철수 후 북베트남이나 베트콩이 휴전협정을 파기하면, 즉각 해공군력을 투입, 북폭을 재개하고 남베트남 지상군을 지원키로 굳게 약속했다. 이와 함께 미군이 철수하면서 그 동안 보유하고 있던 각종 최신 무기까지도 모두 남베트남에 양도, 그 무렵 남베트남 공군력은 전세계에서 4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소한 10년 간은 휴전체제가 유지되리라는 키신저의 믿음은 사라지고 1975430일 북베트남과 베트콩 연합군에 의해 수도 사이공이 함락됨으로써 베트남은 완전 공산화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결과 십수년간 6백여만명이 처형되거나 재교육 캠프에서 죽어갔고 1백만 이상의 보트 피플이 해상을 떠돌다 10만 이상이 목숨을 잃는 참혹한 삶이 계속됐다.

 

결국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평화가 올 것이라는 키신저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북베트남은 미군의 북폭과 경제봉쇄로 피폐해진 나머지 전쟁 수행능력을 상실하자 평화회담에 나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전략이었고, 전술만 바꾼 기만이었다. 미국과 평화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에서 침략군을 몰아내고 민중봉기를 일으켜 인민민주주의 정권을 창출하고, 무력으로 남반부를 해방시켜 조국통일을 달성한다는 소위 통일전선전략을 재정비·강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지금 북한이 견지하고 있는 대남전략과 단 한 치의 차이도 없는 것이다. 우리 내부 친북좌파 인사들은 북한이 남침할 의사도 없고, 남침능력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랬으면 오죽 좋겠는가?

 

실제 베트남 공산화는 남한의 적화를 노려온 북한을 고무시켰다. 6.25전쟁에서 무력통일의 꿈을 실현하지 못한 김일성은 1975년 남베트남의 패망을 바라보면서 남한을 다시 한번 밀어붙일 생각을 했다. 19754월 단 한 대의 항공기도 없었던 북베트남군이 당시 세계 최강의 미군을 게릴라전으로 패배시키는 것을 본 김일성은 상당히 고무돼 중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북경에 도착한 날, 환영 만찬석상에서 김일성은 “(남한과의) 전쟁에서 우리가 잃을 것은 군사분계선이요, 얻는 것은 조국통일(In this war we will only lose the Military Demarcation Line and will gain the country's unification. 필자주=당시 김일성의 이 발언은 외신을 타고 영문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참고로 영어원문을 소개함)”이라면서 남침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중국과 소련이 이에 협력하지 않음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했다. 중국 측은 북한이 이런 시기에 남침을 하게 되면 미국과의 전쟁이 되고, 이는 곧 제3차 세계대전으로 연계될 수 있기 때문에 남침은 불가하다는 뜻을 전달했고,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미국의 슐레신저(James Schlesinger)국방장관은 만일 북한이 한국을 재침한다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라는 핵사용 발언으로 북한의 남침전쟁을 억지했다.

 

베트남의 예에서 보듯, 문 대통령의 평화협정체결 제안은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고 있다. 설사 남북이 주도적으로 참가하는 평화회담이 열린다 하더라도 북한의 핵포기 이후에 평화협상을 해야 한다. 그리고 협상에 앞서 6.25전쟁의 전범인 북한정권에 사과와 배상, 그리고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을 요구해야 한다. 이는 제26.25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다

 

  

기사입력: 2017/11/24 [18:09]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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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 얘는 yenjie21 17/11/25 [02:20] 수정 삭제
  평화 협정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고 평화 평화 노래부르고 있나? 알면 평화 타령 안 했을 것! 그러니 죄인은 iq 50의 영삼보다 더한 돌이거나? 정말 교활한 인간! 내 생각엔 모자라는 인간!
전라좌익종북빨갱이집단 무리들이 사기치는 소리다. 국 민 17/11/26 [08:34] 수정 삭제
  북괴 핵무장은 전적 감추고 있는 전라좌익종북빨갱이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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