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6일 김정일 생일, ‘백두혈통’ 날조
소련 출생했지만 실체없는‘백두산 밀영’으로 조작
 
조영환 편집인

 

216일은 김정일 생일-‘백두혈통은 완전 날조

소련 출생했지만 실체없는백두산 밀영으로 조작

 

, 백두혈통을 당의 유일적령도체계 확립의 10대원칙에 명문화

김정일 출생지는 김일성 피난지 러시아 라즈돌노네 마을 88번지

백두산 밀영은 처음부터 없었다...훗날 김일성이 적당히 지정

황장엽 회고록,‘백두밀영은 김일성이 아들세습위해 조작했다

옛 소련정부 공식문서, 일본군 문서에 김정일 출생지 소련으로 기록

김정일의 소련출생 결정적 증거: 현지 조산원과 유모 증언 있다

이름도 러시아어로김유라’...고교학적부에도 김정일아닌 김유라

출생년도 1941년은 김일성(1912)30년차 맞추기 위해 1942년으로 고쳐

조작한 백두밀영 '정일봉'도 화폐에 집어넣은 우상화

북한문헌, 성서의 창세기빛창조예수탄생에 비유

김정일 태어난 날 백두산은 은백색 꽃보라가 쏟아지는 등 황홀경이뤘다

서옥식 박사, 백두밀영은 1984년까지 북한 문헌기록에 나오지 않는다.

 

216일은 북한이 주장하는 김정일의 76회 생일. 아버지 김일성이 1912415일 세상을 밝게 비추는 태양’(太陽)으로 온 뒤 아들 김정일도 1942년 이날 세상을 비추는 광명성’(光明星)으로 백두산에서 태어났다하여 백두광명성절(白頭光明星節)로 불린다. 북한의 문헌들과 보도선전물들은 예수가 빛으로 세상에 왔지만 참빛은 예수가 아니라 김일성과 김정일이라고 선전한다

 

북한 최대의 경축행사인 광명성절을 맞아 제22차 김정일화 축전이 평양 김일성화김정일화전시관에서 개막됐다고 13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사진출처=연합뉴스

 

김정은에 대해서는 아직 그가 빛으로 왔다는 공식적인 얘기는 없지만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진 김씨왕국의 성골 혈통, ‘백두혈통임을 강조한다. ‘백두혈통이라는 용어는 백두산=김정일이란 프로파간다를 김정은에게 대입시키기 위한 시대착오적이고 유치한 봉건적 조작으로서, “김정은이 백두산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김정일의 아들이므로 혈통 자체가 우월하다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일부에선 김정은의 어머니 고영희가 서민계층으로 분류되는 재일교포이기 때문에, 김정은을 순수 백두혈통으로 취급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정통 백두혈통은 김일성-김정일-김정남(이상 모두 사망)으로 이어져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북한은 소위 백두광명성절을 나흘 앞둔 지난 12일 박광호· 안정수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노두철 내각 부총리, 노광철 제2경제(군수경제) 위원장, 이상원 양강도 당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백두산 밀영 결의대회를 열고 김정은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 중앙위원회를 천겹만겹의 성새, 방탄벽이 되어 결사옹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광명성절을 기념하는 22차 김정일화축전도 평양 김일성화김정일화전시관에서 13일 개막했다. 14일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위대한 강국으로 영광 떨치는 주체조선에 만발한 김정일화란 주제로 진행되는 축전에는 군과 중앙기관들을 비롯한 많은 단위들과 각계층 근로자들, 청소년 학생들이 정성껏 피운 수만상의 김정일화들이 전시됐다.

 

한가지 코메디같은 것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서울을 찾은 김정일의 딸이자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에 대해 백두혈통이라며 정부와 언론이 흥분하며 소동을 떤 사실이다한반도에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을 죽게 한 전쟁 범죄자이자 민족 반역자이며 반국가단체의 수괴인 민족의 원수 김일성의 손녀 김여정이 남한에 온 것을 두고 백두혈통의 첫 방남(訪南)이라고 치켜세우며 연일 혼연일체가 돼 호들갑을 떤 정부와 언론의 꼴이 가관이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백두혈통은 날조이며, 가짜다. 북한은 김일성이 백두산에서 대일(對日)독립투쟁을 벌였으며 아들 김정일이 백두산밀영에서 장차 조선의 통일을 이룩할 백두산의 아들로 태어났다며 모든 문헌과 보도선전물에 백두혈통이라고 선전하고 있으나 이것들은 모두 날조된 것이다.

 

 

▲ 김정일이 태어난 러시아 라즈돌노네 마을 88번지(2층 빨간 벽돌집), 우측 아래 88이라는 번지수가 보인다. 아래 사진은 번지 부분을 확대한 것.

    

김일성은 이승만이나 김구처럼 조선의 해방을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비적항일운동(匪賊抗日運動)’을 했다. 그것도 백두산에서 한 것이 아니다. 동만(東滿)에서 중국 공산당이 지휘하는 동북항일연군의 일원으로 했을 뿐이다. 북한이나 국내 종북-좌파 학자들이 김일성의 최대 항일투쟁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있는 이른바 보천보전투도 김일성이 주도하거나 지휘하지 않았다. 193764일의 보천보전투를 지휘한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26사장(師長)은 그해 1113일 일제(日帝) 휘하의 만주군에 의해 전사했다. 북한의 김일성에게 보천보전투를 이끈 26사장이란 위장 감투를 씌여준 것은 2차대전 후 조선을 동북아의 위성국가를 만들기 위한 소련의 괴략이었다고 전 소련군 평양군정청 핵심 멤버였던 니콜라이 네베데프 소장(1901-1992)등 여러 소련군 장교들이 증언한 바 있다. 김일성이 중국 공산당이 지휘하는 동북항일연군 대원이었기 때문에 그가 보천보전투를 지휘했다면 당연히 그의 이름이 중국측 기록에 남아야 하나 그가 전투를 주도하고 지휘했다는 기록은 커녕 참여했다는 기록도 없다. 김일성(初名: 김성주)1912415일에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용산면) 하리 칠골에서 아버지 김형직(金亨稷, 1894710-1926)과 어머니 강반석(1892-1932)의 삼형제 맏아들로 태어났다. 오늘날 만경대로 불리는 곳이다.

 

 

▲ 김정일의 고향집으로 불리는 조작 지정된 백두밀영

 

▲ 북한이 1936년 이후 조국이 해방될 때까지 조선인민혁명군군(조작된 가공의 군대) 사령부가 있었다고 선전하는 백두밀영 귀틀집. 뒤로 조작된 정일봉이 보인다.

   

북한이 혁명의 성지라 부르는 백두산 밀영은 처음부터 없었다. 김정일은 백두산이 아니라 소련의 연해주 라즈돌노예란 마을에서 태어났다. 일본 관동군과 만주군의 공식문서, 그리고 옛 소련정부 기록과 당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김정일은 김일성이 일본 관동군의 토벌을 피해 도망가 있던 소련 연해주의 우수리스크(Ussuriysk, 雙城子)와 블라디보스토크 사이의 작은 기차역이 있는 하마탄(Hamatan, 오늘날 지명: 라즈돌노예 Razdolnoye)이란 마을의 남야영(南野營)에서 1941216일 태어났다

 

김일성은 1939-1941년 사이 일만군의 대대적 토벌로 만주의 동북항일연군이 궤멸 위기에 처하자 19401023일 소만(蘇滿)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 소련으로 도피한다. 월경 직후 국경수비대에 체포돼 남야영(南野營, B야영)에 수감됐으나, 중국인 상관 주보중(周保中)의 신원보증으로 풀려났다. 북야영(北野營, A야영)이 있던 하바로프스크 인근 뱌츠코예 마을에 남-북야영의 동북항일연군 부대원 모두를 수용한 제88정찰여단이 창설되는 19427월 중순까지 김일성 부부는 남야영에 있었다. 김정일이 태어날 당시 아기를 받았던 조산원 엘냐의 증언에 의하면 김정일이 태어난 집은 라즈돌노예 마을길 88번지 연립주택인 것으로 확인 되고 있다. 이는 김정일이 하바로프스크 인근 뱌츠코예에서 출생했다거나 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에사 태어났다는 종래의 주장들이 모두 사실이 아님을 의미한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8권은 김일성이 1941년 초의 겨울을 남야영에서 보냈다고 하면서 김정일이 1942216일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난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가. 주보중의 동북항일유격일기는 북야영에 있던 그가 1942112일부터 119일까지 남야영을 방문하고 돌아온 일을 기록하면서 거기서 김일성을 만났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 주장처럼 김정일이 설사 1942년생이더라도 라즈돌노예의 남야영에서 태어난 것이지 어떤 경우에도 백두산에서 태어났을 수는 없다. 남편도 없이 김정숙 혼자서 외부와 단절된 눈덮인 백두산 속에서 출산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김일성과 김정숙은 백두산에서 일만군과 싸운 적이 없다

 

북한은 김정일의 출생년을 1941년에서 1942년으로 고친 것이 확실하다. 이는 김일성이 출생한 1912년과 정확히 30년의 차이가 나도록 즉, 정주년(整週年)에 맞추기 위한 것이다. 정주년은 5년 또는 10년 단위의 소위 꺾어지는 해로 북한에서 나이나 연대를 따릴 때 아주 중시하고 있다.

 

김일성은 소련으로 패주한 뒤 소련군 장교로 있다가 해방과 함께 19459월 소련 군복에 붉은 군대 계급장을 달고 소련이 마련한 선박편으로 원산을 거쳐 평양에 도착했다. 당시 북한지역은 김일성 군대가 아니라 소련군이 해방했다. 김일성이 자신이 만든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고 조선을 해방했다는 것은 새카만 거짓말이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실체가 없는 날조된 군대다. 따라서 백두혈통이란 것은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용어 자체도 비언어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비과학적인 말이다.

 

 

북한 화폐에 등장한 백두밀영의 모습()과 백두밀영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삼지연()

   

그런데도 우리 언론은 한술 더떠 김여정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는 것을 두고 김정은을 대신한간접정상대화’‘간접정상회담’‘간접정상회동운운했다. 특히 북한 굴종적인 좌파언론일수록 이런 용어를 즐겨 썼다.

 

대한민국의 통일부 장관과 차관 2명은 인천공항으로 달려가 김일성의 손녀가 처음 방한했다며 근대 유럽의 황녀 국빈방문이나 되는 것처럼 영접했다. 김여정이 탄 전용기가 우리 영공에 진입하자 공군은 F-15K 초계기를 뛰어 공중경호까지 했다. 김여정의 방문은 어디까지나 개인 자격이며 그의 직위도 일개 차관급에 불과하다. 그 시각 펜스 미국 부통령 일행은 북한 어뢰정에 의해 폭침된 천안함을 둘러보고 탈북자들을 만났다. 대한민국의 우방이자 혈맹이라는 미국의 펜스 부통령 곁에는 외무장관과 국방장관은 커녕 정부 말단 공무원은 단 한명도 동행하지 않았다. 민간 통역만 있었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측으로부터 올림픽 개막식 행사에 펜스 부통령과 북측 인사들의 동선이 겹치지않도록 해달라는 요청에도 불구, 개막식 직전 열린 리셉션 헤드테이블에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과 마주않게 자리를 배치함으로써 펜스 부통령이 5분만에 자리를 뜨는 외교참사가 발생했다. 청와대측은 펜스 부통령이 사전 약속이 있어 그랬다고 설명했으나 이는 거짓말이었다. 청와대가 언론에 사전 공개한 헤드테이블 좌석 배치도에는 분명 펜스 부통령 부부의 참석을 위한 표지물이 놓여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세계 언론은 한결같이 펜스 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 주최의 리셉션을 보이콧(거부)했다고 보도했으나 우리 언론은 거의가 청와대 말만 믿어서인지 펜스 부통령이 선약이 있어 사전에 불참을 통보해왔다고 거짓보도를 했다. 이에 대해 많은 애국시민 사이에는 문대통령이 미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주적(主敵)이나 다름없는 북한 김영남과 펜스 부통령을 동석케 함으로써 펜스 부통령을 약올리게하고 조롱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여정과 4차례나 자리를 함께하는 등 극진한 대접을 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정작 김여정이나 김영남 앞에서 핵무기의 자도 꺼냈다는 보도는 없었다.

 

문대통령의 이같은 대북 굴종적 자세는 그가 청와대 수석과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모셨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것과 완전히 빼닮았다. 노 전대통령은 북한방문을 앞둔 2007911일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에서 김정일과의 평양정상회담에서 핵 문제를 논의하라는 많은 국민과 언론, 야당의 요청에 대해 정략적인 의미로 평가한다”“가서 싸우고 오라는 뜻”“시비거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라며 절대 핵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평화협정이라고 확언했다. 그는 앞서 200351MBC 100분 토론회에서도 “(지금처럼) 북미간 대화가 진행되고 있을 때는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핵포기를 선언하라는 등) 다른 소리를 하면 되던 판도 깨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김정일과 회담에서 북핵 얘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다.다만 서해 NLL(북방한계선)포기발언으로 곤욕을 치뤘다.

 

노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자세는 평소 그의 북핵에 대한 생각이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그는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해 방어용’ ‘일리 있다는 주장으로 일관해 왔다. 북한의 핵실험 직전에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며 핵실험 가능성을 부인해오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그였다. 핵 문제는 미국이나 6자회담에 맡기고 자신은 북한이 주장하고 좋아하고 평화협정에만 매달리겠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남측이든 북측이든 핵문제 해결 없이 평화를 말하는 것은 사기’(詐欺). 국민은 노 전대통령에게 북한 가서 핵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고 돌아오라고 주문하지 않았다. 정상회담에서 핵문제가 당장 해결되면 좋겠지만 최소한 핵 포기 등 비핵화에 대한 김정일의 책임 있는 언질을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 대통령과 김여정-김영남 일행과의 회동에 거는 국민의 기대도 같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핵포기가 선행돼야한다는 최소한 원론적인 말 한마디는 했어야 하는데도 끝내 ''자도 꺼내지 않았다. 우리 언론도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 한결같이 꿀먹은 벙어리가 돼버렸다.

 

북한은 날조된 백두밀영이 백두산 일대인 양강도 삼지연군()에 있다며 이곳을 성역화하여 김정일 생가를 복원한 뒤에 백두산 밀영 고향집이라고 부르고 있다. 북한은 1936년 백두산 일대에 새로운 유격근거지를 창설하기로 한 남호두(南湖頭)회의의 방침에 따라 19369월 백두산밀영이 창설됐으며 근 10년간 항일무장투쟁의 사령부로 이용됐고, 1942년 김정일이 여기서 태어나면서부터는 어머니 김정숙이 어린 김정일을 여기서 키웠다고 선전하고 있다. 1988년에는 소위 백두산 밀영이 소재한 소백산로동자구를 백두산밀영로동자구로 고쳤다.

 

연합뉴스 편집국장 출신의 북한문제연구가인 서옥식 박사(정치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는 북한이 말하는 남호두회의란 김일성의 주최로 1936227일부터 33일까지 만주 영안현(寧安縣) 남호두에서 열렸다는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정간부회의를 가리키나 이는 조작된 것으로 이런 회의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중국측 기록에도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실체도 없는 조작된 가공의 군대인만큼 그런 군정간부회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백두밀영이 김정일의 고향으로 된 것에 대해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로동당 비서는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출신들을 불러 김정일이 태어난 백두산의 밀영을 찾아내라고 지시했다. 그들은 백두산 일대를 뒤졌지만 애초에 없던 밀영지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러자 김일성이 직접 나서 경치도 적당하고 위치도 그럴듯한 곳을 찾아내 여기가 밀영지였다고 지적하고 그 뒷산을 정일봉이라고 이름지어 주었다. 당 역사연구소는 구호나무도 준비하고 큰 바위에다 정일봉이라고 써서 산 정상에 올려붙였다. 그리고 예술인들은 정일봉이라는 노래를 지었다고 말했다(황장엽 회고록-‘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서울: 한울, 1998, p. 245.)

 

김일성이 밀영 소재지를 스스로 찾아냈다는 황장엽 전 비서의 주장은 북한교과서의 기술내용과 일치한다. 북한 교과서(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 혁명력사(중학교 제5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92(2003), p. 5.) 1986년 김일성이 여러 날 백두산 현지를 답사해 밀영지의 옛터를 찾아냈다고 적고 있다 교과서에 따르면 김일성이 백두밀영을 찾기 위해 포수출신의 전 항일투사를 백두산 현지에 수차례 보내 밀영을 찾도록 했으나 번번히 실패해 결국 자신이 스스로 수일간 현지 답사를 통해 밀영지 옛터를 찾아냈다고 기술하고 있다. 말이 찾아낸 것이지 장소를 적당히 지정해 버린 것이다.

 

아래의 여러 글들은 서옥식 박사의 저서 <거짓과 왜곡 조작 날조를 가르치는 사회-북한 교과서 대해부>에 소개된 백두혈통의 조작에 관한 얘기들이다. 북한 교과서에는 김정일 스스로 자기가 1942216일 백두산에서 태어났다고 밝히고 있는 것과 함께 당시 항일 혁명투사들이 그를 백두광명성으로 칭송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북한 당국의 주민 권장도서이자 학생들의 부교재인 백두광명성전설집은 김정일을 백두광명성으로 부르며 김정일의 출생 순간을 빛으로 이 세상에 왔다는 성경의 예수 탄생 기록에 비유하고 있다. 이 책은 백두광명성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라고 기술, 하나님(하느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면서 가장 먼저 빛으로 세상을 비추고, 밝음()과 어둠을 나눠 낮과 밤을 만들었다는 구약성서 창세기 제1장 제3-5절을 뺨치게 하고 있다.

 

김정일 스스로백두산은 나의 고향이라고 했다고 교과서에 수록

우리당과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께서는 주체31(1942)216일 백두산밀영(량강도 삼지연군)에서 탄생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백두산은 나의 고향입니다.>

백두산정의 장군봉에서 남동쪽으로 수십리 떨어진 곳에 정일봉이 솟아있고 그밑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소백수골이 있다. 그 소백수골에 백두산밀영이 있다.

백두산밀영은 주체25(1936)9월에 꾸려진 다음 조국이 광복될때 까지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고 있던 곳이다...중략...

항일혁명투사들은 성스러운 항일대전의 불길속에서 백두산의 아들로 탄생하신 위대한 장군님을 '218;백두광명성'이라고 칭송하였다. 그것은 민족의 태양이신 경애하는 수령님의 뒤를 이어 장차 조선혁명의 미래의 태양이 되여 주실것을 바라는 뜨거운 마음에서였다.(출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 혁명력사(중학교 제5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92(2003), pp. 4-5: 서옥식 저 <북한교과서 대해부, 해맞이미디어, 2015>에서 재인용)

 

백두밀영은 김정일 장군이 탄생한 혁명성지다

백두산밀영은 주체25(1936)9월에 건설되여 1940년대 전반기 까지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탄생하신 유서깊은 혁명적 성지이다. (출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 혁명력사(중학교 제6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92(2003), p. 102: 서옥식 저 <북한교과서 대해부, 해맞이미디어, 2015>에서 재인용)

 

김정일 태어난 날 백두산에 은백색 꽃보라가 쏟아지는 등 황홀경 이뤘다

역사적인 날의 신비로운 날씨

주체31(1942)216일이였다.

전날까지도 눈바람이 사납게 불었고 기온이 -40°C 를 오르내리였지만 그날만은 신기하게도 바람이 잦아들고 기온이 올랐다. 소백수의 맑은 물도 정갈한 입김을 뿜어 골짜기에 하얀 서리동산을 아름답게 펼치였고 장수봉(오늘의 정일봉) 정수리에서는 은백색 꽃보라가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보기드문 황홀경이었다.(출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 혁명력사(중학교 제5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92(2003). p. 4: 서옥식 저 <북한교과서 대해부, 해맞이미디어, 2015>에서 재인용)

 

예수탄생 성경기록을 빰치는 김정일의출생비화조작

1942216. 하늘에서 열 여섯의 신선이 백두산 밀영지구에 내려와 흰 눈위에 무릎을 끓고 귀틀집을 향해 큰 절을 하고 일어나 이 나라에 대통운이 든 것을 축하하나이다라고 말한후 일제히 나팔을 부니 하늘에는 전에 없던 커다란 별이 하나 솟아 밝은 빛을 뿌리고 귀틀집도 금빛광채를 뿌렸다고 한다.(출처: 백두광명성전설집, ‘하늘에서 내려온 열 여섯 신선’, 조선문학(1994. 11-12), pp. 15-16: 서옥식 저 <북한교과서 대해부, 해맞이미디어, 2015>에서 재인용)

 

구약성서 창세기 1장 제3-5빛의 창조를 모방한 광명성 유래

하늘나라 왕이 이르기를 오늘의 인간 세상에 광명성이 있어 빛이 있고 광명성의 뜻대로 세상만물이 움직인다...중략...오늘의 인간 세상을 밝히는 광명성이기에 우리가 그 성지를 천상천하 제일강산에 정한 것이라고 한다.(출처: 백두광명성전설집, ‘정일봉에 별들이 새겨진 이야기’, 조선문학(1995. 4), p. 40: 서옥식 저 <북한교과서 대해부, 해맞이미디어, 2015>에서 재인용)

 

김정일 장군님의 탄생일은 성인이 하늘에서 강림한 성탄일

무릇 력사에는 성인이라고 하는 위인들이 적지 않게 배출되였으나 그들이 출생한 날들이 다 인민들속에서 신성시되면서 전설적으로 전해진적은 없었다. 허나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탄생일은 성인이 하늘에서 강림한 성탄일이라고 신성시하면서 많은 전설을 전하고있다. 그러한것은 이날이 범상한 날이 아니라 하늘이 정해준 날이기때문인것이다.

그럼 216일은 어떤 날인가?

하늘나라에서 백두산의 소백수골을 성지로 정한지 퍼그나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해 겨울이였다.

하늘나라 왕인 옥황상제가 선관과 신선들을 급히 백옥루로 불러들이였는데 이런 일은 극히 드문일이였다.

내 그대들을 급히 부른것은 긴히 의논할 일이 있기때문이니라. 이제 어지러운 땅세상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화목과 우애와 행복을 가져다줄 성인이 백두의 성지에 내리시게 되였은즉 바로 그날을 정하자는것이로다. 어느날이 합당하겠는지 스스럼없이 자기 의향들을 말하여 길일을 택하도록 할지어다.

선관과 신선들은 궁리가 떠오르지 않아 옥황상제만 쳐다보았다. 그러자 옥황상제는 머리를 좌우로 설레설레 흔들며 그럼 어느 계절로 택함이 좋겠는지 먼저 말해보라고 하였다.

그들중에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만물을 소생시켜주는 봄계절이 좋다는 선관도 있고 여름은 정열의 계절이라 그것을 주장하는 선관도 있었으며 풍만한 열매를 걷어들이는 가을을 홀시한다고 분별을 잃고 헤넘비는 신선도 있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그들의 말을 듣고만 있던 옥황상제가 신선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대들에게 내 의향을 말하겠노라. 성인께서 내리실 날을 겨울과 봄으로 정함이 좋을가 하노라.

신선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겨울이면 겨울, 봄이면 봄이지 겨울과 봄이라는것은 무슨 말인가.)

그들의 속마음을 내다보듯 옥황상제가 또 입을 열었다.

눈과 얼음이 뒤덮인 겨울만이 백두산의 위용을 만공에 떨치는즉 하늘높이 치닫는 거세찬 눈보라와 티한점 없이 깨끗한 흰눈이 뒤덮인 백두산의 숭엄한 자태는 그대로 이제 내리실 성인의 기상이요, 정기인지라 겨울로 정함이 어느모로 보나 리치에 당한 일이요, 봄은 세상만물이 소생하는 희망의 계절이니 두 계절을 다 안고있는 시절로 정하려 하노라.

이에 모두들 찬성하였다.

옥황상제는 또 선관과 신선들에게 계절은 정하였으니 이젠 어느 달을 택하는것이 좋겠는가고 물었다. 이때 한 신선이 나서서 2월로 정함이 좋을것 같다고 아뢰였다. 옥황상제가 그의 말에 머리를 끄떡이며 왜 하필 이달을 정했는가고 묻자 그는 2월은 립춘이 첫머리에 있는 달로서 겨울이 완연하나 봄이 태동하는 달이옵니다. 백두의 억센 기상과 세상만물에 새 생명을 주는 봄이 지척에 있는 달로서 위인이 내리시는 달로는 가장 안성맞춤인줄로 아옵니다.라고 아뢰였다.

이에 옥황상제는 자기의 뜻과 같다고 하면서 적극 찬성하였다.

이제는 날자를 정하는 문제가 남았다. 이 문제에서도 선관들과 신선들은 옥황상제의 고견을 따르기로 하였다.

옥황상제는 16일로 정하자는것이 짐의 뜻이라고 하면서 이해의 216일은 월요일인즉 이미 백두산에 성인들이 내리신 날은 모두 월요일이였노라. 백두산대장수님이 내리신 415일도 월요일이요, 백두산녀장수님이 내리신 1224일도 월요일이노라. 월요일은 한주일의 시작이니 희망이 끝없음을 알리는 요일로서 성인이 내리시는 요일로 이미 점지되여있느리라. 그러니 이번에 내리실 백두산 새 장수님도 월요일로 정함이 옳은가 하노라.라고 말했다.

이에 한 신선이 나서며 2일과 9, 23일도 월요일인데 하필 세번째 월요일인 16일을 정한데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아뢰였다.

이에 옥황상제는 백두산대장수님이 내리신 날이 세번째 월요일이니 그분의 뜻을 이으실 백두광명성장수님도 세번째 월요일에 내리심은 자명한 일이요. 216일을 나란히 하면 216인즉 앞의 두 수자는 21세기를 뜻하는것이요, 둘째와 세째 수자인 16은 월요일인지라 21세기가 시작됨을 상징하는것이니 그것은 세기의 해돋이를 의미하는것이요, 바로 태양을 뜻하는것이노라. 이는 곧 21세기의 태양을 말하는것이니 앞으로 내리실 성인은 21세기를 밝혀줄 태양이시라는 의미를 담고저함이로다.

옥황상제의 말이 떨어지자 백옥루의 선녀들이 백두산에 광명성장수님이 내리실 날을 216일로 정하였노라!하고 일시에 합창하여 이 경사의 날을 하늘땅과 온 우주에 알리였다.

이때였다. 백두산에 내려갔던 땅을 맡은 지관이 하늘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올라왔다.

옥황마마. 참으로 신기한 일이옵니다. 성지로 정한 백두산 소백수골에 솟아있는 장수봉의 높이가 216. 42m인즉 방금 정한 성인이 내리실 1942216일과 신통히도 수자가 같사옵니다.

모두들 눈이 휘둥그래졌다.

허나 옥황상제는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이 그것은 벌써 자기가 아득한 옛날에 성지를 정할 때 성인이 내리실 날도 미리 정하고 그날을 뜻하는 봉우리를 탑으로 세워놓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찌 성인이 내리실 경사로운 날을 소홀하게 내 생각으로만 정하겠는고. 그날을 정하는것은 절대로 가벼이 대할수 없은즉 온 하늘의 마음을 담아 심중히 정하자는 짐의 뜻이였으니 과히 섭섭해말지어다.

그리하여 하늘의 뜻을 담아 이 땅에 성인이 내리실 날을 1942216일로 정하였다고 한다.

바로 하늘이 낸 이날에 대성인이신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백두산의 정기를 안고 탄생하시였으니 위대한 장군님을 21세기의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모신것은 참으로 우리 민족의 무한한 영광이고 행복이다.(출처: 우리민족끼리, 2014215; 조선문학, 20002월호:

 

백두산 밀영은 아무도 찾지못한 걸 김일성이 1986년 발견해냈다

 

나라가 광복된 다음 수십년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백두산 밀영의 귀틀집들은 무너지고 그 우에는 진대나무와 낙엽만이 두텁게 쌓였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백두산밀영을 찾기 위하여 항일투사선생님을 여러차례 현지에 파견하시였다. 포수출신인 선생님은 누구보다 산세에 밝았지만 백두산이 워낙 험한 무인지경이어서 번번히 소득없이 돌아왔다.

이것을 못내 안타깝게 여겨 오시던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주체75(1986)70고령의 몸으로 몸소 여러날 현지를 밟으시며 끝내 밀영지의 옛터를 찾아 주시였다. 출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 혁명력사(중학교 제5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92(2003), p. 5:서옥식 저 <북한교과서 대해부, 해맞이미디어, 2015>에서 재인용)

 

소학교 국어책에 문답학습의 대표적 사례로 김정일 생일 묻는 문제 수록

묻는말에 대답을 잘 하기위해서는 첫째로, 묻는 말을 귀담아 듣고 그에 꼭 맞게 대답하여야 합니디. 례를 들어 &#10218;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께서는 언제, 어디에서 탄생하시였습니까?&#10219; 고 물으면 &#10218;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께서는 주체 31(1942)216일 백두산밀영에서 탄생하시였습니다.&#10219;라고 꼭 맞게 대답하여야 합니다.(출처: 국어(소학교 제2학년용),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주체98(2009), p. 20: 서옥식 저 <북한교과서 대해부, 해맞이미디어, 2015>에서 재인용)

 

백두혈통을 명문화한 당의 유일적령도체계 확립의 10대원칙

34: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초상화, 석고상, 동상, 초상휘장, 영상을 모신 작품과 출판선전물, 현지교시판과 말씀판, 영생탑, 당의 기본구호들을 정중히 모시고 철저히 보위하여야 한다.

35: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위대한 혁명력사와 투쟁업적이 깃들어있는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 혁명사적비와 표식비, 혁명박물관과 혁명사적관, 김일성김정일주의 연구실을 정중히 꾸리고 잘 관리하며 철저히 보위하여야 한다.

102: 우리 당과 혁명의 명맥을 백두의 혈통으로 영원히 이어나가며 주체의 혁명전통을 끊임없이 계승발전기키고 그 순결성을 철저히 고수하여야 한다.(출처: 당의 유일적령도체계확립의 10대원칙, 20136월 개정: 서옥식 저 <북한교과서 대해부, 해맞이미디어, 2015>에서 재인용)

 

황장엽 회고록, ‘백두밀영은 김일성이 아들위해 조작해 만든 것

백두밀영이 김정일의 고향으로 된 것에 대해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로동당 비서는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출신들을 불러 김정일이 태어난 백두산의 밀영을 찾아내라고 지시했다. 그들은 백두산 일대를 뒤졌지만 애초에 없던 밀영지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러자 김일성이 직접 나서 경치도 적당하고 위치도 그럴듯한 곳을 찾아내 여기가 밀영지였다고 지적하고 그 뒷산을 정일봉이라고 이름지어 주었다. 당 역사연구소는 구호나무도 준비하고 큰 바위에다 정일봉이라고 써서 산 정상에 올려붙였다. 그리고 예술인들은 정일봉이라는 노래를 지었다고 말했다.(황장엽 회고록-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서울: 한울, 1998, p. 245.) 그는 또 옛 소련정부 공식문서, 일본군 문서에 김정일의 출생지는 러시아로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황장엽 전 비서의 이같은 주장은 북한교과서의 기술내용과 일치한다. 북한교과서들은 김일성이 백두밀영을 찾기 위해 포수출신의 전 항일투사를 백두산 현지에 수차례 보내 밀영을 찾도록 했으나 번번히 실패해 결국 김일성 스스로 수일간 현지 답사를 통해 밀영지 옛터를 찾아냈다고 기술하고 있다. 말이 찾아낸 것이지 장소를 적당히 지정해 버린 것이다.

 

김정일이 소련출생이라는 결정적인 증거(1): 탯줄짜른 러시아 조산원 진술 있다

한편 1993년 한국 정보 당국의 요청으로 김정일의 출산을 도운 조산원 엘냐(당시 68)양을 그녀가 거주하고 있던 연해주 나데진스키라즈돌노예뽀브브카 마을에서 찾아낸 연해주 거주 교포 아나톨리 (러시아명)씨는 김정일의 출생지가 라즈돌노예 마을길 88번지 2층 빨간 벽돌집(사진)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아나톨리 이씨는 2014222일자로 올린 자신의 블로그 <김정일이 태어난 러시아 연해주 나데진스키을 가보니(http://blog.daum.net/mybjj123/4516845)>에서 라즈돌노예 지역은 우수리스크로 가는 길목이라 필자(아나톨리 )가 평소 다니던 길이고, 또한 북한으로 내려가는 철길과 도로의 초입이었고, 19379월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할 때 가장 많은 고려인들이 실려 나갔던 역사적인 곳이라서 주민들 중에는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마침 그곳의 가장 큰 소호즈’(sovkhoz) 농장장인 안드레이 게나지의 동생이 읍장으로 재직하고 있어 한국식의 호적등제부를 보고 금방 엘냐라는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정보당국의 요원 2명과 함께 엘냐의 김정일에 대한 증언을 녹취했다고 밝혔다.

 

녹취록에 따르면 1941216일 새벽 얼굴색이 노란 젊은 동양사람 두 명이 아기를 받아달라고 당시 17세의 조산원인 엘냐에게 황급히 찾아왔다. 엘냐는 그들과 함께 약4km 눈길을 걸어 산모가 있는 곳까지 갔다. 당시 간호사양성학교를 막 졸업한 17살의 처녀 엘냐는 조산원 면허취득 후 세번째 받는 아기가 동양사람 아기여서 이 아기가 유라(김정일)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엘냐는 그때 조산원 경험이 부족하여 아기의 탯줄을 길게 잘랐는데, 3년후 김일성부부가 ㅤㅇㅗㄼ겨간 하바로브스크에서 아기를 만났을 때 배꼽이 남자의 그것처럼 튀어나와 아기엄마인 김정숙과 함께 웃었다고 진술했다.

 

엘냐는 이어 라즈돌노예 88번지 2층 벽돌집 동쪽 문 2층 첫째 방에서 아기를 받았다면서 산모(김정숙)와 일행들은 중국 동북지방에서 건너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했으며, 조산원인 자신을 보조한 사람은 여자 통신병인 김애순으로, 산모를 언니라고 불렀다고 전했다. 아버지(김일성)는 추운 날씨에 먼 길을 와주었다며 엘냐에게 김정숙이 전에 짜놓은 털목도리를 선물로 주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엘냐는 큰 길 옆에 있는 빨간 벽돌집 앞으로 몇 차례 지나다니면서 잠깐씩 들려 아기를 보살펴주었고, 조산원에서 가져온 우유와 산모용 영양제도 주었다고 했다. 한번은 그곳을 지나니 아기 아빠 등 일행들이 사라져버려 그 집에 입주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어느 날 밤에 몽땅 기차를 타고 떠났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1년 반 후 하바로브스크 동북쪽 아무르강 하구인 강변도시 브야츠코예가 주소로 된 김정숙의 편지가 왔는데, “아기는 잘 자라고 있으며 혹시 하바로프스크에 오는 걸음이 있으면 꼭 찾아 달라고 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했다. 그 후 엘냐는 수석 조산원 연수차 하바로브스크 의과대학에 머물면서 김정숙과 아기를 만나러 73km 떨어진 브야츠코예로 가서 3년 만에 만나니 아기엄마는 얼마 전에 둘째 아들을 낳았다면서 다음에는 딸을 낳겠다고 웃으며 말했다는 것이다. 엘냐는 그때 마당에서는 유라(정일)와 또 다른 남자아이(1942년생으로 김애순의 아들)가 같이 놀고 있더라고 중언했다.

 

엘냐는 한국 정보당국 요원이 김애순에 대하여 기억나는 대로 설명해 달라는 주문에 유라가 김정숙의 뱃속에서 나올 때 옆에서 도와주었던 여자가 바로 그 사람이고, 그녀가 낳은 아기의 아버지가 김일성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라고 했다.

 

엘냐는 진술을 마친 다음 집 앞에서 헤어지는 필자(아나톨리 )에게 귓속말로 하바로프스크 브야츠코예 주둔 군부대(88정찰여단) 이름이 유라(김정일)가 태어난 집 번지(88번지)와 같다면서 당신이 연구해볼 과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비극의 항일 빨치산의 저자인 작가 김찬성은 김정일 출생후인 1942년 당시 소련 제2극동군사령부 88정찰여단 소속 소련인 통역관 스테판 니콜라야비치 등의 증언을 토대로 김정일이 하마탄 마을 소련 병영에서 조산원 웰냐(당시 68)의 도움을 받아 태어났다고 말했다. 김정일에게는 1944년에 태어난 남동생 김만일이 있었는데 그도 소련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소련식으로 슈라라는 이름을 갖고있었다. 김정일의 남동생 슈라는 1947년 평양의 집 마당에서 김정일과 함께 놀다가 연못에 빠져 죽었다. 슈라는 형 유라 즉, 김정일과 함께 연못에서 놀았는데 김정일이 재미삼아 물에 빠진 동생이 나오려고 하자 머리를 물에 밀어넣어 죽였다고 한다.

 

김정일이 소련출생이라는 결정적인 증거(2): 출생 후 소련서 젖먹인 유모 있다

김일성이 소속된 88정찰여단 무선통신대에서 전사(戰士)로 일했으며 김일성의 처 김정숙이 젖이 모자라 김정일에게 젖을 먹였던 이재덕씨는 자신이 김정일에게 젖을 먹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김정일을 잘 안다면서 그는 백두산밀영이 아닌 소련에서 태어났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1992416일자 보도에 따르면 일본공산당 기관지 적기’(赤旗)의 마지막 평양특파원이었던 하기하라 료(萩原 遼)씨는 19921월 이재덕씨(당시 75)가 거주하고 있던 베이징에서 이씨를 만나 김일성은 연해주에서 처 김정숙과의 사이에 김정일을 낳았으며 그때 젖이 모자라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던 이씨가 대신 젖을 먹여주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이재덕씨는 중앙일보 1991104일자에 보도된 인터뷰 기사에서 김정일의 출생지가 백두산 밀영이 아니라 소련의 하바로프스크 인근 88정찰여단 브아츠코예 야영이라고 증언했다.

 

 

▲ 201481일 백두산밀영을 방문, 설명을 듣고있는 북한의 전국 당책임 일꾼들

   

평남이 고향인 이씨는 중국 건국이후 전국인민대표자대회 상임위 비서국에 근무하다 지난 1970년대초 퇴직, 2015년 당시 97세로 베이징에 살고 있었다.

 

이씨는 은퇴 후 북한에서 사람을 보내 김정일이 백두산에서 출생했다고 말해줄 것을 수차례 요구했으나 거절했다면서 지난해 가을에도 김정숙에 대한 회고담을 써주면서 김정일이 하바로프스크에서 출생했다는 것을 명백히 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그러나 김정숙을 만난 시기가 임신중인 194111월로 기억되며 김정일에게 젖을 먹인 시기가 태어난 지 약 5개월 쯤 되는 19427월부터 젖을 뗄 때까지라고 말해 김정일의 생년월일이 1942216일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하지만 노년에 접어든 빨치산대원들의 증언은 자주 엇갈리는 경우가 많아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씨는 북한 정권수립일(194899)을 맞아 그해 11월경 초대돼 평양에서 김정숙-김정일과 다시 만났으나 이후 김정숙의 사망으로 다시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정숙은 1949922일 또 다른 아기를 출산하던 중 난산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씨는 김일성 사망 직후인 1994716일 서순옥 등 항일빨치산 동료와 김일성의 만주 육문중학 재학시절 교사였던 상월(尙鉞) 등과 함께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했다고 조선중앙방송이 717일 보도한 바 있다.

 

김정일, 자신 이름이 소련식 유라로 학적부에 등재된 모교 폐교

김정일이 1954년부터 1960년 여름까지 다녔던 평양시 중구 남산동 조선로동당 중앙당사 앞 남산고급중학교(고등학교 과정)1984년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폐교돼 평양제일고등중학교(20028월 학제 개편에 따라 평양제일중학교로 교명 변경)로 흡수 됐는 데 폐교이유는 겉으로는 당 간부 자녀만을 위한 소위 귀족학교때문이라고 전해져 있으나 사실은 김정일이 김유라라는 이름으로 이 학교에 등록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정일은 19607월 남산고급중학교 졸업을 며칠 앞두고 같은 반 학생들에게 이제 내 이름은 김유라가 아니라 김정일로 고쳤으니 앞으로 김정일로 불러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이라는 이름도 처음에 金正一로 썼다가 뒤에 金正日로 바꿨다. 어머니인 김정숙의 과 김일성의 을 합성해 직접 만든 이름이다. 이는 김정일이 김일성의 유일한 적자임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이복동생인 평일영일은 모두 한 일’()자를 쓰고 있다. ‘正日로 바꾼 것은 198010월이다. 이해 1010일 김정일은 당

3대 권력기구에 모두 선출된다.

북한은 19872월부터는 백두산 밀영에 귀틀집을 마련, 백두산 밀영 고향집이라고 부르며 성역화했으며, 1988년 이 백두산밀영이 소재한 소백산노동자구의 이름을 백두산밀영노동자구로 고쳤다.

 

백두산밀영은 1984년 이전까지는 북한 문헌에 없었다

북한의 교과서는 백두산 밀영이 1936년 하반기에 건설돼 해방의 해인 1945년 까지 유지돼온 조선인민혁명군 총사령부 소재지로서, 혁명의 성지이자 김정일의 출생지라고 기술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날조다.

서옥식 박사는 백두산 동남쪽에 김일성과 부인 김정숙이 함께 생활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했다는 밀영이 유지되었다는 주장은 1980년대 중반까지의 북한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면서 김정일의 출생지를 백두산 밀영으로 서술한 탁진 등의 저서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이 출간된 것은 1984이라고 말했다.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1992-1998) 역시 백두산 밀영 신화를 제시한 최초의 역사서이다.(와다 하루끼(和田春樹), 이종석 역,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서울: 창작과 비평사, 1992, p. 275.) 

기사입력: 2018/02/15 [21:17]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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