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흥망에는 반드시 조짐이 나타난다
진실·정의·자비의 눈은 현재와 미래를 본다
 
올인코리아 편집인/바른생각 네티즌 논객

 ▲ 아직도 박근혜 대통령 인민재판하고 북괴의 입장을 대변하는 동아닷컴의 망국선동

 

다음은 유교 경전인 중용(中庸)의 한 구절이다: 至誠之道(지성지도) 可以前知(가이전지) 國家將興(국가장흥) 必有禎祥(필유정상) 國家將亡(국가장망) 必有妖孼(필유요얼) 見乎蓍龜(견호시구) 動乎四體(동호사체) 禍福將至(화복장지) () 必先知之(필선지지) 不善(불선) 必先知之(필선지지) () 至誠(지성) 如神(여신).

 

진실(眞實)하고 성실(誠實)하면 앞날을 알 수 있다. 국가가 장차 흥하는 데에는 반드시 상서로운 조짐이 있고 국가가 장차 망하는 데에는 반드시 흉한 징조가 있으니 시초와 거북 껍질에 보이고 사체(四體)에 동한다. 화와 복이 장차 이르름에 이 반드시 먼저 알고 不善이 반드시 먼저 아느니 고로 지성(至誠)()과 같다.

 

* 길조와 흉조를 시초점과 거북점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의 의미는,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있는 것이므로 그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는 능력이 있다면 현재를 관찰함으로써 미래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점을 치는 원리가 본래 그러하다. 미래를 알기 위해서는 현재를 알아야 하는데 여기서 안다는 것은 본래 그대로, 있는 그대로를 안다는 것이고 그렇게 거짓 없이 진실을 탐구하는 마음이 至誠(=성실)이다. 그래서 至誠은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미신도 아니고 과장된 말이 아니며 실제의 사실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면 미래를 알 수 있는데, 사실의 존재는 관계로부터 생기는 것이어서 그 관계를 형성하는 사람이 진실을 행하게 되면 그 사실도 진실에 맞게 변한다. 따라서 진실된 사람은 미래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실 되게 행함으로써 미래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動乎四體는 몸으로부터 반응이 온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진실(=성실)한 사람은 흥함의 조짐과 망함의 조짐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는 말이다. 가령 경제학자라면 경제적 관점에서 앞날을 예견할 수 있을 것이고, 한국인이라면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 앞날을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그 사람이 현재 자리한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만 앞날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같으며 같은 사안에 대한 예견의 결과는 사람마다의 입장 차이에 관계 없이 모두 일치하는 것이다. 앞날을 예견할 수 있는 원리는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이치인데 이것은 원인과 결과는 반드시 일치한다는 것이다.

 

* 화와 복이 이름에 선이 먼저 알아채고 불선이 먼저 알아챈다는 말은 화와 복이란 것이 어디에서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스스로 행했던 선과 불선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화가 올 것임은 과거에 불선을 행하였던 그때 이미 알고 있던 것이고 복이 올 것임은 과거에 선을 행하였던 그때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至誠과 같다고 했을 때 은 물리를 초월한 절대적인 것을 의미하는 말로서 전지전능한 신의 개념으로 봐도 무방하다. 지극한 정성으로 불가능한 것이 없음을 상징하는 것인데 이것도 과장된 말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이다. 악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고 오래 갈 수 없는 까닭은 악은 술수로써 흥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진실하고 성실하면 이미 처음부터 성공한 것이고 술수로써 성취하려고 하면 이미 처음부터 실패한 것이다.

  

* 앞을 아는 것에 대해 노자 도덕경(38. 前識者 道之華 而愚之始: 앞을 아는 것을 도의 꽃이라고 하지만 이것이 어리석음의 시작이다)에서는 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앞을 아는 것 자체만을 놓고 보면 역시 도가 아닌 것이 맞다. 도가 있다면 앞날을 안다고 해서 경거망동하지 않을 것이므로 앞을 알거나 모르거나 실질적으로는 상관이 없다. 앞을 알았을 때 하는 행동의 기준과 앞을 모르고서 하는 행동의 기준이 다르다면, 그건 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앞을 안다는 것은 현실적인 필요에 의한 것인데, 그것은 현실에 맞는 도를 효율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필요이다. 그러니 군자의 학문을 공부하면서 앞을 아는 것에 집착한다면, 이미 잘못된 것이다. 앞을 아는 것을 통해 도()를 실현한다는 발상은 순서가 뒤바뀐 것으로서, 그렇게는 도가 실현되지 못한다. 도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앞(미래)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풀이) 지극한 정성이면 일의 인과(因果)를 알 수 있다. (만사엔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있듯이) 국가가 장차 흥하고 망함에 있어서 반드시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화와 복이 이름에 선이 먼저 그것을 알아채고 불선이 먼저 그것을 알아채니 선을 행하고 불선을 행하였던 그때에 이미 화와 복이 결정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고로 을 잡고 놓지 않는 至誠(지극한 정성/성실/진실)은 신과 같다. [바른생각 올인코리아 네티즌 논객]

 

 

기사입력: 2018/08/05 [11:06]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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