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가 남침 아니라는 대통령들의 망언
한국전쟁 69주년 맞아 다시보는 6.25 왜곡 발언들
 
서옥식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

 

소위 내전론은 북한주장 합리화하고 대한민국 역사 뒤집는 것

역대 지도자들의 내란언급은 반헌법적이고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하는 것

교과서 유일합법정부유엔결의 삭제는 이에 근거해 참전한 미국과 유엔을 깡패취급하는 것

내전론 수용할 경우 현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평화협정에도 문제 발생 소지

6.25는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 이후 발발한 최초의 공산-자유진영 이데올로기 전쟁

문재인 대통령 남북한은 서로 침략 없었다. 6.25는 내전

노무현 전 대통령, “6.25는 내전. 용산 미군기지는 침략의 상징

김대중 전 대통령, “6.25는 실패한 통일전쟁

강정구(전 동국대 교수), “6.25전쟁은 주범은 미국과 주한미군

전교조 통일교재, “6.25는 남침 아니며 전쟁의 원흉은 미국과 친미-냉전 세력

이재정(전 통일부장관), “6.25를 남침, 북침 중 하나로 규정해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정희(전 민노당 대표),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는 좀 더 치밀하게 생각해서 나중에 답하겠다

이종석(전 통일부장관)=6.25가 북침인가 남침인가의 문제는 한국전쟁을 살펴보는 데 무의미하다

김영승(미전향 장기수), “6.25는 위대한 민족해방전쟁

황석영(소설가), “김일성은 을지문덕, 이순신, 세종대왕 같은 위인

한홍구(성공회대 교수), “김일성은 스탈린이나 덩샤오핑도 넘볼 수 없는 혁명가

이수호(전 민주노총위원장-전교조위원장)=“6.25전쟁은 미국이 기획했고 결국은 미국이 주역까지 하며 한반도를 철저히 파괴했다

장영달(전 열린우리당 최고위원), “맥아더 장군 동상철거주장은 민족적 순수성

강희남(전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 의장), “6.25당시 맥아더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양키의 식민지 지배를 받지 않고 살 수 있었다

한강(소설가), “6.25전쟁을 강대국들이 한반도에서 자행한 대리전

김삼웅(전 독립기념관장), “2차 대전 후 민족반역세력이 주류가 된 나라는 한국과 월남뿐

문정현(신부), “한국민은 인간백정 주한미군을 반드시 한국 재판대에 세우고 심판할 것

리영희(전 한양대 교수),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 아니다

 

 

25일로 6.25 전쟁 69주년을 맞는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위 가사는 대한민국 국민 30세 정도 이상이면 누구나 알 수 있고 부를 줄 아는 ‘6.25의 노래’ (박두진 작사/김동진 작곡) 1절이다. 노래는 대한민국이 원수인 북한공산군의 침략을 받았음을 만천하에 알리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북유럽 3국 여행 중 스웨덴 의회 연설에서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6.25 남침을 부정하는 반역 망언을 해 충격을 주고 있다. 문 대통령은 반만년 역사에서 남한과 북한은 그 어떤 나라도 침략한 적이 없다.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 슬픈 역사를 가졌을 뿐이라고 말해 6.25전쟁 발발이 김일성의 남침이 아니라고 북한을 옹호하고 대변해 줬다.

  

그것도 한국전쟁 기간 중 부산에 야전병원을 차리고 정전이후까지 수년간 수백만의 국군·유엔군·민간인을 치료하는 등 대규모 의료지원을 해준 스웨덴에 가서 북한과 중공의 남침이 아니라는 망언을 함으로써 스웨덴의 참전 공로와 은혜를 무시하는 것 같다는 지적이다. 문 대통령의 이 연설문은 본인의 생각인가 아니면 뼈 속까지 붉은 물이 든 어느 종북좌파 보좌관이 써준 것을 앵무새처럼 따라 읽은 것인가. 그러나 6.25전쟁을 내전으로 표현해온 대통령의 과거 언급들을 보면 그의 이번 발언도 그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남침을 모의한 6.25 전쟁의 3 원흉. 좌로부터 스탈린, 김일성, 마오쩌둥

 

스웨덴이 어떤 나라인가?

스웨덴은 6.25 당시 인도적 목적으로 의료지원단을 파견한 5개국(스웨덴·인도·덴마크·노르웨이·이탈리아) 중 가장 먼저 인력을 보냈다. 1950923일 부산상업고등학교(현 롯데백화점 부산 본점)에 진찰실·수술실을 갖춘 병실 200개 규모의 병원을 차려 1957410일까지 의사·간호사·위생병 등 연인원 약 1124명을 파견했다. 정전 뒤에도 민간인 치료에 전념해 200만 명이 넘는 환자를 돌봤다. 또한 1958102일 덴마크·노르웨이와 함께 서울에 국립의료원을 설립해 한국 의료 체계의 기틀을 다졌다. 13년 후인 19722월 국립의료원 운영을 한국에 넘길 때까지 스웨덴의 역할은 컸다. 그럼에도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스웨덴군 영화재단은 6.25전쟁의 잊혀진 기억을 되찾기 위해 다큐멘터리 잊지 말자(Let us not forget·가제)’ 제작에 나서 현재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웨덴의 역할은 단순히 의료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스웨덴은 현재도 한국을 도운 유엔군사령부 편에 서서 활동 중인 중립국감시위원회(中立國監視委員會, 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ssion, NNSC) 위원국이다. NNSC1957727일 정전협정체결에 따라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소속으로 종전(선언)이 이뤄질 때까지 휴전상황을 감시할 목적으로 수립된 기구이다. NNSC는 한국전에 직접 군대를 파견하지 않은 4개의 중립국가로 이뤄져 있으며, 스웨덴과 스위스 2개국은 유엔군사령부에서, 또 다른 2개국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는 조선인민군과 중국 인민지원군에서 각각 지명했다. 현재 대한민국 측에만 스웨덴과 스위스 위원이 각각 5명씩 경기도 파주시 유엔사 기지인 캠프 보니파스에 주재하고 있으며, 북한측에는 어느 국가의 위원도 주재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1994년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축출했기 때문이다. 현재 폴란드는 본국에서 휴전감시임무를 수행한다고 하나 사실상 무용지물상태며 체코슬로바키아는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 붕괴와 함께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양분돼 감시국 자리를 승계하지 못한 상태다.

 

남침 개시 사흘 후인 1950628일 미아리를 통해 서울 한복판으로 진군하는 북한군 병사들

 

문재인 대통령의 스웨덴 발언은, 지난 66일 현충일 기념식 김원봉에 대한 발언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북한 김일성 집단의 6.25 남침 전쟁 감행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이러한 문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고, “북한의 침략전쟁을 교묘히 부정하고, 일방적 피해를 입은 우리를 쌍방 과실의 한 당사자로 전락시킨 대통령 연설이다. 어떻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이럴 수가 있는가... 북한을 위해 자행되는 문정권의 역사왜곡 역시 철저히 막아내고 그에 따른 책임을 국민과 함께 반드시 물을 것이다라고 규탄했다.

 

6.25전쟁을 내전으로 규정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의 언급은 유엔총회가 무력선제공격에 의한 평화파괴의 주범으로 규정한 북한에 면죄부를 주고, ‘집안싸움(또는 부부싸움)’에 개입한 미국과 유엔이 불한당(不汗黨) 같은 존재로 낙인찍히게 하는 것이다.

 

6.25전쟁은 북한이나 일부 좌파 인사들의 주장처럼 내전이 아니라 북한의 불법남침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김일성, 스탈린(Joseph V. Stalin), 마오쩌둥(毛澤東) 3자가 공모해 공산주의 영향력을 동북아에서 확대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자 유엔군의 즉각적인 참전에 맞서 중공 및 소련을 중심으로 한 바르샤바 동맹군이 개입한 국제전이었다. 당시 유엔가입 회원국이 93개국인데 6.25전쟁에 직간접으로 개입한 나라가 72개다. 대한민국 측에 섰던 나라가 병력파견 참전 16개국, 의료·물자 지원국 5개국을 포함한 63개국, 북한 측에 섰던 나라가 바르샤바동맹국인 소련·폴란드·동독·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알바니아·체코슬로바키아 8개국과 중공 등 모두 9개국이다. 이는 6.25가 처음부터 엄격한 국제전이란 걸 의미한다. 특히 1950년 당시 세계 6대 강대국 중 독일을 제외한 미국·영국·프랑스·소련·중국 5대 강국이 관련됐다는 사실은 한국전쟁의 성격이 강대국들이 개입한 국제전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래서 ‘a little World War(작은 세계 대전)’로 까지 불린다.

 

북한군에 포위돼 부산 교두보'로 불려진 낙동강 전선

 

특히 유엔이 6.25발발 당일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82(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Resolution 82)’ 를 통해 6.25 남침을 내전으로 보기를 거부하고 북한군에 의한 대한민국 무력공격(the armed attack on the Republic of Korea by forces from North Korea)평화파과행위(a breach of the peace)’로 규정하고 유엔군의 신속한 편성 등을 통한 지원으로 공산화 패망직전의 한국을 살렸는데도 문재인은 2017921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유엔에 대한 감사 표시는커녕 한국전 성격을, ‘내전과 국제전의 결합으로 설명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는 유엔군이 괜히 한국의 집안싸움인 내전에 개입, 국제전으로 확대시킨 장본인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왜곡했다. 대한민국 사상 대통령이 유엔총회에 가서 6.25전쟁 때 대한민국을 도운 유엔을 향해 6.25를 내전으로 설명한 한 사람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따라 낙동강 유혈 전선을 돌파하고 북진하는 국군

 

6.25전쟁은 또한 유엔의 집단안보가 사상 최초로 적용된 사례였다. 유엔은 헌장 39조와 41조 및 42조에 의거한 집단안전보장조치를 즉각 단행했다. 유엔 안보리는 미국의 요청으로 625일 즉각 긴급회의를 열어 북한군의 무력 남침을 평화를 파괴하는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북한에게 전투행위의 즉각 중지북한군의 38선 이북으로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안보리는 미국이 제출한 결의를 9 0, 기권 1(유고슬라비아), 결석 1(소련)로 채택했다. 또한 모든 회원국이 동 결의문 집행에 있어 유엔에 대해 모든 원조를 제공하며, 북한 집단에 원조를 하지 않도록 촉구했다. 안보리는 이어 627일에는 유엔회원국들에게 북한의 대남 무력 침략을 격퇴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회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원조를 한국에 제공할 것을 권고하는 결의를 찬성 7, 반대 1, 기권 2, 결석 1로 채택했다. 전황이 급박하다는 보고를 받은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627일 우선 일본주둔 미 해군과 공군에게 즉각 한국으로 출동하여 한국군을 지원할 것을 명령했다. 유엔은 이와 함께 유엔군이 한국전에 개입하게 된 배경에 대해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로 승인한 19481212일의 제네바 유엔총회 결의 제195(III))’를 들고 있다.

 

그러나 세계사에 있어 무엇보다 6.25전쟁이 갖는 의미는 이 전쟁이 1848년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후 최초로, 그리고 냉전의 시작과 함께 드러난 공산주의의 계급투쟁과 폭력혁명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기념비적인 사건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6.25전쟁은 자유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준 세계사적 이정표라는 지적을 받는다.

 

6.25전쟁은 남북한을 통틀어 5백여만의 사상자와 1천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을 만들어냈다. 그 경제적 손실은 전 국토가 초토화되면서 대한민국은 가히 계수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인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미국은 3년간 연인원 175만 명의 장병이 참전, 54246명이 젊은 목숨을 바쳤고 103284명이 부상했으며, 아직도 8천여 명의 실종자를 남기고 있다. 유엔은 6.25전쟁에 대해 안보리 결의를 통해 북한군에 의한 대한민국 무력공격’, ‘평화파괴행위'로 규정했다. 유엔은 이처럼 6.25전쟁이 내전이라는 주장들은 거부한 셈이다.

 

그럼에도 자칭 진보라고 주장하는 우리 사회의 종북좌파 진영에서는 한국전쟁을 내전(civil war, internal war)이니, 조국해방전쟁이니, 통일전쟁이니,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 간의 전쟁이니 하면서 대한민국을 지킨 세력을 민족반역세력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린 우방국들을 내전에 개입한 제국주의세력으로 매도하는 세력이 날뛰는 곳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6.25전쟁을 내전으로 규정한 대표적인 정치 지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이다. 문재인은 2017921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유엔이 사상 최초의 집단안보개념을 적용해 참전하고 대한민국을 공산화 멸망의 위기에서 구출해준 6.25전쟁을 내전으로 표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1120일 캄보디아 동포 간담회에서 6.25전쟁을 내전이라 언급했다. 그는 2007103일 평양에서 김정일과 가진 회담에서 대한민국을 김일성의 남침으로부터 살려낸 미국에 대해 가장 큰 문제는 제국주의 미국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이게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할 말인가.

 

6.25전쟁이 내전이 아니라는 증거는 북한에 의한 무력공격 및 평화파괴행위를 규정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82호 등 역사적인 자료, 해제된 구소련의 기밀문서, 러시아 엘친 대통령의 공식적인 언급, 생존자 증언, 38선 부근 주민들의 전쟁초기 경험, 빨치산 포로들의 증언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6.25전쟁은 김일성이 소련의 스탈린과 중공의 마오쩌둥이라는 두 공산주의 국가 지도자의 사주를 받아 일으킨 침략전쟁(남침전쟁)이지 내전이나 통일전쟁은 아니다. 6.25전쟁을 내전으로 보는 역사관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내전이란 말을 쓰게 되면 북한의 침략으로 일어난 6.25전쟁의 책임을 남북이 나눠져야 한다.

 

내전론을 맨 먼저 만들어 유포시킨 존재는 소련이다. 6.25전쟁 발발 이후 소련은 그들의 전쟁 개입을 은폐하기 위해 이 전쟁을 공식적으로 내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이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당시 안드레이 그로미코(Andrey Gromyko)소련 외무차관은 앨런 커크(Allan Kirk)소련주재 미국대사에게 남한이 38선상에서 먼저 국경분쟁을 유발하여 북한이 반격을 가하면서 전면전으로 비화됐다고 주장했다. 소련은 전쟁 개입 사실을 은폐하고 내정불간섭의 원칙을 내세워 유엔과 미국의 참전을 막기 위해 6.25전쟁을 내전으로 불렀던 것이다. 북한의 과학백과사전종합 출판사가 소위 조국해방전쟁 승리 40을 기념하기 위해 1993년에 펴낸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영도하신 조선 인민의 정의의 조국해방전쟁사에도 버젓이 내전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냉전이 붕괴되면서 소련이 공개한 많은 문서들은 6.25가 더 이상 내전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대한민국은 유엔 감시하의 자유선거(19485.10선거) 후 유엔총회 승인(19481212일 채택된 유엔총회 결의 제195(III))을 거쳐 탄생했지만, 북한은 반국가 무장단체에 불과했다. 유엔이 탄생시킨 국가를 반국가단체가 선제공격해서 발생한 전쟁을 놓고 동등한 집단간에 발생한 내전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좌익중심의 내전론자들은 6.25전쟁을 동족끼리 일으킨 내부 전쟁, 즉 부부싸움과 같은 전쟁이었는데 유엔군이 참전하여 전쟁이 장기화되고 억울하게 많은 피해가 생겼으며, 따라서 미국과 유엔이 전쟁의 원흉이기 때문에 맥아더동상을 파괴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한국전쟁이 본래 내전이었는데 미국의 개입과 중공의 참전을 불러 국제전으로 확대됐다고 말하는 것은 브루스 커밍스 류의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이다. 내전이란 한 국가 내에서 외부세력의 개입 없이 집단과 집단 간에 일어난 분쟁을 말하는데, 그렇다면 북한이 개전초기에 동원한 242대의 T-34 탱크와 수 많은 군함과 폭격기들은 자신들 스스로 만들어 가져왔다는 것인가? 해방이후 남북한 공히 이렇다 할 소총 한 자루 생산하지 못했던 기술수준을 감안하면 북한의 엄청난 군사장비는 소련으로부터 지원 받았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지 않는가?

 

더구나 소련이 내린 공격명령서까지 나왔는데 어떻게 내전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1950104, 서울에서 노획된 가로 50세로 30의 이 문서는 러시아로 작성된 선제타격 작전계획서로 전투명령서, 부대이동계획, 병참계획, 보급계획, 기만계획으로 구성된 완벽한 공격명령서다. 이 명령서는 북한의 공격집단을 금천-구화리, 연천-철원, 화천-양구 지역에 집중, 전개하여 3일 내에 서울 부근의 주력부대를 포위섬멸(包圍殲滅)한 후 전과(戰果)를 확대하여 남해안까지 진출한다는 3 단계로 추진하도록 돼있다. 이밖에 6.25전쟁이 남침이었다는 증거는 한미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과 서울 수복 후 김일성 스스로 애걸복걸하며 스탈린에게 도와달라고 보낸 편지(1950929일자), 마오쩌둥에게 보낸 편지(1950101)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결국 내전론은 소련이 유엔과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을 막기 위해 지어낸 선전용어인데도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한국의 종북-친북좌파 세력들이 지난 60여년 간 끈질기게 이를 유포하여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별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이들의 논리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전론적 역사관은 미국과 유엔을 반대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장하는 등 역사를 뒤집고 싶은 자들의 주장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1948년 유엔총회에서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로 결의된 것은 훗날 미국 등 16개국이 유엔군의 이름으로 6.25전쟁에 참전하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유일합법정부라는 것은 헌법 제4(영토조항)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우리가 내전론을 수용할 경우,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합법정부라는 유엔결의에 의해 참전한 유엔은 남의 집안싸움에 뛰어든 불량배(hooligan)’가 되고 만다. 특히 당시 유엔으로부터 국가로 인정받지 못한 반국가 교전단체에 불과한 북한을 우리 스스로 정당한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돼 결국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 3조에 명시된 영토조항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내전 발언은 반헌법적인 것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도전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2020년부터 사용할 교과서에 종전 교과서에 있었던 대한민국=한반도 유일합법정부를 삭제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또 우리가 내전론을 받아들인다면 6.25전쟁 책임에는 쌍방과실이 인정돼 남북한이 각각 50%씩 서로 나누어 가져야된다는 논리가 성립되며 더 나아가 부부싸움(내전)을 말린다며 안방의 온갖 가재도구를 다 부순 외부인(미국과 유엔)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야한다는 논리도 성립될 수 있다. 내전론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과도 관련되는 민감한 문제다. 불법남침 대신 내전론을 수용할 경우 미국과 유엔이 오히려 깡패같은 범죄자가 되며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사과나 배상 등 책임을 물리기는커녕 북한에 면죄부를 주는 형국이 된다.

 

대표적인 종북좌파 학자인 강정구 교수는 “6.25는 내전에 불과해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한 달 이내 약 1만 여명의 인명손실 정도로 전쟁을 끝낼 수 있었는데도 맥아더가 판을 키우는 바람에 전쟁이 3년이나 장기화되고 약 500여만 명의 사상자를 가져왔다는 황당무계한 논리를 펴고 있다. 그렇다면 김일성이 처음부터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1만 여명의 목숨도 희생되지 않을 수 있지 않았는가?

 

뉴욕타임스 특파원으로서 미국의 월남전 개입을 비판한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았던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기자는 2007년 사후(死後,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닷새 전 탈고)에 출판된 가장 추운 겨울(The COLDEST WINTER)’이란 책에서 한국전쟁에 대해 자유 세계가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하여전쟁을 선택한 것은 내전(civil war)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과 서구의 다른 나라에 있어서 이 전쟁은 내전이 아니라 침략전쟁이었다. 이는 서구가 히틀러의 침략을 막지 못하여 2차 대전으로 이어진 점을 상기시켰던 것이다. 중국, 소련, 북한에는 이게 놀라운 관점이었다. 그들은 남침이 한국인들 사이의 결판이 나지 않은 내전의 연장선상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아래는 6.25전쟁 69년을 맞아 6.25관련 망언을 정리한 것이다(일부 인사들의 직책은 발언 당시)>

 

문재인=(6.25 전쟁은) 내전이면서 국제전(2017921일 제72차 유엔총회 기조연설) 반만년 역사에서 남한과 북한은 그 어떤 나라도 침략한 적이 없다.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 슬픈 역사를 가졌을 뿐이다(2019614일 스웨덴 의회 연설) 캄보디아의 내전 극복의 지혜를 한국에 나누어 달라(2019315일 캄보디아 프놈펜 총리실 평화궁에서 훈센 총리와 회담 뒤 공동 언론발표를 통해) 대한민국이 1948815일 건국됐다고 하는 주장은 헌법에 반하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없애는,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다(2015115일 국회에서 열린 시도당-지역위원장 연석회의에서 황교안 국무총리의 3일 발표된 대국민담화에 관해 공개질의하며)

 

문재인의 이 연설 대목은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처럼 6.25를 내전으로 규정함으로써 6.25전쟁의 성격을 왜곡한 중대한 발언인데도 지금까지 이를 문제점으로 지적한 언론은 거의 없다. 극히 한 두 개의 인터넷 언론이 지적했을 정도다.

 

문재인의 ‘6.25 내전주장은 훈센 캄보디아 총리와의 회담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내전 극복의 지혜를 나누어 달라는 문재인의 언급을 둘러싸고는 국내에서 문재인이 혹시 지금의 남북관계나 우리나라의 이념 갈등 상황을 내전상황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내전 상황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등 해석이 분분한 상태다.

 

문재인의 대한민국이 1948815일 건국됐다고 하는 주장은 헌법에 반하는 것이다라는 발언은 아이러니하게도 당장 전임대통령이자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주인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건국개념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건국 50주년을 기념하는 거창한 행사를 개최했고, 건국 50주년 기념우표 등 기념품들과 함께 고속도로카드까지 만들었다. 문재인이 모신 노무현 대통령은 20038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1948년 오늘) 민주공화국을 세웠습니다. 바로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를 건설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러한 해방과 건국의 역사 위에서...”라고 말했고, 2007년 정동영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대한민국은 내년 2008년으로 건국 60주년을 맞이합니다라고 했다. 2008225일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올해로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이합니다라고 했다. 어떤 대통령도 대한민국의 1948년 건국을 부정하지 않았다.

 

 

2017년 9월 23일 마로니에공원(옛 서울대학교 문리대 교정)에서 열린 보수단체 시국집회에서 조원진 의원이 유엔에서 6.25전쟁을 내전이라고 말한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6.25 전쟁은 내전(20061120일 캄보디아 동포 간담회) 북한은 패전당사자 아니다...6.25남침 사과받으라는 것은 비현실적(20071019일 청와대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전에 6.25 전쟁에 대한 북측의 사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CNN 기자의 질문에 대해) (6.25전쟁 모의에 가담하고 개입한) 마오쩌둥을 존경한다(2003710일 중국 CCTV 방송 인터뷰)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200369일 일본 방문 중) 미국 안 갔다고 반미주의냐? 반미면 또 어떠냐?(2002911일 대구 영남대 초청강연) 용산 미군기지는 침략의 상징이다(200431일 제85주년 삼일절 기념사) (대한민국 건국사에 대해)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던 시대(2003225일 제16대 대통령 취임사) 우리의 근·현대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굴절을 겪었다( 20033.1절 기념사) 반민특위 역사 읽노라면 피가 거꾸로 돈다(2004825일 독립유공자 초청 청와대 오찬) 김구 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은 왜 패배자밖에 없는가? 하는 의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왜 패배했는가? 역사에서 올바른 뜻을 가진 사람은 왜 패배하게 되는가? 이런 질문은 우리 역사에서는 정의가 패배한다는 역설적 당위로 귀착되었고, 나는 그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자신의 저서 노무현이 만난 링컨’, 학고재, 2001) 한국은 미국을 등에 업은 자본주의 분열세력이 세웠다(20011118일 안동시민학교 특강)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역사에서 분열세력이 승리했다는 사실(200571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평통 12기 전체회의대회사)

 

김대중 대통령=6.25는 실패한 통일전쟁(2001년 국군의 날 행사 연설)

 

6.25에 대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3인 대통령의 이같은 역사관은 국내 좌익과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역사관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6.25전쟁은 북한이 소련의 스탈린과 중공의 마오쩌둥이라는 두 공산주의 국가 지도자의 사주를 받아 김일성이 일으킨 침략전쟁(남침전쟁)이지 내전이나 통일전쟁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유엔 감시하의 자유선거 후 유엔총회 승인을 거쳐 탄생했지만, 북한은 반국가단체에 불과했다.

 

6.25전쟁을 내전으로 보는 역사관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내전이란 말을 쓰게 되면 북한의 침략으로 일어난 6.25전쟁의 책임을 남북이 나눠져야 한다. 전쟁 발발 직후 소련은 그들의 전쟁 개입을 은폐하기 위해 6.25전쟁을 공식적으로 내전이라고 불렀고 이때부터 이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당시 안드레이 그로미코(Andrey Gromyko)소련 외무차관은 앨런 커크(Allan Kirk)소련주재 미국대사에게 남한이 38선상에서 먼저 국경분쟁을 유발하여 북한이 반격을 가하면서 전면전으로 비화됐다고 주장했다. 소련은 전쟁 개입 사실을 은폐하고 내정불간섭의 원칙을 내세워 유엔과 미국의 참전을 막기 위해 6.25전쟁을 내전으로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냉전이 붕괴되면서 소련이 공개한 많은 문서들은 6.25가 더 이상 내전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6.25전쟁을 내전(civil war)’으로 보는 것은 수정주의(修正主義, revisionism)의 입장으로서, 수정주의자들에 따르면 이 전쟁을 누가 일으켰는가” “이 전쟁에서 누가 방아쇠를 먼저 당겼는가라고 묻는 것은 학문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학자는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이다. 이들에 따르면 6.25전쟁은 집안 싸움이며, 유엔은 괜히 남의 집안싸움에 개입해 통일 훼방꾼 역할을 했다는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6.25가 통일전쟁이란 관점은 6.25조국해방전쟁으로 규정한 북한의 통일관이이자 역사관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6.25 전쟁이 북한의 통일 시도였다는 말은 국가지도자가 할 말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겪으며 죽고 다쳤다. 6.25전쟁이 통일시도였다면 그런 말이 전쟁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들리겠는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이 무력을 사용해 남침한 것은 잘못됐다는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갔어야 했다. 북한에서 보면 6.25는 통일 시도겠지만 남한에서 보면 남침전쟁이다. 공산화 통일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절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전쟁이다. 우리 헌법의 기본 이념은 자유민주주의다. 국민 대다수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 김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의를 근간으로 한 우리 헌법 기본정신을 흔드는 발언을 한 것이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우리는 광복후 공산주의를 택했어야 했다. 6.25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한달안에 전쟁은 끝났고 인명피해는 1만명 이하였을 것이다(2005930일 한반도정세토론회) 6.25는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자 내전(2005727일 인터넷 매체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쓴 글) 6.25가 국제법 기준으로 내전인지 침략전쟁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6.25가 남한의 공식 규정인 침략이라 하더라도 통일전쟁이나 민족해방전쟁이 될 수 있다(2005930일 민교협 주최로 열린 요동치는 한반도 어디로 가나토론회) 우리는 광복후 공산주의를 택했어야 했다. 6.25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한달안에 전쟁은 끝났고 인명피해는 1만명 이하였을 것이다(2005930일 민교협 주최로 열린 요동치는 한반도 어디로 가나토론회) 한미동맹은 본질적으로 반민족적, 예속적, 반평화적, 반통일적이다. 한반도의 자주적 역사행로를 가로막고 평화권을 침탈한 전쟁주범은 미국과 주한미군이다. 6.25 전쟁에서 전쟁전후에 희생당한 약 2백만 명, 학살당한 약 1백여만 명, 중국군 약 90만 명, 미군 등 5-6만 명 등 총 4백만 명에게는 미국이 원수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달 이내에 이승만 정권의 몰락으로 끝났을 것이고 사상자는 남북한 주민(군인, 경찰) 1만 명 미만에 불과했을 것이다(2005930일 민교협 주최로 열린 요동치는 한반도 어디로 가나토론회)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공산화됐을 것이기에 결과적으로 잘됐다고들 하는데 당시 조선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좋아했다. 19468월 미군정이 전국 84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공산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 세력이 77%였고 자본주의 지지는 14%였다...공산주의든 무정부주의든 그 당시 조선사람 대부분이 원하는 것이면 응당 그 체제를 택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2005930일 민교협 주최로 열린 요동치는 한반도 어디로 가나토론회) 미국 때문에 제2의 청일전쟁이 한반도에서 발발할지 모른다. 대만이 독립선언을 하게 되고 중국이 침략하게 된다면 한반도는 미국의 최전방기지로서 대중국 침략전쟁의 발진기지가 된다. 그런데도 주한미군에게 대중국 침략기지가 될 평택 땅 8백만평을 바치고 기지 이전 비용 55천억이라는 돈까지 부담한다. 이는 자기분열증적이고 숭미(崇美) 자발적 노예주의며 제2의 청일전쟁을 자초하는 자살정책이다...이제는 한미 동맹을 철폐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새 판짜기를 해야 한다(2005930일 민교협 주최로 열린 요동치는 한반도 어디로 가나토론회) 한미동맹이 없었더라면 친일파 청산, 통일국가 수립, 민족정기 확립 등 해방공간의 민족사적 핵심과제들이 좌절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박관용 전 국회의장, 조순형 전 민주당 대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이회창 전 총재 같이 친일파의 후손들이 활개 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발적 노예주의적 발언을 서슴치 않는 일제 헌병 오장의 아들 신기남 전 여당 대표도 존재치 않았을 것이다... 한미동맹은 한국사회 주류의 심성을 자발적 노예주의로 만들었다. 한미동맹이 없었다면 지난 1-2년 사이 소위 반핵반김세력들이 전쟁광 부시의 사진과 성조기를 들고 서울시청 앞에서 활개 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2005930, 민교협 주최로 열린 요동치는 한반도 어디로 가나토론회) 북한의 김일성 정권은 높은 수준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이승만 정권은 정통성은 물론 권력행사 정당성도 부재했다(자신의 저서 민족의 생명권과 통일’)

 

김영승(미전향장기수, 소설 태백산맥의 실제 주인공)=6.25는 위대한 민족해방전쟁, 김일성은 수령님’, 김정일은 장군님’(자신의 블로그(http://blog.voiceofpeople.org/kimys3587)를 통해 각각 쓴 피로 물든 불갑산은 말한다’(2006116), ‘남조선 혁명열사 박영발 동지 52주기를 맞이하여’(200635), ‘역사기행과 열사묘소 참배’(2006430)라는 제목의 글에서 빨치산을 미화하며)

 

김영승씨는 193587,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 삼학리 신성부락에서 7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국정원 자료에 따르면 김영승씨는 “6·25 때 노동당에 입당한 후, 20여회 민가에 침입해 식량 등을 강취하고, 군부대를 습격하여 국군 5명을 살해한 자로 기록돼 있다. 김씨는 중학교를 다니던 195015세에 소년 빨치산으로 입산했다. 1954년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은 후 감형됐다가 1989년 출소했다. 현재 비전향장기수 모임인 통일광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씨는 소설 태백산맥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조국 청와대민정수석은 서울대 교수 시절이던 2007625한겨레신문에 쓴 자신의 칼럼에서 김영승씨가 김일성을 수령님으로 부른 것은 단순한 친북적 표현행위라며 김씨를 옹호했다.

 

199462일 김영삼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2000쪽에 달하는 6.25관련 문서를 전달했다. 여기에는 1949년부터 1953년 사이 김일성, 스탈린, 모택동이 주고받은 내용이 수록돼 있으며 김일성의 남침계획, 스탈린의 3단계 지원계획, 중공군의 개입계획 등이 수록돼 있다.(사진: 국가기록원 캡쳐)

  

소위 한국 현대사 연구를 자부하고 있는 일부 국내 교수들도 38선의 생성과정과 6.25전쟁 발생 과정을 수정주의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

소련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일주일을 남겨놓고 194588일 대일선전포고를 했다. 유럽에서의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의 독일군과 싸우느라고 기진맥진한 소련은 태평양전쟁에 뛰어들 여력이 없었지만 이틀 전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 참전한 것이다. 물론 소련은 앞서 2월 얄타회담에서 미국의 양해하에 사할린 남부와 쿠릴열도를 차지하고 중국의 부동항 다이렌(大連)과 뤼순(旅順)을 장기간 사용하게 된 것에 대한 보답으로서의 참전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89일 나가사키에 또 원폭이 투하되자 일본은 항복을 결심했고 만주에 있던 일본 관동군은 거의 저항을 포기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군은 파죽지세로 만주와 한반도로 밀고 내려왔다. 미국은 소련과의 사이에는 한반도를 함께 해방시킨다는 막연한 약속이 있었지만 소련이 너무 급속도로 한반도에 진입하자 당황했고 제동을 걸었다.

811일 새벽 미 국방부 작전국 소속 딘 러스크(Dean Rusk, 훗날 미 국무장관)육군 대령과 찰스 본스틸(Charles Bonesteel, 훗날 주한 유엔군사령관, 미군사령관, 8군사령관 겸직 )대령은 한반도에 적당한 선을 그어 소련의 급속한 남진을 저지하라는 상부 지시를 받고 지도를 꺼냈다. 두 대령은 처음엔 북위 40도선을 고려했으나 너무 북쪽이라 소련측이 거부할 것 같아 한반도 중심을 관통하는 38도선을 택했다. 수도 서울과 일본군의 미군포로 수용소가 38도선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38선은 적당하게 보였다. 미국은 즉각 소련에게 38도선까지만 내려오라고 권고했고 소련은 이를 수락했다. 그래서 맥아더 장군이 종전 직후 일반명령 1호로 38선의 존재를 선포한 것이다. 그런데 국내 친북 좌파들은 맥아더가 38선 분단 집행의 집달리였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마치 미국이 이유 없이 38선을 긋고 한반도를 분단시키기나 한 것처럼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선동하고 있다. 미국이 그때 38선을 긋지 않았으면 소련은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고 동북아의 위성국가로 만들었을 것이다. 당시 소련은 동유럽 각국을 위성국가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동북아의 요충 한반도를 위성화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갖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이 38선을 획정, 한반도를 분단시킨 게 아니라 38선을 그었기 때문에 남한만은 적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도 미국이 38선을 그어 한반도 전체의 적화를 막은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친북좌파들은 공산주의도 좋으니 6.25전쟁 때 김일성의 통일 실패가 원통할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절대 다수는 지금도 공산주의 체제하에 한반도가 통일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재정 통일부장관 지명자=(‘6.25는 남침인가?’라는 질문에) 규정해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20061118일 국회 통외통위 인사청문회)

 

이정희 민주노동당대표=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는 좀 더 치밀하게 생각해서 나중에 답하겠다(201084, KBS 라디오 열린 토론에서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청취자의 질문)

 

이종석 전통일부장관=북침인가 남침인가의 문제는 한국전쟁을 살펴보는 데 무의하다고 할 수 있다(199035일 한국정치연구회가 펴낸 북한정치론에 이종석씨가 집필한 부분)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은 장관 내정자 시절인 2006111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6.25전쟁의 책임에 대한 질문을 받고 여기서 규정해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가 국회의원이 계속 따지자 남침이라는 사실은 이미 규정돼 있는 것이라고 마지못해 고쳐 말했다. 그는 또 서면답변에선 김일성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할 것이며 아직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는 국민과 수백만 호국영령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적어도 6.25전쟁 이후 징집된 1천여만명의 대한민국 장병이 조국을 위해 역적행위를 했다는 얘기가 된다. 남의 집안싸움에 괜스레 유엔 이름으로 21개국이 끼어들어 통일도 방해했고 희생만 키웠다는 논리다.

이재정, 이정희, 이종석씨의 언급은 6.25가 내전이라는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또한 당시 남에서 먼저 북을 공격했다면 수많은 38선 접경 주둔 한국군 가운데 38선을 단 1cm라도 넘었어야 할 부대가 최소 한 개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수호(전 민주노총위원장-전교조위원장 이수호)=세계평화를 위해 미국은 한반도에서 떠나라. 세계의 모든 분쟁지역에서 미국은 떠나라...우리는 알고 있다.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한반도에서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다. 선교사를 앞세워 침략의 발톱을 숨기고 들어온 그 가증스러움은 그렇다 치자. 단 한 방으로 수십만의 목숨을 앗아가는 핵폭탄을 사용해 태평양전쟁의 승전국이 되어 한반도의 허리를 자르고 독도를 일본에 선물했다. 민족 간의 분쟁과 이웃나라와의 다툼을 알고도 너는 그 악의 씨를 뿌렸다. 그래서 6.25전쟁은 네가 기획했고 결국은 네가 주역까지 하며 한반도를 철저히 파괴했다(200885일 부시 미 대통령 방한 반대 집회 연설문

 

전교조 통일교재 이 겨레 살리는 통일’(전 민주노총위원장-전교조위원장 이수호 지음, 2001)=우리는 통일교육에 북침’, "미국의 남침 유도설‘, ’민족해방을 위한 정당한 전쟁이라는 설에 심정적 무게를 두기 때문에 한국전쟁이 북의 남침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교과서 내용을 학생들에게 교육하기가 당혹스럽다. 그래서 전교조는 남침설을 피해간다. 남침이냐 아니냐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분단의 역사적 교훈에 초점을 맞추라고 강론한다(p.16). 분단의 역사적 교훈은 분단이 외세와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운 친일파에 의해 야기됐다는 것이다(p.26). 통일을 방해한 외세는 미국이다.

 

6.25 전쟁을 누가 일으켰던 그게 무슨 상관이냐, 그런 것은 따지지 말자. 단지 중요한 것은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 것이며 그 전쟁의 원흉은 바로 미국과 친미-냉전 세력임을 교육하라(p.26). 북한군을 친근한 친구로 부각시키고 북한을 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론한다. 통일은 전교조의 목표이며 통일을 방해하는 세력을 미국과 남한 내의 냉전-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한다. 결국 전교조의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 내 기득권 세력과 미국이라는 결론이다.

 

러시아의 옐친(Boris N. Yeltsin) 대통령이 1994년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에게 제공한 6.25전쟁 관련 비밀문서에는 김일성의 요청을 스탈린이 승인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됐다는 내용이 분명히 명시돼 있다. 또한 스탈린 후임자였던 흐루쇼프 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흐루쇼프 회고하다는 책에서 이를 재확인하고 있다. 이처럼 북침설을 부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공교롭게도 스탈린의 곁에서 전쟁모의를 지켜본 흐루쇼프란 사실이다. 1964년에 소련 공산당 내부의 쿠데타로 물러나 은퇴생활을 하던 그는 1970년에 출간, 미국으로 밀반출한 이 회고록에서 김일성이 1949년 스탈린을 찾아와 남침을 허락해달라고 간청하다가 퇴짜를 맞고 돌아간 사실, 1년 뒤 다시 찾아와 허락을 받는 과정, 스탈린이 미국의 개입을 걱정해 마오쩌둥의 조언을 구했으며, 마오가 내부 문제이므로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는 비화 등을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스탈린 별장 만찬에서 소련 지도부가 축배를 들면서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격려해준 장면은 6.25전쟁이 남침이지 북침이나 내전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준다결국 옛 소련 비밀문서의 공개 등에 따라 북침설, 좌파 수정주의학자들의 전쟁유도설, 내란확전설 등은 명백한 사실 왜곡, 역사 조작임이 드러났다.

 

소련의 공산당 제1서기 흐루쇼프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역사를 위해 진실을 말하겠다며 6.25는 김일성 계획 하에 스탈린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기습 남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6.25를 전후로 진정한 애국자들과 양심적 지도자들은 남한을 버리고 북으로 갔다...이북에서는 새나라 건설을 위해서 새술을 새 부대에 담는 민족정기가 넘쳐있는 데 같은 시각 남한은 썩은 술을 낡은 부대에 그대로 담고있는 꼴이었다(2007419일 한겨레통일문화상 시상식) 미국이야말로 악의 제국이며 부시행정부의 집권세력이야말로 악의 축이다(200347일 한겨레신문 인터뷰) 우리 내부에 미국을 신으로 모시고 있는 세력이 북한과의 전쟁을 호시탐탐 미국에 요청하고 있다(2007419일 한겨레통일문화상 시상식)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가 아니다(1999812일등 여수아카데미강연) 한국은 철저히 미국의 속국이다. 군인은 철저히 오브 더 피플, 바이 더 피플, 포 더 피플이 돼야한다. 주한·주일 미군은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돈을 대줘가면서 하기 때문에 오브 더 피플은 맞지만 작전통제권을 미국이 갖고 있고 미국의 이익을 위해 주둔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이 더 아메리컨, 포 더 아메리컨이다(2003712일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인터뷰)

 

황석영(소설가)=김일성은 을지문덕, 이순신, 세종대왕 같은 위인(1989년부터 1991년까지 다섯 차례 밀입북(密入北)하고, 일곱 차례 김일성을 만난 뒤, ‘노둣돌이라는 잡지의 1992년 창간호 인터뷰에서. 이 같은 언급은 그가 1989년 북한을 다녀와서 쓴 북한방문기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에도 실려 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김일성 주석은 비록 이북의 역사가들이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고 일본군을 삼대 쓸 듯 물리치며 군사적 해방을 쟁취한 짜릿한 순간을 연출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 세계사에서 이 수준의 혁명을 달성한 지도자는 몇 안 된다 - 분명히 혁명의 창건자로서 위치를 누릴 수 있었다. 혁명의 창건자, 이는 스탈린이나 덩샤오핑도 넘볼 수 없는, 한 나라에서 오직 한명의 혁명가만이 누릴 수 있는 자리였다...김일성은 1992년 자신의 80살 생일을 맞이하여 <세기와 더불어>라는 이름의 회고록을 펴냈다...<세기와 더불어>라는 제목이 상징하듯 김일성은 20세기의 인간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부국강병에 기초한 근대화를 추구한 20세기형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누구보다 철저한 실용주의자였다. 덩샤오핑은 쥐를 잘 잡는다면 검은 고양이면 어떻고 흰 고양이면 어떻냐는 흑묘백묘론을 설파하여 유명해졌지만, 많은 사람들은 김일성이 그보다 25년 전에 밥만 잘 먹을 수 있으면 되었지 왼손으로 먹건 오른 손으로 먹건 무슨 상관이냐는 말을 하였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200478한겨레21’에 기고한 칼럼)

 

한강(소설가)=우리는 평화가 아닌 어떤 해결책도 의미가 없고, 승리는 공허하고 터무니없으며 불가능한 구호일 뿐이라는 걸 안다... 또 다른 대리전(proxy war)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금 여기, 한반도에 살고 있다(2017107일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제목의 글)

 

한강의 이 글은 6.25전쟁을 강대국들이 한반도에서 자행한 대리전으로 표현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가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비판하려면 핵 도발로 서울과 도쿄,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하며 전쟁 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북한을 먼저 나무랐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한강의 글이 갖는 문제점은 필자 개인 의견을 마치 한국인 전체 의견인 것처럼 썼다는 것이다. 그의 글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인에게 한국인들의 생각을 잘못 인식시킬 우려가 있다. 대한민국 누구도 그에게 북핵과 한반도 전쟁 위기에 대해 한국인을 대변할 권한이나 자격을 주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그의 글은 오만하기까지 하다.

  

장영달 열린우리당 최고위원=맥아더 장군 동상철거주장은 민족적 순수성(2005912일 인천 맥아더동상 철거논란과 관련)

 

강희남 목사(전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 의장)=6.25당시 맥아더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양키의 식민지 지배를 받지않고 살 수 있었다( 2005519통일뉴스인터뷰)

 

문정현 신부=한국민은 인간백정 주한미군을 반드시 한국 재판대에 세우고 한국민의 이름으로 심판할 것이다(20021121일 동두천 미군 캠프 케이시 정문 앞에서 열린 효순·미선 추모집회에서 낭독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김삼웅 평민신문’(평민당 기관지) 편집국장(전 독립기념관장)=2차 대전 후 민족반역세력이 주류가 된 나라는 한국과 남베트남(월남)뿐이다...분단·독재·외세·전쟁 세력은 이 나라 지배집단으로 군림해 온갖 전횡(專橫)과 패덕(悖德)을 일삼아 왔고, 양심세력은 항상 패배하고 탄압받고 착취 대상이 됐다(출처: 2008321일 조선일보 사설)

 

 

기사입력: 2019/06/24 [01:53]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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