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는 왜 반일승전국서 배제됐나?
“임시정부는 기여도 미미하고 국가 아니다”
 
서옥식 전 연합뉴스 외신1부장-편집국장

臨政은 왜 반일승전국서 배제됐나?

74년전 오늘(9월2일)은 도쿄만 미 해군전함 미주리함상에서 일본이 항복문서 서명한 날

대일선전포고하고도 국가승인 못 받아 항복조인식 참가 못해

임시정부는 기여도 미미하고 국가 아니다는 이유로 전승국(연합국)대열 배제

김일성이 항복 받아냈다고 허위조작 가르치는 북한도 증거물인 항복문서 없어 난감

교과서등 모든 문헌에서 연합국 전승사실 은폐학교에서 항복조인식 안 가르쳐

  

서옥식 전 연합뉴스 외신1부장-편집국장

 

▲ 북한의 교과서 등 역사서에 철처히 배제돼온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식 사진. 1945년 9월 2일 도쿄만의 미해군 전함 미주리함상에서 진행된 조인식에서 시게미츠 마모루(重光葵)일본 외상이 서명하고 있다모자와 가방을 받쳐들고 서 있는 연미복의 일본인은 내각정보국 제 3부 부장이던 가세 도시카즈(加瀬俊一). 가세는 패전후 초대 유엔대표부 특명전권대사를 지냈다

 

지금으로부터 74년 전인 1945년 9월 2일은 일본이 태평양전쟁 항복문서에 공식 조인한 날이다일본은 도쿄만(東京灣)에 정박중인 미해군 전함 미주리함상에서 거행된 조인식에서 항복문서(Instrument of Surrender)에 서명연합국에 무조건 공식 항복했다이로써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眞珠灣, Pearl Harbor) 기습으로 시작해 3년 8개월 동안 진행된 태평양전쟁은 공식 종결됐다

 

1868년 1월 3일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으로 성립된 일본제국(日本帝國)’은 77년 만에 붕괴되고 일본국(日本國)’으로 바뀌었다즉 천황을 기축으로 하는 일본제국에서새로운 헌법과 미일안보조약을 토대로 하는 일본국(日本國)으로 바뀐 것이다이러한 일본국의 성립은 1603년 도쿠가와 막부(徳川幕府),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과 함께 일본 역사의 큰 전환점의 하나였다전쟁은 길었지만 조인식은 아침 9시 4분부터 8분까지 겨우 4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항복문서의 요지를 보면 <우리는 미합중국중화민국그리고 영국 정부의 수반들이 1945년 7월 26일 포츠담에서 발표하고 뒤이어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참여한 선언의 조항들을 일본천황일본정부 그리고 일본대본영(日本大本營, Imperial General Headquarters: 태평양 전쟁 때에일본 천황의 직속으로 군대를 통솔하던 최고 통수부)의 명을 대신하여 공식 수락하는 바이다일본군과 일본 지배하에 있는 모든 군대는 연합국에게 무조건 항복함을 포고한다적대행위를 즉각 중단하고모든 선박항공기군용 및 민간 재산을 보존하고 그 훼손을 방지하며연합군 최고사령관이나 그의 지시에 따라 일본 정부의 여러 기관들이 부과할 수 있는 모든 요구에 응할 것을 명한다>이다

  

도쿄만의 미주리 함상 영문 항복문서 조인식에는 연합국측에서 일본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미함대사령관 체스터 니미츠(Chester W. Nimitz) 제독을 비롯 미국중화민국(당시의 蔣介石정부현재의 臺灣), 영국소련프랑스캐나다네덜란드호주뉴질랜드 등 9개국 10명의 대표가일본 측에서는 히로히토(裕仁천황을 대신한 시게미츠 마모루(重光葵외상과 우메스 미치로(梅津 美治郞육군참모총장 등 11명이 서명했다항복문서 일어본에는 히로히토 천황과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東久邇宮稔彦王총리대신 이하 14명의 내각 각료가 연명으로 별도 서명했다.

 

일본항복문서(Japanese Instrument of Surrender)에 서명하는 맥아더 일본점령군사령관

 

이같은 조인식은 우리 임시정부가 태평양전쟁이 발발했을 때 망명지 충칭(中京)에서 1941년 12월 10일 김구(金九주석과 조소앙(趙素昻외무부장 명의로 전문(前文)과 5개항으로 된 대한민국임시정부 대일(對日)선전성명서를 공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승국(연합국)에 끼지 못했다는 것즉 정확히 말하면 국가취급(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당시 연합국측은 전통적인 국제법 이론을 따르지 않더라도 어떤 주체(entity)가 국가로 성립하려면 영토주권국민이 갖춰져야 하는데, 영토와 주권이 없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어떻게 국가로 볼 수 있느냐고 전승국 대열에서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광복군 등 임정(臨政)의 항일투쟁을 과소평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미국은 임정 승인을 통한 군사적 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게 사실이다반일전선에서 균형추를 움직일 만한 군사적 능력이 임정에 없었기 때문이다임시정부는 충칭 시기였던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을 창설하고 지청천(池靑天)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그해 12월 일본에 선전포고했고미얀마사이판필리핀 등지에 병력을 파견했다광복군의 작전권은 중국 국민당에 있었으나 1944년 8월 임시정부로 이관독자적인 군사행동을 펼칠 수 있었다. 1945년에는 국내 정진대(挺進隊선발대)를 편성해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 미국전략사무국부대와 합동으로 국내 진격작전을 추진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

 

따라서 대한민국 건국일이 이승만에 의한 1948년 8월 15일 아니라 3.1운동 직후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인 1919년 4월 11(원래 4월 13일이나 100주년을 맞아 2019년부터 변경)이라는 문재인의 주장은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문재인은 대통령이 되기 전인 2016년 8월 15일 진정한 광복이란 제목으로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요즘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 건립됐으므로 그날을 건국절로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역사를 왜곡하고 헌법을 부정하는 반역사적반헌법적 주장이다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얼빠진 주장이다라고 한 뒤 지금까지 이런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도 김일성이 전적으로 항일무장투쟁을 통해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선전하고 세뇌시키기 위해 1945년 9월 2일에 있은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사실을 철저히 은폐하고 있다북한은 김일성이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다고 하면서도 항복문서 등 아무런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북한의 교과서 등 역사서들은 아예 미주리함상에서 거행된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식을 기술하지 않고 있다.

  

항복조인식에 앞서 점령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서명순서 등을 설명하고 있다

 

당시 항복문서 조인식 광경을 녹화한 유나이티드 뉴스(United News) 뉴스릴의 4분 38분 짜리 동영상(제목: Japanese Sign Final Surrender,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을 보면미주리함상에는 먼저 맥아더 장군을 비롯한 미국/중국/영국/소련/프랑스/네덜란드/호주/캐나다/뉴질랜드 대표가 갑판 위에 나와 있고일본 외상 시게미츠가 작은 함정을 타고 미주리함상으로 올라오는 장면이 생생하다그런데 미주리함 갑판에 올라선 시게미츠 외상은 지팡이를 짚고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게미츠가 다리를 절고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데 대해 이 동영상의 앵커는 그는 몇 년 전 상하이에서 한국인 애국자의 공격으로 부상을 당해 의족을 달고 나왔다”(He was wounded by a Korean patriot in Shanghai years ago and walks on an artificial leg.)라고 설명한다시게미츠의 다리를 절게 만든 한국인 애국자는 윤봉길 의사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上海홍커우(虹口)공원(지금의 루쉰(魯迅)공원)에서 열린 일본 천황 생일인 천장절 기념식에 참석한 일본 군인들에게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등 많은 일본 장성을 죽인 그 현장에 시게미츠는 상하이 주재 일본 공사로 참석했다가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그로부터 13년 후에 열린 항복문서 조인식에 오른쪽 다리를 의족으로 해서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것이다시게미츠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3년 외상이 된 후, 1944년 대동아장관을 겸했다그는 항복문서에 조인한 후 1946년 A급 전범으로 도쿄전범재판에서 금고 7년형을 받았다. 1950년 가석방 된 이후 개진당(開進黨총재일본민주당 부총재 등을 거치며 다시 외상이 됐으며, 1957년에 7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우리의 항일운동사에서 윤봉길 의사의 활동상을 철처히 배제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어찌됐건 윤봉길 의사가 소개되는 이 조인식을 역사서에 실을 수 없을 것이다

 

우메스 미치로(梅津 美治郞일본 육군참모총장의 서명 모습  

기사입력: 2019/09/02 [08:13]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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