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여유를
부지런한 것은 좋은데, 막가는 집착은 나쁘다
 
삼덕 폴리젠 논설가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다. 스피노자는 왜 그런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했을까? 스피노자의 생애를 보면 삶이 극단적으로 고달팠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하는 경력이 있다. 유대인이었으나 유대인의 전통을 강력하게 비판했기에 이단 혐의로 파문을 당했고 유대교 광신자들 중에는 그의 암살을 기도하는 자까지 있었다고 한다. 독신으로 살았으며, 대학교수직을 제의받았으나 철학의 자유를 지키겠다며 거절했고, 렌즈 가는 일로 생활비를 조달했으며, 폐결핵으로 죽었다. 그런 그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으니 진지한 삶의 의지가 담겨 있는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년 후 쯤에 한반도가 바다에 잠기게 되거나 영상 40도와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기후가 된다하더라도 한나라당 빅2에게 줄을 서는(또는 줄을 세우는) 활동이 지금처럼 치열해질까? 아마 바다 수위가 높아져도 잠기지 않는 외국의 지역, 너무 덥거나 너무 춥지 않은 지역으로 이민을 가는 대열에 줄서기 바쁠 것이다. 스피노자는 왜 하필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는지 모르겠으나 내일 또는 가까운 시일에 지구 멸망이 온다 할지라도 의미가 있는 활동이 있다면, 바로 그 활동은 그 사람 인생의 사명일 것이다. 그것을 위해 살고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명이라면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수행할 가치와 의미가 차고 넘치는 일일 거였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는 추세인데, 2080년대에 이르러 지금보다 지구 온도가 3도 상승하면 1억 2천 만 명이 기근 위협에 시달리고 11억~32억 명이 물부족을 겪을 것이라고 한다. 2080년이면 앞으로 70여 년이 흘러야 할 것이며 현재의 성인은 그 전에 이미 대부분 자연사했을 것이니, ‘나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한다면 착각일 것이다. 그런 추세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예전에 겪지 못했던 재앙이 발생할 것이고, 그 재앙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003년 9월에 한반도를 휩쓴 태풍 매미나 2005년 8월 미국 뉴올리언스를 휩쓴 태풍 카트리나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슈퍼 태풍이 되었다는 게 기상학자들의 지적이다. 2005년 에마뉘엘 교수는 논문에서 태풍 강도의 변화는 해수 온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이 때문에 태풍의 파괴력은 앞으로 점점 증가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매미나 카트리나보다 더 강력한 태풍이,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발생할 거였다. 지구온난화가 지속될 것은 분명하므로 태풍의 강도가 더 세지고 빈도가 더 높아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2004년 12월에는 인도네시아에 쓰나미가 강타했다. 높이 30미터의 파도가 시속 800킬로미터로 해안을 초토화시켰다. 남아시아 전역에서 주민과 관광객 23만여 명이 사망했고, 인도네시아는 나라의 기틀이 휘청거릴 정도의 고통을 받았다. 그런데 ‘그 당시 수마트라 섬에서 원시생활을 하고 있던 원주민은 1명도 안 죽었다’는 사실은 첨단과학의 혜택을 입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자연 앞에서 겸손할 것을 가르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마트라 원주민은 평소와 너무나 다른 새와 동물의 움직임, 바람과 구름의 기이한 변화에서 천재지변을 예감하고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지대로 대피했다는 것이다.

지금 지구에는 숱한 경고음이 고함을 치고 있다. ‘수십 년 만의 최고 더위, 최악의 가뭄, 최대의 폭우, 최대의 폭설…’ 하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하고 있다. 눈이 내리지 않던 지역에 눈이 내렸다거나, 겨울인데 해수욕을 즐길 정도로 더위가 찾아왔다거나, 극지방의 빙산이 녹아서 물개가 오갈 데 없이 방황한다는 소식들…

한반도도 이미 이상하다. 봄이 되면 시시때때로 황사경보가 울린다. “외출을 삼가시고, 창문을 열지 마시고, 외출후에는 손발을 깨끗이 씻으십시오…” 비가 내려도 흙비가 자주 내리기에 길가에 주차된 차량은 깨끗해지는 게 아니라 얼룩덜룩해진다. 예전에는 남부지방의 농작물이었는데 지금은 기후변화로 중부지방의 농작물이 된 것이 있다고 한다. 동해바다 온도가 높아져서 명태가 잡히지 않는다.  한반도 주변의 바다에 해파리와 불가사리는 엄청나게 늘었고, 그에 비례하여 다른 어종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관찰도 있다. 한미FTA에서 쌀을 최후의 마지노선으로 지키려 했지만, 한국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지구온난화의 여파로 벼농사의 수확량이 계속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인간들에게 타협의 여지를 제공하지 않는다.

영국의 경제고문 니컬러스 스턴은, 수마트라 원주민처럼 징조를 읽고 재앙을 대비하자는 차원에서 전세계 GDP의 1%(약 6500억 달러)를 지구온난화 대책 비용으로 쓰자고 제안했지만 대부분의 나라는 콧방귀만 대충  뀌고 있다. 아직 지구온난화를 발등에 떨어진 불로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것 말고도 시급하게 돈 쓸 데가 많기 때문이다.

‘투모로우’라는 영화에서도 그랬다. 남극 빙하를 탐사하던 기상학자가 천재지변의 징후를 포착하고 미국 정부에 대책을 촉구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남극, 북극의 빙하가 녹고, 그 영향으로 해류의 흐름이 바뀌어 지구전체에 빙하기가 올 수도 있음(100년 내에 온다고 했던 것 같다)을 경고하면서 지구온난화에 대비하는 재정을 대폭 늘려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당국은 경제논리로 묵살했고, 지구온난화 방지를 사명으로 여기던 기상학자는 왕따가 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영화의 장면은 이렇게 구성되고 있었다. 눈이라고는 구경도 못했던 인도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도쿄에서 우박으로 인한 피해가 보도되고, 거대한 하리케인이 하와이를 할퀴고 지나갔으며, 영국의 군용 헬기가 날아가던 도중에 연료가 얼어붙어 추락하는 등 이상 증세는 지구 곳곳에서 동시에 발생하고 있었다. 급기야 LA가 엄청난 토네이도로 뒤집어지고, 인도네시아를 덮쳤던 쓰나미를 능가하는 해일로 인해 뉴욕이 물에 잠기면서 백악관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기상학자도 더욱 초조해졌다. 지구온난화의 추세에 의하면 100년 후쯤에 빙하기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기상이변이 기하급수적인 곡선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주에 나가 있던 비행사는 지구를 총체적으로 두텁게 휘감고 있는 구름을 보고 경악했다.

유엔 환경보고서에 의하면, 영화의 그런 장면이 완전히 공상인 것은 아니다. 현실화될 가능성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 속도가, ‘투모로우’처럼 빨라지고 있는 추세다. 만일 ‘투모로우’의 상황이 현실화된다 할지라도 한나라당은 여전히 빅2를 중심으로 한 갈등의 도가니에서 헤맬까? 한 달이나 6개월 후쯤에 ‘투모로우’의 상황이 발생할 것이 확실하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중에서 때려치울 부분은 어떤 것일까? 그런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결코 내 사명의 영역은 아닐 것이다.

투모로우라는 영화에서 빙하기가 도래하니, ‘명예, 이익, 부, 지위를 얻기 위한 시도들’은 모조리 무의미해지고 있었다. 빙하기가 닥쳤을 때는 과학문명도 특별한 효용이 없었다. 사실 빙하기가 오지 않아도 100년 안에 지금 지구상의 인류는, 마치 빙하기를 맞은 것처럼 99.99% 죽을 것이다. 자연이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부나 지위나 권력 같은 것들이, 그것을 위해 살고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온갖 꼼수와 편법과 어거지와 악다구니와 땡깡과 기만까지 동원하여 올인하는 듯한 모습들이 있다. 그런 모습은 ‘열정의 아름다움’이기보다는 ‘이성과 상식의 결핍’으로 보이기에 이렇게 권유하고 싶은 충동이 솟구치게 한다.

“부지런한 것은 좋은데, 막가는 집착으로 충혈 되고 있는 눈에서 독기는 빼십시오.” <삼덕 뉴폴 논설가: http://newpol.co.kr/>
기사입력: 2007/04/17 [08:56]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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