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칼럼] 김대중의 명분과 김영삼의 의리
김대중의 수수께끼 정치,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런아시아넷
2003년 5월경 당시 민주당대표였던 정대철이 동교동으로 김대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김대중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한국사람들은 대의명분으로 정치를 하고 일본사람들은 인간적 의리로 정치를 한다"고 말이다.

당시 언론을 통해 위 김대중의 발언을 보면서 역시 김대중은 가랑비보다는 한 수 위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헌데, 그러한 김대중의 발언은 단순히 한국과 일본 정치인들의 정치 스타일을 비교한 것으로만 해석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가랑비의 뇌리를 스친 적이 있었다.

김대중은 표현상으로는 한국과 일본을 대비하여 말했지만, 그이의 내심에는 전라도와 경상도, 구체적으로는 김대중과 김영삼을 비교하여 말한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 말이다.

본 가랑비의 기억으로는 김대중은 정치활동을 하면서 항상 명분을 선택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것도 그 명분을 현실정치에 반영하기 위해서 였다. 그의 명분이 옳고 그름은 평가자에 따라 각양각색이겠지만 말이다.

김대중의 명분은 민주주의, 인간이 있는 시장경제, 남북평화공존, 반미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독자성(자주성이라고 말하기에는 미흡하기에 이런 말을 붙인다) 그리고 지역균등론 뭐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김대중은 그 명분을 지키기 위해 정치생명뿐만 아니라 육신의 생명까지 걸고 투쟁하였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즉, 김대중은 명분의 정치를 위해 살았다.

이에 비해 김영삼은 의리의 정치인이다. 그는 정치를 함에 있어 인간적 의리를 중시하였다. 그 의리 덕분에 그의 주변에는 많은 정객들이 모였고 그것이 그의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김영삼이 그 의리에 기반하여 3당합당이라는 반민주적 폭거를 자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정객들은 그의 결정을 존중하였다.

즉, 김영삼에게 있어 정치적 명분은 자신의 정치적 실리와 일치할때는 그 명분에 편승하였지만, 더 큰 실리가 있을때는 그 명분을 버렸다. 그리고 그가 의리에 기초하여 쌓아놓은 정치적 자산을 활용하여 명분의 폐기에 따른 정치적 손실을 보충하곤 하였다. 김영삼이 대의명분보다 인간적 의리의 정치인이라는 사실은 그의 퇴임후 그의 집을 드나드는 식객들은 넘쳐났지만, 그의 재임중 정책을 계승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명분과 의리의 정치는 김대중과 김영삼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들의 열렬한 지지자인 전라도와 경상도 지지자들의 정치적 성향도 그들과 닮은 꼴이다. 김대중의 지지자들은 김대중이라는 일개 자연인에 대한 지지라기 보다는 그의 우월적 명분에 대한 지지라고 보는 것이 맞다.

2003년 특검논의에서 김대중지지자들이 김대중이라는 자연인의 육신에 대한 핍박보다는 그의 명분있는 정책에 대한 훼손을 더 우려했다는 사실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김영삼의 집권초기 하나회 숙청, 전두환과 노태우의 사법처리 등 강력한 개혁정책을 추진할때 전라도가 보여준 김영삼에 대한 열렬한 지지가 그것을 반증한다.

또 2002년 민주당 경선 그리고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전라도가 노무현을 지지한 것도 노무현의 명분을 존중한 선택이었다. 즉, 전라도는 명분있는 정치인이라면 그의 출신지역과 관계없이 지지를 보낼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경상도는 달랐다. 김영삼이 민주개혁의 대의를 저버리고 군부파쇼세력에 투항했을때 김영삼의 선택에 동의하고 말았다. 그들의 선택은 김영삼의 민주화에 대한 명분보다는 고향사람에 대한 인간적 의리를 중시한 결과였다.

또, 경상도 사람들이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을 배척한 이유도 노무현이 고향사람들과의 의리를 저버리고 김대중 편을 들었다는데 있지 않은가. 경상도는 노무현에 대해 노무현의 명분을 보지 않고 그의 의리를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의리를 회복하고자 노무현이 만든 것이 바로 열린우리당이다.  

인간적 의리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켜나가야 될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허나, 그 의리를 실천하고자 하는 자가 사인이 아니라 공인인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진다.

정치인 자신의 주변 사람, 고향 사람, 학교 동창 등과의 의리는 그 소속집단에 대한 특혜로 연결되고 그 특혜는 타집단사람들의 배척, 그리고 차별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인이 사적 의리를 중시하면 그것이 아무리 선의에 의한 것이라도 득보다 실이 많다.

* 자유게시판의 karangbi님의 글입니다.
기사입력: 2005/11/21 [12:39]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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